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여의 전시를 성황리에 마치고 내일 끝납니다. 겨울 방학 시즌과 맞물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린 전시였다죠.
혹여 못보신 분들을 위해, 고려의 유물들과 비교하기 위해 전시 중인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유물이나, 중앙박물관 보관품으로 이번 특별전이 끝나도 상설전시실에 가면 다시 볼 수 있는 유물은 제외하고, 이번 전시가 아니면 어쩌면 다시는 못볼 수도 있는 몇가지 유물 사진 올려봅니다
갈대 대나무무늬 매병 - 보물 1783호. 목간(복제품)
충남 태안 해역에서 인양된 매병. 옆의 목간에 쓰인 내용
'중방 도장교 오문부, 댁에 올림. 참기를을 준(항아리)에 채워 봉함(重房都將校吳文富 宅上眞監樽封)
높이가 꽤 있는 매병인데 저기에 참기름을 가득 채우려면 엄청났겠죠? 더구나 기름 짜는 기계도 없던 시절임을 생각하면ㅎ
수선사(현 송광사) 노비문서 - 보물 572-2호 (송광사 성보박물관)
송광사 주지였던 원오국사 천영이 아버지 양택춘에게 받은 노비와 그 자식을 송광사에 바치고 나라에서 이를 공인한다는 내용.
거란 침공시 봉안되었던 대장경 관리를 위해 자신이 상속받은 노비를 예속시켰다는데 문서 끝에 연호가 있어 문서 작성 연도(1281년)를 알 수 있고, 당시엔 승려나 절도 속세의 부모에게 상속 받은 노비를 소유하고 관리하기도 했단 사실을 알려주는 귀중한 문서랍니다.
건칠희랑대사좌상 - 10세기.보물 999호. 해인사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해도 될 유물로 해인사에 봉안된 이후 진품이 절문 밖으로 나온 최초의 사건이라는군요. 심지어 보존 상의 어려움으로 해인사 내 성보박물관에서도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고 진품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합니다. 어쩌면 다시는 못볼 수도 있는 작품.
건칠은 기본 틀에 모시나 삼베를 겹겹이 입히며 칠해서 모양을 만드는 기법인데, 10세기 중반 유행하던 조각기법이랍니다. 또 이 작품은 특이하게 앞면은 건칠, 뒷면 일부는 나무로 이루어진 것도 유례를 찾기 힘든 희귀한 일이라는군요.
희랑대사는 태조 왕건의 스승이었다 합니다.
세밀하게 묘사한 얼굴 곡선, 주름 등과 체격, 신체 비율 등 가까이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걸작으로, 특이하게 가슴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는 게 보이는데 이에 대해선 희랑대사가 본인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함으로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해인사에 전해 내려온다는군요. 무섭;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 - 12세기. 미쿡 보스턴박물관
뚜껑 위 너무나 귀여운 봉황 모양과 입과 손잡이 부위의 세심한 조각 그리고 몸통 하나하나에 새긴 문양까지. 고려 극상의 금속공예 기술을 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옆쪽에 유사한 모양의 청자도 전시되고 있어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
청자 구름 학 국화무늬 퉁소 - 13세기. 미쿡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청자로 만든 의자나 베개 등 다양한 물품들은 종종 봤지만 장구 외에 악기는 처음이라 신선했네요.
청자 꽃모양 발 -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국내외 매우 다양한 고려청자 걸작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 작품이 청자로 구현한 최고의 색감인 '비색'을 가장 잘 표현해낸 작품인 듯 싶네요.
해외에 유출되기 전에 잘 지켜냈다면 좋았을텐데.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 - 보물 337호. 1348년.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제가 아주 아끼는 절 중 하나인 청양 칠갑산 장곡사의 하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약사불이 700년만에 외출하셨네요. 장곡사는 대웅전이 상,하 두 개로 나누어 지어진 국내 유일의 사찰로 상대웅전에 국보와 보물의 부처 세 분이 모셔져 있는데 그분들은 워낙 오래된 분들이기도 해서 그중에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친근한 모습인 약사불이 간택되어 외출하신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약그릇으로 봉긋하게 올라와 있는 건 뚜껑이 아니라 약이나 음식 같은 내용물을 나타낸 거랍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이와 가족들의 병을 치료해준다는 기복신앙과 결합된 부처 중 한분이죠. 장곡사는 차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정말 조용하고 고즈넉하게 아름다운 절이니 청양이나 칠갑산 갈 일 있는 분들은 꼭 방문해 보시길.
금동보살좌상 - 14세기. 일본 사가현 중요문화재. 일본 후묘지
정교한 세부 묘사와 온몸에 걸친 화려한 장신구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금동보살상.
다양한 불상이 전시중인데 금동이 대부분 벗겨졌고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임에도 단아한 표정과 유려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역시나 잘 보존해 국내에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미타여래도. - 14세기.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고려뿐 아니라 동시대 주변국의 여러가지 불화들까지 다양하게 전시중인데 그중 대표작으로 내세운 고려 불화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이걸 구입할 때부터 최근까지 중국 불화인줄 알았다는데 201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며 조사해본 결과 고려의 불화임이 밝혀졌다고 하네요. 그 이유가 가슴 가운데 있는 금빛 만자의 날개가 반대로 되어 있는 것 때문이라는데
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입니다;;; 특이하게도 저 시대 불화에 만자의 날개를 반대로 새겨 넣은 나라는 고려뿐이었다네요.
치성광여래강림도 - 14세기. 미쿡 보스턴박물관
북극성을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한 치성광불도이다. 화면 중앙에는 소가 이끄는 장엄한 수레를 탄 치성광불이 있으며, 그 주위와 화면 상.하단에 걸쳐 여러 별을 의인화하여 배치하였다. 인물 옆에는 각각의 명칭을 적은 제목이 있어 일부는 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불화는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치성광여래도로는 유일하게 북두칠성을 비롯한 명왕, 이십팔수, 십이궁 등과 여러 별자리가 그려져있다. 당시의 신앙과 천문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불화이다. 랍니다.
청자 동자 모양 연적 -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청자 사자장식 베개 -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청자 거북이모양 연적 -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참.아.름.답.습.니.다.
안향 초상 - 국보 111호. 조선 16세기 중엽. 소수박물관
아시다시피 이 땅에 성리학을 최초로 전파한 분이죠. 원본은 1318년 원나라 화가가 그려 문묘에 봉안하였다는데 소실되었고, 조선시대 이불해란 화가가 그걸 보고 모사한 모본이 유일하게 전해지는 안향의 초상인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보존을 위해 여간해선 나올 일 없는 작품인데 전시돼있네요.
청자 동채 모란 넝쿨무늬완 - 13세기. 영국 영국박물관
청자에 산화 동(구리)을 입혀 붉은 색이 피어나게 만들거나, 도자기를 낮은 온도에서 구운 후 금을 얹어 화금청자 라는 걸 만들기도 했다 전해지는데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걸작이 전시되고 있더군요. 깨진 부분을 수리하고 금을 덧씌운 것도 특이하고.
청자 용 봉황 모란무늬 합과 받침대 - 국보 220호. 13세기. 개인 소장.
소장하고 계신 분 뉘신지? 가장 부러웠던 작품이네요. 뚜껑 손잡이의 귀여운 용 모양부터 뚜껑 위 봉황과 용의 상감기법까지! 보면 볼수록 세부적인 묘사 하나하나에 감탄사 연발하게 만드는 걸작 중 걸작.
청동 은입사 봉황무늬 합 - 국보 171호. 삼성미술관
고려시대 유행한 입사 장식은 청동에 은선을 넣어 장식하는 기법으로 금색과 은색이 대비되어 부분 금도금과 유사한 디자인 효과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형식이라는군요.
이외에도 미쳐 소개 못한 다양한 청자와 금속공예들,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나들이 하신 대장경 목판님들과 인쇄물들, 진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역사서와 다양한 국보, 보물급 불교 기록물들도 즐비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시 중반 쯤 있는 왕실의 만찬장을 연상하며 꾸민 공간인데, 양 끝에서 카메라로 잡으면 아주 인상적인 구도가 잡히더군요.
유물만 400여점이 훌쩍 넘어 다 보는데만 3시간이 넘었던, 최근에 본 전시 중 손에 꼽는 유료 전시였지만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 꽤나 고생이었는데, 내일은 그 마지막 날이라 더 붐빌테니 혹여 안보신 분은 꼭 보시라 추천까진 못하겠네요.
끝.
가고 싶었는데 결국 못갔네요.. 벌써 끝나다니 아쉽습니다
역만자 문양 이야기는 처음 알았네요. ; 하켄 크로이츠 ㄷㄷㄷ
일본에 있는 건 역시 약탈해갔다는 거겠죠?
저도 이거 토요일(3월 2일)에 보러 갔었습니다. 점심시시간 조금 지나서 갔는데
가족단위로 많이 왔더라구요. 바깥까지 줄 늘어선거 보고 놀랐습니다.
대기시간이 2시간 30분이라던데 ㅋㅋㅋㅋ
다른데서 시간 때우다가 저녁무렵에 관람했습니다.
일단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일본 유물들은 그 나라 박물관에 속하게 됐을 때 구입했던 이력이 확실한 것들만 가져온 거라 봐야겠죠. 안그럼 국제문제가 될 수 있는지라. 물론 그걸 백프로 믿을 수 있냐하면 그건 또 으음;;
중앙박물관 특별전시는 여러번 봤는데.. 이번거는 진짜 알차었네요.. 이걸 놓치다니..ㅠㅠ
로쟈//저도 떠밀려 다니느라 중간중간 많이 쉬었습니다ㅋ
jjuyng,go//이제 날 바뀌어 오늘까지는 합니다. 본문에 썼듯 사람이 너무 많아 추천까진 못하지만 보면 절대 후회는 안하실 겁니다ㅋ
ㄷㄷㄷ굉장하네요
와ㅠㅜ
고려불화의 경우는 이미 당대에 건너간 케이스가 상당합니다. 오히려 국내 소재 불화는 역으로 일본에서 구매하는 케이스가 많아요.
전시실엔 가보지 못했지만 뮤지엉삽 다고려전 굿즈 중 텀블러는 정말 예쁩니다. 문구세트도요..
정말 맘에 드는 전시인데
이걸 오늘에야 알다니 ㅠㅠ
오늘 마지막인데 하필 지금 근무중이라 너무 아쉽네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보고 왔는데도 원글님 글보니 또 보고 싶네요.
좋네요 이런거. 이촌역이면 지척인데 이 글 보고 갈까.. 생각중.....
전 1월달에 다녀왔는데 그때는 그나마 사람이 좀 적어서 여유롭게 봤었죠
왤케 다른 나라 소장이 많아 ㅠㅠㅠ
고려불화중 중요한 작품들중 상당수가 일본에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일본의 고려불화는 안왔나보군요..
희랑대사 좌상은.. 고려의 극초반기이기 때문에 사실상 신라장인의 실력이라고 봐야 하는데.. 과연 조선말의 장인이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청자보다 백자가 좋다는 분들도 많지만.. 조선의 기술 천시와 퇴보는 실로 심각합니다
[리플수정]그리고 고려불화는 조선시대에 일본에 많이 퍼줬습니다. 억불을 하는 나라였기에.. 쓸데 없는 불화를 주면 일본애들이 고마와했으므로 교린 차원에서 거둬들여서 많이 줬습니다. 실록에도 관련 기록이 나오죠.. 이마가와 료슌도 원요준이라는 이름으로 대장경 주는 것과 관련해서 실록에 등장하고.. 조선은 알면 알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정주의 학문(성리학)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아저씨들입니다.
관심있눈 전시였는데 지방이라 못 가봤어요
잘 봤습니다
조선시대 유교 탈레반들이 얼마나 문물을 후퇴시켰는지 알 수 있는 유물들이네요...
어떻게 600년 보다 더 전인 고려 시대 유물들의 제작과 세공기술이 더 화려하고 세밀할 수 있죠??
조선시대 유물 보면 무슨 유치원생 공작시간에 만든 수준의 유물들 많던데...
확실히 이상한 사상으로 무장된 바보들이 정권을 잡으면 문명이 쇠퇴 한다는게 정설인듯.
(요즘 기시감이 꽤 많이 들죠? ㅋㅋ)
역대 최고 전시였어요!!
아 이거 사진촬영이 되는거였어요?!?!?!?! 아까비....
[리플수정]고려시대의 화려함을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는 진귀한 유물들이군요...건축이나 복식 등의 유물도 많이 발굴되고 연구되어서 현대 한국인들에게 그 화려한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드러났으면 정말 좋겠네요. 삼국시대도 그렇지만 정말 유물이 적어 아쉬운 시대...
Ddp 대한컬렉션도 좋았는데 전시품 수가 적어서... 이건 전시품 수로 압도하네요
놓친 전시회인데 이렇게 사진으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당시 왜 고려만 역만자였던 건가요?
감사합니다
zweimal// 우리가 흔히 한국적이라고 인식하는 게 조선시대 분위기더군요. 고려 시대는 스님 옷도 화려한 게 모르고 보면 일본풍이라고 오해하기 쉽겠어요.
와...다녀올걸 그랬네요
국립중앙박물관 금방인데..
희랑대사좌상은 꼭 가서 봤어야했는데..
아, 저런 전시회 하는 줄도 몰랐네요. 평소에 관심이 덜 했단 방증이겠지요. 알았다면 한번쯤 서울 나들이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글쓴님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와... 근데 저는 중동,중앙아시아 느낌이 나네요.
아 이런걸 하는 줄 몰랐네요
이것만이라도 보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하나 하나 살아 숨쉬는 것 같네요.
고려는 기풍도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죠. 조선은 심하게 퇴보한 나라였어요. 대고려전 보면서 아, 문화는 발전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형편없이 뒷걸음칠 수도 있다는 걸요.
며칠전이라도 미리 글을 주었으면
몇일전에 올리시징 그래도 감사합니다
박물관 좋아하는 1인. 글 잘봤어요. 감사합니다.
너무 잘봤습니다 전시를 놓쳐 정말 아쉽네요
잘봤습니다 전시 놓쳐서 아쉽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