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길 가다가 흥부와 놀부가 떠올라서 곰곰히 생각해 보다보니..
뭔가 이상한 쪽으로 아귀가 맞아서 끄적임 ㅋ
우선 본인은 흥부와 놀부의 대략적인 줄거리만 알지 정확한 내용은 잘 모름.
본인이 알고 있는 대략적 줄거리를 보자면..
부모로 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 받은 놀부와 재산을 전혀 받지 못하고 쫒겨 나는 흥부.
흥부가 쫒겨 나는건 결혼한 후 인지 결혼 전인지는 잘 모름.
흥부 마누라는 미인, 놀부 마누라는 추녀.
먹고살게 재산좀 나눠 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함.
결국 제비다리로 권선징악?
우선 부모의 제산 분배에 대하여..
넓은 땅을 가지고 소작농을 고용해 먹고 사는 지주집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
지주 집안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장자 1명에게 모든 땅을 물려 주는 거임.
자식이 두명이라고 땅을 1/2로 해서 나눠 주면 몇대가 지나기도 전에 땅이 조각조각 나서 가문 자체가 공중분해 되니 그 당시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면 당연히 땅은 가문을 이어나갈 장자에게 전부 물려 주는게 맞음.
그러니 놀부가 부모의 재산을 모조리 물려 받았다는 당시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임.
당연히 놀부는 부모로 부터 땅을 관리 하는 방법 부터 소작농을 관리하는 방법, 재산을 유지하는 방법 등을 조기교육 받음.
흥부는? 부잣집 둘째 답게 놀고먹었다고 보면 됨.
왜냐하면 놀부가 일도 안하면서 부모재산을 혼자 꿀꺽 했다고 생각하는거 자체가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건데 아무리 둘째라도 첫째가 장가를 가서 자식을 낳기 전에 혹시나 병에 걸려 죽던가 아님 사고로 사망하는 등 어찌될지 모르는 그 당시의 상황이니 만큼 부모가 둘째도 어느정도 교육을 시킬려고 시도는 했을 거임.
그런데 장자 답게 책임감있게 교육을 받은 놀부와는 다르게 흥부는 부잣집 망나니..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부는 안하고 부모의 돈으로 놀고 먹은거임.
성실한 놀부 입장에선 답답한 한량 그 자체.
그리고 부모가 죽자 놀부도 더이상 못 참고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한량을 쫒아 낸거.
대부분 이야기가 이 쫒아 내는 과정에서 놀부가 내 집에서 꺼져라 라고 하니 흥부가 아가리 파이팅을 시전했다는 흔적이 있음.
솔까 아가리 파이팅도 하는 사람이 하지 정말 착한 사람은 못함.
여기서 흥부가 마냥 착한 인간이 아니라 아가리 파이팅을 일상적으로 달고 살았던 프로 아가리 파이터 였다는걸 알 수 있음.
역시나 반례로 부모로 부터 성실하게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놀부는 농생 흥부의 아가리 파이팅에 뭐라 말도 못하고 잔소리 말고 무조건 나가라고만 하는걸 볼 수 있음.
집에서 쫒겨나 결혼 했는가 결혼 하고 쫒겨 나는가는 잘 모르지만 흥부 마누라는 미인으로 알 고 있음.
당연히 한량답게 아가리빨로 먹고 살면서 미인을 꼬신거.
그에 반해 놀부 마누라는 추녀..까진 아니더라도 평험한 수준의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고 예상됨.
지주이며 부자인 놀부는 본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권력자와 혈연을 맺어야 재산을 지키기에 더욱 용의 하므로 정략결혼을 한거임.
여기서도 다시 드러나는 가문을 위한 책임감 있는 놀부와 한량 흥부의 차이.
쫒겨 나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떡이나 찍으며 한량한량 살고 있는 흥부와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놀부 이야기가 계속됨.
먹을 쌀이 없다고 쌀 좀 달라고 찾아가는걸 보면 계속해서 원조를 받아 온거임.
자식이 몇명인데 놀부한테 쫒겨 나고 몇년이나 지났을 건데도 안죽고 살아 있는걸 보면 쫒겨 나고도 계속 놀부한테 빌 붙은거.
여기 까지가 흥부와 놀부의 현실적인 이야기.
그러다가 갑자기 제비다리니 박씨니 도깨비니 하는 판타지 스토리가 시작됨.
여기선 다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서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하여 알아야 함.
흥부와 놀부 같은 이야기는 설화로 보통은 현실도네로 먹고 사는 당시의 스트리머인 저잣거리의 이야기 꾼들이 사람 모아 놓고 떠드는 거임.
입담 좋은 이야기 꾼이 사람들 모아 놓고 떠들다가 어험! 목이 마르네~ 하면서 막걸리 한사발 얻어 먹고, 어익후! 다음 이야기가 생각이 안나네~ 하면서 엽전 몇개 도네 받으면서 떠들어대는 내용이 이 흥부와 놀부.
그럼 이 이야기 꾼들의 출생이 어찌될까를 생각해 봐야함.
예상을 하셨겠지만 어느정도 입담을 가지고 이야기를 조리있게 풀어 낼려면 어느정도 교육을 받은 부잣집 출생의 둘째 이하, 바로 흥부임.
물론 다른이가 만든 이야기를 외워서 그대로 떠들고 다니는 정도야 교육이 크게 필요 없다지만 처음 만들고 그걸 계속 자기에게 맞게 다듬어 갈려면 센스도 있어야 하지만 어느정도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야함.
고로 그 당시에는 가문을 지키기 위한 장자세습 같은건 이 이야기 꾼들에게 있어선 용서 못할 악습 그 자체인거임.
왜냐하면 부모의 재산만 물려 받았으면자기도 놀부처럼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었는데, 놀부는 하는거 없이 놀고 먹으면서 부모 제산 물려 받아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흥부인 본인은 이렇게 저잣거리를 돌면서 현실도네나 받으며 사는게 억울해 죽을 지경임.
여기서도 드러나는 가문과 재산에 대한 이해력 부족.
아무리 지주라도 당시 상황에선 무조건 흥청망청 놀고 먹으면 재산이 유지될 리도 없음
당연히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줘야 하지만 이렇게 일하는 놀부를 흥부는 일을 하고 있다고 조차도 모를 정도로 지주의 일에 대하여 이해력이 떨어지는 소리임.
그리고 프로 아가리 파이터 답게 이름부터가 놀부는 놀고먹는 부자고 흥부는 재산은 없어도 흥 만은 부자.
그런 한량의 꿈이 바로 성실하게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되는게 아니라 운 좋게 일확천금해서 부자가 되는거.
그리고 겸사겸사 본인에게 부모의 재산을 나눠주지 않으니까 욕심많고 심술궂은 놀부는 벌은 받고.
결국 흥부와 놀부는 권선징악 같은 스토리가 아니라 부잣집에서 성실하게 후계자 교육 받은 장남에게 쫒겨난 부모재산으로 놀고먹으며 자라온 한량이 막상 부모가 죽고 형에게 쫒겨나자 저잣거리를 떠돌며 분풀이 하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ja위소설임.
끗.
킹리적 갓심... ㄷㄷ 추리력 엄청나시네요...
원작보다 흥미진진 합니다!! 그래도 둘이 빈부격차 생긴게 원작에 나와용.가장 오래된 흥부전 흥부만보록에 보면 놀부가 부자가 된 배경이 원래 흥부놀부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인데 둘다 부자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고 놀부는 처가 아오안으로 적응 빡 하고 잘살고 흥부는 가난한 본가 챙기다가 폭망?하고 형님네 찾아간다는 내용 이었던.. 전래동화나 그 후에 각색 된 버젼이 많아서 우리가 잘 모를 뿐 ㅎㅎㅎ
아닌데요 놀부부인 예쁨
1 설득을 과하게 받으셨나보네
오!!! 예전에 본 심청전도 그렇고,
이런 해석 좋아요
장자우선상속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이어온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조선 중기인가부터였나
오히려 고려시대에는 지금처럼 균등상속이었다고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장자가 더 많은 상속을 받는거지,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장자 몰빵상속같은건 아닐겁니다.
[부연설명]
국내에 가장 오래된 흥부전은 1833년에 만들어진 흥부만보록임. 가장 오래된 흥부전이자 가장 오래된 판소리 작품이고, 이후 흥부전에서 생략된 흥부 놀부의 출생과 배경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역사적 연구 가치가 큼.
흥부만보록에 따르면 흥부와 놀부의 성은 장씨로 원래 이름은 장흥보, 장놀보였음. 평양 서촌 출신이던 흥부와 놀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둘 다 부잣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감. 그런데 흥부는 이후 부모를 모시기 위해 돌아왔지만 놀부는 '내가 잘먹고 잘살게 된 게 처갓집 때문인데 왜 친부모를 봉양해야 하냐'며 거부하고 처갓집에 눌러앉음. 그래서 이후 둘 사이의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함. (원래 흥부놀부전과는 다른 부분) 이후 제비다리 스토리는 같고, 흥부는 훗날 무과에 급제해서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함.
그래서 학계에서는 흥부놀부전의 배경이 조선시대가 아니라 고려시대가 아니었을까 한다고 함. 평민 집안의 남자가 부잣집 딸의 사위로, 그것도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아이를 여럿 낳을때까지 산다는 것 자체가 신분간 차별이 극심했고 데릴사위도 1~3년밖에 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시대상과는 맞지 않는 반면, 고려시대때는 신분을 넘어 비교적 자유로운 연예가 가능했던 고려시대때가 가능했기 때문.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구전설화의 경우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면서 당시 시대상이 많이 반영된다는 점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흥부놀부이야기의 경우 놀부를 좀 더 나쁜 악인으로 만들어 권선징악을 당하게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데, 그 이면에는 조선 중후기에 심화된 빈부격차와 부익부빈익빈, 장자상속제도의 공고화 등이 이야기속에 녹아들어갔다고 보는게 좋음.
조선 전기만 해도 부모의 유산 배분시 장남과 차남, 심지어 딸도 특별한 차이 없이 고르게 유산을 분배받았고 사위가 집안을 잇는 일도 흔했음. 족보에도 아들과 딸이 같이 기재되었음. 그러나 조선 후기에 성리학이 뿌리내리면서 장자인 아들이 부모의 제사를 모신다는 이유로 유산의 대부분을 가져가게 되고 또 그게 당연시되었음.(이 글 쓴 사람 마인드) 또한 두 번의 큰 전쟁 (임진왜랑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남성 중심, 혈연 중심의 가족제도가 강화된 점도 있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놀부가 면책받는 것은 아님, 17세기까지만 해도 딸에게 유산의 1/3은 줬다는 기록이 있고, 동생에게 줘야 할 유산을 다 뺏고 내쫓은 놀부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임)
또한 조선 후기에는 모내기의 발달로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토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부를 모으게 되는 효과를 갖게 됨. 역으로 토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노동력만 제공하는 노동자로 전락함 (흥부전에서도 흥부 마누라가 '여보 우리 품이나 팔러 갑시다')라는 장면이 있음. 즉 놀부는 당시 신흥세력으로 세를 불리던 지주들을, 흥부는 임금 노동자로 전락한 일반 서민들을 대변한다고 보면 됨.
하여간 위에서도 언급했듯 구전설화는 전해내려오면서 당대의 시선이 녹아들게 되어 있음. 과거 인력=노동력이었던 시대에는 다산이 축복받을 만한 행동이었으나 현대에서는 '아니 저렇게 무계획적으로 애를 낳으면 어떡하나?' 라고 하듯, 덕수 장씨의 시조 이야기였던 흥부놀부전이 시대가 지나서 당시 사회상이 녹아든 것처럼 나중에 이 이야기가 후대에 어떻게 전해지고, 후대에서는 이걸 또 어떻게 해석할 지 흥미로운 부분임.
오 나름 현실적인 해석...요런거도 재미있죠...ㅋㅋ
마치 어렸을때는 둘리가 착하고 고길동이 나쁜놈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들고 보니 둘리는 개쌍놈이고 고길동은 진짜 성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듯이.
돈없는 흥부도하는데ㅜㅜ
나는 ㅜ
흥분데요~
오..
이거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잘난 체 할 때 써먹어야겠다 헤헷 ^^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모르지만 제 기억에 남아있는 흥부놀부는 이렇습니다.
흥부놀부 집안은 원래 양반집안이 아님.
장사를 해서 양반을 산 집안...
따라서 형인 놀부는 자신이 양반이 아닐때를 기억하고 있고 아버지가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게 됨.
따라서 양반이 된 후에도 돈에 집착하게 됨.
반면에 흥부는 조금 다름.
어렸을때 부터 다른 양반들 처럼 일해본적이 없고 공부만함.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놀부 눈에는 공부만 하면서 재산축내는 흥부가 보기 싫음. 쫓아냄
그러나 흥부는 공부만 하던 사람이라 생활력이 없음... 그리고 다 아시는 이후의 이야기.
어디서 봤는지 모르지만 제 기억속에 남아있는 흥부놀부 이야기 입니다 ...
놀부는 어릴때부터 나쁜짓을 즐기는 천하 잡놈으로 묘사되죠.
흥부가 저자라면 처음부터 나쁜 인식을 주기위해 그랫다고 볼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수있는 나쁜 부자죠.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착한건 아닙니다
알다시피 부자들이 돈을 버는 과정은 지금도 불법이 판치죠.
그리고 흥부가 가난해진 가장 큰 원인은 자식을 너무 많이 낳앗기 때문입니다.
원본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0명이상 20명까지 나오더군요.
이정도면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한 가난할수밖에 없죠.
전혀 논리적이지는 않은데..
그냥 웃으라고 써놓은 유머인데..
그냥 지금 세대의 부자 합리화론. 같아 씁쓸한데..
저당시는 자본주의적 기반이 아니였고.
흥부가 제비다리를 고쳐 박을 킨뒤
금은보화를 얻었다는디
나가 가만있을수 있간디? 급제비하나 섭외후
선댕강 후수습하니 박이 열리네?
슬금슬금 박을 키니 두근반 세근반
놀부가슴 펑~~~ 하고 박에서 머가 나오는디!
고것이....
흠...
은혜갚은 까치...
과거보러가는 선비가 병장기를 휴대하고가다 뱀을 활로 쏘아죽임...
뱀이 알을 먹는건 자연의 이치임...
결국 선비의 오지랖으로인해 까치새끼들 어미 죽고 뱀새끼들 어미죽고...
무과를 보러 가던건가...?
신박하네요..ㅎㅎ
뒷 얘기도있죠
놀부가 쫄딱 망하고 산에 들어가서
먹고살게 없으니 산적질 하다가
그 악랄함으로 세를 키워 흥부에게 복수한다는 내용.. 나중에는 죄를 뉘우치고 나라지키는 지방군에 편입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름이 놀부부대고 배급되는 찌게가 맛있었다 하네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놀부가 욕심쟁이라 흥부 내쫒고 마을사람들까지 괴롭혀가며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이야기로 들었는데요 나는 어릴때. 그래서 일부러 부러뜨린 다리의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 열고 혼쭐날때 속시원한 그런 얘기였는데..
흥부전
점심으로 진지먹고 말씀드리자면 사회적으로 부르조아라고 불릴만한 신흥지주세력에 대한 반감이 구전되던 이야기에 입혀진 소설이라는게 국문학적으로 대세입니다
우앙 재미써
없는걸 구라로 메꾸는
ㅋㅋㅋㅋ 능력도 없는 새끼가 결혼은 왜 했으며, 밥도 못먹일 자식새끼는 줄줄이 잘도 낳았죠.
흥부가 기가막혀!
ㅎㅎ재미있는 해석이네요
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곳으로 가오리오~ 이 엄동설한에
어느곳으로 가면 사~안단 말이오~내 갈곳이나 일러주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아따 니 갈곳까지 일러주랴...쓰억 끄저라~
이게 시점의 차이 같은게
누군가 빚 지고 도박, 토토하거나
계속 돈 날려먹고 그러는 가족이 있으면
더 지원 안 하고 끊어야 하는게 맞을때도 있잖아요
흥부가 자식이 많아서 먹여살리느라 힘들다고 하는데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성인=온전한 노동력 기준도 다르고
아이들이 공부를 한게 아니고 똑같이 노동력이었을텐데
왜 흥부 집안은 흥부 혼자 일하느라 못 먹여살린다고 하는건지
그게 잘 모르겠음
(여자아이는 데릴사위로 미리 노동력을 데려오기까지 하는데..)
물론 현대로 오면 아이는 온전하게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고
노동력이 아니니까 이야기는 다르죠
아사직전의 아이들이 집에 있는데
다리 다친 제비 발견했으면
먹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왜 다리 고쳐주고 살려준거죠
실제로 중세 이후 유럽을 보면 장자가 가문을
잇기 때문에 차남 이하듵은 사제나 군인들이
많이 되었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벌어 먹을 수
있고 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이 귀족 가문을
새우거나 적어도 특권 계층으로는 남을 수
있었거든요
없는 집 서민들의 차남이하들은 주로 상인이나
기술 배우게 해서 자기 밥 벌이 정도는 하게 하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겨울왕국의 한스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