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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양자역학 이야기] 1.5화 양자혁명에 이르는 길: 분광학(Spectroscopy) 3

1, 2편에 이어 분광학 세 번째 이야기로 '분광학의 황금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3) 분광학의 황금기 (1820 - 1870)

 

멜빌과 프라운호퍼의 발견을 이어받아 두 영국 과학자 허첼(John Herschel, 1792-1871)과 탈봇(Henry Fox Talbot, 1800-1877)은 1820년대를 지나며 각기 방출 분광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photography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 허첼은 1800년, 빛과 열의 관계에 대한 실험을 하던 중 빨강색보다 그 옆 아무런 색도 보이지 않는 곳에 둔 온도계의 온도가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적외선(infrared)을 발견하게 된다. 이듬해인 1801년, 독일 물리·화학자 리터(Johann Wilhelm Ritter, 1776-1810)는 보라색 옆에서 염화은(silver chloride)이 태양빛에 의해 어두워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자외선(ultr에이브이iolet)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 1835년 영국 물리학자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 1802-1875, ‘휘트스톤 다리’의 그 휘트스톤)

- 1849년 프랑스 물리학자 푸코(Léon Foucault, 1819-1868, ‘푸코의 진자’의 그 푸코)

- 1853년 스웨덴 물리학자 옹스트롬(Anders Jonas Ångström, 1814-1874, 훗날 1옹스트롬은 0.1나노미터를 일컫는 단위가 된다)

 

에 의해 각기 다른 물질은 자기만의 독특한 방출, 흡수 스펙트럼을 지니고, 나아가 이 두 스펙트럼이 같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 관찰된다. (앞서 방출 스펙트럼과 흡수 스펙트럼이 원소의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 것이 처음 관찰된 시기가 이때다.)

 

한 예로 아래 그림은 수소(hydrogen)의 방출 스펙트럼과 흡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방출 스펙트럼의 빛과 흡수 스펙트럼의 검은 선(dark lines)들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850년대는 아직 이 두 가지 스펙트럼이 만들어지는 원리가 파악된 시기는 아니지만 (정확한 원리는 1화에서 접한 '보어의 원자 모형'이 등장한 1913년 이후다) 두 가지 스펙트럼이 일치하는데서 스펙트럼과 기체의 고유한 특성 사이에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방출과 흡수 사이의 관계는 1859-1860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물리학자 키르히호프(Gust에이브이 Robert Kirchhoff, 1824-1887)에 의해 ‘키르히호프의 열 복사 법칙(Kirchhoff’s law of thermal radiation)’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법칙은 '흡수를 잘하는 물질이 방출도 잘한다'고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어느 물체가 빛을 흡수하면 그 물체가 가진 에너지가 높아지게 되고 높아진 에너지가 다시 빛의 형태로 방출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키르히호프는 이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켜 물체에 비춰지는 모든 빛을 흡수하고, 다시 그 에너지를 전부 방출하는 가상의 물체를 떠올린다. 이 물체에 비춰지는 모든 빛이 흡수됨에 따라 물체의 색은 검게 보일테니, 키르히호프는 이를 흑체(black body)라 이름한다. 「양자역학을 알려주마 1화」에서 플랑크가 '에너지 양자'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이 바로 흑체 연구에서 였음을 접했는데, 1860년 흑체라는 가상의 물체를 처음 소개한 사람이 바로 키르히호프다.

 

키르히호프는 1860년 하이델베르크의 동료 화학자 번슨(Robert Bunsen, 1811-1899)과의 스펙트럼 연구를 통해 (휘트스톤, 푸코, 옹스트롬이 관찰한) 원소마다 고유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견고하게 확립하고, 스펙트럼을 통해 원소를 특정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분광학이 원소 연구의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결정적 근거를 마련한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키르히호프의 분광학 세 법칙(Kirchhoff’s three laws of spectroscopy)’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된다. (키르히호프의 이름을 딴 법칙으로는 앞서 언급한 ‘열 복사 법칙(thermal radiation)’과 그가 1845년에 발견한 두 가지의 ‘키르히호프의 전기회로 법칙(Kirchhoff’s circuit laws)’도 있으니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① 높은 압력이 가해진 발열하는 고체, 액체 또는 기체는 연속 스펙트럼을 방출한다.

② 뜨거운 기체는 방출선(emission lines)을 방출하며, 방출 스펙트럼 선의 수와 파장(w에이브이elength)은 기체에 있는 원소에 따라 달라진다.

③ 연속 스펙트럼의 빛이 온도가 낮은 기체를 통과할 경우, 이 차가운 기체에 의해 흡수선(absorption lines)이 생긴다. 흡수선의 위치와 세기 및 그 흡수선 수는 차가운 기체에 있는 원소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 사용된 표현들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앞서 다룬 세 종류의 스펙트럼에 대한 설명을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펙트럼의 종류를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바로 이 시기에 정립된 키르히호프의 분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번슨'이라는 이름을 보고 번슨 버너가 떠오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방출 스펙트럼 연구에는 물체에 열을 가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1855년경 번슨은 그의 실험실 조수였던 드사가(Peter Desaga)와 함께 온도가 높고 깨끗한 불을 제공하는 실험 도구를 제작했다. 분광학 연구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해 준 이 도구는 훗날 ‘번슨 버너(Bunsen burner)’의 시초가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분광학의 황금기(1820- 1870)의 중심 내용은

 

- 1835-1853년 휘트스톤, 푸코, 옹스트롬의 관찰

- 1859-1860년 키르히호프, 번슨의 연구를 통해 ‘원소마다 고유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원소에게 있어 스펙트럼은 식별가능한 지문과도 같으며, 이는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물질 속에 어떠한 원소들이 있는지 규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원리를 통해 분광학은 원소 연구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게 된다. 키르히호프와 번슨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독일 응용 분광학 협회(the German Working Group for Applied Spectroscopy)에서는 1990년부터 ‘번슨-키르히호프 상(Bunsen–Kirchhoff Award)’을 통해 매년 분석 분광학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황금기를 지나서

 

앞서 등장한 스웨덴 물리학자 옹스트롬(Anders Jonas Ångström, 1814-1874)은

- 1853년 수소의 방출 스펙트럼 선 하나를 관찰하고,

- 1861-1862년에 이르러 3개의 선을 더 관찰한다.

1861년부터 태양의 흡수 스펙트럼을 연구하기 시작한 옹스트롬은 1862년 태양 스펙트럼 속에서 수소 스펙트럼과 동일한 선을 발견하여 수소가 태양을 구성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태양의 구성물질을 알게 된 시작점이다.

 

앞서 방출 스펙트럼 설명에서 등장한 그림을 보면 4개의 선이 등장하는데, 이 4개의 선이 바로 옹스트롬이 관찰하고 태양 속 수소의 존재를 알아내는 단서가 되는 선들이다. 이 4개의 선은 1885년 스위스 수학자 발머(Johann Jakob Balmer, 1825-1898)의 수소 스펙트럼 분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두 번째 이야기(하)에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옹스트롬은 몇 년에 걸쳐 태양의 흡수 스펙트럼에서 1,000여개의 선을 발견하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1868년 저서 『태양 스펙트럼 연구(Recherches sur le Spectre Solaire)』를 통해 편찬한다. 그리고 이 책은 오늘날까지 분광학 및 태양 스펙트럼 연구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옹스트롬은 흡수 스펙트럼을 10^-8 cm, 즉 0.00000001cm의 단위로 기록하는데, 이 단위는 훗날 옹스트롬(Å)이라 불리게 된다.

 

1868년 8월 18일 프랑스 천문학자 얀센(Jules Janssen, 1824-1907)은 태양의 스펙트럼에서 노란 선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이를 나트륨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20일 영국 천문학자 로키어(Norman Lockyer, 1836-1920)는 이 노란 선이 나트륨의 선과 비슷하긴 하지만 정밀히 관찰하면 다르다는 것을 밝히고, 지구상에는 없는 원소가 태양 속에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운다. 로키어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의하던 영국 화학자 프랑클랜드(Edward Frankland, 1825 - 1899)와 함께, 태양을 뜻하는 그리스어 helios에서 이름을 가져와 이 새로운 원소를 헬륨(helium)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로키어는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높은 과학 저널 중 하나인 네이쳐(Nature)지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1881년 이탈리아 기상학자 팔미에리(Luigi Palmieri, 1807-1896)는 화산 분출물에서 헬륨의 방출 스펙트럼을 발견하게 되고,

1895년 스코틀랜드 화학자 람지(William Ramsay, 1852-1916)에 의해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헬륨 가스가 분리된다.

 

이때 람지가 기록한 헬륨 가스의 방출 선들은 로키어에게 보내지고, 로키어는 이 선들이 1868년 자신이 태양 스펙트럼에서 관찰한 선들과 같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로써 람지가 분리한 기체는, 로키어와 프랑클랜드가 그로부터 27년 전 태양 속에 존재할 것이라 상상한 기체, 즉 헬륨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람지는 헬륨 외 아르곤, 네온, 크립톤, 제온 등 비활성 기체도 발견하는데, 「양자역학을 알려주마 1화」에서 레일리-진스 법칙을 통해 만난 영국 물리학자 레일리(John William Strutt, 3rd Baron Rayleigh, 1842-1919)와 아르곤을 공동 발견한 공로로 이 두 사람은 1904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다.




지금까지 분광학의 유래가 된 뉴턴의 프리즘 실험에서부터 분광학이 원소 연구의 핵심적 도구로 자리를 잡게 된 여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옹스트롬의 발견과 발머의 스펙트럼 분석은 닐스 보어의 원자 모형과 분광학을 이어주는데, 19세기 이론물리학에서 일어난 발전과 함께 자세한 이야기는 네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댓글로 피드백이나 질문을 남겨주시면 앞으로 쓰는 글에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 [HM]信長 2019/01/11 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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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성이네 2019/01/11 09:02

    잘 보고 가요 추천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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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저토마토 2019/01/11 09:12

    저 이런거 무지 좋아하는데 감사해요 게시물 처음봤네요 앞에거도 볼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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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윤RanomA탱율팁] 2019/01/11 09:55

    일단 이전글 보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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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의영혼 2019/01/11 15:42

    와우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이전것도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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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라와함께 2019/01/11 16:14

    봐도 모를거 같아서 일단 지난글부터 보고 와야겠어요
    예전에 본 천문학하고 마포고사자들에 이어서 기대되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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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분좋은날 2019/01/11 16:32

    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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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쿤킴 2019/01/11 16:42

    양자역학의 얘기 시작이... 얼마나 긴 이야기를 하시려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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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hnexen 2019/01/11 17:17

    이 글보고 첨부터 정독했습니다.
    계속 감사의 마음으로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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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량도령 2019/01/11 17:17

    잘보고 갑니다. ^^ 앞으로도 잘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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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페이즈 2019/01/11 19:54

    먼저 1편부터 봐야겠네요.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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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한방 2019/01/11 20:14

    [리플수정]분젠을 번슨이라고도 하나보군요 ㅎㅎ 불펜에서 이런거 보면 놀랍기도 합니다 ㅎㅎ 지나가던 물리화학전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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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효&다현 2019/01/11 20:27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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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가가생명 2019/01/11 21:02

    태초에 빚이 있었네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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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란파슨스 2019/01/11 21:29

    추천은 합니다만 어렵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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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파이터 2019/01/11 21:55

    화학 교사로서 정말 감사하네요 ㅎㅎㅎ 이런 과학사 재밌게 정리된 글 쉽게 보기 힘든데.. 잘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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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인트찰스 2019/01/11 22:54

    정말 자세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네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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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이팬 2019/01/11 23:34

    관심이 많아서 시간 날때마다 관련 책도 좀 읽고 방송도 보고 그러는데..
    양자역학을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나를 이해시키면서 공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바보되는 기분인데 기분 나쁘지 않은 기분이랄까..
    이래저래 정말 오묘합니다 양자역학이란 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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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likeom 2019/01/11 23:53

    1편도 잼있게 봤는데 계속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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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2019/01/12 00:28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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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마 2019/01/12 04:33

    그동안 양자역학에 대해서 기초부터 알고 싶어서 이책 저책 찾아 헤매였었는데 불펜 뻘글에서 찾게 될 줄이야. 진짜 위키피디아 보다 세세하고 설명이 잘 되어 있네요. 기본적으로 양자에 대해서 알려면 분광학은 필수 코스인데, 이걸 이렇게 시각효과까지 겸비해서 그림책 마냥 술술 풀어 내시다니!! 놀랍습니다. 문과 출신이여서 늘 물리와 역학에 대한 목 마름이 있었는 데 쿵후 소년님 덕택에 목 좀 축이고 갑니다. 아 추천 밖에 해드릴께 없어서 그게 아쉽네요. 암튼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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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블루 2019/01/12 07:51

    강추하고 스크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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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문재인 2019/01/12 08:11

    이런 훌륭한 글 말머리가 뻘글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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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둥쌍둥해 2019/01/12 14:56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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