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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표정으로 택배 박스를 던져주고 가시는 기사님이 오늘따라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무려 5년만의 '미개봉'이 아니던가?
떨리는 마음을 뒤로 하고 아주 천천히 박스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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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엄지 손가락에 뽀드득 하는 뽁뽁이의 진동이 느껴지며,
관념 속 동경하는 쳐녀성을 정복한다.
숱한 역경에 손때 타서 번들거리는 오막삼과 밀애의 수치심에 홑이불을 덮듯 신품 렌즈를 마운트 한다.
천천히 뷰파인더에 눈을 마주치며 떼지 않을 듯 볼을 밀착한다.
매끄러움과 싸늘함의 교차가
긴장이라는 작은 파장으로 뇌리를 스친다.
날숨을 삼분의 이 쯤에서 정지하고,
이내 샤각....
초를 몇 번 나눈 시간 후
천천히 LCD 모니터를 응시한다.
측거점 정타....
칼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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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 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온 세상의 풍경은 메모리가 부족해서 아직 찍지 않고 있을 뿐이다.
마크 리부(Marc Riboud)도 인생 최고의 사진은 내일 찍을 예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밤중에 혼자 미친X 처럼 히죽 거리고 있는데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도끼눈을 한 마누라다.
일순간 13년 전 오디 대란(?) 사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박스를 집어 던지려던 마눌의 치마를 부여 잡고
제발 박스만은!!!
나중에 중고가격이....ㅠㅠ
....라는 절규에 힘없이 박스를 부여잡고 주저 앉던 가난한 월급쟁이 마눌이 아니던가!
나에게 미러리스란 없다.
16년간의 덕질에 줄어든건 지갑속 현금이요, 늘어난건 마눌 뱃살이라...
그나마 평생 모델이라던 딸래미도 중2병에 걸려 카메라만 들이대면 승질 부터 낸다.
전광석화보다 빠르다는 A9의 아이 포커스도 나에겐 언감 생심일 뿐....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느낌이다.
그나저나
사무엘투 선예도가 그렇게 예술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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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흐름 속에 어느덧 중고 장터란을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인생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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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사~우 2019/04/29 18:08

    감동이 물결처럼 전해옵니다...ㅎㅎㅎ

    (HPKcYF)

  • 판걸민 2019/04/29 18:26

    ㅋ ~~멋진 백통의 개봉기이군요

    (HPKcYF)

  • 접소기 2019/04/29 18:30

    오~~~~ 멋찐데요 ㅋㅋㅋㅋ
    오픈하기 전에 절 하셨어요!??? ㅋㅋㅋㅋㅋ
    축하드립니다 ㅋㅋㅋㅋ +^^+

    (HPKcYF)

  • 무제같은삶 2019/04/29 18:34

    캬...운율 좋고 생동감 넘치고..
    신춘문예 대상감입니다.

    (HPKcYF)

  • 또또로 신 2019/04/29 18:42

    감동의 쓰나미가..

    (HPKcYF)

  • 느리게뛰는심장 2019/04/29 18:47

    형용할수없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HPKcYF)

  • 나사스누피 2019/04/29 18:49

    아웅.......가...가버렷!!!

    (HPKcYF)

  • 봉삼이당 2019/04/29 18:51

    기분 좋아지는 글이네요. 인생 짧다는거 절감하며 저도 얼른 질러 보렵니다.

    (HPKc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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