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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그대가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다녀왔습니다.

그 날은 제법 쌀쌀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날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나 봅니다.

입술은 마르고 침도 넘어가지 않아 몇번을 심호흡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밖에서 찬 삭풍을 맞으며 식이 시작하기 3분전까지 기다렸습니다.

혹여 그대의 동생들, 혹은 친구들 또 혹은 아버님과 어머님이 저를 보고 놀라실까봐 

혹은 그런 놀란 모습에 제가 괜시리 미안하여 죄를 짓는 느낌일까봐.

그 긴장감에 입술을 마르고 이내 마른침조차 넘어가지 않게 되었을 때

무기명으로 축의금을 전달하고 식 구석에 자리 잡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구석에 있었기 때문인지, 저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습니다.
 
알아보는 이는 없었지만 혹여 내 모습 초라해 보일까 타이를 고쳐 메었을 때
 

이윽고 식은 시작 되었고.

그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랑 되시는 분과 사랑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지인들의 축가도 흘러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좋았습니다.

그대 웃어서 저도 웃으며 박수 쳐드렸습니다.

그대는 역시 아직도 이쁘네요.


제가 왜 그곳에 간걸까요?

그날 토요일 식이 끝나고 그대와 함께 갔던 포차에 가 못하는 술을 축하주 삼아 홀로 마셨습니다.

안주는 그대가 좋아했던 그대로 입니다.

그대에게 폐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태생이 그런 사람인데 어쩌면 폐가 될 수도 있었던 자리를 왜 갔던 것일까요?

계속 자문하고 자문하는 시간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뜩, 예전에 그대가 제게 말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나 오빠나 지금 너무 일찍 만난것 같아...차라리 좀 더 누군갈 만나고 만났다면..끝까지 같이 있을수 있을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못할까봐 걱정 돼' 라고..



그대를 5년 동안 만나면서

참으로 많이 웃었고, 울었으며 행복함이 가득해서 산딸기 가득한 케익을 베어 무는 느낌이였습니다.

참으로 달고 달았으며 힘들고 우울했던 나의 서툰 20대에 상큼하게 다가와준 그대를 사연은 있었을 지언정 제가 어찌 미워합니까?

제 마당이 좁아 그대를 들여놓지 못했던것을 어찌 탓합니까.

제가 그대의 결혼식을 갔던 것은,

그대라는 사람을 5년이상 바라보던 한 지인으로 간 것이였고,

제 인생의 책갈피를 가득 메워 주었던, 어쩌면 나와도 그리 될 수 있었던 

어느 한 사람의 엔딩을 그려보다가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대는 그대의 자리에서 노력하여 행복하였으니,

저도 제 자리에서 노력하여 행복해지겠습니다.


항상 그대가 행복했으면,
 
제게 아침과 같은 사랑을 알려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저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해주세요.






댓글
  • 도도하라 2017/01/25 17:22

    당신의 사랑은 참 용감하네요.
    떠나는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당신의 슬픔보단 이사람은 아름다운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더 깊게 듭니다.
    그러나 그슬픔에 너무 빠져있지는 말아요.
    당신의 인연이 될사람은 당신을 기다리고있을꺼에요.
    그러니 홀로 서서 당신의 인연을 기다려요.

    (ZuUl58)

  • toddle 2017/01/25 17:22

    https://youtu.be/SvyPL7Zj49A  <윤종신> 너의 결혼식
    최근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슬프게 다가오네요ㅠㅠ
    겪어 본 적 없기에 감히 위로도 못드리겠습니다... 노래로 대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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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훼용 2017/01/25 18:48

    아. .   헤어진지 한달 반 정도 지나고 잘 버텼다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 . .     이 글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다 가슴이 너무 아프게 죄어오네요. . .   하 . .  내일 간 검사 받아서 술 먹으면  안되는데 미치게 먹고 싶어짐. . .

    (ZuUl58)

  • 드래곤자라 2017/01/25 19:22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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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Twins 2017/01/25 19:22

    퇴근하고 혼술이나 한잔해야겠네요..

    (ZuUl58)

  • 틴토레토 2017/01/25 19:26

    ㅠㅠ

    (ZuUl58)

  • Radiance 2017/01/25 19:28

    조심스럽게 말 꺼내보는건데....차라리 가지 않으시는것이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ㄷㄷ
    전남친 혹은 전여친이 결혼식장 왔다는걸 곧 배우자가 될 현남친이나 현여친이 알게되면 결코 좋은일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두사람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면 결혼식장 말고 차라리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행복을 빌어주는것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힘내시고 좋은 인연 만나시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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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미췬늠 2017/01/25 19:30

    아...가슴 시림이 느껴지네요.
    그사람 웃는 얼굴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시리고 눈물이 날려고 했을까요. 그저 안쓰럽고. 멋지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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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18 2017/01/25 19:33

    서로 감정 다 정리된 후에 친구로서 와달라고 한 거 아니면 민폐...
    안 걸렸으니 망정이지 큰 일날 뻔 했네요.

    (ZuUl58)

  • 킴메스 2017/01/25 19:33

    슬프네요... 전얼마전 카톡을 보다보니...
    반지를 낀 손사진을 봣어요....
    이쁘더라구요.... 이쁠거에요..

    (ZuUl58)

  • 닉네임사용자 2017/01/25 19:37

    너무 좋고 작성자가 부러워지는 글이네요
    지금은 괴롭지만 충분히 좋은 사람과 행복하게 살수있을것같네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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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나브로아사 2017/01/25 19:44

    일부러 식전 3분전에 들어가 무기명으로 축의금 넣고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있다가 식만 보고 바로 나왔습니다. 가장 조심하였던 것이 혹여 눈에 띄이지 않을까 였는데 다행히 그런일은 없던것 같아 안심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찌 보면 제 개인적인 욕심일수도 있기에 좋아보이지 않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ZuUl58)

  • 이파 2017/01/25 19:47

    멋지네요.
    진짜 사랑했던 전여친의 결혼식...
    그때 그 감정을 글쓴님에게서 느낍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ZuUl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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