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동아시아에서 유별나게 민주주의 발달한게 이유가 있었네 ㅎㅎ
조선사는 보면 볼수록 ㅎㅎ
루리웹-31953997212018/09/20 17:35
징징종특
Drake Nero2018/09/20 17:36
이런 애들 특) 자기 손해보는 일 생기면 누구보다 징징댐
물개마왕2018/09/20 17:40
어이 징징이 자넨 동전이나 좀 줍게나
흐앗 흐앗 사랑의 교미다
람쥐썬더2018/09/20 17:51
엄마콘을 쓰기 적절한 댓글이군
a101a782018/09/20 17:54
.
이름없는 자2018/09/20 18:08
어떤 징징도 받아주고 존중해주는게 민주주의의 최고 미덕이고 이걸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했는데
꼬우면 중국 러시아 가시던지
voidall2018/09/20 17:35
그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었으니 했었을거고 그런면에서 자랑스럽기도 하네
iDOLM@STER2018/09/20 17:55
어떻게 보면 위정자들간의 밥그릇 싸움이기도 했기에 무조건 좋게 볼 건 아니지만
전세계 통틀어서 저런것마저 보관해둔 기록덕후의 나라는 참 대단한거 같음
섹(시)스(타킹)2018/09/20 17:36
서명운동 도랏
한심한놈2018/09/20 17:36
그래서 청마갤에 온갖 쓰레기 같은 청원이 올라오는거구만
슈발로이카12018/09/20 17:36
미국도 데스스타 만들자고 청원한건 명예 조선인이냐
최면두꺼비 대왕2018/09/20 17:53
명예 은하제국 신민임
오덕애니프사2018/09/20 18:00
???: 미국도 고대 환국의 피가 옅게나마 흐르고 있기 때문
Starfish772018/09/20 17:38
현대 동아시아에서 유별나게 민주주의 발달한게 이유가 있었네 ㅎㅎ
조선사는 보면 볼수록 ㅎㅎ
Emrakul2018/09/20 17:39
사도세자 추존만인소 '절반'만 펼쳐놓은거
...............2018/09/20 17:56
읽다가 지치겠다 안읽을수도 없는건데
의사양반과환자들2018/09/20 17:56
경복궁은 이게 다 들어가더라
카나그라드2018/09/20 18:07
으어어어어
오릿2018/09/20 17:44
한번 엿먹어봐라 라는 의미가 클것 같음 ㅋㅋㅋㅋ
sijma2018/09/20 17:46
저거 왕이 읽긴 했을까....?
🔥헬마블🔥2018/09/20 17:48
안읽으면 폭군
읽고 반영하면 성군
불꽃저그2018/09/20 17:48
왕 주업무가 상소 읽기임......
은근 지금 청와대 청원 시스템이랑 비슷함
상소 올리면 관련 기관 담당자한테 처리하게 명령
outsidaz2018/09/20 17:50
분량의 99%가 연대서명한 선비들 이름이라 상소 내용이랑 핵심 인물 이름 정도만 보고받았을듯.
온누리누리루리2018/09/20 18:13
렛츠고 시간탐험대같은데 보면 잘나와있음 의외로 조선시대 왕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음
흑우천사2018/09/20 17:48
여러모로 압박적이겠다...
그로테반트2018/09/20 17:49
찬란하다..
희망의끝 요그사론2018/09/20 17:50
한국사람특) DNA에 상소 기질이 박혀있음
루리웹-40377058102018/09/20 17:50
읽다 빡쳐서 곤장쳐도 할말 없을거같은 길이인데
죄수번호2799354952018/09/20 17:51
임금님 상소근 생기겠네 ㅋㅋㅋ
지온NT병사2018/09/20 17:53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사라다이2018/09/20 17:54
저래도 안죽었다는 거고. 그게 또 먹혔다는거자나.
무려 왕정국가에서 말이지.
난 대단하다고 생각해.
라훔2018/09/20 18:11
그 성깔더러운 태종이 지킨 전통인데 지가 뭐라고 깨겠냐
잉여대왕2018/09/20 18:04
만인소 자체가 저 시기 선비들의 힘을 보여주는거지. 양란 이후 산림이라고 자기 지역에 은거하며 벼슬을 하지 않는 명망있는 선비들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중앙권력은 차츰 서울쪽애들끼리 해먹으면서 지방 선비들끼리 저렇게 똘똘 뭉쳐서 올리면 왕도 무시 못한다. 근데 사도세자 추존이면 정조가 급방긋하다 못해 감동으로 눈물 좔좔 흘리며 좋아라 했을 문제 아니냐
outsidaz2018/09/20 18:05
실록에 남아있는 만인소는 딱 7번임.
유생만 1만명 모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님.
원래는 이전부터 백인소, 천인소라고 해서 연대서명한 상소가 올라가는 일은 있었는데 정조 때부터 만 명까지도 모이는 대규모로 발전한 것.
왜 이렇게까지 사람이 늘어났냐 하면 영남지역 선비들이 자신들의 생존 문제 때문에 단합한 결과임.
영조 때 터진 이인좌의 난에서 실제로 가장 오래 버텼던 건 영남지역에서 일어난 반란군인 정희량이 이끌던 군대임.
시작도 무려 7만이었고 경남 함양에서 출발한 반란군이 경북의 안동, 상주까지 점령할 정도로 기세가 거셌음.
말이 이인좌의 난이지 실제로 끝까지 버티고 가장 크게 영조를 괴롭혔던 건 영남 쪽의 정희량임.
그래서 반란 진압 후에 영조는 대구에다 무슨 적대국 점령한 것처럼 '영남을 평정했다'는 의미의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워버림.
당연히 영남 지역 전체는 반역향 취급을 받고 남인이 대세이던 영남 선비들은 노론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영영 벼슬길이 막혀버림.
그렇다고 노론이 된다고 해서 출세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이미 학연이 혈연만큼 중요해진 시기에 그런 짓 해봐야 노론-남인 양쪽 모두에게 욕만 얻어먹을 뿐임.
그래서 벼슬길이 막히고 앞날이 막막해진 영남 선비들이 세월 흘러 정조 때가 돼서 살 길을 도모하려고 했던 게 바로 사도세자 추존을 요청하는 만인소임.
시작 명분 자체가 정조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공격을 실드 쳐주는 것에서 시작하고 정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문제 중 하나인 사도세자 추존 문제도 같이 끼워 넣어서 정조의 환심을 사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상소였음.
물론 그 와중에 사도세자 죽음에 관련된 노론들 처벌하라면서 노론 공격도 잊지 않았고.
아무튼 이렇게 영남 지역 선비들이 노력도 했고 정조도 이제는 영남 지역을 풀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정조 생전에 꽤 많은 진전을 봤지만 정조가 사망하면서 실패함.
결국 영남 남인들의 정계 진출은 세도 정치 시절 다 지나고 흥선대원군 시대에나 가서야 가능해짐.
이런 애들 특) 자기 손해보는 일 생기면 누구보다 징징댐
사도세자 추존만인소 '절반'만 펼쳐놓은거
그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었으니 했었을거고 그런면에서 자랑스럽기도 하네
현대 동아시아에서 유별나게 민주주의 발달한게 이유가 있었네 ㅎㅎ
조선사는 보면 볼수록 ㅎㅎ
징징종특
이런 애들 특) 자기 손해보는 일 생기면 누구보다 징징댐
어이 징징이 자넨 동전이나 좀 줍게나
흐앗 흐앗 사랑의 교미다
엄마콘을 쓰기 적절한 댓글이군
.
어떤 징징도 받아주고 존중해주는게 민주주의의 최고 미덕이고 이걸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했는데
꼬우면 중국 러시아 가시던지
그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었으니 했었을거고 그런면에서 자랑스럽기도 하네
어떻게 보면 위정자들간의 밥그릇 싸움이기도 했기에 무조건 좋게 볼 건 아니지만
전세계 통틀어서 저런것마저 보관해둔 기록덕후의 나라는 참 대단한거 같음
서명운동 도랏
그래서 청마갤에 온갖 쓰레기 같은 청원이 올라오는거구만
미국도 데스스타 만들자고 청원한건 명예 조선인이냐
명예 은하제국 신민임
???: 미국도 고대 환국의 피가 옅게나마 흐르고 있기 때문
현대 동아시아에서 유별나게 민주주의 발달한게 이유가 있었네 ㅎㅎ
조선사는 보면 볼수록 ㅎㅎ
사도세자 추존만인소 '절반'만 펼쳐놓은거
읽다가 지치겠다 안읽을수도 없는건데
경복궁은 이게 다 들어가더라
으어어어어
한번 엿먹어봐라 라는 의미가 클것 같음 ㅋㅋㅋㅋ
저거 왕이 읽긴 했을까....?
안읽으면 폭군
읽고 반영하면 성군
왕 주업무가 상소 읽기임......
은근 지금 청와대 청원 시스템이랑 비슷함
상소 올리면 관련 기관 담당자한테 처리하게 명령
분량의 99%가 연대서명한 선비들 이름이라 상소 내용이랑 핵심 인물 이름 정도만 보고받았을듯.
렛츠고 시간탐험대같은데 보면 잘나와있음 의외로 조선시대 왕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음
여러모로 압박적이겠다...
찬란하다..
한국사람특) DNA에 상소 기질이 박혀있음
읽다 빡쳐서 곤장쳐도 할말 없을거같은 길이인데
임금님 상소근 생기겠네 ㅋㅋㅋ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저래도 안죽었다는 거고. 그게 또 먹혔다는거자나.
무려 왕정국가에서 말이지.
난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성깔더러운 태종이 지킨 전통인데 지가 뭐라고 깨겠냐
만인소 자체가 저 시기 선비들의 힘을 보여주는거지. 양란 이후 산림이라고 자기 지역에 은거하며 벼슬을 하지 않는 명망있는 선비들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중앙권력은 차츰 서울쪽애들끼리 해먹으면서 지방 선비들끼리 저렇게 똘똘 뭉쳐서 올리면 왕도 무시 못한다. 근데 사도세자 추존이면 정조가 급방긋하다 못해 감동으로 눈물 좔좔 흘리며 좋아라 했을 문제 아니냐
실록에 남아있는 만인소는 딱 7번임.
유생만 1만명 모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님.
원래는 이전부터 백인소, 천인소라고 해서 연대서명한 상소가 올라가는 일은 있었는데 정조 때부터 만 명까지도 모이는 대규모로 발전한 것.
왜 이렇게까지 사람이 늘어났냐 하면 영남지역 선비들이 자신들의 생존 문제 때문에 단합한 결과임.
영조 때 터진 이인좌의 난에서 실제로 가장 오래 버텼던 건 영남지역에서 일어난 반란군인 정희량이 이끌던 군대임.
시작도 무려 7만이었고 경남 함양에서 출발한 반란군이 경북의 안동, 상주까지 점령할 정도로 기세가 거셌음.
말이 이인좌의 난이지 실제로 끝까지 버티고 가장 크게 영조를 괴롭혔던 건 영남 쪽의 정희량임.
그래서 반란 진압 후에 영조는 대구에다 무슨 적대국 점령한 것처럼 '영남을 평정했다'는 의미의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워버림.
당연히 영남 지역 전체는 반역향 취급을 받고 남인이 대세이던 영남 선비들은 노론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영영 벼슬길이 막혀버림.
그렇다고 노론이 된다고 해서 출세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이미 학연이 혈연만큼 중요해진 시기에 그런 짓 해봐야 노론-남인 양쪽 모두에게 욕만 얻어먹을 뿐임.
그래서 벼슬길이 막히고 앞날이 막막해진 영남 선비들이 세월 흘러 정조 때가 돼서 살 길을 도모하려고 했던 게 바로 사도세자 추존을 요청하는 만인소임.
시작 명분 자체가 정조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공격을 실드 쳐주는 것에서 시작하고 정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문제 중 하나인 사도세자 추존 문제도 같이 끼워 넣어서 정조의 환심을 사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상소였음.
물론 그 와중에 사도세자 죽음에 관련된 노론들 처벌하라면서 노론 공격도 잊지 않았고.
아무튼 이렇게 영남 지역 선비들이 노력도 했고 정조도 이제는 영남 지역을 풀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정조 생전에 꽤 많은 진전을 봤지만 정조가 사망하면서 실패함.
결국 영남 남인들의 정계 진출은 세도 정치 시절 다 지나고 흥선대원군 시대에나 가서야 가능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