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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명량 해전에서 이긴 이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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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인가..시대를 앞서나가는 해전...
항모전단..
XX : 해전하는데 비행기 쓰는거 반칙아니냐?
??? : 세트메뉴 이옵니다.
음
뭐래냐 ????
인성부리지말고 과학승리나 해라
잠수함 도 몇 척 따라다닐텐데
나라끌고 다니네
문명했나?
하지만 조선은 석유가 나지 않아서...
전략자원 패널티받아서 전투력 반되도 그깟 나무배쯤이야!
역덕 + 전쟁덕 님들께 질문좀 드리겠습니다.
이순신은 당시 해전에 쓰이지 않던 신개념 전술을 많이 썼다던데요.
예컨대 일본수군이 조총들고 가까이 붙어서 근접 사격 + 백병전을 주로 했었다면,
이순신은 주로 거리두고 함포 사격을 했었다더라구요.
그렇다는 건,
일본은 함포전이 불가능했는데 조선 수군은 함포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그렇다는 건 그만큼 함포 기술력에서는 일본수군보다 앞섰다는 것이잖아요.
(물론 본문처럼 비약적인 차이는 아니었을테지만요)
이순신은
그런 기술력의 격차를 최대한 이용하는 전술을 꾸려서
모든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었다는 건데...
다른 장수들 (예컨대 원균) 이 대가리가 빠그라지지 않는 이상
당연히 함포전을 이용하려 했을 텐데,
원균은 왜 일본군한테 압도적으로 찌발리고,
이순신은 어떻게 일본군한테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
참 이해가 안됩니다.
다른 장수들이 일본군한테 연전 연패 한 것을 보면,
오히려 수군 기술력에서 일본군과 거의 동등했거나 살짝 앞섰을 뿐이었다는 얘긴데.,
이순신만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기술적 근거가 대체 뭘까요?
기술력 차이 같은건 다 갖다버리고,
오직 이순신 개인의 능력이 사기였던 걸까요?
공감 01. 함포전 조선 수군의 함포가 개사기였고, 이순신은 그걸 잘 활용했다.
==>
조선수군 함포 능력치가 시즈 탱크 공3업 수준인데,
그걸 이용하지 못한 다른 장수들이 개 병신 이었다.
고로 이순신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라는 결론이 도출됨.
==>
근데 이순신 빼고 모든 장수가 평균 이하 모질이였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됨...
2. 함포전이 유리하긴 하나 오늘날 같은 대단한 위력도 없었고,
함포 하나만 믿고 부딪히기에는 일본군의 물량이 너무 많았다.
물량 + 화력전에서 조선이 지는게 당연했고, 걍 이순신이 대단한거임.
즉, 원래는 조선수군이 불리하지만 이순신이 개사기임.
==>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에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의 인명 피해가 너무 적음.
매번 사상자 0에 가까운 압도적인 기록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던데...
그게 가능하려면 역시 조선의 함포가 사기였다고 밖에 해석이 불가능함.
==>
그렇다면 다시 1번의 선택지로 돌아감 ㅠㅠ
일단 몇가지만 답해 드린다면.
이순신 장군님의 전투 스타일이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길수 있는 전투를 수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탐사와 첩보를 통해서 적의 위치. 아군에게 유리한 지형의 파악. 시간과 계절에 의한 기상 및 해류의 변동등을 잘 파악하셔서 적을 유인 + 기습을 통한 섬멸작전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전투를 수행하셨습니다.
이는 기존의 일본군(정확하게 왜구들)이 써먹는 방법이지요.
일본의 함선은 빠른 속도와 대양항해가 가능한 빠른 소형함 위주의 함선들 입니다. 즉 적들에게 기습을 가하여 빠른 백병전을 유도 적을 공격하는 타입이지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이러한 일본의 전략을 역으로 일본군에게 써먹었습니다. 물론 백병전이 아닌 원거리 포격이지만. 전투 자체는 기습이었습니다. 또한 적들의 불리한점. 일본군의 배가 판옥선에 비해서 깊게 가라앉기 때문에 수심이 낮은 지역에서는 항해가 불가능 하거나 암초에 걸리지만. 판옥선은 그렇지 않은 말 그대로 아군에게 최고로 유리한 지점에서 전투를 수행하셨습니다.
또한 화포에 관련되서 이야기를 해야되는데. 일단 저 당시 화포는 고정형 화포입니다. 각도조절도 원하는 데로 할 수 없고. 화약의 양을 통해서 사정거리를 정해야 되는 말 그대로 원초적 스타일의 화기입니다. 이러한 고정형 화포를 바다위에서 사용한다면 말 그대로 저질스러운 명중률이 됩니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위아래로 계속 움직이는 배가 화포를 쏜다? 당연히 타이밍이 조금만 안맞아도 대포알은 엉뚱한 곳으로 계속 날아갈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군이 주로 들고있는 조총은. 화포에 비한다면 사정거리와 위력은 떨어지지만. 사람이 직접 조준해서 사용하기에 화포에 비해서 뛰어난 명중률을 보장합니다. 물론 이당시 사용하는 조총은 가늠자도 없고 총신안에 강선도 없기 때문에 명중률이 심각하게 저질이지만. 상대적으로 화포에 비하면 명중률이 높은건 맞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조총을 수십 수백명의 인원이 함께 조준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낮은 명중률은 탄환의 숫자로 처리하는것이지요.
그렇다면 저 낮은 화포의 명중률은 어떻게 했을까? 이는 맨 처음 말한 이순신 장군님의 승리할 수 있는 싸움만 한다는 전략.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의 성실함과 엄격한 성격을 생각하면 알기 쉽습니다.
바로 엄청난 연습으로 낮은 명중률을 끌어 올리고. 복잡한 기습 전투를 원활하게 수행이 가능하도록 병사들을 혹독하게 단련시키신 것이지요.
이순신 장군님의 배에 탄 병사들이 적에게 죽은 숫자보다 이순신 장군님의 군법에 의해서 칼에 목이 날아간 숫자가 더 많다는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즉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지휘관과 강력한 위력의 화기. 그리고 그러한 지휘와 화기를 정확하가 다룰 수 있는 숙련된 "병사들"을 만드신 겁니다.
즉 이러한 사실은 돌려 말하면. 이러한 연습량이 확보되지않은 함선은 원거리 포격의 명중률을 매우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며. 또한 다른 해군 장수들은 역으로 왜군 해군들에 의해서 기습 공격을 당해 크게 참패한 것입니다.
제가 알기론 지금 생각하는거처럼 멀리서 펑펑 정확하게 맞추는것도 아니고..
상당히 거리도 가까웠는데다가 장전시간도 오래걸리고.. 정확도도 낮아서 실제로
한발쏘면 적이 백병전으로 들어올 수준이였다고 합니다.
윗분이 명쾌하게 써놓으셨네
스타크래프트 입구막기 하신 분들이면 아실겁니다.
수치상으로는 찰떡 오분전이 됬어야될 병력으로 몰려오는 웨이브를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왜란 이전까지는 조선의 베이스는 육군이었고 북방 방어에 올인을 넣은 상황이라서 수군이 약화돠었고 병법을 잘 모르는 이들도 장수를 맡았습니다.
거기에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밀어버렸단 소식만 남도로 전해지니 사기는 개판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경상도 수영들이 털리면서 병선을 모조리 격침시키고 튀는 바람에 이순신 장군 휘하의 전라도 수영 외에는 전선이 많이 개판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병선이 비록 내구성이 약하고 불안정하나 그 속도가 빠르고 백병전에 능한 병사들을 탑승시켰기에 조선 수군도 일본 해군을 이길거라는 생각을 잘 못했습니다.
마지막은 약간 잘못썼는데
빠르고 백병전에 능해서 이길 생각을 잘 못한 것이 아니라
섬나라의 특성상 강한 해군의 이미지에 전국시대 이후의 강병과 해적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당시의 조선 일본 양국 모두 수전에서는 일본의 승리를 낙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전에서는 원래 사상자가 대박이던 쪽박이던 둘 중 하나입니다.
실제 전투에서 싸우다 죽는 인명은 별로 없습니다. 육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하여도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마냥 우후죽순으로 1선이 갈려나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 건 자동기관총이 보급된 이후였죠.
당시의 전투에서 사망자의 대다수는 전황이 불리해지고 사기가 무너진 군에게서 생겨났습니다. 도망치는 걸 사냥하다시피 해버린 것이죠 토탈워 해보신 분들은 알겁니다. 모랄빵 나면 수가 얼마나 많고 무장이 얼마나 좋던지 간에 싸그리 갈려버립니다.
그런데 해전은 그 특성상 사기가 훅훅 꺾여나갑니다. 일단 아무리 병사가 많은들 그들도 모두 육지에서 사는 사람이고 포탄맞아서 배가 인수분해되면 곧바로 무용지물로 변합니다. 안에 장비가 타고있건 관우가 타고있건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이 지형과 물살을 적절히 이용해 거리를 잘 벌리면서 순차적으로 돌진하는 일본군의 최전방을 집중포격하고 또하고 또하면 박살난 일본 배 잔해들 사이로 왜군이 마음놓고 돌진할 수가 없는 것이죠
애시당초 충무공은 왜란이 벌어질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전라 좌수사에 부임하자마자 배를 건조하고 상한 무기들을 수리하는 등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장수들과 달리 싸울 수 있었구요. 또 원래 일본군이 건너와서 가장 먼저 공격당한 곳이 부산입니다. 즉, 경상 좌수영 쪽이 먼저 기습을 받아 박살나고 경상 우수영의 원균은 겁이 나서 자기 배를 몽땅 부수고 4~5척만 몰고 전라도 쪽으로 튑니다. 전라도는 뱃길이 험한 데다 일본군 본진인 부산포와 좀 떨어져 있어서 초반 기습은 당하지 않았고 이후 전라 우수영의 이억기가 좌수영에 합류하여 반격을 날리게 된 겁니다.
고대부터 현대 까지 기술력 차이만으로는
승리 못합니다.
유명한 정복군이었던 로마 몽골 그리스 마케도니아 병사등등을 단순하게 기술력 만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으나 기록을 따져보면 열세였던 전투가 훨씬 많았고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건 경험 풍부한 지휘관의 몫입니다.
압도적인 기술력 차이를 가지고도 원주민한테 쳐발리거나 총놔두고 반자이 하는 전쟁사가 상당히 많습니다.
현대 미군도 그 압도적인 기술력 가지고도
작전 미스로 삽질 한적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