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치 치즈코
1912-1968
한국식이름 : 윤학자
조선총독부 관리인 아버지를 따라왔는데
아버지 사후 교사로 일함
나중에 목포의 고아원을 운영했는데
일본인이지만 그런거 없이 잘해주는 고아들의 어머니였음 해방이후 일본인이란 이후로 고초를 겪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은 선행을 알고있어 쉴드를 쳐줌
1950년 한국전쟁에서도 공산치하를 겪어 위기를 겪지만 다행히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이 쉴드를 쳐주었지만
문제는 강제 노역을 나감
이후 남편은 실종
남편없이도 그런대로 고아들을 돌보다 1968년 세상을 떠남
사망이후 목포에서 시민장 수준으로 장례를 치뤄
ㄹㅇ 전 목포가 울었다고 할 정도.
한편생 선행을 베풀어 까방권을 가진 아줌마
역시 아무리 나라가 졷같아도 세상이 졷같아도 성인군자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야
원래 선행한 사람들은 빨리 잊혀지더라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함께 겪어버리셨군 ㅜ
저런사람들도 기억해야할 사람이지
독일의 수정의 밤 당시 있던 의인들을 생각하면, 그 어떤 수라장이라도 이렇게 정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있는 듯.
근데 나는, 이런 의인들이 주목받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멋진 분이시네
역시 아무리 나라가 졷같아도 세상이 졷같아도 성인군자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야
원래 선행한 사람들은 빨리 잊혀지더라
친일파들이 다 지워서 착한 사람들을
배울 기회가 없다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함께 겪어버리셨군 ㅜ
저런사람들도 기억해야할 사람이지
나치에도 개념인이 한사람쯤은 있었듯
일제에도 착한 사람은 있었네
유게에는 없겠지만
욘 라베는 빼박 나치였음
(총통님이 지켜보고계셔를 외치며 쉴드 요구했으나 무시당함)
쉰들러는 기회주의자였고
스기우라 지우네는 모르겠다..
개념도 상대적이라 생각함
하지만 가장 어두울때 빛났지
독일의 수정의 밤 당시 있던 의인들을 생각하면, 그 어떤 수라장이라도 이렇게 정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있는 듯.
근데 나는, 이런 의인들이 주목받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굳이 목포로 한정하지 않아도 될 듯
저 정도면 까방권을 언급할 필요가 없지.
까방권이란 표현이 가진 어감이 이 분에게는 안 어울린다.
후지키 쇼켄 스님도 잊지 말아야함..
그 저기도 있지않나?
안중근의사 맡아준 일본 변호인
안중근은 아니고 박열아니었나? 이름은 후세 다쓰신가? 이분도 해방이후 광복의 대한민국 헌법에 기여를 하신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