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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군생활 썰.

우리 아버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5사단 열쇠부대 소속 90mm 무반동총 특기였음.

 

81년부터 84년까지 3년간 경기도 연천군에서 군생활을 하셨다고 함.

 

12년 전에는 아버지 따라서 실제 군부대도 다녀옴.

 

(다만 증거사진은 없음. 군부대는 원칙적으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어쨌든 아버지는 옛날 102보충대에서 훈련받고서 본 부대에 배치됐는데, 당연히 신병 환영식이 열렸음.

 

신병이었던 아버지는 당연히 이 행사의 주인공이었고, 따라서 노래나 춤 같은 장기자랑을 선보여야만 했음.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워낙에 고지식하고 원리원칙에 철두철미하신 분이라서 대뜸 한 마디 하심.

 

"저 그런 거 잘 못 합니다."

 

그러더니 분대장이라는 양반 얼굴이 싹 바뀌었다고 함.

 

"뭐 임마, 신병이라는 놈이 사제물이 아직 덜 빠졌네."

 

그러더니 이 신병은 내버려 두고 대뜸 연병장에 분대원들 전원 집합을 시킴.

 

그러고는 오리걸음 기합을 시키면서 계속 뺑이를 돌리는 거임.

 

당시는 1981년 12월인데, 연천은 경기도 북부 중에서도 최전방에 속하는 지역이다 보니 엄청나게 추웠을 때였음.

 

그런데 한 댓바퀴 도는 걸 지켜보던 신병 아버지가 연병장으로 달려가서 소리쳤다고 함.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우리는 빨갱이 때려잡으려고 모인 거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끼리 이렇게 진을 빼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거긴 한데, 솔직히 지금 보면 빼박 고문관 맞음. 나같은 사회복무요원 출신이 보더라도.

 

근데 당시 우리 아버지는 큰아버지들 군대간 거 자랑하던 거 보고 자란 분이라 군대에 대한 환상이 엄청나셨다고 함.

 

그래서 빨갱이 때려잡는다는 것만 보고서 당시 이천시 백사면에서 면서기 하던 것도 잠시 그만두고 입대한 게 이거.

 

그러니 저런 말이 나올 수밖에.

 

어쨌든 분대장도 기가 찼는지 뺑이돌리던 분대원들 전부 들어가라고 하고는 한동안 신병 노려보다가 같이 들어감.

 

물론 밤중에 보복성 폭행을 당하긴 했다는데, 그냥 목울대 부근에 대걸레 같은 걸로 턱턱 치면서 협박하는 정도.

 

그때부터 한동안 분대원들이 아버지 행동 감시하면서 일러바칠 준비만 하고 있었다는데...

 

 

 

근데 우리 아버지는 특등사수라 90mm 무반동총을 거의 백 프로에 가깝게 맞췄다고 함.

 

실제로 102보충대에서 훈련병 시절에 받았던 만발사수 표창장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봄.

 

비결이 의도적인 오조준이었다고 하더라. 바람 세기 같은 거 가늠하면서 쏘니까 백발백중이었다고.

 

이러다 보니 분대 전투력이야 말할 것도 없이 고평가받았고, 덕분에 분대원들이 포상휴가 많이 받으니까 고문관 소리도 쏙 들어갔음.

 

당연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다 족칠 멍청이는 없을 거 아냐?

 

 

 

내가 더 놀랐던 건 아버지가 상병 달고 나서부터임.

 

아버지는 상병 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대장이 됐는데, 어쩌다 보니 전역하던 병장이 분대 내 마지막 병장이라 분대장 완장을 받아버렸다고.

 

그런데 분대장 달자마자 생활관(그때는 다른 이름이었다는데 기억 안남)에 액자 하나 걸어놓는 것부터 시작했음.

 

 

 

'폭력 금지'

 

 

그때 이후로 분대 내에 모든 폭력 행위는 금지됐음. 물론 눈치주는 정도는 됐지만, 여러분은 이때가 1983~4년도였다는 걸 알아두셔야 함.

 

군사정권 하에서 폭력 금지라는 게 발견됐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버지가 모범을 보이니까 아무도 터치를 안 했다더라.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요즘도 아버지 후임이었던 분이 간혹 연락도 오고, 같이 약주도 하고, 어쨌든 군대 선후임 치고는 꽤나 끈끈한 관계를 유지중.

 

참 신기해.

 

 

 

결론은 난 우리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거.

댓글
  • 치아바타 2018/10/30 01:14

    비정상이 판치는곳에선 정상이 이상해보이는거야
    고문관이 아니라 비정상인 군대가 문제인거지

  • RadioKnot 2018/10/30 01:25

    시대를 앞서나가셨으니 일단 회자되는 건 확정

  • 페니블루 2018/10/30 01:13

    대단하시네

  • RadioKnot 2018/10/30 01:23

    지금도 해당 부대에 걸려있나 궁금한데, 어쨌든 전설인지 아닌지 뭐...전설이었으면 좋겠네.

  • 내일시간표 2018/10/30 01:19

    폭력금지 멋있다....

  • 치아바타 2018/10/30 01:12

    멋진 분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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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dioKnot 2018/10/30 01:12

    그래도 그렇지, 저 신병 시절 에피소드는 진짜 잘못했다간 큰일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음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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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아바타 2018/10/30 01:14

    비정상이 판치는곳에선 정상이 이상해보이는거야
    고문관이 아니라 비정상인 군대가 문제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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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dioKnot 2018/10/30 01:15

    초나라 신하 굴원의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지만
    세상이 미치면 가끔 같이 미쳐줘야 함. 그렇지 않다가는 모난 돌이 정 맞는 거.
    근데 저러고도 살아남으신 거 보면 진짜 기백이 있어야 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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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니블루 2018/10/30 01:13

    대단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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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시간표 2018/10/30 01:19

    폭력금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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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dioKnot 2018/10/30 01:23

    지금도 해당 부대에 걸려있나 궁금한데, 어쨌든 전설인지 아닌지 뭐...전설이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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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시간표 2018/10/30 01:25

    포격 거의 100%에다가 폭력금지 시키신 분이시면
    지금도 충분히 전설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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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dioKnot 2018/10/30 01:25

    시대를 앞서나가셨으니 일단 회자되는 건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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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인87호 2018/10/30 06:35

    나도 너희 아버지 존경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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