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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생일]을 보고.. 하늘나라에서 보내온 생일 초대장 (스포 포함)


'이종언' 감독의 [생일]을 개봉과 동시에 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거의 5년 만에
직접적으로 그것을 화두로 삼은,
사실상 첫 번째 극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대와 같은 크기의 우려를 갖고 관람했는데
기대는 바람 이상으로 충족됐고
우려는 깨끗이 씻겨졌으며,
추가적으로 몇 가지 상념을 안겨주는 영화네요.
"2014년 4월 이후... 남겨진 우리들의 이야기"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수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정일'과 '순남'의 가족.
어김없이 올해도 아들의 생일이 돌아오고
가족들의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수호가 없는 수호의 생일.
가족과 친구들은 함께 모여
서로가 간직했던 기억을 선물하기로 하는데..
일년에 하루. 널 위해 우리 모두가 다시 만나는 날.
"영원히 널 잊지 않을게..."
위의 시놉시스에서 드러나듯, 영화 [생일]은
그 날의 아픔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차분하고 담담한 화법으로 보여줍니다.
선악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고
정치적 주장은 최대한 배제하며
슬픔을 극대화시키는 연출도 최대한 자제하면서
수호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아픔에 대처하는 모습들을
하나하나 화면에 담아냅니다.
엄마 '순남(전도연)'은
위악, 냉소, 독설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채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면서
떠나간 아들의 그림자 속에 머물죠.
유가족들 간의 연대마저 그녀에겐 마뜩잖습니다.
수호의 방에서 때때로 터지는 그녀의 오열은
주변의 사람들까지 고통으로 물들입니다.
그 날 아픔의 현장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아빠 '정일(설경구)'은 뒤늦게 귀국하여
비로소 아빠,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죠.
그가 가장 큰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당연합니다.
수호의 어린 여동생 '예솔(김보민)'은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트라우마로
욕조에 들어가지도, 생선을 먹지도 못하구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낯선 아빠에게 적응합니다.
그 날의 상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건
수호의 친구들, 이웃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자기 멋대로 켜지는 현관 센서등을
서사의 중요한 매개로 삼습니다.
순남에게 그것은 수호의 흔적으로 느껴지고
예솔의 부탁으로 정일은 센서등을 손보죠.
배우들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네요.
'설경구', '전도연' 두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유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감정적 몰입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 그들은
참으로 많은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네요.
특히, 영화의 엔딩에서
설경구 배우가 입을 막고 토해내는 아픔이란...
그 눈물은 잠시 후 증발되는 눈물이 아니라
온 몸으로 스며들어 오래오래 고일 눈물입니다.
아역배우 '김보민'의 의젓한 슬픔은
의젓하기에 더 가슴을 저리게 하구요.
조연배우들 모두 부족함 없이 훌륭한데,
'김수진' 배우가 극의 중심을 든든히 지키더군요.
영화 [생일]이
오랜 시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만들어졌음은
작품 곳곳에 그 증거들을 남기고,
사려깊은 예의도 충분히 감지됩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비범한 가치는
세월호의 아픔을 우리들 삶의 보편적 아픔으로
확장시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거의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아픈 기억들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를 먼저 보낸 후 밥먹는 것도 죄스러웠던,
심지어 가끔은 그 밥이 맛나게 느껴지는 자신이
끔찍하게 저주스러웠던 기억도 있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에 ja위하며
꾸역꾸역 일상을 버텼던 기억.
먼저 보낸 이에 대한 기억이 조금 희미해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스스로를 나무란 기억...
영화 [생일]이 수호의 생일,
그의 가족, 친구들, 지인들에게 보내온 초대장은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온 초대장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에겐 듬직한 아들이자
엄마에겐 친구처럼 살갑던 아들이자
동생에겐 너무도 다정했던 오빠이자
친구들에겐 의리넘치는 존재였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친구들을 먼저 생각했던 수호가
하늘나라에서 보내온 초대장은
우리들 모두를 그 모임에 참석시킵니다.
나는 이제 괜찮으니
너무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다시 살아가라고.
가족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주변에 좀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내면서
함께 힘을 합해
서로에게 공감하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달라고...
그렇습니다.
[생일]은 우리보다 먼저 떠난 그들을
추모하며 기억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월호 유가족들은 물론,
슬픔, 아픔, 죄책감, 불안함, 두려움이 지배하는
삶 속에 남겨진, 착하고 가여운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었던 영화입니다.
그리하여...
수호가 하늘나라에서 보낸 이 생일 초대장은
아직은 그 날의 아픔을
온전히 마주할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바로 당신을 위해 보내진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의 엔딩...
조금은 슬픔을 덜어내고,
조금은 웃음을 찾은 채 일상으로 돌아간
순남, 정일, 예솔이 맞은 평화로운 오후...
텅 빈 거실, 현관 센서등이 다시 켜집니다.
수호가 잠깐 들렀나 봅니다.
"엄마, 아빠, 예솔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며칠 후면 세월호 참사 5주기가 됩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들에게 마음의 평화가 조금 더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건강하고 안전하며 살 만한 공간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댓글
  • 홀로월드 2019/04/04 02:29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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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04/04 02:30

    글 잘 읽었습니다.
    친한 선배언니가 이 영화의 엔딩곡인가를 불렀다고 들었는데 저도 시간 내어 보러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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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04 02:31

    홀로월드// ㅠㅠ...

    (pS89Cq)

  • 혁명전야 2019/04/04 02:32

    베레타// 아마 엔딩크레딧 흐를 때 나오는 합창곡(?)인 것 같네요.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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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rad 2019/04/04 03:10

    정말 담담한가요? 담담하다면 한번 볼까도 싶습니다.
    제가 안산 단원구 살았다는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 세월호 관한 것은 보기가 참 힘들어서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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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04 03:15

    Krad// 최대한 담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슬프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슬픔은 쥐어짜는 신파의 최루가 아니라, 본문에 적었듯 온 몸에 스며드는 슬픔이죠. 고통의 눈물보다는 위로와 치유의 눈물을 흘리실 듯 합니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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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미유비단 2019/04/04 07:24

    아아 차마 보러갈 용기가 나지않는군요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영화이고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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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9/04/04 15:26

    조용히 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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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4/04 20:35

    일단 스포는 다 제외하고 읽었습니다
    아~~이 영화가 완전 세월호를 전면으로 다룬 영화였군요...
    첨 나올때 그냥 신파물인줄 알았거든요..
    근데 영화적 내용과는 별개로 갠적으로 저 두배우를 좋아하지 않는편이라.....ㅎㅎ ㅜㅜ
    포스터의 평가는 다들 좋아서 그나마 정말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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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1덕주 2019/04/04 20:52

    어제 봤는데, 가슴 아픈 실화를 다루는 영화가 어떻게 예의를 갖춰야하는지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거나 하는 바 없이 남겨진 자들의 모습을 다방면으로 다루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순남이 곡(哭)할 때 옆집 딸이 짜증을 내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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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나무 2019/04/04 21:50

    볼 엄두를 못 내겠습니다. 아직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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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종석 2019/04/05 02:14

    자극적이지 않아서 더 슬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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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현 2019/04/05 17:26

    포스터에 전도연표정이 모든걸 말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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