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967143

진심입니다.

글을 어디서부터 써야할지에 앞서서 이 글을 써도 될까. 혹시나 나때문에 고생하신 분들의 노고가 평가절하된다거나 그분들의 명성에 누가 되진 않을까, 보배님들은 또 허탈해하시진 않으실까 등등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쪽지를 보내어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게 맞을까요라고 자문을 구하고싶어서 장문의 쪽지를 쓰다보니...
제 글로 인해 많은분들이 허탈하실수있어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다란 말이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날일을 사실대로 말씀드리는게 그분들에 대한 저의 최소한의 도리가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도 살아오면서 죽음이란 두 글자를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에게 너무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죽고싶다가도 막상 자살을 하기엔 너무나 무서웠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일이 있기 전날 여느때처럼 홀로 방에서 술을 마시면서 이젠 정말 끝을 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고 필요도구가 무엇이고 어디서 구할수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장소도 정하고 그날 무턱대고 그 장소로 향했습니다.
그 장소는 약 10년전 돌아가신 할머니 집이었습니다.
시골에 있는 마을이고 젊은사람들은 오래전에 다들 마을을 떠나 시골에 빈집이 많고 몇몇 빈집들은 허물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읍내에서도 한참 떨어져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인 셈입니다.
제가 19살까지 살았던 마을이라 저희가족에겐 고향인곳이고 아버지께서 그곳에서 주말농장을 하셔서 공구를 보관하기도 하고 마당에 텃밭도있어서 할머니집은 10년동안 허물지 않고 그대로 놔뒀습니다. 물론 내부는 청소나 그런게 없어서 거미줄도 있고 바닥도 많이 더러워져있는 상태입니다.
시골집인데 예전에 할머니 살아계실때 슬레이트를 지탱하고 있는 마루앞에 큰 창을 달아 마치 외벽을 쌓은것처럼 그렇게 개조(?)를 해놓아서 열쇠가 있어야 마루가있는 안으로 들어갈수 있고 들어가면 방문도 열쇠로 잠겨져있는 상태입니다.
전엔 몰랐는데 언젠가 한번 시골에 왔다가 옆구리쪽에 있는 창과...그 재질은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벽과 밪닿는 부분이 헐거워져있다는걸 알게되어서 그쪽으로 들어갈수 있다는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안에 또 문이 잠겨있다는건 잊고있었는데 이번에 들어가게 되면서 기억하게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할머니 계실때에도 문이 잠겨있으면 숨겨놓은 열쇠를 통해 들어갔던게 번쩍 떠올라서 매트 밑 싱크대 안 등 이리저리 뒤져서 열쇠를 찾았습니다. 바깥쪽 열쇠는 아버지만이 가지고 있는데 아버지도 방열쇠는 그냥 할머니처럼 숨겨놓은것입니다.(열쇠못찾으면 집에있는 각종 공구로 부실생각까지 했습니다.)
바깥쪽은 잠겨져있는상태이고 불투명유리라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가 확실한 준비를 했습니다.
방에 작은 창이있는데 커튼으로 막아서 헹여 연기가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도했습니다.
........
그렇게 모든 세팅을 하고 술을 마셨습니다. 언제 번캐탄을 피우고 수면제를 먹을지 간을 보고있었습니다. 그때 심정을 솔직히 말씀드리다면 내가 언제 이렇게 다 준비하고 이러고 있는거지? 진짜 했구나.. 오늘 진짜 죽는거 맞구나..했습니다. 눈물이 날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하게 일을 진행하고있는 제자신이 소름끼쳤습니다.
맥주 피쳐 한병, 소주 한병을 다 마사고나니 이미 저는 알딸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실패를 할까 얼른 불을 피웠고 이내 곧 번개탄에서 뿌연연기와 가스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태로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수면제 20개를 모두 까서 컵에 모두 담았습니다.
얼마되지않아 방안에 연기와 가스가 가득찼습니다. 앉아있었던 제 몸이 어느순간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마지막 기억은 온통 뿌옇고 숨이 버거워지는 방안의 모습. 그게 제 마지막 기억이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수면제는 먹지도 못하구요.
.
.
.
제가 어느정도 다시 정신 차린건 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응급실가는동안 응급차에서 뭐라 말을 했다고 하는데 기억이 안납니다.
어떻게 된 건지 나중에서야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사실 전 서울에 있었지만 반 가출 상태였습니다. 가족과 연락도 끊고 친구들도 연락끊고...한명있던 친구마저 제가 끊어버렸습니다.
그 친구와 연락을 끊기전 아버지와 누나가 살고있는 도시에 그 친구도 살고 있어 가끔 내려와 그 친구만 잠깐보고 올라가곤했습니다. 그 친구는 오래전부터 저희 가족들과 알고 있고 누나는 제가 무슨일 있을때마다 그 친구에게 연락하곤해서 제가 가족들도 안보고 다시 서울가버린다는걸 알고있었던것이죠.
그날은 주말도 아니어서 아버지가 할머니집에 올 상황도 아니었는데 제가 시골에 내려가기전 조카를 만나 용돈을 줬는데 이를 안 아버지가 이상하다라고 생각을 하셔서(다른 가족들은 그것에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시골로 급히 내려갔는데 가스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저를 발견한것입니다.
8시쯤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보배에 마지막 남긴글을 보니 제가 의식을 잃을때가 7시 넘어서였던것같습니다. 밖에서는 연기가 안보였는데 집에 들어가 가까이 가서 문을 열려고 보니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급히 오셔서 그런건지 키가 없어서 문을 부시고 들어와서 제가 쓰러져있는것 보고 문을 다 열고 번개탄을 끄고 바로 119에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네.. 아버지 아니었으면 전 이 글을 쓰고있지 못했을것입니다.
아마 한시간도 못되어서....
.
.
.
모든 끊을 놓아버린채 마지막 선택한 저를 구하고자 했던 보배님들, 걱정하시고 기도해주신 보배님들, 밤새 고생하신 모든 경찰관님들, 저를 살리려고 서둘러주신 구급대원님들... 그 분들의 마음과 정성이 있었기에 제가 기적처럼 살아나오지 않았을까합니다.
(행여 허탈하신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것은 제가 다시 살아서가 아니라 일면식도 모르는 저를 걱정해주시고 애써주신 분들이 많았다는것입니다.
늦게나마 쪽지도 확인하고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가슴에 뜨거운 뭔가가 느껴졌습니다. 많은분들이 쪽지도 보내주시고 글도 올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쪽지를 다 못보내드려서 죄송합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병원에서의 만류를 한사코 밀어내며 집근처 큰병원에 입원하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도망나오다시피 부랴부랴 퇴원을 했습니다. 두통이 여전하지만 머리도 많이 맑아져 더이상 치료는 없어도 될것 같았고 이미 대학병원에서 처음접해보는 기계들로 많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다만, 급히 퇴원해서 집에 와보니 이제 뭐 하며 먹고살까라는 생각에 막막했습니다. 미친놈이라고 하시겠지만 돌아오는길에 버스타도 되는데 택시타 요금이 많이 나온걸 보고 짜증이 나서 아버지께 짜증을 부렸습니다.
방에 들어와박혀 누워있다 이내 잠을 자고 일어나 걱정하실까 밥도 잘 먹고 그날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참 힘들고 저를 억누르고 있던것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될지 알기때문입니다.
보배에 저와 관련된 글을 찾아보면서 참 많이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글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아서 부모님께 이제라도 효도하며 사는게 보배님들과 수고하신 모든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나를 써주는곳이 있기나 할지 막막하지만 해보겠습니다.그동안의 허울은 모두 던져버리겠습니다.
저때문에 불편하셨던 분들께 다시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보세요!

(asjC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