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미국본토로 이송되어지는 사카마키 가즈오
사카마키 가즈오 (酒卷和男)
1918년 11월 8일 생 - 1999년 11월 29일 사망
1941년 12월 6일 01시, 일단의 일본해군 잠수함이 하와이 제도 오하우 근해에서 “갑표적”이라 불리는 2인승 소형 잠수정 5척을 출발시킴.
이들은 갑표적의 개발자 이와사 나오지(岩佐 直治) 대위를 포함 총 10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진주만 항내에 잠입
12월 7일 아침으로 예정되어있던 항공대의 공습작전에 호응, 공습의 혼란 속에서 어뢰를 몇 발 쏘고 튈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
애초 이들의 작전은 너무 위험성이 크고 기습이 사전에 적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일본 해군 수뇌부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이와사 대위의 실적을 올리고싶은 잠수함 부대의 거듭되는 땡깡으로 어거지로 끼워준 것 (개판)
하와이 기습에 한몫 단단히 해먹겠다는 심보로 출동한 이것들은 기대와는 딴 판으로
한 척은 항구에 진입하기도 전에 좌초했고 4척이 공습이 시작되기 전 진주만에 접근하다가 초계 중이던 구축함에 걸려서 2척이 격침당하고
2척만이 항구 안에 진입하였으나 발사한 어뢰는 날리는 족족 헛방이 되었고 도리어 미군에게 발견되어 모조리 항구 내에서 격침되거나 좌초됨
하지만 최초 접촉 시 미군 사령부에서 보고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판단하는 바람에 미군은 일본군의 기습을 파악할 기회를 날려먹음
여기 탑승한 두 명의 승무원 중 사카마키 카즈오(酒巻 和男) 소위가 탈출 후 해안에서 탈진한 상태로 해안경비병에게 생포
(동승했던 키요시 이나가키 이등병조는 함께 탈출 후 행방불명 이후 사망처리)
사카마키는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군에게 생포된 포로 제 1호가 되었으며 당연히 선전차원에서 미국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 군부에 전해짐
일제는 전사한 나머지 9명의 잠수함 대원들을 진주만 승전의 아홉 군신(軍神)의 반열에 올려놓고
대대적인 대민 선전에 이용, 사카마키 포로 사건은 물론, 그의 존재 자체까지 종전까지 극비로 취급
미국을 귀축영미라고 세뇌하던 일제의 방식에 따라
하와이의 포로수용소에 지 혼자 덜렁 수감된 사카마키는 자123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난리도 피우고 했었지만
이후 마음을 다 잡고 모범수로 지냈으며 미 본토 포로수용소로 이송된 뒤
1943년부터 점차 일본군 포로들이 늘어나자 혼란에 빠진 그들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기도 했다
전후 발행된 그의 수기를 보면 처음으로 깜짝 놀랐을 때가
이송 중에도 그를 수갑이나 기타 어떤 보호구로도 구속하지 않았던 것과
본토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미국 흑인 병사가 자신의 침구를 정리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라고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격침된 항모 히류의 생존자들이 함께 수용되었는데
이중에는 그의 선임이었던 기관장 나카죠 중좌도 포함되어있었고 그는 포로로 잡힌 사카마키를 보고 엄청나게 놀랐으며
그가 정신쇠약 증세를 보이자 사카마키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통역원으로도 일하면서 포로지만 매우 품행이 올바른 자였기에
미군관계자들은 그를 특별히 배려해 주어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보낸 뒤 종전 후인 1946년에 일본으로 귀국시켜 주었다.
귀국한 사카마키는 도요타 자동자공장에 입사해 수출부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도요타 브라질의 현지법인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일본계 브라질인 상공회의소 이사장도 역임하다가 1987년 도요타에서 퇴사했다
사카마키는 1999년 11월 29일에 아이치 현 도요타 시에서 81세로 사망했다
요약 - 전쟁 첫날에 아무것도 못해보고 포로로 잡혔는데 영어도 배우고 밥도 잘먹고 좋은데서 자다가 종전후에 도요타 지부 사장이 됨
일본은 포로를 가축보다 못한 대우를 해줬지만..
미국은 식량이 부족하더라도, 포로들에게 식량은 항시 지급해줬지..
물론 지휘관에 따라서 아닌곳도 있지만, 대다수 그랫다는게 정설.
인생사 새옹지마인게
저놈도 군인이고 아는건 자국에서 배운거밖에 없을텐데
자기딴에는 속칭 귀축영미한테 잡힌데다가, 군인으로서 아무런 공도 못세우고, 일본은 포로로 잡히는걸 수치로 여겼다는데
덕분에 정작 위험한건 다 피해가고, 포로대우좋은 미군에서 잘먹고 잘살고 영어까지 배우고
그덕에 전후엔 대기업 지사장으로 까지 일하니..
태평양 섬에 혼자 남아서 종전한줄도 모르고 몇십년간 산 사람도 있는데
태평양 섬에 혼자 남아서 종전한줄도 모르고 몇십년간 산 사람도 있는데
2차세계 대전 당시 나치,소련,일본군의 포로가 되는것이 open the 헬게이트
인생사 새옹지마인게
저놈도 군인이고 아는건 자국에서 배운거밖에 없을텐데
자기딴에는 속칭 귀축영미한테 잡힌데다가, 군인으로서 아무런 공도 못세우고, 일본은 포로로 잡히는걸 수치로 여겼다는데
덕분에 정작 위험한건 다 피해가고, 포로대우좋은 미군에서 잘먹고 잘살고 영어까지 배우고
그덕에 전후엔 대기업 지사장으로 까지 일하니..
일본은 포로를 가축보다 못한 대우를 해줬지만..
미국은 식량이 부족하더라도, 포로들에게 식량은 항시 지급해줬지..
물론 지휘관에 따라서 아닌곳도 있지만, 대다수 그랫다는게 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