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을 중심으로 이민족을 북쪽은 북적 동쪽은 동이 서쪽은 서융 남쪽은 남만이라고 부르는 것은 알고계실겁니다.
수신기와 불고기 관련해서 북적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관련한 이야기를 써볼게요.
양키라고 하면 어떤게 떠오르시나요. 미국인. 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양키에 적합한 해석은 미국인일겁니다. 야구사이트니 양키스를 떠올리실수도 있겠죠. 여튼 현재 한국에서 양키가 미국인을 지칭하는 멸칭처럼 되어있는데, 원래 양키는 미국중에서도 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미국내에서 일컷던 말입니다. 그게 미국인 전체를 부르는것으로 확대된거죠.
사실 이건 북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이건 오랑캐부터도 그래요 오랑카이족에게서 유래했다고 하죠.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이민족의 통칭으로 되었습니다. 북적은 원래 적인이라 불리던 애들이 원조였는데, 얘들은 은주교체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사실 불펜아재들은 학교에서도 배우셨을겁니다.
바로 용비어천가입니다. 용비어천가는 이성계집안이 한 행동들이 알고보면 중국 옛 성현들의 행동과 같다. 그러니깐 조선 건국 만만세 라는 스토리로 만들어진 것이죠. 중국성현 A가 적인 동네에 갔더니 적인이 괴롭혀서 기산으로 옮겨간것이 하늘 뜻인데, 이성계 증조부 익조가 야인(여진족)동네에 갔더니 야인들이 괴롭혀서 덕원으로 옮긴게 하늘의 뜻이다. (하는 행동이 똑같다!)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때 중국성현 A는 고공단보라고 주 문왕의 조상입니다. 뭐 용비어천가에만 나오는건 아니고 대표적으로 친숙한걸로 고른거지 사서에 많이 나옵니다.
주나라 건국도 되기전에 이미 주나라는 적인들의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나라 건국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나라를 가장 괴롭히던 이민족은 적과 융 이었습니다. 흔히 북적 서융 동이 남만 모두 이민족의 범칭으로만 생각하는데, 북적, 서융, 동이는 원래 원조가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적족과 융족들이 중국을 괴롭히던 시절이죠. 실제 춘추시대의 서막을 알리는게 견융족이 수도 호경을 침입한 사건입니다. 웃지않는 미녀 포사를 웃기기위해 봉화대 울렸던 이야기로 유명하죠. 견융족이 바로 융족의 한 갈래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적족과 융족들에게 괴롭힘을 받았는데 이것 역시 그냥 북족오랑캐와 서쪽오랑캐를 뜻하는 말을 쓴게 아니냐라고 하실수 있습니다.
지도가 나온게 이것뿐이라 찾아왔습니다. 흔히 융족을 서방오랑캐라고 생각하시는데 춘추전국시대때는 서방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서방에서도 활약합니다. 지도에 보시면 융족의 한갈래인 산융족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죠. 융족과 적족들의 침입을 받았던 중원은 얘들을 융적이라고 부릅니다. 당시에는 융족과 적족의 범위가 북쪽에서 많이 겹칩니다. 그래서 융족이 서융으로만 불리는게 아니라 사기에 북융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물론 융족중의 단지 한갈래를 북융으로 지칭했던 말이겠죠. 융족도 적족도 방위에 따라 붙혀지는게 아니라, 특정 민족들이었던거죠. 양쪽다 갈래도 엄청 많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을 괴롭히던 적족은 급기야 위(衛)나라 [전국7웅의 위나라 아닙니다. 견융족의 침입에서 수도 호경을 구원한 위무공의 위나라입니다]. 를 멸망시키기에 이릅니다. 학키우다가 멸망한 나라이야기 들어보셨을겁니다. 왕이 학을 너무 좋아해서 학수집과 키우기에 온갖 나라의 재화를 다 썼는데 이민족이 쳐들어왔습니다. 병사들이 학들보고 적들과 싸우라고 하며 도망갔고 나라는 멸망했다는 이야기. 그게 바로 적족과 위(衛)나라의 이야기입니다. 악의의 조상 악양이 멸망시킨 중산국이야기도 들어보셨을겁니다. 아들이 중산국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악양이 쳐들어오자 아들을 인질로 잡고 위협하자 활들어서 아들을 본인이 쏴서 없애려하고, 중산국에서 아들을 삶아서 국끓여서 보냈는데 눈하나 깜짝안하고 국을 마시고는 너 나중에 두고보자며 멸망시킨이야기. 그 중산국이 원래 선우국으로 불리며 이민족이 봉해진 나라인데 그곳에 봉해진 족속이 백적족입니다. 이민족이 주나라 제후국으로 봉해진게 이상하실수도 있지만, 오 월 초 그리고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도 사실은 이민족을 봉한 나라라고 추정됩니다. 이민족이 제후국으로 들어오게된거죠. 물론 중화에 편입되고 난뒤에는 그들이 결국 중화민족이 된거고요.
여기까지가 적인과 융인 융적의 유래입니다.
중국에서 다른 오랑캐를 부르는 범칭이 또 있죠. 호(胡)입니다. 호떡도 여기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하죠. 5호 16국의 호도 바로 이 호입니다. 호족은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합니다. 조나라 무령왕이 호족과 열심히 싸운왕입니다. 그러다가 호족들은 너무 강해서 힘에 부치는겁니다. 도저히 중원의 방식으로 싸우면 안되겠다. 우리도 호족의 방식대로 싸우자며, 호복을 입고 기병을 육성합니다. 이걸 호복기사라고 부릅니다. 중국 최초의 기병부대라고 하죠. 전국시대 4대명장중 하나인 조나라 이목이 이 호족과의 전투를 잘 치룬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호족은 우리가 잘아는 흉노입니다.
나중에는 오랑캐의 범칭인 호가 원래 좁은 흉노라는 민족을 호족이라 불렀었고, 동쪽에는 동호가 있습니다. 동쪽 흉노죠. 이 동호는 후에 묵돌의 등장과 함께 흉노의 세력이 커지자 멸망하는데 그 잔당들이 선비산에 들어가서 선비족이 되고 오환산에 들어가서 오환족이됩니다.
동호의 동쪽엔 예맥과 숙신 읍루가 있는데 예맥은 우리민족의 조상뻘로 여겨지고, 숙신 읍루는 여진족의 조상뻘로 여겨집니다. 호족과 예맥을 통틀어 한나라때 호맥이라고 부릅니다.
호족이 확장되어 추후 호가 이민족 전체를 일컫게되고
적족이 확장되어 추후 북방 이민족을 일컫게 되고
융족이 확장되어 추후 서방 이민족을 일컫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 사견은 들어가지 않은 정보전달입니다.
글을 쓴 목적은 수신기의 해석에 있기도 하니 수신기를 가보겠습니다.
胡床, 貊槃, 翟之器也; 羌煮、貊炙, 翟之食也。自太始以來, 中國尙之。貴人富室, 必畜其器, 吉享嘉賓, 皆以爲先。戎、翟侵中國之前兆也。
호상 맥반은 적족의 용기이름이고, 강자 맥자는 적족의 음식이름이다. 그런데 진무제 태시연간으로 부터 중원에 이런 용기와 음식이 유행했다. 귀족들과 부자들의 집에는 모두 그런 용기를 갖추어 놓고 희사때 귀빈들이 오면 우선 그런 용기와 음식을 상위에 놓는다 이것은 융적이 중원지역을 침범할 징조를 미리 보인 것이다.
일부로 제가 적을 적족으로 융적을 융적으로 고쳐둔겁니다. 적의 해석에 이견이 있기때문이죠.
황교익의 해석은 적족을 특정하지 못했으므로 미진한건 확실합니다.
불펜에서 호족, 맥족, 강족은 각각의 족속들의 명칭이고 그것의 상위개념으로 적족을 사용했다고 해석하신것을 보았습니다.
황교익씨의 해석보다는 좀더 성의있고 조사도 많이했고 보다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좀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북적 서융 동이 남만의 개념으로 봐도, 호족은 북적이지만 맥족은 동이이고 강족은 대표적인 서융입니다. 후대에 붙혀진 명칭이지만, 오호십육국시대가 오적십육국이 아닌이유가 오호가 선비 흉노 갈족 강족 저족인데, 강족과 저족은 북적이 아니기때문입니다. 강족과 저족은 융이에요. 그런 연유로 수신기에서도 융적들의 침입할 징조를 미리보였다고, '적'이 아닌 '융적'이라고 표현한걸로 보입니다. 실제로 서진을 유린한 이민족들을 '융적'이라 부르면 맞습니다.
초한지 삼국지 열국지등 군담소설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레 중국 고대사를 좋아하게된 제 입장에서는
맥족과 강족의 상위개념으로서의 적족이라는 개념은 생소합니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 많을텐데 그런 분들은 강족이 왜 북적이야? 라는 의문 드실겁니다. 거기에서 출발해보는거죠.
이민족을 다 북방이민족이라고 편의상 생각하실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북쪽만 이민족이 있지만 중국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 '적'을 북쪽의 이민족만 가르키는 말은 아닐수 있겠죠.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사서가 하나 있어서 그것을 찾아보았습니다. 다른 용도로 제가 가끔 봤던 책.
우리에게 유명한 정사 삼국지를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정사삼국지는 서진시대에 쓰여진 책으로 동진시대와 시대적으로 근접합니다.
정사 삼국지에는 狄, 翟 두글자 모두 북쪽이 아닌 강족과 맥족을 아우를만한 오랑캐의 의미로 쓰인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신기한 글자가 하나 있더군요. 바로 노(虜) 였습니다. 포로, 노획등에 쓰이는 '로'입니다. 조선시대에 북쪽 이민족을 북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본적은 있는데, 중국 삼국시대에는 오랑캐를 뜻하는 뜻으로 노(虜)라는 글자를 사용한거 같습니다. 유래는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포로로 많이 잡아서 노예로 부려서 포로란 뜻이 이민족을 뜻하게 되었나? 정도의 생각만 드네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민족을 뜻하는 말로 썼었으니 오랑캐를 뜻하는 것으로 쓰였었을거같긴합니다. 제갈량의 제갈량집 북적편에도 이 노(虜)가 오랑캐로 등장한다고 위키에는 나오네요.
저는 서융인 강족, 동이인 맥족을 아우르는 적이라는 오랑캐의 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글자로 노(虜)가 있었네요. 기존 생각의 토대에서도 적이 강족과 맥족을 아우른다는것은 생각하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翟(적)은 모든 오랑캐를 포괄하는 개념은 아닐거고, 북쪽오랑캐만 포괄하는 翟(적)의 개념이면 동이족과 융족을 포괄할수 없다. 고로 북쪽 오랑캐중에 '翟(적)'으로 특정된 대상집단이 있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설을 하나 세워보았습니다.
가설은 어디까지나 틀릴수 있습니다. 다만 본인이 가설을 세운것을 토대로 타인을 조롱하는데 쓰는 것은 가설이 틀릴수 있다는 태도는 아닐것입니다. 틀릴수 있는 것으로 타인을 조롱할순 없겠죠. 부족한 연구로도 재미난 가설을 세워보는것은 좋지만, 그것을 토대로 타인을 비난하며, 본인의 가설이 틀릴 증거가 나올때만, 가설이라서 틀릴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건, 가설을 만드는이의 자세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냥 재미로 즐겨주시고 틀렸다고 생각되시면 다른 의견을 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翟(적)은 북쪽이민족이지, 강족과 맥족을 아우를수 있는 상위개념으로는 보이진 않음. 다만 맥족과 강족과 호족의 영향을 모두 받을만큼의 큰 영역에 있는 북쪽이민족 정도로 특정해볼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 끼워넣을수 있는게 떠오르더군요. 바로 5호16국시대의 화북왕조입니다.(아직 남북조 시대는 아니니 북조라고 부르면 안되겠습니다만 북조의 전신이라고 하시면 더 와닿으실겁니다). 이건 이게 맞아보여서가 아니라 다르게 해석이 잘 안되서 만든 가설이라고 보시면됩니다.
수신기가 몇년에 지어졌는지 모르겠으나, 동진초기인건 맞는거같아서 가져온 동진초기의 지도형세입니다. 참고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워낙 몇년마다 지도가 크게 바뀌는 시기이긴한데 저 지도보다 한 1-20년전는 화북은 전조와 후조가 나눠서 싸우고 있고, 그보다 이전에는 전조가 화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도중에 조나라와 동진을 제외하고 좀 보자면 전량은 한족출신 장수 장궤일족이 중앙정부가 혼란하자 독립한 곳이고, 성한은 저족의 이웅이 촉한의 터전 서촉지방에 세운 나라입니다. 화북은 조나라 손에 들어가있습니다. (이게 전조이든 후조이든 전조와 후조가 동시에 싸우던시기이든 말이죠) 참고로 전조는 흉노의 유연이 후조는 갈족의 석륵이 세운나라입니다. 흉노 선비 갈족은 모두 북적이 맞습니다. 지도는 저렇게 하나의 왕조처럼 보이지만 화북 곳곳에 한족의 잔당독립세력과 기타 군소세력들이 포진해 있긴합니다. 마저 설명하자면 모용부는 선비족이고 추후 연나라를 세웁니다. 대나라는 선비족중의 일부인 탁발부가 봉해진 나라이고 후에 북조를 통일하는 북위가 됩니다. 철불부는 나중에 비수대전 이후 혁련발발을 중심으로 장안에다가 하나라를 일시적으로 세우는 철불흉노입니다.
이 조나라를 적으로 특정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후조든 전조든 아니면 팔왕의 난때 성도왕 사마영에게 종사하던 전조를 세우기전 유연의 세력이든 말이죠.
여기 까지입니다.
어디 까지나 가설은 가설로서 즐겨주시고요.
제가 드리고 싶은 가설이 아닌 다른 이야기는 적족 융족등 이민족들을 일컫는 명칭들의 유래와
맥족 호족 강족을 모두 북방이민족 북적으로 포함할수 있느냐 정도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건 아닌거같다. 그런이유에서였다면 적(翟) 대신 노(虜)나 융적으로 표현하는것이 맞지않겠나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아직은 그러하단겁니다. 다르게 생각할 증거가 나오면 생각이 바뀌겠죠.
우선 추천드립니다. 대단하시네요..
일단 翟 혹은 狄이 범칭인건 학계의 무시할 수 없는 수의 학자들의 해석인거 자체는 맞아보입니다. 일단 해당하는 翟 혹은 狄 관련해서 중국에서 수신기에 주를 달아놓은 마인친 교수와 황디밍선생의 입장이 그렇기는 합니다.
[리플수정]유니콘//
그 이야기는 결국 북쪽 이민족의 범칭이라고 나와있다는겁니다.
북적이야 북쪽이민족의 범칭 맞습니다.
융족인 강족과 동이족인 맥족을 아우르는 범칭으로 쓰일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죠.
그리고 당연히 범칭도 특정대상을 지칭할수 있습니다.
오랑캐야 라고 했지만 오랑캐는 여진족을 뜻하는것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글쎄요. 그 이전이나 이후 구절에 별다른 융족의 풍습이 소개가 안 되었다면 범칭이 되는것은 가능해보이긴합니다. 일단 저자가 이민족의 특산물을 수입하는 사치에 대한 비판의 입장을 썼으며 강자 맥적 모두가 북쪽 이민족들의 풍습이라는거니까요.
사실 저도 전공자가 아닌지라 저 구절에 대한 확신은 힘듭니다.
유니콘//
뒤에 융적이라고 바로 나옵니다.
유니콘//
호상 맥반은 북적의 용기이름이고, 강자 맥자는 북적의 음식이름이다. 그런데 진무제 태시연간으로 부터 중원에 이런 용기와 음식이 유행했다. 귀족들과 부자들의 집에는 모두 그런 용기를 갖추어 놓고 희사때 귀빈들이 오면 우선 그런 용기와 음식을 상위에 놓는다 이것은 융적이 중원지역을 침범할 징조를 미리 보인 것이다.
수신기 본 구절은 이게 현재까지 가장 타당한 해설인거같습니다.
뒤에 융적이라고 나와도 해당 사치가 극심해지니 총체적 침략에 시달린다는 말이죠. 저는 맥적이 맥의 고기구이 강자가 강의 고깃국 이렇게 해석할 여지는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문장에서 적이 그들 이민족 전부에 대한 통칭일 수 있다고 봅니다.
유니콘//
그 총체적 침략을 하는 오랑캐는 '적'이 아니라 '융적'이란겁니다.
총체적 오랑캐의 개념으로 '융적'이 쓰인겁니다.
유니콘//
주석에도 북쪽 이민족의 범칭이라 명시되어있고
그 개념에서는 강족은 북적이 아닙니다.
저도 어디까지나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것일 뿐입니다. 사실 원저자가 융적과 적을 혼용했을수도 있는거니까요.
허영택님이 쓰신 글에서 "중국의 '한어대사전'을 찾아보면, 翟이 민족명으로 쓰일 때는 狄과 같고, 狄은 진한대 이래 북방의 각 소수민족을 통칭해서 부르는 단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청대 학자 손이양은, "翟者, 蠻夷閩貉戎狄之泛稱" 즉 "적이란 만이민맥융적을 통칭하는 글자"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라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저는 이분야 지식이 없지만, 이에 따르면 翟=狄 으로도 쓰이기도 하지만, 또 청나라 손이양의 경우 翟 이 狄을 포햠하여 만이민맥융적을 통칭한다고 하고 있네요.
[soap] 불꽃남자~// 근데 분명히 그 문장 내 범칭한 북방 이민족의 풍습 내에 강자와 맥적이 있긴 있습니다.
로마도 그렇지만, 중원에 살던 한족들도 이민족들을 다룰 때 그 분류를 늘 엄밀한 잣대로 하지는 않았던 거 같고, 그 지칭하는 바도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찌 되었든 불꽃님을 포함 여서사람들이 저 수신기의 문장 구조상, 호상 맥반 강자 맥적 이라는 기물과 음식들을 翟이라고 하는 이들을 아우르는 어떤 집단의 것이다라고 보는 것에는 다들 동의가 되는 거 같습니다. 다만 翟= 狄 이라 했을 때, 강족이 狄으로 아우를 수 있냐는 것이 쟁점 같은데요.
alexios//
근데 저 시대에 만이민맥융적을 통칭하는 글자로 쓰였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만이민맥융적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후대에 적절한건 호(胡)인데 저시기에 호도 그런식으로 사용되었다고 찾아지지는 않네요.
청대에는 그렇게도 가끔은 쓰였으리라 봅니다.
호도 청대에는 이민족의 통칭이었죠.
근데 춘추시대에는 호도 호족일뿐이고 적도 적족일뿐입니다.
그럼 진나라때는 어땠을까 라는건데 이런거죠.
근데 적이 만이민맥융적을 통칭하는 글자로 찾아지지도 않고, 융적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어쩌면 손이양의 해석을 따른 다면 즉 翟이 狄 을 비롯 모든 오랑캐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각 이민족들을 나타내는 명칭들이 각자가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대강의 대상은 있으나, 이 명칭들의 의미가 때로는 그 자체로 확대되기도 하고, 혹은 호맥 이런 식으로 다른 명칭과 결합되면서 확장해서 쓰이기도 하는 등. 딱히 엄밀하게만 쓰이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 같습니다.
유니콘//
북방이민족이 강자와 맥적을 사용하고 있단거죠.
네 불꽃님이 말씀하신 그 부분이 흥미로운 부분이고, 자세히 조사하셔서 이렇게 일러주셔서 저도 많이 배웠는데요.
alexios//
동이족과 북적을 아우르는 이야기에는 이적이라 쓰고, 융족과 북적을 아우르면 융적이라 씁니다.
아주 뭐 갈라서 엄밀하게 정확하게 쓰는것이 사람언어관습은 아니겠지만 북방이민족이 아닌 이민족전체 즉 우리말로 오랑캐로 쓰였다고 볼수 있겠느냐입니다.
사실 그 주석도 북방이민족이라고 쓰여져있습니다.
불꽃님의 가설인 "전조이든 후조이든 이 북방 민족의 왕조를 翟 이라 지칭했을 것이다 " 라는 것 역시도,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는 翟 이라는 것이 이민족 일반을 느슨하게 지칭하는 말이다라고 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 아닌가 싶네요. 불꽃님 말씀대로 애초에 "이 기물과 음식들이 적인의 것이다" 대신 "융적의 것이다"라고 씌여졌다면 매우 깔끔했겠습니다만.
alexios//
그게 좀 다른게
적이 모든 이민족을 통칭하는게 되면 우리 민족이 거기에포함됩니다.
적이 그냥 통상의 북적을 일컷게 되면 우리 민족이 포함된다고 보기가 힘들어요.
전 왜 적이 우리민족을 포함한 해석이 되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는거고요.
alexios//
그와는 별도로 맥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맥족이 먹던거겠죠. 이름이 맥적인데요.
근데 그건 또 다른이야기입니다.
어찌되었든 저 수신기 문장 자체는 호, 강, 맥 이들의 물건과 음식을 翟의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는 데 까지는 모두 동의하는 거 같은데요. 그런데 翟=狄 이라면, 狄이 강과 맥을 품지 못하므로 모순이다. 라는 데 논리가 이르는 것이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翟과 狄이 반드시 1대1 대응은 아닐 수 있으며, 翟은 이민족 일반을 의미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보는 방법과. 불꽃님처럼 중원이나 화북쪽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떨친 이민족 계열 왕조를 翟 이라 불렀을 것이다라는 방법이 있을텐데요. 제 생각엔 그 이민족 계열 왕조를 翟 이라 부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가정도 역시, 그 왕조들의 공통적 특성을 추출하면 '이민족 출신으로 중원에 넘어왔다' 라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그 두가지 방법이 본질적으로는 서로 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맥을 翟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데에 촛점을 두신 거군요.
alexios//
가설이야 그냥 재미로 봐주시면되고요
결국 翟이 우리 민족을 포함할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저는 없다 쪽인거죠. 그렇게 볼 이유는 못찾겠다.
왜냐면 우리민족은 북적이 아니었고 이번엔 그렇게 봐야될 이유도 못찾았다 입니다.
alexios//
강도 넣을수 없다보는데 본 토픽에선 중요한건 아니니깐요.
제 글에까지 댓글 남겨주셔서 어쩔 수 없이 간략하게 댓글을 남깁니다. 님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세세한 조사를 하신 것은 인정합니다만, 지난번에도 그렇고 한문 문장과 문리 구조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시면 위와 같은 주장은 하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번에 翟자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드렸습니다. 翟=狄이라고 해서 북쪽의 소수민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만, 翟자에는 여러 소수민족을 통칭하는 뜻이 있다고요. 이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한가요? 청대 고증학자 손이양이 "翟者, 蠻夷閩貉戎狄之泛稱"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戎보다 翟이 더 상위의 개념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나요?
님말씀대로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들 하죠. 그러나 보통의 문장에서 이 규칙은 세세하게 지켜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서남이열전]이라는 편이 있습니다. 여기서 西南夷는 중국 서남부의 소수민족, 구체적으로는 서남이(西南夷): 감숙성 남부, 사천성 서부와 남부와 운남성 귀주성 일대의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융이나 만이라고 하지 않고, 이(夷)라고 했을까요?
[예기]에 보면, 융이(戎夷)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禮記‧王制》: “中國戎夷, 五方之民, 皆有性也, 不可推移。” 님의 주장대로 하자면, 융이는 서쪽과 동쪽의 오랑캐를 뜻해야 하겠죠. 그러나 여기서 보면 중국의 융이는 오방에 모두 존재하는 민족들이므로 각자 개성이 강해서 함부러 이동시킬 수 없다고 나옵니다. 융이는 서쪽과 동쪽의 오랑캐라고 해야 하지만, 바로 뒷구절에 '오방지민'이라고 나옵니다. 오방이란 동서남북과 중앙을 합한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융이는 모든 오랑캐를 포함하는 겁니다. 두 글자만 뽑아서 소수민족을 통틀어 얘기하는 것이죠.
융만(戎蠻)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역시 글자로만 보면 서융과 남만을 가리키는 것이겠죠.물론, 협의의 의미에서는 그렇게 해석되지만, 광의의 의미에서는 중국의 모든 소수민족을 모두 가리키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이적(夷狄)이라는 단어도 있죠. 이 단어는 익숙하실 겁니다. 역시 중화민족 이외의 모든 종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역시 사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융적(戎狄), 융적(戎翟), 만적(蠻狄), 이만(夷蠻) 모두 그냥 오랑캐를 뜻하는 말입니다.
세월을 춘추라고 표현합니다. 어른들의 나이를 가리킬 때도 춘추라고 하기도 하죠. 춘하추동을 다 합쳐야 나이가 되고, 춘하추동을 모두 지나야 1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죠. 그런데 줄여서 춘추라고 합니다. 줄여서 표현하는 것이죠.
아울러 사고전서에서 夷族, 戎族, 蠻族을 검색해보면 수십건에서 수백건의 자료가 뜹니다. 그러나 翟族으로 검색하면 단 한 건도 뜨지 않습니다. 즉, 적족이라는 단어는 특정한 민족이 아니라, 그냥 여러 소수민족을 통괄하여 지칭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KIA_허영택//
본문에도 나왔듯, 오랑캐를 융적이라 표현하면 맞는 표현 맞습니다.
삼국지에 이릉대전에 참여하는 무릉계통의 이민족들을 '무릉만이'라고합니다. 만이 역시 오랑캐로 말할수 있고,
역시 수신기에도 그러한 오랑캐를 '융적'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융적'이 아닌 '적'이 북쪽이민족이 아닌 오랑캐를 뜻하는것으로 해석하고 있는것이 님의 해석입니다. 그것에 동감할수 없습니다.
翟者, 蠻夷閩貉戎狄之泛稱...이상입니다. 지난번에도 느꼈는데, 님하고는 대화가 조금 힘드네요. 이 정도 하겠습니다. 동감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네요.
KIA_허영택//
북융 남이라고 해도, 방위에 따라가지 않아도 그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족이 남쪽에 융족이 북쪽에 있다면 남이고 북융이 되는것이지요. 그렇다고 융족인 강족이 북적이 된다고 보긴어렵다는겁니다. 저 시절 강족이 실제로 중국 사방으로 치면 북쪽에 없습니다. 오히려 강족은 저족과 더불어 중국내에 있던 종족입니다. 영가의난 이전의 효시인 제만년의 난이 중국내에 있던 저족에 의해 벌어집니다.
KIA_허영택//
전 님이 이해가 안가는게 뻔히 님이 가져온 님의 자료에서
적인 은 북쪽 이민족이라고 주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은 황교익을 논파하는데 써먹고
적인에 강족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니 왜 청대의 학자의 글을 끌어오십니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지난번엔 제 생각일 뿐이라서 적이 적위 정령족이라고 주장하셨을 때, 한문의 문장 구성과 논리상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최대한 이해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 전글에서 저는 제 주장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님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저와 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중국어 번역본 2종과 한국어 번역본 1종 등 총3종의 번역본을 제시했습니다. 님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신다면, 님처럼 해석하고 있는 번역본을 좀 가져와 보시기 바랍니다.
KIA_허영택//
님이 가져온 자료
干寶 原著, 黃滌明 注譯, [搜神記全譯], 貴州人民出版社, 1991
에서 제시하신게 여기서 적이라는 단어를 북적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자료입니다.
KIA_허영택//
가설은 재미로 보시면됩니다.
님이 가져오신 자료는 북적으로 해석해야된다는겁니다.
주석도 그렇게 나오잖아요.
오히려 범오랑캐 명칭으로 적이 쓰였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었습니다.
KIA_허영택//
college를 대학이라고 번역할수 있습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college가 모든 대학을 포함하는 범주로 쓰였다는 말과는 좀 다릅니다.
오히려 주석에는 명확히 적을 북적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달려있었는데
그게 본인의 해석과 정말 일치하는 자료라고 생각하시나요?
북당서초의 기록입니다. 搜神記云, 羌煮戎狄之食也, 自太始以來中國尚之. 라고 되어 있네요. 수신기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翟을 戎狄으로 바꿨습니다. 즉 翟=戎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 북당서초의 작자는 당(唐)의 우세남(虞世南)입니다. 원래의 수신기에는 그냥 '翟'이라고 하는 것을 '戎狄'이라고 바꾸어 기록했습니다. '융적' 역시 사전에는 그냥 보편적인 오랑캐를 뜻하는 거라고 설명하고 있죠.
KIA_허영택//
찾아주신 자료 잘 보았습니다.
제가 검색해본바로는 북당서초에
搜神記云來煮戌狄之食也自太始以來中國尚之 라는 글이 검색되어 있네요.
羌煮가 왜 來煮라고 표현되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신기의 羌煮,貊炙,翟之食也。自太始以來,中國尚之 이부분을 인용한 말이겠네요.
북당서초의 저자는 수신기의 저 대목을 翟을 戌狄으로 해석한게 맞고, 戌狄은 협의로 서진때 중원을 유린한 북적&서융 과 광의로 모든 이민족을 뜻하는 호(胡)로 모두 해석될수 있는 단어이며
후자의해석은 허영석님의 해석과 같네요.
잘 보았습니다
옳고 그른것을 떠나서 글쓴 분 감탄. 또 감탄. 댓글다신 분도 감탄. 또 감탄
불펜에 가방끈 긴 분들 분명히 계실 것 같아 조심스럽기는 한데........ 원글하고 댓글 쭉 읽어보니 "**족"이라는 개념을 약간 오해하시는 것 같아요. 중국 고대에서 민족 분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race 관념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서 편찬자들은 피부색이라든가 얼굴 모양과 같은 신체적 형질보다는 문화적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 외부나 내부의 족군에 대해 별도로 사료에서 분량을 할애할 때 족군의 기원(신화)제도습속 등을 먼저 기술하고, 그리고 중원 왕조와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연혁을 서술합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접할 수 있는 자료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역주로 나온 정사 외국전 시리즈가 있는데, 쭉 읽어보시면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과 서술 방식이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다른 분들도 지적해 주셨지만, 고대로 올라갈수록 夷狄蠻 등의 단어는 어떤 특정 종족(?)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중국 문화권 밖에 있는 집단" 정도의 의미고, 이렇게 생활양식이 이질적인 족군을 방위나 지역에 따라서 그룹화해서 느슨하게 분류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료에 나타나지 않는 "적족" 같은 개념 설정이 무리라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자료 찾고 정리하느라 수고하셨는데 태클 거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저도 조금 더 자료를 찾아서 글을 써보고 싶네요.
춘추라는건 그당시에 하동이 없이 1년을 춘과 추로만 나눠서 그런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