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쭉 가면
멀리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는 다람살라라는 곳이 있다.
여느 인도의 마을과 다를 것 없어보이지만
마을 여기저기에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오색 깃발이 걸려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보이는 승려복을 입은 사람
TIBET Will be FREE라는 문구도 보인다.
이 마을은 중국의 침공을 피해 망명한 티베트인들이 정착한 곳이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고원지대 티베트는 본래 중국의 영향력이 미약한(그때도 중국은 티베트가 자국영토라는 주장은 했었다. 국공내전과 중일전쟁으로 침공을 못 한거지.) 사실상의 독립국이었다.
티베트인들은 티베트 불교를 믿으며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를 모시며 살고 있었는데
1950년, 대륙을 통일한 공산당이 티베트를 침공했고, 강제로 병합했다.
그리고 1959년 3월 10일,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다.
달라이 라마가 있는 남걀 사원
촬영 당시엔 티베트력으로 1월 1일이었기에, 티베트인들이 남걀 사원에 모여 새해 첫날이라는 큰 명절을 보냈다.
마니차라는 경전을 새긴 원통을 돌리며 부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고,
승려들은 붉은 색 천을 나눠주며 복을 기원했다.
하얀 스카프를 바치는 신도도 있다.
이 하얀 스카프는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티베트인들의 새해 소원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중국으로부터의 자유
망명 2세대도 자신들이 새해 첫날에조차 망명지에 있다는 것을 여전히 느낀다고 한다.
18살 때 인도로 도망쳐온 78세의 할머니. 지금도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
고향에 가는 것이 할머니의 소원
자기 나라에 가려고 해도 비자가 없어 못 간다는 현실을 한탄하신다.
할머니의 집.
할머니는 빛바랜 사진 하나를 꺼내신다.
할머니는 1992년에 티베트로 비자를 위조해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 3일만 머물렀다.
당국에 비자를 위조한 것이 들킬까 두려워서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도망치듯 인도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티베트에 잠깐 들어갔다가 도망치듯 인도로 돌아온 뒤, 20년이 지나도 그때의 악몽과 환청이 들리신다고..
한편, 망명한지 60년이 된 티베트인들은 고민이 생겼다.
망명이 세대를 거듭하자 하나둘 해외로 떠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티베트 망명정부는 이것을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해외로 떠날수록, 그들이 티베트의 문화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인 가정집.
이들은 손님을 티베트의 예절로 맞이하고, 티베트의 음식을 대접한다.
티베트에는 가본적도 없지만, 아이들은 티베트어를 부모로부터 배운다.
티베트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
하지만 잘 안 되나보다.
못 하겠댄다.
연습 많이 하면 잘 할거라는 아버지.
ㅋㅋㅋㅋㅋㅋ
망명 60년, 티베트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들은 여전히 티베트의 자유와 재건을 위해 싸울 것이다.
한국 임시정부 생각나서 가슴이 아프네
중국인들은 한족 정착시키고 시간만 흐르면 티벳은 자연스럽게 쩝
프리 티벳
타이완 넘버 원
모택동 개새키 마오짜둥 성병걸려 뒤졌음
짱1개 새끼들은 일본 깔 자격도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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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짱1개만나면 프리 티벳 열심히 해준다
중국새끼들은 어딜가든 민폐네
이래도 짱1깨색기들 욕하지 말라 이거지? 짱1깨색기들아?
아버지 긍정왕이시네
짱.꼴.라는 우리나라도 삼킬 마음이 있다는걸 항상 잊으면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