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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9일간의 휴가가 막바지입니다.

 

40대의 마지막 해에 20년 만에 옮긴 직장에서 50살을 맞이하고 30살 때보다 더 바쁘게 일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월요일 새벽 2시가 넘도록 일하다 퇴근을 하고 주욱 쉬고 있습니다.

휴가가 9일이나 되었는데도 맘 편히 진짜 늘어지게 게으르게 딩굴거린 날이 채 하루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내내 직장에서 날아오는 카톡 진짜 짜증이 솟구치더군요.

사실 다 나 좋으라고 도와주는 이들에게 오는 카톡인데도 휴가 첫머리 한 사나흘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 카톡이 날아오니 정말 짜증이...

확실히 사람이 지치면 관대함이 사라지는 모양입니다.

어지간해서 직장에서 짜증 안 내는데 드디어 직장 사람에게 짜증도 내봤네요.

설날 전날 어머니랑도 전화로 한바탕을 하고,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자식이란 참 이기적인 존재인가 봅니다.




어머니랑은 잘 풀었고 오늘 애인양반이랑 같이 부모님댁 가서 떡 벌어지게 한상 얻어먹고 

온갖 음식 싸주셔서 들고 오고

거기에 기본 양념들(고추가루, 참기름, 국멸치 기타등등)을 알차게도 싸놨다가 차에 실어주시더군요.

그리고 요즘 제가 일에 지쳐 너무 힘들어서 답지않게 신경질적인 것 같다고,

아마도 갱년기 우울증도 겹쳤을 거라고,

어머니께서도 이 나잇대에 그러셨었다고,

힘 내라고 맛있는 것 사먹고 기분전환하고 취미생활도 하라고 기어이 백만원 든 봉투도 들려주십니다.

사실은 너 주려고 천만원 뽑아놨는데 네가 도저히 안 받을 것 같아서 백만원 주는 것이니 간만에 세뱃돈 후하게 받았다고 생각하고 넣어 두라고요.




생각해보니 어머니도 삼십여년 전에 갱년기셨을 텐데 저는 그 때 어머니에게 그리 잘하지 못했었던 것이 너무도 후회가 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호르몬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 그렇게 의지만으로 멋지게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그 때 왜 어머니에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만 미치도록 밀려옵니다.

팔순을 앞둔 어머니에게 받아 온 봉투를 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이 촉촉해집니다.

내년에 아버지 팔순이신데 이 봉투 열 배로 살찌워서 두 분께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이 새벽에 그리 하고 싶지 않은 회사일을 챙겨봅니다.

이 나이를 먹고도 부모를 걱정시키니 참 자식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님 앞에선 철부지가 되나 봅니다.

좀더 참고 힘을 내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행복하고 밝게 살아내며 부모님께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네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이런저런 소원을 빌게 되는데

요즘은 무조건 첫번째로 부모님 건강을 빌게 됩니다.

제가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은데 

저에겐 아직도 두 분의 그늘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새벽입니다.

백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 좋으신 두 분의 자식으로 태어났나 봅니다.



댓글
  • Vulnerable 2019/02/06 03:56

    새벽에 불펜 들어오자마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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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했으요~ 2019/02/06 03:57

    아... 제목 휴거로 잘못 봤으요;;; 게시판 시절이 히수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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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res 2019/02/06 03:57

    여느 부모님 같으셨다면 결혼에 대해 압박을 하셨을텐데 자식이 원하는 모습대로 인정 해 주신 자체가 대단 하신분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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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02/06 03:58

    Vulnerable// 푸념글에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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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02/06 03:58

    망했으요~// 덕분에 이렇게 님에게 댓글도 받고 좋지 않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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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02/06 03:58

    Torres// 어떻게 살건 너 행복한 게 우리에겐 제일이라고 늘 말씀해주시는 세상에서 젤로 멋진 부모님이세요.(팔불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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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했으요~ 2019/02/06 04:00

    좋은글 잘 읽었으요. 새해 원하는대로 다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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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02/06 04:01

    망했으요~// 님에게도 님의 가정에도 좋은 일만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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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우테키 2019/02/06 04:08

    요즘들어 많이 고생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베레타님도 부모님도 가족 분들도 그리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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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02/06 04:09

    로우테키// 덕담 고맙습니다.
    로우테키님도 님의 소중한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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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풍선빈 2019/02/06 04:11

    풍족한 수저를 물고 태어나게 해주는 누군가들의 부모님보다, 글 마디마디에도 애정이 넘쳐 흘러내리는듯한 글쓴분의 부모님이 더 멋지시네요.
    뜻 깊은 명절이 되신것같아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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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02/06 04:12

    폭풍선빈// 그 시절다운 보편적인 가난 속에서 자랐지만 언제나 저를 귀히 여겨주시고 존중해주신 부모님이신지라 제 수저가 최고의 금수저였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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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잡종 2019/02/06 07:18

    글쓴님도 부모님도 서로 아껴주시네요. 좋은 모습 감동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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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미유비단 2019/02/06 07:46

    감성 돋는 따뜻한 글 잘봤습니다
    새삼 저도 반성하게 되네요
    그래도 베레타님은 이미 충분히 효자인것 같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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