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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어느 가족]을 보고.. 소리로 보아야만 했던 불꽃놀이 (스포 포함)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Shoplifters)]을 다시 보았습니다.
작년, 제 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어제 거행된 제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작품이죠.
영화들 중에는...
다시 보기 힘든 영화들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 일부러 애써 외면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 그 범주에 속하는데,
이 영화가 VOD로 풀린 것을 알고 다시 보았네요.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서
리뷰를 쓰기로 용기를 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가족을 테마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이죠.
제도권 가족의 붕괴와 해체에서 시작돼
유사가족의 결성과
새로운 구성원의 가족으로의 편입으로 진화해 온,
그의 가족 테마가 그야말로 집대성된 영화입니다.
먼저 시놉시스.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생활하는,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
아빠 '오사무(릴리 프랭키)',
엄마 '노부요(안도 사쿠라)',
이모 '아키(마츠오카 마유)',
그리고 아들 '쇼타(죠 카이리)'.
이 다섯 명은 할머니의 성(姓) '시바타'를 공유하는,
하나의 가족이자 동거인들이지만
사실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입니다.
이들의 공간에 '유리(사사키 미유)'가 편입되구요.
단순한 가족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독거노인 문제, 복지제도 문제, 아동학대 문제,
심지어 일용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성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질문과 고민을 던지는,
따뜻하게 보이면서도
비수같은 날카로움과 신랄함을 품은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일본사회의 문제는
바다 건너 우리들에게도 남의 일이 결코 아니기에
이 작품이 던지는 화두는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사회가 방치한 상처를 서로 핥아주고
세상의 냉기를 서로의 온기로 극복하며...
가족을 온전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은
피가 아니라 구성원들 간의 서사이다."
작년 말 이 영화를
2018년 올해의 외국영화 Best 20에 올리며
제가 언급했던 간단평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낳았다고 엄마가 아니다"라는 노부요의 말 그대로,
가족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조건은
피, 혈연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과 이야기겠죠.
그 조건이 충족된다면,
좁고 남루한 공간도 얼마든지
넉넉하고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선택과 의지로 만들어지는 가족이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당한 가족보다
더 가족다울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웅변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플래시백이 한 번도 이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감독들의 넘치는 친절로 관객을 피곤하게 하는,
그런 플래시백의 남용이 없습니다.
하츠에의 과거는 지금의 아키에게,
노부요의 과거는 지금의 유리에게,
오사무의 과거는 지금의 쇼타에게 각각 투영되고,
아키, 유리, 쇼타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하츠에, 노부요, 오사무의 삶의 사연들과 내면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하츠에, 노부요, 오사무는 또한
착하고 따뜻한 사람만으로 그려지지도 않죠.
그들은 좀도둑질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성이 결핍된 인물인 동시에
지극히 속물적이고 적당히 이기적인 인물들이죠.
카메라는 섣부른 개입이나 판단을 유보한 채
그들의 양면성을 공정한 담담함으로 드러냅니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소리내어 울지도 않습니다.
관객들의 가슴 속엔
이미 슬픔과 안타까움이 스며들고 스며들어
눈물로 변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연(內燃)하고 있음이 분명한 그들의 얼굴은
무심한 척 의연합니다.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키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죠.
아키의 단골고객 한 사람이 추가요금을 지불하고
아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말하는 아키,
아키의 허벅지에 머리를 묻고 가만히 듣는 남자.
그러다가...
아키의 허벅지에 남겨진 눈물 한 방울...
인간의 고독과 공감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니...
쇼타가 도둑질을 일삼던 구멍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여동생에게는 도둑질을 가르치지 말라며
쇼타에게 되려 쭈쭈바 두 개를 건네는 용서와 배려는
쇼타에게 각성의 기회를 줍니다.
이 가족의 좀도둑질은,
일단은 생존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훔친 물건에는 낚싯대도 있죠.
생존과는 아무 관계없는.
그 낚싯대는 이 가족의 이상향과 다름없는 바다로
그들을 인도하는 매개체이며,
그들이 함께 한 시간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건져올리는 도구입니다.
'스위미'란 말도 등장하죠.
작은 물고기들이 다랑어에게 대항하는 수단으로.
이 가족은 함께 한 시간에 대한 기억의 공유로써
세상이란 파도에 맞서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부감(high angle shot)의 사용도 참 현명합니다.
영화에서 부감은 기본적으로 절대자의 시점이죠.
특히, 초라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인 채
화려한 불꽃놀이를 소리로 보며
잠시의 평화를 함께 누리는 가족들을
부감으로 잡는 숏...
여섯 명의 가족들이 하나의 프레임에 잡히는
유일한 장면이죠.
그 평화, 그 위로, 그 축복...
또 하나...
영화의 포스터.
수천 편의 영화들을 보았고
수천 장의 영화 포스터들을 보았지만,
[어느 가족]의 포스터들을 가장 사랑합니다.
배우들을 간단하게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키키 키린'...
2018년 9월 15일, 향년 75세의 나이로 작고한,
일본의 국민배우이자 국민어머니.
물론, 그녀의 유작(遺作)은 [일일시호일]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는
영화 속 가족들, 관객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바다에서 마냥 신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녀는 검버섯이 피어오른 다리에 모래를 뿌리죠.
그러면서 소리죽여 말합니다.
"다들, 고마웠어..."
고레에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키키 키린의 애드리브였다죠.
영화라는 시공간을 빌려 고마움을 전하는 그녀나,
그녀의 유언을 정성껏 간직해 전달하는 감독이나...
그리하여 영화는 위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당신이 참 고마웠답니다...
'릴리 프랭키'의 헛헛한 웃음도 좋았지만,
'안도 사쿠라'의 절제된 수렴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네요.
두 아역배우 '죠 카이리'와 '사사키 미유'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꼬오옥 안아주고 싶습니다.
경찰로 잠깐 등장하는 '이케와키 치즈루'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했던,
우리의 영원한 '조제'랍니다.
하츠에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영화는
각자의 선택, 결단, 책임과
서로의 헤어짐을 향해 달립니다.
오사무는 쇼타에게 자신을 아빠라 불렀으며
아빠로 불리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쇼타는 오사무를 좋아했음에도
차마 아빠라 부르지 못했죠.
일박이일간의 쇼타의 외출과 외박...
도둑질 밖에는 가르칠 게 없었다는 오사무에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쇼타는
책에서 배운 것들을 가르쳐 줍니다.
눈사람을 함께 만들고
베개를 함께 베고 등을 기대고 누운 두 사람...
쇼타가 힘들게 묻습니다.
"나를 두고 도망가려고 했어?"
"응... 그랬지... 그 전에 붙잡혔지만..."
"그랬구나..."
"미안하다...
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
다음 날 아침,
사죄를 마지막 당부처럼 가르치는 오사무에게
쇼타는 그 때 일부러 붙잡힌 것이라며
매정한 위악으로 아버지를 포기시킵니다.
쇼타가 탄 버스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오사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외면하는 쇼타...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을 즈음,
고개를 돌려 추억의 시간을 바라보는 쇼타...
그가 마음으로, 가슴으로, 진심으로 부릅니다.
"아빠..."
'다르덴 형제'의 2011년 걸작,
[자전거 탄 소년] 리뷰에서,
단순한 연민에서 그치지 않는,
그 연민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일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이동은' 감독의 2018년 수작,
[당신의 부탁] 리뷰에서,
어쩌면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내 엄마가, 내 가족이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할
첫 번째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고 썼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 아름다운 걸작 [어느 가족]을 보시고
지금 내 옆의 가족들을,
더 나아가
당신이 손을 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타인들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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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족은 해체되고, 유사 가족은 가족 재결합을 이루는게 참 아이러니하죠
마지막 유리의 그 묘한 표정은 뭘 의미하는지....
안도 사쿠라가 취조씬에서 보여준 연기는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오~~이렇게 빠르게 올라올줄은 몰랐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데 다시 보기 힘든 영화의 범주에 속하나보네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더더욱 땡기네요..
이 영화가 이렇게 좋다라는걸 혁명전야님을 통해 첨 알았고 주변에서도 하나같이 다 좋다고 하더라구요
고레에다 감독 작품을 차근차근 봐야겠다는 나름의 계획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해가 지났네요 ㅎㅎ
항상 좋은 작품들의 선정과 리뷰 후기 고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었는데 이 영화도 꼭 봐야겠네요. 정성스러운 글 감사합니다!
lewin// 그 몇 달 간의 행복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으로 버티고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는, 유리도 유리 나름의 성장을 했음을 보여주는, 그 정도의 의미로 읽었습니다.
안녕요정// 고레에다 감독 다른 영화들 먼저 보실 생각하지 마시고, 이 영화를 먼저 보셨음 좋겠네요. 개인적으로는, 그의 모든 영화들 중 가장 세련되고 가장 긴장감 넘치며 가장 울림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영어 제목과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의 차이가 상당히 인상적이에요
비르투// 네 꼬옥 보셨음 좋겠습니다. VOD로 풀렸으니 4500원만 투자하시면 엄청난 감동과 여운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이 영화가 고레에다 감독 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라더군요
nach// 맞습니다. 이 경우는 오히려 우리말 번역이 더 나은 경우라 느껴지네요.
nach// 네 맞습니다. 물질적 보상도 수상실적도 충분히 이루어진 영화죠.
헉 마침 어제봤었는데ㄷㄷ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잔잔하게 가나싶더니 한방먹었네요
안도사쿠라의 연기가 인상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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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이후 차츰 하락세를 걷고 세번째 살인은 실망스러웠는데 고레에다 감독 아직 팔팔하구나란 걸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네요, 정말 좋은 영화라고 봅니다
불꽃놀이 장면은 줌아웃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세요
이 영화를 보고 가족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죠.. 연기도 좋.. 이런 영화가 좋은것 같아요 때론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들고 물론 끔직한 것도 있지만..
라이자// 따뜻한 듯 하면서도 매우 차가운 영화죠. 안도 사쿠라는 진짜 대단했습니다.
제드바틀렛// 저는 세번째 살인도 괜찮았는데...^^;; 어느 가족은 감독의 내공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영화더군요. 감독의 다음 행보가 매우 궁금합니다.
크누트// 착각했네요. 지적 감사드리고 본문 수정하겠습니다.
홍루이젠// 좋은 영화들 참 많습니다.^^
26일부터 5천원으로 가격떨어져서 기다리던 중이였는데 오늘봐야겠네요
전 일본에서도 보고 한국에서도 봤었는데.... 저 개인적으론 만비키 가족이 더 의미도 그렇고 와닿더라고요. 고레에다와 (고) 키키 키린 상 그리고 릴리 프랭키 조합은 마치 가족 같죠. 키키 키린 상의 애드리브 독백이었다는 "모두들 고마웠어"라는 지나고 보면 더 짠하더군요. 영화 평론가이신지 글을 쓰시는 분이신지 필력이 좋으셔서 더 깊게 깨닫고 갑니다.
작년에 본 영화중 최고였어요
이 영화 너무 좋았어요. 진짜 정말 좋았어요.
정말 좋은 영화죠. 고레에다스러운 영화였고 참 좋았음
이거 고레에다 작품중 최고
이 영화 상상마당에서 마지막 상영 놓치고 울뻔 했네요.
키키 키린님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하는데..ㅠㅠ
읽어주시고 댓글로 좋은 영화에 대한 감상 공유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아직 못보신 분들은 의미있게 즐감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