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는 그걸 교회가 하던 일임....
교회나 정부의 기능을 이정도로 계급에서 자처해서 나서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음...
프리프리딬2019/01/31 21:20
애초에 서양 귀족이랑 양반은 기본 전제가 달라서 비벼봐야 혼란만 생김
라이클란드 이단심문관2019/01/31 21:20
실제로 향약 안 지키는 놈 있으면 잡아다가 때려 줬자너
홀라르2019/01/31 21:23
그래도 대개 양반들은 땅을 갖고 소작농 굴리며 불로소득을 엄청 챙겼을거 아녀
소작농한테 받는 수확량은 병작반수제... 50%...
조선시대 건물주들이다
류티미르2019/01/31 21:38
노비를 함부러 죽이면 진사직 같은 건 박탈당하고 관아에서 곤장도 맞음.
기생은 뿅뿅같은 직책이 아니라 고급 마담 같은 계열이엇고.
조선 말기에 양란 이후 썩어가면서 보인 걸 일반화하먄 안 됨.
Lipins78092019/01/31 21:19
본래 제사는 형편대로 하면 되는데, 나중에는 변질되어 되게 까다롭게 됐지.
PEKETO와 사과빌런2019/01/31 21:19
뭐? 커미사르?
라이클란드 이단심문관2019/01/31 21:20
실제로 향약 안 지키는 놈 있으면 잡아다가 때려 줬자너
앸시스2019/01/31 21:21
굳이 압제자 이미지를 넣으려면 말이지...
루리웹-73707466582019/01/31 21:37
E
PEKETO와 사과빌런2019/01/31 21:38
탕
퍼페토2019/01/31 21:19
드레스 코드의 민족이었나
루리웹-7970805892019/01/31 21:20
오히려 양반들은 정보 얻으려는 목적도 있고 여러가지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방에 묵으려하면 왠만하면 받아준다며.
앸시스2019/01/31 21:21
서구에서는 그걸 교회가 하던 일임....
교회나 정부의 기능을 이정도로 계급에서 자처해서 나서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음...
루리웹-7970805892019/01/31 21:22
하지만 선비란 단어 자체가 엣헴만 해대는 수구꼴통꼰대 이미지가 되버리고 조선시대 자체가 폄하당하면서 ㄹㅇ 불쌍해짐.
빅 싸드맨2019/01/31 21:40
그거 한 90%는 일베발 이미지 아닌가
루리웹-7970805892019/01/31 21:41
일베발 이미지긴 한데 별로 조선, 선비 하면 좋은 소릴 못들음. 당장 나이 먹은 아저씨들만해도 조선은 당쟁때문에 썩어서 블라블라블라 양반들이 못해서 블라블라블라임.
루리웹-40071014102019/01/31 21:46
당쟁 자체가 쓰래기인건 아닌데.
그 시대에 정치문화 탑급일텐데
루리웹-7970805892019/01/31 21:47
그냥 그 당시에 교육을 그렇게 받은 것도 있고 진짜 역사가 좋아서 제대로 논문 읽고 그러는 사람 아닌 이상 피드백 안되서 어쩔수가 없음.
홍도2019/01/31 21:20
왕부터가 검소했으니까.
프리프리딬2019/01/31 21:20
애초에 서양 귀족이랑 양반은 기본 전제가 달라서 비벼봐야 혼란만 생김
앸시스2019/01/31 21:23
양반이 나쁘다는걸 말하고 있는데 묘사나 사고방식이 사무라이인 한국 미디어도 은근 많음....
대표적으로 노비를 막 죽이는 묘사 같은거...
프리프리딬2019/01/31 21:24
노비도 사실 보면 관아 찾아가서 고발도 하고 장난 아니지
호중천2019/01/31 21:25
우리나라 사극은 일제 영향이 너무 많이 겼들어져 있음... 또 사람들이 포악해져서 그런걸 재미있고 오락거리로 느낌.. 만약 진짜 조선의 진정한 양반을 대려다 놓은듯한 연출을 하면 씹곤대 노잼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 캐캐묵은거 듣가가 잠올걸
HHHHHHHB2019/01/31 21:40
요즘 사람들이 포악해진거 같진 않은데.우리나라 60~80년대 보면 ㅋㅋㅋ 어메이징이던데 정말.
호중천2019/01/31 21:22
근데 조선 중기까지 양반들은 옷에 금테두리 하고 다졌다가 후반에 그거 없앴다고 하던데 금사실...짜주는 기계
앸시스2019/01/31 21:24
복식규정이 빡센거지 디자인이나 소재 문제가 아니니까...
반대로 갓 소재인 말총도 엄청나게 비싸고 귀한 소재인데 어떻게든 지켜야 했음....
덧붙여서 금실은 정 1품부터 3품까지는 신발에 강제되었음.
호중천2019/01/31 21:23
흰옷 말고 다양한 색상 옷 입는게 가능했는데 흰옷이 하늘의 자손 색상이라고 해서 바꾸 정책이 실패함...
홀라르2019/01/31 21:23
그래도 대개 양반들은 땅을 갖고 소작농 굴리며 불로소득을 엄청 챙겼을거 아녀
소작농한테 받는 수확량은 병작반수제... 50%...
조선시대 건물주들이다
프리프리딬2019/01/31 21:26
그것도 세도가나 어디 지방 명문은 되야했지쩌리 양반들도 땅 뺐기고 소작농 했음
앸시스2019/01/31 21:26
그건 지방마다 달라서... 애초에 양반이라고 다 땅있는것도 아니고...
그리고 중세나 전근대에서는 기본적으로 봉건제라.... 조선은 봉건국가가 아니라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타국 귀족계층은 애초에 봉지 내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는데...
호중천2019/01/31 21:27
소작농은 일제가 만든거고 병작농임... 양반의 밭일을 해주면서 서로 반땅해서 나눠먹는...노동법을 제대로 이행한 유교적 풍습이였지
류티미르2019/01/31 21:41
참고로 병작반수제도 조선 초기엔 없었음. 모든 땅이 나라땅이었거든.
세조 때 공신들 땅 나눠주면서 땅이 왕의 것이 아니라 매물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서서히 변한 거임
붉은양2019/01/31 21:49
뭔소리냐 양반은 경제 계급이 아니다.
지온NT병사2019/01/31 21:54
그런걸 일반화라고 하지 모든양반들이 경주최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리대금업자에 노비양산공장도 아님
거기까지 갔다면 사회기능이 마비되고 나라가 없어졌겠지
환타를마시는새2019/01/31 21:35
오히려 흰옷이 비싼옷이라 들었는디
샤아Waaagh팝콘팔이2019/01/31 21:36
돌쇠야...e리좀와 보거라
약쟁이_맥켄리2019/01/31 21:36
흰옷 비싸
마고님2019/01/31 21:36
저딴 건 졸리 딱딱 지키지만, 노비를 함부로 굴리고 죽이고, 기생들은 쳐 끼고 살았지.
류티미르2019/01/31 21:38
노비를 함부러 죽이면 진사직 같은 건 박탈당하고 관아에서 곤장도 맞음.
기생은 뿅뿅같은 직책이 아니라 고급 마담 같은 계열이엇고.
조선 말기에 양란 이후 썩어가면서 보인 걸 일반화하먄 안 됨.
류티미르2019/01/31 21:42
참고로 성문 밖 천민의 다리를 자른 게 누구냐고 임금이 조회에서 의금부 갈궈가며 보고하라고 하는 게 승정원일기에도 적혀 있음. 양반이 양민 때리면 바로 관직 등위 내려가고 그러는 것도 다 기록에 있음. 누구나 고발만 하면 바로 엿되는 게 양란 전 조선이고 영정조 때 조선임
마고님2019/01/31 21:44
조선초기 최대의 스캔들인 황희가 연관된 사건을 보면, 살인사건 은폐, 불륜, 뇌물, 인맥의 폐해(황희, 맹사성 당대의 고관이 작당)등등 모든 걸 다 담고 있음. 이 스캔들조차도 중간에 짬될 것을 왕이 세종이라서 파헤쳐진 것이죠. 입으로는 공자니 맹자니 줄줄 떠들고 다녔지만 당대의 사대부들도 똑같이 권력자들이 누리는 권세를 누리면서 백성들 억압한 건 같습니다.
프리프리딬2019/01/31 21:44
그게 전형적인 미디어 왜곡인데여
아시아축구멸망2019/01/31 21:45
사람이 죽으면 조정에까지도 보고가 올라갔으니
앸시스2019/01/31 21:46
그게 당연한거면 왜 스캔들이 터졌겠니...
지금 승리 뿅뿅이라던가 경찰 유착같은거도 80년대 같으면 안터져....
류티미르2019/01/31 21:47
세종 태종이 내내 한 게 그런 걸 고발하고 양지로 이끌어내는 걸 제도화시킨 거였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조 이후에도 한동안은 그런 대형 스캔들이 커지기 전에 잡혀가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서원 제도가 특정 가문의 축재 수단으로 변질되는 중기 이후에서야 관측되는 점이죠
마고님2019/01/31 21:50
지방관리(?)를 죽이고도 왜 그걸 큰 죄라 생각치 않고 인맥 동원해서 막으려고 했겠어요? 평상시에는 가능하니까 벌인 거죠. 하지만 왕이 킹세종이고, 워낙에 황희를 아꼈는 지라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간거죠. 킹세종이 아니였으면 애초에 들키지도 않았을 사건입니다.
HopelessGene2019/01/31 21:51
그 황희 스캔들이 사실이었다 해도, 그 사건을 덮으려고 고관 대작까지 나서서 노력했음
근데 중근세 유럽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웃고 넘길 일임. 이게 사회 분위기의 차이.
무명인생2019/01/31 21:56
큰 죄라 생각하니까 인맥 동원해서 막으려 한 거 아닐까
지온NT병사2019/01/31 21:57
자 노비제도가 있다는건 사회질서가 유지된다는 반증이야
니가 말하는데로 노비 함부러 죽이고 기생끼고 놀면 노비들이 그냥 죽겠냐
그리고 일반 양민들도 구경만 하고 있겠냐고
마고님2019/01/31 21:57
갑자기 뭔 조선시대 사대부들한테 무슨 자부심들을 느끼시고 제 댓글에 대댓글을 다시는 지 모르지만, 이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일이예요. 도덕론자(?) 수비수(?)들의 딜레마죠. 한사건(한골)만 밝혀져도 앞에서 했던 수많은 포장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제가 여기서 잠깐만 찾아도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비도덕적인 작태 수도없이 긁어올 수 있습니다. 의미없는 일에 시간 낭비 서로 마시죠. 애초에 언제부터 우리가 서양 귀족 계층이랑 양반애들 비교하면서 살았다고 비교우위에 만족들을 하고 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류티미르2019/01/31 21:38
흰옷은 잘못된 내용임.
이건 다른 색 옷 입으라고 통사정을해도 원래 누런 삼베옷마저 희게 만들어서 입고 다니며 흴수록 고급이라고 치던 것도 있다
분위기전환빌런2019/01/31 21:45
잘못됬다기 보다는 처음에는 그러한 흰옷이 예절이라고 위에서부터 가르쳤는데
그러한 선비들의 가르침이 백성들에게 너무 오랫동안 박혀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탓에
사정이 바껴서 그러한 의복 관례를 바뀌려고 해도 서민들도 반발하게 된게 아닐까.
류티미르2019/01/31 21:46
뭐 그렇게 보면 아예 틀린 이야긴 아닌데, 흰 옷에 대한 서민들의 집착은 고려 말기까지 올라가는 걸로 봐서 다른 기원을 주당하는 학자들까지 있음. 흰 옷이 결백함의 상징이란 건 중국의 백이 숙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라....
분위기전환빌런2019/01/31 21:49
목화로 만든 면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흰옷이 많이 보이게 됬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음
그런 집착이 고려 말기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들어 봤네,
류티미르2019/01/31 21:51
사실 고려 의복은 화랴하고 조선부터 변했다가 정설인데, 일부 지역 이야기와 고려 후기 무덤 발굴로 제시된 새 학설 중 하나긴 해요. 아직 정설은 아님
앸시스2019/01/31 21:53
선호랑 규제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일본 막부시절 보면 땡땡이 옷이나 줄무니 옷 같은게 상류 계층에서 등장함....
해외산 수입제 옷이라던가....
사치에 한계가 없음....
근데 조선은 그런 패션은 요사스러워서 못함...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깔끔하고 단정하면서 멋 부릴수 있는 수단은 정말 한정되거든....
디자인보다는 명품질인거지.
앸시스2019/01/31 21:57
만약 고려조때 처럼 사치에 대한 한계가 없었으면
양반 계층의 착취도 심했을것고 그에 비례해서 흰옷 말고 다양한 사치스럽고 화려한 복식이 등장했겠지.
더도말고 덜도말고 고려시대나 일본, 중국처럼 말이지.
갠적으로는 조선시대 흰옷이나
지금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무채색 차 타고다니는거랑 정서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봄.
앸시스2019/01/31 21:57
덧붙이자면 딱히 검은차라고 해서 그게 싼차가 아니란건 알잖아.
가르시아목2019/01/31 21:38
역활아님 역할임
원자행2019/01/31 21:38
근데 조정에서는 흰 옷 입지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류티미르2019/01/31 21:40
흰 옷 유지에 어마어마한 돈을 써 댔거든. 희지 않은 천도 희게 만들겠다고 빨래를 종일 하고 횟가루 돌가루 발라서라도 희게 하려고 하니가 그런 데 낭비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게 패션이라 위고 아래고 다 그러고 살음...
루리웹-40071014102019/01/31 21:39
저기; 흰옷이 검은옷 이런것처럼 만들기 어렵지않음? 절약하려고 좀 간단한염색옷 입으라한거같은데
루리웹-40071014102019/01/31 21:40
펌이 아닌걸보니 뇌피셜범벅인건가..
분위기전환빌런2019/01/31 21:47
이것도 뇌피셜이지만은
오랫동안 위에서 백성들에게 전파한 미덕이 변질된채로 고정관념이 된게 아닐까 싶음
꾸미지 않고 화려한 색을 쓰지 않은 검소한 옷이 미덕
-> 수수한 흰색으로 염색한 옷을 입는것이 미덕. 이렇게
루리웹-4107592552019/01/31 21:45
근데 흰옷은 검소한게 아닐텐데??.. 흰색도 염색을 해야 나오는 색이고 때가 잘타서 세탁 유지비 장난아니게 들고.. 조선시대 왕들도 흰옷좀 입고다니지말라고 고치려고 노력했음.. 절대 검소한 흰색이 아니야
분위기전환빌런2019/01/31 21:57
흰옷이 정말 검소한 옷인가 보다는.
검소한 옷 = 화려하지 않은 색 = 흰색 옷 이라는
검소함으로 출발한 미덕이 왜곡되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듬.
유학이나 도학에서 출발했을 '의리'라는 말을
조폭, 야쿠자 같은 애들이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사용하는것 처럼 말이야
앸시스2019/01/31 21:58
백자도 싸진 않아.
정족수2019/01/31 21:46
흰옷은 비싼가격을 가졌음
조선시대때 사치에 대해 논한적 이 있었음(조선시대가 상인을 억압했네 하지만 조선후기 임난 극복과정에서
상업을 국가주도로 할것인가(공무역) 상업을 민간에 위탁할것이냐(사무역)를 두고 상업 방향을 설정하다가. 그냥 둘다 하자로 결정남
그래서 민간의 부가 증가해서 나중엔
"천민들도 흰옷을 즐겨입으니 사치가 극에 달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정도가 됨
류티미르2019/01/31 21:50
조선 중기에 가면 하루에 저자에서 죽는 소와 돼지와 개의 통계까지 정기적으로 보고가 되고, 상업조합 별로 회원할인과 신용결제와 통신판매까지 등장하는 등 별 신기한 게 다 나오죠. 조선이 망한 뒤에도 한동안 유지된 주막 네트워크도 그 일부고요.
그 과정에서 특정 상인집단의 독점/과점 이득을 디스한 게 그 유명한 허생전이죠
로리섹돌왕국2019/01/31 21:46
양반전 내용이 그런 내용이었지...
도마도마이쩡2019/01/31 21:47
참고로 증자가 죽기 직전에 침대 바꾼건 스스로 안게 아니라 제자 중 하나가 지적질해서 알게된거. 다른 제자들이 그 제자 눈총주면서 곧 돌아가실 스승님께 이정도도 못해주냐 이 눈치없는 새X야 이런식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공자에게 둔하다고 욕먹었지만 지독한 노력가이자 스스로 잘못을 고치는 걸로 유명하던 증자는 "허거걱! 그걸 몰랐네! 엣큥!"하면서 침대 옮기라고 하고 옮겨지던 와중에 돌아감....
도마도마이쩡2019/01/31 21:48
허거걱! 부분은 진짜로 허거걱 맞음. 원문에도 한자로 그리 써져있음 "엌!"정도..
혹등고래 2019/01/31 21:49
(양반 이미지가 귀족 압제자 이미지인건
서구나 일본 영향이 크다...
양반은 압제자라 해도 성직자계열이나 커미사르 느낌에 가까움.)
ㅋㅋㅋ.. 웃으라고 쓴거지?
서구에서는 그걸 교회가 하던 일임....
교회나 정부의 기능을 이정도로 계급에서 자처해서 나서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음...
애초에 서양 귀족이랑 양반은 기본 전제가 달라서 비벼봐야 혼란만 생김
실제로 향약 안 지키는 놈 있으면 잡아다가 때려 줬자너
그래도 대개 양반들은 땅을 갖고 소작농 굴리며 불로소득을 엄청 챙겼을거 아녀
소작농한테 받는 수확량은 병작반수제... 50%...
조선시대 건물주들이다
노비를 함부러 죽이면 진사직 같은 건 박탈당하고 관아에서 곤장도 맞음.
기생은 뿅뿅같은 직책이 아니라 고급 마담 같은 계열이엇고.
조선 말기에 양란 이후 썩어가면서 보인 걸 일반화하먄 안 됨.
본래 제사는 형편대로 하면 되는데, 나중에는 변질되어 되게 까다롭게 됐지.
뭐? 커미사르?
실제로 향약 안 지키는 놈 있으면 잡아다가 때려 줬자너
굳이 압제자 이미지를 넣으려면 말이지...
E
탕
드레스 코드의 민족이었나
오히려 양반들은 정보 얻으려는 목적도 있고 여러가지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방에 묵으려하면 왠만하면 받아준다며.
서구에서는 그걸 교회가 하던 일임....
교회나 정부의 기능을 이정도로 계급에서 자처해서 나서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음...
하지만 선비란 단어 자체가 엣헴만 해대는 수구꼴통꼰대 이미지가 되버리고 조선시대 자체가 폄하당하면서 ㄹㅇ 불쌍해짐.
그거 한 90%는 일베발 이미지 아닌가
일베발 이미지긴 한데 별로 조선, 선비 하면 좋은 소릴 못들음. 당장 나이 먹은 아저씨들만해도 조선은 당쟁때문에 썩어서 블라블라블라 양반들이 못해서 블라블라블라임.
당쟁 자체가 쓰래기인건 아닌데.
그 시대에 정치문화 탑급일텐데
그냥 그 당시에 교육을 그렇게 받은 것도 있고 진짜 역사가 좋아서 제대로 논문 읽고 그러는 사람 아닌 이상 피드백 안되서 어쩔수가 없음.
왕부터가 검소했으니까.
애초에 서양 귀족이랑 양반은 기본 전제가 달라서 비벼봐야 혼란만 생김
양반이 나쁘다는걸 말하고 있는데 묘사나 사고방식이 사무라이인 한국 미디어도 은근 많음....
대표적으로 노비를 막 죽이는 묘사 같은거...
노비도 사실 보면 관아 찾아가서 고발도 하고 장난 아니지
우리나라 사극은 일제 영향이 너무 많이 겼들어져 있음... 또 사람들이 포악해져서 그런걸 재미있고 오락거리로 느낌.. 만약 진짜 조선의 진정한 양반을 대려다 놓은듯한 연출을 하면 씹곤대 노잼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 캐캐묵은거 듣가가 잠올걸
요즘 사람들이 포악해진거 같진 않은데.우리나라 60~80년대 보면 ㅋㅋㅋ 어메이징이던데 정말.
근데 조선 중기까지 양반들은 옷에 금테두리 하고 다졌다가 후반에 그거 없앴다고 하던데 금사실...짜주는 기계
복식규정이 빡센거지 디자인이나 소재 문제가 아니니까...
반대로 갓 소재인 말총도 엄청나게 비싸고 귀한 소재인데 어떻게든 지켜야 했음....
덧붙여서 금실은 정 1품부터 3품까지는 신발에 강제되었음.
흰옷 말고 다양한 색상 옷 입는게 가능했는데 흰옷이 하늘의 자손 색상이라고 해서 바꾸 정책이 실패함...
그래도 대개 양반들은 땅을 갖고 소작농 굴리며 불로소득을 엄청 챙겼을거 아녀
소작농한테 받는 수확량은 병작반수제... 50%...
조선시대 건물주들이다
그것도 세도가나 어디 지방 명문은 되야했지쩌리 양반들도 땅 뺐기고 소작농 했음
그건 지방마다 달라서... 애초에 양반이라고 다 땅있는것도 아니고...
그리고 중세나 전근대에서는 기본적으로 봉건제라.... 조선은 봉건국가가 아니라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타국 귀족계층은 애초에 봉지 내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는데...
소작농은 일제가 만든거고 병작농임... 양반의 밭일을 해주면서 서로 반땅해서 나눠먹는...노동법을 제대로 이행한 유교적 풍습이였지
참고로 병작반수제도 조선 초기엔 없었음. 모든 땅이 나라땅이었거든.
세조 때 공신들 땅 나눠주면서 땅이 왕의 것이 아니라 매물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서서히 변한 거임
뭔소리냐 양반은 경제 계급이 아니다.
그런걸 일반화라고 하지 모든양반들이 경주최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리대금업자에 노비양산공장도 아님
거기까지 갔다면 사회기능이 마비되고 나라가 없어졌겠지
오히려 흰옷이 비싼옷이라 들었는디
돌쇠야...e리좀와 보거라
흰옷 비싸
저딴 건 졸리 딱딱 지키지만, 노비를 함부로 굴리고 죽이고, 기생들은 쳐 끼고 살았지.
노비를 함부러 죽이면 진사직 같은 건 박탈당하고 관아에서 곤장도 맞음.
기생은 뿅뿅같은 직책이 아니라 고급 마담 같은 계열이엇고.
조선 말기에 양란 이후 썩어가면서 보인 걸 일반화하먄 안 됨.
참고로 성문 밖 천민의 다리를 자른 게 누구냐고 임금이 조회에서 의금부 갈궈가며 보고하라고 하는 게 승정원일기에도 적혀 있음. 양반이 양민 때리면 바로 관직 등위 내려가고 그러는 것도 다 기록에 있음. 누구나 고발만 하면 바로 엿되는 게 양란 전 조선이고 영정조 때 조선임
조선초기 최대의 스캔들인 황희가 연관된 사건을 보면, 살인사건 은폐, 불륜, 뇌물, 인맥의 폐해(황희, 맹사성 당대의 고관이 작당)등등 모든 걸 다 담고 있음. 이 스캔들조차도 중간에 짬될 것을 왕이 세종이라서 파헤쳐진 것이죠. 입으로는 공자니 맹자니 줄줄 떠들고 다녔지만 당대의 사대부들도 똑같이 권력자들이 누리는 권세를 누리면서 백성들 억압한 건 같습니다.
그게 전형적인 미디어 왜곡인데여
사람이 죽으면 조정에까지도 보고가 올라갔으니
그게 당연한거면 왜 스캔들이 터졌겠니...
지금 승리 뿅뿅이라던가 경찰 유착같은거도 80년대 같으면 안터져....
세종 태종이 내내 한 게 그런 걸 고발하고 양지로 이끌어내는 걸 제도화시킨 거였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조 이후에도 한동안은 그런 대형 스캔들이 커지기 전에 잡혀가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서원 제도가 특정 가문의 축재 수단으로 변질되는 중기 이후에서야 관측되는 점이죠
지방관리(?)를 죽이고도 왜 그걸 큰 죄라 생각치 않고 인맥 동원해서 막으려고 했겠어요? 평상시에는 가능하니까 벌인 거죠. 하지만 왕이 킹세종이고, 워낙에 황희를 아꼈는 지라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간거죠. 킹세종이 아니였으면 애초에 들키지도 않았을 사건입니다.
그 황희 스캔들이 사실이었다 해도, 그 사건을 덮으려고 고관 대작까지 나서서 노력했음
근데 중근세 유럽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웃고 넘길 일임. 이게 사회 분위기의 차이.
큰 죄라 생각하니까 인맥 동원해서 막으려 한 거 아닐까
자 노비제도가 있다는건 사회질서가 유지된다는 반증이야
니가 말하는데로 노비 함부러 죽이고 기생끼고 놀면 노비들이 그냥 죽겠냐
그리고 일반 양민들도 구경만 하고 있겠냐고
갑자기 뭔 조선시대 사대부들한테 무슨 자부심들을 느끼시고 제 댓글에 대댓글을 다시는 지 모르지만, 이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일이예요. 도덕론자(?) 수비수(?)들의 딜레마죠. 한사건(한골)만 밝혀져도 앞에서 했던 수많은 포장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제가 여기서 잠깐만 찾아도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비도덕적인 작태 수도없이 긁어올 수 있습니다. 의미없는 일에 시간 낭비 서로 마시죠. 애초에 언제부터 우리가 서양 귀족 계층이랑 양반애들 비교하면서 살았다고 비교우위에 만족들을 하고 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흰옷은 잘못된 내용임.
이건 다른 색 옷 입으라고 통사정을해도 원래 누런 삼베옷마저 희게 만들어서 입고 다니며 흴수록 고급이라고 치던 것도 있다
잘못됬다기 보다는 처음에는 그러한 흰옷이 예절이라고 위에서부터 가르쳤는데
그러한 선비들의 가르침이 백성들에게 너무 오랫동안 박혀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탓에
사정이 바껴서 그러한 의복 관례를 바뀌려고 해도 서민들도 반발하게 된게 아닐까.
뭐 그렇게 보면 아예 틀린 이야긴 아닌데, 흰 옷에 대한 서민들의 집착은 고려 말기까지 올라가는 걸로 봐서 다른 기원을 주당하는 학자들까지 있음. 흰 옷이 결백함의 상징이란 건 중국의 백이 숙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라....
목화로 만든 면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흰옷이 많이 보이게 됬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음
그런 집착이 고려 말기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들어 봤네,
사실 고려 의복은 화랴하고 조선부터 변했다가 정설인데, 일부 지역 이야기와 고려 후기 무덤 발굴로 제시된 새 학설 중 하나긴 해요. 아직 정설은 아님
선호랑 규제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일본 막부시절 보면 땡땡이 옷이나 줄무니 옷 같은게 상류 계층에서 등장함....
해외산 수입제 옷이라던가....
사치에 한계가 없음....
근데 조선은 그런 패션은 요사스러워서 못함...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깔끔하고 단정하면서 멋 부릴수 있는 수단은 정말 한정되거든....
디자인보다는 명품질인거지.
만약 고려조때 처럼 사치에 대한 한계가 없었으면
양반 계층의 착취도 심했을것고 그에 비례해서 흰옷 말고 다양한 사치스럽고 화려한 복식이 등장했겠지.
더도말고 덜도말고 고려시대나 일본, 중국처럼 말이지.
갠적으로는 조선시대 흰옷이나
지금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무채색 차 타고다니는거랑 정서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봄.
덧붙이자면 딱히 검은차라고 해서 그게 싼차가 아니란건 알잖아.
역활아님 역할임
근데 조정에서는 흰 옷 입지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흰 옷 유지에 어마어마한 돈을 써 댔거든. 희지 않은 천도 희게 만들겠다고 빨래를 종일 하고 횟가루 돌가루 발라서라도 희게 하려고 하니가 그런 데 낭비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게 패션이라 위고 아래고 다 그러고 살음...
저기; 흰옷이 검은옷 이런것처럼 만들기 어렵지않음? 절약하려고 좀 간단한염색옷 입으라한거같은데
펌이 아닌걸보니 뇌피셜범벅인건가..
이것도 뇌피셜이지만은
오랫동안 위에서 백성들에게 전파한 미덕이 변질된채로 고정관념이 된게 아닐까 싶음
꾸미지 않고 화려한 색을 쓰지 않은 검소한 옷이 미덕
-> 수수한 흰색으로 염색한 옷을 입는것이 미덕. 이렇게
근데 흰옷은 검소한게 아닐텐데??.. 흰색도 염색을 해야 나오는 색이고 때가 잘타서 세탁 유지비 장난아니게 들고.. 조선시대 왕들도 흰옷좀 입고다니지말라고 고치려고 노력했음.. 절대 검소한 흰색이 아니야
흰옷이 정말 검소한 옷인가 보다는.
검소한 옷 = 화려하지 않은 색 = 흰색 옷 이라는
검소함으로 출발한 미덕이 왜곡되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듬.
유학이나 도학에서 출발했을 '의리'라는 말을
조폭, 야쿠자 같은 애들이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사용하는것 처럼 말이야
백자도 싸진 않아.
흰옷은 비싼가격을 가졌음
조선시대때 사치에 대해 논한적 이 있었음(조선시대가 상인을 억압했네 하지만 조선후기 임난 극복과정에서
상업을 국가주도로 할것인가(공무역) 상업을 민간에 위탁할것이냐(사무역)를 두고 상업 방향을 설정하다가. 그냥 둘다 하자로 결정남
그래서 민간의 부가 증가해서 나중엔
"천민들도 흰옷을 즐겨입으니 사치가 극에 달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정도가 됨
조선 중기에 가면 하루에 저자에서 죽는 소와 돼지와 개의 통계까지 정기적으로 보고가 되고, 상업조합 별로 회원할인과 신용결제와 통신판매까지 등장하는 등 별 신기한 게 다 나오죠. 조선이 망한 뒤에도 한동안 유지된 주막 네트워크도 그 일부고요.
그 과정에서 특정 상인집단의 독점/과점 이득을 디스한 게 그 유명한 허생전이죠
양반전 내용이 그런 내용이었지...
참고로 증자가 죽기 직전에 침대 바꾼건 스스로 안게 아니라 제자 중 하나가 지적질해서 알게된거. 다른 제자들이 그 제자 눈총주면서 곧 돌아가실 스승님께 이정도도 못해주냐 이 눈치없는 새X야 이런식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공자에게 둔하다고 욕먹었지만 지독한 노력가이자 스스로 잘못을 고치는 걸로 유명하던 증자는 "허거걱! 그걸 몰랐네! 엣큥!"하면서 침대 옮기라고 하고 옮겨지던 와중에 돌아감....
허거걱! 부분은 진짜로 허거걱 맞음. 원문에도 한자로 그리 써져있음 "엌!"정도..
(양반 이미지가 귀족 압제자 이미지인건
서구나 일본 영향이 크다...
양반은 압제자라 해도 성직자계열이나 커미사르 느낌에 가까움.)
ㅋㅋㅋ.. 웃으라고 쓴거지?
아니 이런 선비들께서 귀걸이에는 어찌 집한채씩 투자해서 사치를 부리고 그러셨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