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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사랑없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89)

 


  11



 납득하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퍼즐을 거의 맞추고 피스가 하나 남았는데, 마지막 자리에 맞지 않았다. 이미 맞춰진 퍼즐들을 확인 해봐도 어색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게 더 문제였다. 모양과 그림의 색상까지 모두 잘 맞아 떨어지는데, 남은 하나의 피스와 남은 자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나답지 않게 남자답게, 또 솔직하게 민효정을 대하기로 결정했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긍정적인 요소는 진심을 보이는 것이라는 말을 믿기 보기로 했었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민효정과 나는 같이 저녁을 먹게 될 줄 알았다. 거기까지 완성되어 있었다. 마지막 피스만 놓으면 끝날 일이었는데, 민효정이 돌아서 가버렸다. 붙잡으려 했더니 뿌리치기까지 하는 민효정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송민아가 말했다.



 “과장님은 민효정을 좋아하는군요.”


 “뭐가 문제야?”


 “항상 민효정이 문제에요.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네요.”


 “무슨 소리냐? 알아듣게 말해”


 “얘기가 길어요.”



 담배를 꺼내 물려다가 주변에 지나는 행인들 때문에 그만뒀다. 대신 상준에게 말했다.



 “너 혼자 가서 미영 씨랑 만나도 되겠냐?”


 “아. 네. 뭐~ 상관없어요.”


 “미영 씨가 연상인가?”


 “아니요. 선배이긴 해도 저랑 동갑이요.”


 “잘됐네. 그~ 좀 전의 상황들은.........아니다. 어차피 이미 다 소문나고 있겠다.”



 망했다. 아까 회사에서의 상황을 비롯해서 좀 전의 거리에서까지 있었던 일들은, 내 솔직함이 만든 최악의 결과물이 되었다. 마지막 퍼즐을 놓지도 못했는데, 이미 기념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 격이다. 


 퍼즐을 부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송민아와 가까운 술집에 갈 생각을 했다가 접었다. 여긴 회사에서 가깝다. 또 누군가를 만나고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다. 택시를 잡아 송민아를 태우고 적당히 떨어진 번화가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적당한 술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대충 안주를 고르고 소주가 나오자마자 잔에 따라 마셨다. 송민아도 잔을 채워주자마자 마셨고, 그제야 입을 열었다. 



 “과장님은 민효정을 어쩌다 좋아하게 되셨죠?”


 “그건 왜?”


 “걔는 먼저 남자를 붙잡아 두고, 그냥 붙잡고만 있거든요. 과장님에게도 그러지 않았나요? 과장님이 다가가려고 하면 멀어지지 않았나요?”


 “몇몇 여자들이 애매한 남자들과 관계를 형성할 때, 흔히 그러지 않나?”


 “아뇨 달라요. 그냥 붙잡고만 있진 않잖아요. 민효정은 밀지도 당기지도 않아요. 그냥 붙잡고만 있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래. 그래서 민효정이 싫은 거야? 뭐 네가 좋아한 남자를 민효정이 붙잡고 있기라도 했어?”


 “민효정이 어떤 애인지 더 궁금하지 않아요?”


 “그런 얘기 들어서 뭐해. 네 생각일 뿐이잖아. 그냥 네가 민효정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얘기해봐. 



 송민아가 잔을 만지작거리기에 다시 채워줬더니, 단숨에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새 안주가 나왔지만, 우리는 안주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가끔 서로의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며 송민아가 이야기하고 나는 들었다.


 요약하자면 그런 얘기였다. 학창시절 송민아의 친한 친구였던 남자애가 민효정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 송민아는 남자친구가 있었단다. 송민아가 딱히 민효정을 싫어할만한 정당한 이유는 하나도 없었고, 단지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다른 여자친구가 생기는 꼴이 보기 싫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런 관계가 대학에 가서까지 이어졌단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봐도 송민아가 민효정을 증오할만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민효정에게 들은 이야기로 판단한 것도 아니고, 송민아에게 들은 이야기로 판단했다. 송민아가 이런저런 민효정의 눈빛이나 태도들을 설명했지만, 그런 말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낼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영업팀 과장 정도 되면, 남이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사실과 추측을 구분해 이해할 수준은 된다. 


 송민아는 그 소꿉친구라는 남자애를 좋아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송민아도 민효정과 똑같이 그 소꿉친구라는 남자애를 붙잡고만 있었다는 말이다. 


 빈 소주병이 네 개가 되었다. 송민아는 이제 억울해하고 있었다. 그 소꿉친구라는 남자애에게 민효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이 달라졌을 것이란다. 그야 당연히 그랬겠지.



 “그럼 넌 왜 당기거나 밀지 못했어?”


 “남자친구가 있었다니까요?”


 “.......남자친구가 있었던 네가 네 소꿉친구를 붙잡고 있었다는 이유로 민효정을 미워하는 거야?”


 “과장님은 여자를 몰라요.”


 “너는 남자를 아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잖아요. 이미 너무 늦었는데, 버스는 이미 출발했는데 타고 싶은 적 없어요? 어쩌면....... 택시라도 잡아타고 따라가서 탈 수도 있겠는데, 지금 서 있는 자리에 미련이 남는 그런 복잡한 마음을 몰라요?”


 “그 말은.......넌 네가 애쓰면 버스를 탈 수도.......아니다. 네가 하기에 따라서 그 남자애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잖아. 그럴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고, 버스를 세워두고 있었던 민효정을 싫어하는 거야?”


 “민효정 걔는 왜 버스를 세워두고 있었을까요?”


 “버스가 서 있었는지도 모르지.”



 내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는 없었다. 민효정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송민아의 유년기 추억 같은 이야기만 실컷 들었다. 내게는 너무 시시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물론 여자들이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남자들에게 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송민아는 너무 심했다. 이렇게 구멍이 듬성듬성 난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백설공주가 난쟁이들과 놀아나다 시체애호가 왕자님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고 하거나, 신데렐라가 발 페티쉬가 있는 왕자를 유혹했다고 하거나, 인어공주가 가슴만으로는 왕자를 유혹하기 어려워 인간이 되었다고만 이야기 해준다면, 누가 그녀들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지금 더 짜증나는 건, 송민아가 점점 취하고 있다.



 “제가 결혼했었다는 걸 알고 계시죠? 그 남자가 저를 너무나 사랑했거든요. 호주에서 만난 우리는 첫눈에 우리가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걔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민효정은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너는 왜 그러지 않았는데?”


 “호주에서 그는........제게 손을 내밀어줬어요. 전 잡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줬어요. 거짓이나 위선 없이 진실 된 사랑만 있었어요.”


 “그리고 이혼했지.”


 “사랑이 끝났으니까요. 충분하잖아요.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저도 민효정도....... 민효정이라도 그럴 수 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예요.”


 “거짓과 위선의 끝이었겠지. 진실이 드러나고 사랑이 끝났다고 믿고 싶었던 거겠지. 너나 민효정이나 그 소꿉친구라는 녀석은 모두가 거짓과 위선이 부족해서 사랑하지 못한 거야.”


 “.......그럼 과장님은 민효정을 거짓과 위선으로 대하는 건가요?”


 “내가 솔직하게 달려갔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좀 전에 봤잖아? 사람이 사람을 거짓과 위선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사랑하기도 어려운 거니까.”


 “바보 같네요. 거짓과 위선으로 대해야 사랑한다니요.”


 “진실은 거짓과 위선의 토대위에 만들어지는 거야. 다들 그 진실의 껍데기를 벗기고 싶지 않을 뿐이지. 난 이미 민효정에게 껍데기를 벗겨보였고 그걸로 실패한 거야. 조금 더 기다리며 거짓말과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운명처럼 꾸몄어야 하는 건데, 내가 그러질 못했다. 알겠냐? 너희들은 모두 솔직해서 그 모양이었던 거야! 호주에서 네가 만나 결혼했다는 그 남자는 온통 거짓말로 너를 속였던 거고!”


 “아뇨. 그 순간에는 그 모든 게 진실이었어요.”


 “웃기시네. 진실이 뭔지 가르쳐줘? 네가 지금 술을 마실 때마다 드러나는 목을 내가 핥고 싶다는 게 진실이야. 지금 네가 입고 있는 블라우스를 찢고 네 가슴을 쥐고 싶다는 사실이 진실이라고. 내가 변태인 것 같아? 나만 그럴 거 같아? 우리 팀의 박 대리나 상준이는 다를 거 같지? 아니야. 걔들도 너와 만날 때마다 네 가슴을 만지고 싶을 걸? 하지만 걔들은 그런 얘기를 절대로 너에게 할 수 없지. 네가 싫어할 걸 너무나도 잘 아니까.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네게 날씨 얘기나 관심 없는 어제 얘기를 떠드는 건 죄다 거짓말이야. 네가 만나는 모든 남자들은 네 가슴을 만지고 네 가랑이 사이를 관찰하고 싶다는 게 진실이야.”


 “정말 바보 같은 얘기네요.”


 “그래. 이런 진실이 가장 바보 같은 이유는, 너도 그런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지. 만난 남자들이 너와 자고 싶을 거라는 걸 너도 알고 있지만, 교양 있는 척 하느라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무시하는 쪽을 선택해. 진실은 불편하니까!”


 “솔직해져 본 적이 있긴 해요?”


 “하~ 송민아. 똘똘한 줄 알았더니, 진짜 말귀 못 알아먹는 구나? 아니,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진실이라는 걸 모르겠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요.”


 “너도 부서를 옮겨야겠지. 나와 민효정에 대한 소문을 잠재우려면 어쩔 수 없겠다. 이제 내 팀에 여직원을 넣어주지는 않을 거야. 난 아무나 건들고 다니는 인간이라는 소문이 나겠는데, 뭐 이미 그럴지도. 난 민효정에게 찝쩍거리고 동시에 너도 건든 거야. 그 쪽이 나아. 그래야 희망이라도 생기지. 민효정에게 까였다는 식으로 소문이 돌면 회복이 어려울 테니까.”


 “민효정과 말이죠?”


 “당연하지. 민효정이 나를 깠다는 소문이 나면 민효정과 내가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길 수 있겠냐? 이대로 영영 끝낼 수는 없어. 퍼즐을 다시 시작해야지.”


 “민효정을 정말 좋아하시는 군요. 민효정이 과장님을 싫어하는 이유가 뭐죠?”


 “자기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하더군.”


 “아~”


 “뭔가 아는 게 있어?”



 송민아는 대답대신 다시 술잔을 들어 마셨다. 술을 더 시키려는 걸 내가 막았다. 고민해야할 앞으로의 일들도 너무 많았고, 어쨌거나 아직 송민아는 내 팀원이다. 내일의 회사 일들도 걱정됐다.


 빈 술잔을 만지작거리던 송민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과장님은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면서 여자는 정말 모르시네요.”


 “나랑 잤던 많은 여자들에게 미안해지는군.”


 “여자를 알아야 잘 수 있는 건 아니겠죠.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은 감당해달라는 말이라는 걸 몰라요?”



 그랬을까? 모르겠다. 취한 송민아의 의견일 뿐이다. 안주도 많이 남아있는데 술을 더 시켜볼까? 아니, 난 이미 감당할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랬었나? 민효정의 마음을 가질 생각만 했지, 민효정을 감당할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송민아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났다. 나도 일어나 계산을 마치고 나와 담배를 물었다. 술기운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민효정에 대한 내 퍼즐들을 고민하는 와중에 송민아도 가게를 나왔다.


 담배를 끄고 가려는데, 송민아가 말했다.



 “그럼 이제. 전 부서를 옮겨야 하고~ 과장님이 건든 또 한명의 여직원이 되는 건가요?”


 “그렇겠지.”


 “억울하네요. 실제로 과장님이 절 어쩌진 않았는데 말이죠.”



 콧방귀가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난 여자들이 솔직해지는 순간들을 안다. 도대체 언제 왜 그러는지는 정말 모르겠는데, 솔직해지는 그 순간만큼은 정확히 알아챈다. 아니나 다를까 송민아가 말했다.



 “저 감당할 수 있겠어요?”



 망설이거나 후회하기 전에 가까운 모텔로 향했다.






 계속.


댓글
  • 노마왈라 2019/02/13 13:19

    개인적으로 민효정 & 송민아 얘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괜시리 눈물이 날 것만 같네요...ㅠㅠ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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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2/13 13:21

    노마왈라// 오늘도 자릴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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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살 2019/02/13 13:31

    오늘도 잼있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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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니유니31 2019/02/13 14:03

    함탁 시리즈도 11편이네요~
    차 과장이 부럽군요. ㅎㅎ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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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Justice 2019/02/13 14:26

    아 민효정이 그냥 가버렸네요 ㅠㅠ 민효정 대신 송민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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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존사념 2019/02/13 14:27

    어떻게 풀려나갈지 궁금하네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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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2/13 14:32

    무난하게 예상들 하신 방향으로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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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ronawa 2019/02/13 14:40

    네 차과장이 제일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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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란제리 2019/02/13 14:47

    진실이 불편하긴 하죠.. 그림동화들이 그 불편함을 미화시켜 지금 같은 형태로 만들었고, 애완견들이 사람에게 보기좋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근친교배를 통해 지금같이 보기좋게 만들었지만 그 이면에 불편함은 보기 싫은 것처럼... 마치 거울을 보면 제가 불편한 것처럼 ㅠ.
    사랑은 진실일까 위선일까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고맙습니다 ㅎ
    민아는 자신의 불행의 시발점이 민효정이라 생각해서 저러는 거 같네요.
    준호는 저리 쉬운데.. 성현이에겐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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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가 2019/02/13 15:03

    와 민아 무섭네요 저런 식으로 효정이를 멕이네요..
    수 년의 시간이 지나 민효정과 송민아가 공수교대하는 순간입니다 첫 리플인데 1화부터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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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2/13 17:09

    제게도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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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불러용 2019/02/13 19:51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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