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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한글로 편리하게 컴퓨터를 쓰는 당신이 잊지 말아야할 위인.JPG



출처영상: https://youtu.be/XgGsStfYYkE



공병우의 세벌식 타자기가 대중화된 이유는 몇가지 있겠지만 핵심은...

당시 알파벳(로마자) 타자기론 구현 불가능해 보였던 

한글 특유의 글자표현 방식을(초성,중성,종성을 모아 한 벌로 쓰는 방식) 

빠르게 쓸 수 있게 만든 당대로선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는 거죠.


무슨 말이냐면 가령 '사람'을 쓸때 당시 로마자 타자기식으로 구현하려면 

'ㅅ ㅏ ㄹ ㅏ ㅁ ' 이런 식으로 풀어서 혹은 늘여서 썼어야 합니다.

단어 한두개면 모를까 긴 문장을 쓰게 되면 

영어랑 달리 한글은 당연히 가독성이 엄청 떨어질 수 밖에 업습니다.


게다가 알파벳 단 26자로 모든 단어가 표현이 가능하지만, 

한글엔 기본자음 14개, 기본모음 10개 외에도 

쌍자음(ㄲ, ㅆ,ㅃ 같은 자음), 복합모음(ㅒ,ㅖ,ㅘ,ㅢ 같은 모음)도 있고  

또한 ㄶ, ㄻ, ㅀ 같은 겹받침까지 구현해야 합니다.

당시로선 일종의 번안곡처럼 외국의 신문물 로마자 타자기에서 

알파벳 글쇠만 떼어 한글 글쇠로 바꾸는 방식의 개량이나 가능했을텐데 

일단 딱 봐도 교체해야할 글쇠수가 확 늘어나죠.


이런 한계를 깨고 처음으로 한글을 한 벌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게 

1914년 재미교포 이원익이 내놓은 5벌식 (기계식) 타자기였습니다.

한 벌을 구현하기 위해 타자는 가로로 쓰지만 

작성된 문서는 90도로 돌려 세로로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원익 5벌식 타자기로 작성한 문서.  글씨체는 생각보다 귀염귀염하죠~ㅋ


기본적으로 12글쇠 7열의  총 84개 키를 가진 타자기였기에 일단 글쇠수(=키)가 많기도 하거니와

세로모음과 함께 쓰는 초성, 가로모음과 함께 쓰는 초성, 

받침없이 쓰는 중성, 받침과 함께 쓰는 중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성까지 

언뜻봐도 좀 복잡한 5벌식 구조였기에  금방 익히기도 쉽지 않아서

타자 스피드가 현저히 느렸다는 단점이 있었던 거죠.



김태호 교수가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원익 자판기 자판배열표.


잘 둘러보시면 가령 'ㄱ'이란 자판만 봐도 

9시 방향, 12시 방향, 6시 방향에 위치한  3개의 'ㄱ'을 발견할 수 있죠.



어쨌든 일단 한글용 타자기가 나왔으니 극소수로나마 보급은 됐고 

그 뒤로 송기주나 김준성 같은 분들에 의해 

개량된 다른 방식(2벌식.4벌식)의 타자기가 나왔지만 여전히 실용성은 좀 떨어진...


그러다 광복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9년 즈음... 

공병우 박사님이 타자 속도를 크게 향상시키면서도 풀어쓰지도 않고 

작성한 문서를 바로 읽기가 가능하기까지한 편의성+가독성 모두 잡은 제품을 발명합니다. 

(첫 시제품은 1950년 1월)


공병우 박사님은 한글창제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반년간 방에 틀어박히다시피 연구를 했고,

그 결과 혁신적인 '쌍초점' 방식을 도입해 

당시 속도감있게 쓰기 힘들었던 '한글' 모아쓰기 문제를 해결합니다.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공병우 3벌식 자판 최초의 모델.


그런 효율성 덕분에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 타자기는 대중화되고

한글 문서 작성 능률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다만 효율성을 중시하는 군대에선 가장 호평받은 타자기였으나 

글자의 반듯함을 중요시한 공무원 사회에선 약간 덜 환영받았다고 합니다.


일례로 1968년 10월 통계에 따르면  행정기관의 11,163대의 타자기 중에 

글자의 반듯함을 구현하면서 속도도 어느정도 냈던 김동훈 5벌식 타자기가 4,264대,

공병우 3벌식 타자기는 6,702대로 대략 4대 6 구도로 타자기 시장을 양분됐다고 하네요.


더 나아가 세로쓰기로 고착화되어 있던 한글 문서 작성법을 

가로쓰기로 전환시키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로 친 글씨.



6.25 전쟁때 공병우 타자기로 작성된 정전 협정문. 

당시 한글 문서 담당자가 공병우 자판기로 쳤는데 

다른 나라 타자기들보다 빨라서 찬사받았다는 일화가 있더군요.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onychoi&logNo=22132342019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https://blog.naver.com/pamina7776/50104745689



현재 워드 프로그램(한글 2007버전)에 남아있는 공한체로 작성한 걸 캡쳐해 본 것.

(가는 공한체, 중간 공한체, 굵은 공한체가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기술은 진보해서 더 편리해보이는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3벌식도 문서 변조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했고...


기계식 타자기에서 PC로 넘어가며 공병우 박사님도 

편의성을 높이거나 여러 용도로 자판 배열을 바꾼 개량 작업을 꾸준히 하셨는데 

이게 오히려 대중화엔 걸림돌이 된 듯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회사 같은 공병우 자판임에도 

김사원은 버전 1.0 자판을 쓰고, 이사원은 버전 1.2, 박사원은 버전 1.5로 

자판 배열이 조금씩 다른 자판을 쓰면 아무래도 사원들간에 자판 이용 효율성이 떨어지겠죠.

혹은 회사에선 1.0버전 자판을 쓰다가 출장갔는데 

자판 배열이 달라 익숙하지않은 1.5버전 자판이 있으면 답답할 겁니다.

(진시황제의 도량형 통일이 왜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지 생각해보면...)


https://pat.im/958

여기에 어느 분이 공병우 자판 배열의 원리나 변화등에 대해서 

여러 글을 통해 거의 논문급으로 그리고 방대하게 정리해놓았더군요.

시간이 될때나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실 이게 더 결정적인건데... 

정부의 두벌식 표준 통일 방침까지 나오면서

지금은 극히 일부 빼곤 2벌식 자판기로 대중화됐습니다.


그래도 저분의 혁신이 없었다면 지금쯤 다른 타자 방식의 자판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을지도.... 


더 많은 한국 타자기의 역사와 사진들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kdbdls32&logNo=60210259782



한글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셔서 여든이 넘는 나이에(82세) 한글 문화원을 설립하고

PC로 넘어가며 기계식 타자기가 사장되어가는 상황에서 PC용 자판 개발에도 힘썼다 합니다.

80년대 중반에 매킨토시를 이용해 직결식 세벌식 한글 글꼴을 개발하시고

90년대에 두벌식 키보드가 통일되어 보급되는 상황에서 

키보드에 붙여서 쓸 수 있는 세벌식 딱지를 무료로 배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세벌식 키보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나름 세벌식도 통일해보려 애쓰셨으나 

결국 정부의 확고한 방침 덕분에 뜻을 이루지 못한 셈이죠...


그외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한글 타자기라던가 

한 손으로 찍는 워드프로세서도 개발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9년 '한글과 컴퓨터(김희애 남편인 이찬진 前 사장이 세웠죠)'에서 

'아래아한글'을 개발할 당시 성심성의껏 도와줬던 인물입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타자기 개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글 프로그램의 대중화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한글 문화원의 4평짜리 귀퉁이 방을 빌려줘서 사무실로도 쓰게 했습니다.

(혹시 모를까봐 아래아한글은 현재 한컴오피스의 조상이라 보시면 됩니다.)


근데 정보를 찾아보다가 넷상에서 한가지 잘못된 정보가 나돌길래...

한컴에서 만든 '아래아한글'은 최초의 국산 워드프로세서는 아닙니다.

1982년에 당시 고교생이었던 박현철이란 사람이 '버전 1.0'이라는  

국산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게 최초입니다. 

그 후로 캐나다 교포였던 정재열이 '한글 III'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바 있으며 

삼성, 삼보, 금성(=엘지)같은 기업에서도 뛰어들어 출시한 적이 있습니다.



워드프로세서 초창기 역사~


그러나 그 많은(?) 것들중에 아래아한글이 가장 안정적이었고, 

지속적인 업뎃을 통해 넘사벽으로 대중화된 제품이 되며 워드프로그램의 대명사가 된거죠.



1990년에 출시된 아래아한글 1.5버전 화면. 

이거 익숙한 분은 핵아재 인정해야..지금 급식이들에겐 이게 뭥미~ 수준일듯...

(베타 버전인 0.9나 정식 첫 버전인 1.0 버전 화면 이미지는 검색이 안되네요. )


초창기 아래아한글의 디스켓이나 이미지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erocomb&logNo=220249043786

https://blog.naver.com/aerocomb/20190569844



잠시 옆길로 샜는데...


타자기 업적과는 별개로 본업인 안과의사로서의 일생을 좀 살펴보자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약간 엄친아 느낌이 나는게

일단 그의 할아버지대부터 부자였다고 하고

일제시대인데 약관의 나이에 독학으로 의사검정시험을 통과하신 분입니다.


"평생을 통해 졸업장 하나 받아본 적이 없다"라고 회고하셨는데

실제로 소학교는 5학년 과정까지만 마치고 떠났고요...


3년제 의주농림학교는 2학년 과정중에 작문으로 학교의 미비한 점을 디스했는데 왠걸;;;

고마츠 일본인 교장이 그의 강단과 자질을 높이 평가해 이 학교 졸업할 필요가 없다고 권유했다고;;;


교장은 경성치과의학교에 추천해주겠다고 했으나 

어릴적부터 '치과의'가 아닌 '의사'가 되고 싶어서 거절하고

1924년 도립평양의학강습소(평양의학전문학교 전신)에 응시하여 합격...

그리고 2년후엔 조선총독부 관할의 의사검정시험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땄다는...


그후 신의주도립병원에 취직했다 1년만에 그만두고 서울 경의전으로 갔는데, 

경의전에 단 둘뿐인 한국인 교수인 백인제와 유일준 교수를 만났다고...

무급 견학생 신분으로 유일준 교수 밑에서 세균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으나 

몇달만에 그만두고 안과학교실 조수로 전과를 합니다.


사타케 슈이치 교수(안과)는 성실함과 능력에 반했던지 그 분을 많이 아꼈다고 합니다.

다른 조수들은 50원의 상여금을 줄때 그에게만 100원을 줬다는 일화도 얘기하고 있고

학벌도 신분도(조선인이니까...) 미미한 그에게 

친분이 있었던 경성제국대학 교수에게 천거해주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박사 학위를 따보라고 계속 권유한 사람도 사타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사타케 교수의 권유에 못이겨 

경성제국대학 도쿠미츠 요시토미 교수의 개인 문하생 자격으로 들어가서

연구도 하면서 3년간 4편의 논문을 썼는데 이게 훗날 일본 안과학회 총회로 연결,

나고야제국대학으로부터 논문 제출을 요청받았고 결국 1936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출처 - 김태호 저술 “독학 의학박사”의 자수성가기: 

안과의사 공병우(1907-1995)를 통해 살펴 본 일제강점기 의료계의 단면



이듬해엔 국내 최초의 개인 안과 병원(종로 안국동의 '공안과')을 개설해서 운영했고

국내 최초의 쌍꺼풀 수술, 콘택트 렌즈도 최초로 도입해서 시술하셨고

1940년대초엔 일본어로 쓰여있던 시력검사표를 한글로 제작하기도 하셨다고...

해방 후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 기관도 설립하시고, 수화학교에도 지원하셨구요.


물론 병원 운영하면서 그의 인생이 전환점이 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따로 있는데...

운명의 만남이랄까...

눈병 환자중에서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을 만나서 치료를 하며 대화를 주고받다가 

선생의 한글에 대한 열정에 탄복하고 한글의 중요성을 깨우쳤다고 합니다.

수십년간 일본 학교에 다녔고 자연스레 일본어를 쓰면서 한글을 도외시했던 그였던지라....

만약, 이때 이극로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한글 자판과 관련된 업적이 없었을지도 모르죠.


아...이극로 선생까지 알아보려면 넘 길어지니까 넘어가야겠...


-_-;;



마지막으로...




그 분의 유언...


기증된 두 눈 중에 한 눈은 아드님이 직접 환자에게 이식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남은 시신은 연세대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을 위해 기증됐습니다.


유언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490321&memberNo=11036773


혹, 시간이 되신다면 작년에 그분 아드님의 인터뷰도 읽어보세요.

조선일보 기사지만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0/2018072001599.html



ㅈㅅ하지만 진짜 마지막으로...

공병우 박사님이 어릴때 할아버지로부터 자주 들었다는 한마디로 끝을 맺습니다.


"평소 남에게 적선을 하는 사람은 난리가 나도 산다"

(출처: "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 공병우 박사님 자서전 中...)


정말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돌아가신 그날까지 주변을 위한 삶을 사셨던 거죠.

생전에도 사후에도 존경을 받았거니와

일제시대 - 6.25 전쟁이라는 고난을 거치면서도(전쟁때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복받은 것처럼 천수도 누리다 가신 위인이라고 봅니다.







긴 뻘글 읽느라 헛고생하셨습니다. (__) 

댓글
  • 작살표메랴스 2019/04/03 18:30

    ㅓㅜㅑ

    (BDjQHy)

  • Vajra 2019/04/03 18:32

    정성글 이네여 진짜 훌륭한 분이네요 잘 봤어유

    (BDjQHy)

  • 그린가든 2019/04/03 18:33

    글도 좋고 짤의 여자진행자 몸매도 좋네요

    (BDjQHy)

  • 자연어처리 2019/04/03 18:33

    정성글엔 추천!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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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라유발자 2019/04/03 18:35

    그린가든// 충실한 불페너. 칭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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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희관슴가 2019/04/03 18:37

    본문중 버젼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으로 레포트 엄청 썼음.
    내 최초 안경 공안과에서 처방받아 맞춤

    (BDjQHy)

  • esteem 2019/04/03 18:38

    저 세벌식 썼는데 주변 사람들이 컴퓨터를 못 써서 어쩔 수 없이 두벌식으로 회귀했습니다.
    사무실 환경에선 세벌식 쓰기 참 힘들어요.

    (BDjQHy)

  • ssammai 2019/04/03 18:57

    정성글은 추천 하라고 배웠습니다

    (BDjQHy)

  • 한칸은여백 2019/04/04 09:38

    정말 고마운 분이네요.. 추천합니다.

    (BDjQHy)

  • 신인왕건우 2019/04/04 10:24

    저 어렸을적 이분을 뵌적이 있어요..
    어머님이 무교동에서 DP점(필름 인화 하고 카메라 필름같은거 판매하던 매장)을 부업으로 운영하셨는데....공박사님 병원이 바로 옆이었어요....
    그리고 이분 취미가 사진촬영이어서 가끔 필름을 한 바가지씩(정말 바가지에 담아서 오셨습니다....ㅎㅎ)인화하러 오시곤 했습니다...
    당시 우리 DP점 최고의 고객이셨죠

    (BDjQHy)

  • LF김현수 2019/04/04 14:08

    어렸을때 아폴로눈병 걸렸을때 공안과 갔었던 기억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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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zuyu하나 2019/04/04 15:08

    그렇군요.. 근데 왜 자꾸 저 여자분한테 시선이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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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과영하 2019/04/04 15:10

    좋은 글과 함께 훌륭한 분을 알게 되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BDjQHy)

  • 한니발 2019/04/04 15:18

    위인이시네요

    (BDjQHy)

  • 빛둥 2019/04/04 15:29

    공병우 박사님이 한글을 사랑하고, 기계도 열심히 만들어 미국특허까지 받으신 대단한 분인 것은 맞는데,
    지나고 보니, 두벌식이 더 컴퓨터 시대에 맞는 한글자판이라고 느낍니다.
    두벌식 자판은, 일단 사용하는 키의 숫자가 적어서 배우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키의 숫자가 적으니 나머지 키보드 영역에서 숫자와 각종 기호들을 그대로 살려서 쓸 수 있습니다.
    타자기일때는 이런 게 장점으로 크게 인식되지 않았고, 그보다는 깔끔한 타이핑을 위해서 여러벌의 타자배열이 필요하지만, 컴퓨터가 되면 지금 우리가 쓰듯이 컴퓨터의 내장 프로그램으로 얼마든지 특정 글꼴에 맞게 일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간단하게 배열하는게 더 효율적인 겁니다.
    그런 점에서 공병우 박사님의 노력 및 한글사랑과는 별개로, 최후의 한글 자판이 두벌식이 된 것은 일리가 있는 한글자판의 배열 진화의 결정판인 것이고 정부가 잘 선택했습니다.

    (BDjQHy)

  • 1.김준완 2019/04/04 15:32

    PC 워드 초창기에 써보신 분들은 세벌식 이름도 익숙하시고, 조금 더 관심 있으면 공병우 박사는 한 번쯤은 접한 이름이기도 하지요.. (그러고 보니 핵아재네요..ㅋㅋ)

    (BDjQHy)

  • broone40 2019/04/04 15:33

    너무 짧은거아닌가요 방송인데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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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또콩등 2019/04/04 15:44

    음..여자 MC분 성함은 저도 몰랐어요...
    영상자체가 6년전인 2013년에 올라왔더군요.
    유명방송도 아니고 해서 못찾나 싶었는데..
    구글신이 해결해주심..
    http://enter.etoday.co.kr/cn/view/news_view.php?varAtcId=3395
    분데스리가 M 이란 방송도 진행했던 MC 로지 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ryHXyb4Gw
    이건 2013년 11월 IT N 개편 당시 홍보영상..ㅋ

    (BDjQHy)

  • teatime 2019/04/04 15:52

    재밌게 읽었습니다

    (BDjQHy)

  • Ti-amo 2019/04/04 16:00

    로지 같은데..
    두산 강동연 누나

    (BDjQHy)

  • 로또콩등 2019/04/04 16:02

    [리플수정]https://www.mk.co.kr/news/sports/view/2012/11/769362/
    MC 로지가 김창렬이 만든 혼성그룹 W(위) 홍일점 멤버였네요..
    XTM의 더 벙커 프로그램 진행도 했었군요;;
    https://namu.wiki/w/%EA%B0%95%EC%86%8C%EC%97%B0
    강동연 누나가 맞네요. 본명은 강소연..자세한 정보는 나무위키로..

    (BDjQHy)

  • 로또콩등 2019/04/04 16:10

    빛둥// 네 두벌식이 장점이 적지않게 많죠.
    여러 장점중에 일단 익히는데 있어서 세벌식보다 두벌식이 훨씬 빠르고 직관적이라 하죠.
    뭐 공병우 박사님은 한글 기본 원리에 충실한 세벌식이 더 낫다고 판단하신거구요.
    저야 세벌식 자판을 써본적이 없어서 뭐라 말 못하는데 쓰신 분들의 경험에 의하면
    세벌식 자판이 단점만 있는게 아니라서 장문을 치면칠수록 피로감이 덜하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현재 세벌식 기술로는 익숙해지면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죠.
    가령 '빛'을 두벌식 자판으로 치면 ㅂ ㅣ ㅊ 세 키를 각자 순서대로 눌러야 되지만,
    세벌식 자판이 익숙해지면 세키를 동시에 눌러서 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찌됐건 간에, 지금 두벌식 자판이 사실상 99%정도 대중화된 상황에서
    세벌식 자판으로 회귀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죠.

    (BDjQHy)

  • 빛둥 2019/04/04 16:10

    로또콩등//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가 성공한 방식에 집착하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문물과 접촉해서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면, 기존의 방식에 집착하다가 망하는(성공하지 못하는) 겁니다.
    저는 90년대에 세벌식을 배우지도 않았고 컴퓨터 자판은 독수리타법으로 더듬더듬 치는 수준이었는데,
    그래도 '세벌식'이 우수하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언론과 친구들에게 들어서, 정말 '세벌식'이 우수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타이핑도 배우고 컴퓨터 개발자로서 살다가 보니까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BDjQHy)

  • 빛둥 2019/04/04 16:19

    표준이라는 것은, 먼저 간단할수록 좋고, 표준에서 미리 변형할 여지(확장가능성, 여백)를 마련해 둘수록 좋은 겁니다.
    그냥 한글의 창제원리부터 '간단함'을 추구한 겁니다.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 한글의 받침(종성)은 첫 자음(초성)을 다시 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설명을 봐도, 한글은 수많은 한자들에서 공통의 소리들을 추출해 음성문자(알파벳)로 다시 만들면서 최대한 간단함을 추구하였고, 그게 '따로 받침글자를 만들지 않고, 그냥 자음을 다시 쓴다'는 원칙으로 구현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3벌식은 이런 한글의 원칙과 다르게, 첫 자음과 받침을 따로 씁니다. 그렇게 하면 물론 장점이 있긴 합니다. 바로 '타자기'에서요. 타자기는 고정된 글쇠를 이용하니까, 여러 벌을 만들어 사용할수록 글자 모양이 깔끔해지죠. 그걸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든 것이 공병우 타자기이고요.
    하지만, 지금 우리 생활만 봐도, 타자기는 아주 극소수가 쓰고, 대부분의 사람은 컴퓨터로 글을 씁니다. 컴퓨터는 내장 프로그램으로 어떤 폰트든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종성부용초성'의 원리가 아무 문제없이 적용될 수 있는 기기입니다. 그러니, 두벌식이 오히려 한글의 창제원리에 맞는거죠.
    공병우 박사님이 왜 저런 한계에 갇혀서 생각을 했는지는 이해가 갑니다. 타자기를 위해서 세벌식을 만들었고, 80년대까지만 해도 PC의 보급은 별로 되지 않았으니까요.
    링크해주신 사이트의 글(https://pat.im/1193) 중에도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계식 타자기를 의식하는 설계를 더 일찍 포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기계식 타자기를 의식하는 설계가 타자 행동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기계식 타자기를 의식하는 설계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만...(후략)"
    그냥 정부가 밀어붙이고 지원해줘서 두벌식이 99% 대세가 된 게 아니라,
    공병우 박사님의 세벌식은, 타자기 시절에는 적합했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타자기보다는 컴퓨터로 글을 많이 쓰게 되면서, 두벌식에 비해 복잡하고 그로인해 부적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밀리게 된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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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둥 2019/04/04 16:27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타이핑 속도만 되면, 속도는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옛날 90년대에 타이핑 속도 경쟁하고 자랑하던 거, 지금 거의 아무도 안 하는 짓입니다.
    글을 쓰려면, 타이핑 속도가 중요하겠습니까? 어떤 글을 쓸 지 머리속으로 글을 지어내는 속도가 중요하겠습니까? 후자가 더 중요한게 당연하고, 전자보다 훨씬 느립니다. 그러니 단순히 타이핑을 빨리 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겁니다. 그냥 기록을 내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빠른 타이핑일 뿐이죠.
    또한 세 키를 동시에 누르는 것이라든지, 좀 더 손이 안 아프고, 빠르게 칠 수 있다든지 하는 건, 속기사를 위한 전용 자판을 쓰면 더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대중은 그런 자판을 쓰지 않죠. 왜냐? 배우기 힘들고, 전용 자판이니까 범용으로 쓰기 어렵거든요.
    어떤 표준이든 상대적으로 전용기기를 위한 표준도 있고, 범용표준도 있는데, 전용표준은 특수한 기능을 올릴 뿐, 범용표준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반인 대상으로는 범용표준을 가르치게 되고, 전용표준은 그게 정말 필요한 사람만 익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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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또콩등 2019/04/04 16:45

    빛둥// 타자기와 PC의 차이를 감안한 님의 견해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기술은 진보하는데 박사님은 어느정도 그 진보점을 따라잡지 못한 것도 맞다 보구요.
    사실 정부가 강권한다한들 어차피 실사용하는 건 대중인데
    사람들은 두벌식이 세벌식보다 더 낫다고 판단한거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벌식이 사장된 것도 일리가 있죠.
    정말 세벌식이 두벌식보다 장점이 훨씬 크다면
    대중도 무조건 정부의 방침에 따르진 않았을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두벌식 자판 표준을 정하면서
    반대급부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결과
    즉, 사실상 3벌식, 4벌식, 5벌식 등등의
    다른 유형의 자판 개발을 지연시키거나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죠.
    물론 정부의 방침이 결코 잘못됐다는게 아닙니다.
    각자의 장단점을 떠나 거의 완벽하게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된다는게
    실생활에서 얼마나 효율적이고 편리한 건지는 굳이 말씀 안드려도 되겠죠.
    다만 하나를 딱 택하게 되면 반대급부로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되는 현상을 낳은 거죠.
    현재 세벌식도 진화를 거듭해서 공병우 박사님이 개발한 세벌식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합니다.
    가령 숫자와 기호(특수문자) 위치가 두벌식이랑 완전히 달라서 헤맨다는 단점이 있는데
    쉬프트키를 이용하면 숫자키도 같다고 하고
    신세벌식 2012 를 쓰는 사람에 의하면
    엔터 왼쪽의 \" 키 빼고는 특수문자 위치가 완전히 같다고 하네요.
    출처는 http://egloos.zum.com/jklin/v/1855496 댓글입니다.
    어쩌다 말이 길어졌는데 저 역시 세벌식이 그래도 낫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냥 초창기 자판의 역사에 저런 일들이 있었고
    현재는 두벌식이 잘 표준화된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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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둥 2019/04/04 17:02

    로또콩등//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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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승달 2019/04/04 17:04

    강소연이었군요 저런 프로그램도 진행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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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경장 2019/04/04 17:18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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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아지 2019/04/04 17:29

    많은 지식이 넘치는 세상에서,
    할아버지의 한마디를 실천 하신 삶을 사셨다는게
    뜻깊게 다가오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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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그냥 2019/04/04 17:33

    저두 PC에서 3벌식 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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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고기버거 2019/04/04 18:07

    막줄만 빼면 완벽한 글이네요
    이런건 돈주고도 고생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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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사 2019/04/04 18: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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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르키나 2019/04/04 18:15

    영어 알파벳 개수와 차이없는 두벌식이 현시점에선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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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형우 2019/04/04 18:24

    강소연님 잘봤습니다 근데 글내용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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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FilmBy 2019/04/04 18:39

    [리플수정]공병우 안과는 아직도 있습니다. 시력 검사하러 가봤는데 엄청 커서 공장식?이더군요ㅎ 여튼 저는 현재 공병우 최종 쓰고 있습니다. 타자가 빨라지긴 했으나 엄청 놀랄만큼 타자 속도가 빨라졌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다만 오타가 많이 줄었어요. 두벌식은 도깨비불 현상이 있어서 “없다” 치다가 순서가 꼬이면 “ㅇ벗다” 같은 글씨가 나오는데 세벌식은 그런 현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좀더 다양한 손가락을 써서 그런가 손이 덜아파요. 혹시 타자 오래치셔야 하는 분들은 한번 시도해볼만 합니다. 다만 공공장소 키보드 두벌식 자판 보면서 쳐야되요...ㅜ 20년 넘게 친 두벌식을 이렇게 쉽게 잊을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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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ll 2019/04/04 18:44

    두벌, 세벌 할 때 벌은 뭘 의미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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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또콩등 2019/04/04 18:54

    moll// 일종의 자판 묶음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가령 두벌식은 자음 한 벌(19자, 쌍자음 5자 포함)+모음 한 벌(14자) 총 33자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세벌식은 자음 한 벌(14자)+모음 한 벌(17자)+받침 한 벌(21자)로 총 52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글이 초성, 중성, 종성의 구조로 되어 있듯이 세벌식도 그렇게 구성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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