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752786

뻘글우측담장...'담배피는 아들' 글을 읽고.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서 그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요..

단, 저 나이대의 남학생들을 지도해본 경험(입시학원)으로 우측글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적어봅니다.

 

제 앞에서는 그럭저럭 예의도 바르고 공부도 곧잘 하는 고1 학생이었는데,

알고 보니 흡연 음주는 기본이고 가출 전력까지 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이가 거짓말 하기를 밥 먹듯이 하고,

담배 냄새 난다고 엄마가 따져물으면 길길이 뛰면서 지레 화를 내는 패턴이 우측담장글과 똑같은 아이였어요. 

심지어 한술 더 떠서 집까지 나가 버렸다고 하네요.

물론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 앞에서 욕은 안했을 겁니다.

엄마는 저에게 자기 아들의 말을 믿지 말고 공부를 엄청 많이 시키고 항상 감시해달라는 부탁을 했었습니다.


제가 이상하게 느낀 건, 이 엄마가 제공한 정보와는 달리 이 아이가 보인 모습은

지극히 괜찮은, 심지어 매력적인 녀석이었다는 점입니다.

예의도 바르고 칭찬해주면 씩 웃으면서 좋아하고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딴 짓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머리도 좋아서 전국연합모의고사 국영수는 1등급 찍는 아이였습니다. 내신은 좀 안좋지만요.

저는 어머니께 부탁을 했어요, 아이를 쪼지 마시고 일단 한 학기만 지켜봐달라고요.

그래서 이 녀석과 의도적으로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머리 깎아서 별로일 줄 알았는데 멋있네? "

" 오늘은 왜이리 졸아? 넌 원래 눈빛이 샤프한데.."

" 내가 너처럼 재능이 있었으면.." 등등.

디스인지 칭찬인지 모를 관심의 말들을 던지면서 아이와 소통하고자 했고 점차 심리적 거리를 좁혀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아이가 결정적으로 제게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이 녀석이 교실에 들어오는데,  몸에서 담배 냄새가 확 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 힘들지?...끊는 게 힘든 거 안다..얼마나 힘들면 수업 중간에 나갔다 오겠니, 암... " 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흠칫 놀라더군요.

순간 교실이 빵 터졌고 아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이더니 멋쩍게 웃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이 녀석이 제게 먼저 말도 걸기 시작했고, 눈빛엔 경계심이 풀려 있었습니다.

한 두 달 정도 지속적인 관심 표현, 칭찬, 이해, 공감, 제가 쓴 이 방법들이 먹힌 걸까요?

살살 유도하니까 자신의 가출전력, 흡연경력, 음주방식 등등 ...정말 솔직하게 다 털어 놓을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노는 게 재미있다, 공부하기 싫다, 엄마가 하는 얘긴 짜증난다,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등등.

마음 속 얘기까지 꺼내어 놓았습니다.

.

제가 이 아이를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계몽 내지 훈계하려 했다면 아이는 결코 제게 다가오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주로 들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너를 좋아하고 너의 눈높이에서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줬을 뿐입니다.

어머니께는 00이 잘하고 있으니 믿어주시고 칭찬해달라고 매시간 문자를 드렸고

이 사실을 아이가 알게 되면서 저를 더 믿게 되었다고 할까요.


저와 3월에 만났는데 지금 6개월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됐냐면...

항상 빼먹고 안해오던 과제 완벽히 해오고, 약속시간 보다 10분 먼저 와서 앉아있습니다. 변한거죠.

술 담배는 못 끊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새벽까지 놀다 들어오고 부모님께 반항하고 외박하는 일은 이제 안한다고 하네요.

엄마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9월 모의고사도 너무 잘봤고, 애가 집에서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고 너무 좋아하십니다.


저도 저이지만, 그댁 아버님께서도 저와 같이 아이를 이해해주는 방법을 쓰셨다고 합니다.

여름방학 어느 날쯤 아이가 술한잔 하고 새벽 1시에 들어와서 어머니가 야단을 치니까 

" 학원 끝나고 막차를 놓쳐서 집까지 걸어오느라 늦었다"라고 아이가 거짓말을 한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랬더니 그 댁 아버님께서 갑자기 아이를 방으로 조용히 부르셨대요.

그리고 10만원을 주시면서 " 남자는 돈이 가오다. 돈 없어서 걸어다니는 짓 하지  말아라. " 하셨답니다.

아이가 업이 되어 자랑하듯이 말하더군요.

이것이 이 아이에겐 긍정강화가 되어 공부로 보답하고자 하는 모습으로까지 발전된 것입니다.


고등학생 정도면 지금까지 굳어진 인성이나 인격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어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얘는 안돼!" 라고 어떤 잣대로 재단하기 보다는, 일단은 그 문제 많은? 아이와 진짜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어른들이 한다면 변화하는 아이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전부라고는 말 못하지만요.


참 어렵죠. 어떤 게 진짜 내 아이에게 정답인지도 모르겠구요.

담장글 본글만 보면 부모된 입장으로서 충격적이고 황망하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상황에서 아이가 보였던 행동과 언행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아이가 왜 저렇게까지 됐는지에 대한 원인과 과정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고 대응을 해나가시면

의외의 결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아이가 밖에서는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성실한 편이라고 하시니, 아이에 대해 희망을 잃지 마시길요.

댓글
  • 폭풍선빈 2018/09/19 03:28

    자기전에 읽기에 참 좋은 글이네요.
    저는 부모는 안될것같아 소용없겠지만,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것같은 글이네요. 추천.

    (4bAgUc)

  • 격동70년생 2018/09/19 03:29

    [리플수정]경험의 조언 ...이네요.
    애기키우는 아빠로서 잘 새겼습니다.

    (4bAgUc)

  • 닉냄뭐하지 2018/09/19 03:30

    같이 사교육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수 배우고 추천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4bAgUc)

  • 바둑이 2018/09/19 03:32

    형님 좋은글 추천하고 갑니다.
    형님 제발 문지기 문빠 이분들도 교화 좀 시켜주세요 부탁드립니다

    (4bAgUc)

  • 김선빈3 2018/09/19 03:36

    추천드립니다

    (4bAgUc)

  • SangChil2 2018/09/19 03:38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4bAgUc)

  • 24시알바 2018/09/19 03:50

    [리플수정]참공감가는 이야기가 많네요
    부부가 같이 한마음으로자식농사에 한쪽이 다그치면
    한쪽은 살포시 감사주고 다가오면 자식이고마워서아니
    내가좋아서 그또래가 생각하는 이상의 경험을 같이나누고하니
    자식들이 시기적으로 방황해도 그순간을 잘넘기는
    것 같더라고요
    장사하면서 애들3명 키우면서 겪은 경험중
    이게젤중요하더군요

    (4bAgUc)

  • 황제펭귄 2018/09/19 21:26

    사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학생에 대해 그렇게 애정으로 다가가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4bAgUc)

  • 꾸9꾸9 2018/09/19 22:26

    제가 느낀건, 자식을 바꾸려하지말고 자식을 이해하려 하는 순간, 이해하는 순간부터야 자식이 바뀐다는거에요. 부모로서나 선생님으로서 가르쳐본 경험은 없지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항상 힘들어했던 친구들은 본인 부모님이 본인을 이해조차 못한다는거에 힘들어하더라고요.

    (4bAgUc)

  • 짐금님 2018/09/19 22:28

    아버지가 좋네요. 저런 교육은 아버지가 시킬수 있는 거죠

    (4bAgUc)

  • WhiteCrow 2018/09/19 22:40

    돈 아낄려고 걸어다니는 짓 많이 했는데... ㅠㅠ

    (4bAgUc)

  • _AcE 2018/09/19 22:40

    좋은글 감사합니다

    (4bAgUc)

  • Metheny 2018/09/19 22:45

    간만에 아주 공감 가는 글이네요.. 근데, 이것도 부모입장이 되어 보면 쉽지만은 않게 되지요..

    (4bAgUc)

  • 랑그릿사 2018/09/19 23:11

    조용히 추천합니다

    (4bAgUc)

  • 시간속으로 2018/09/19 23:49

    중2 아들래미와 좀전에 한바탕하고 읽은 글인데... 많은걸 생각하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4bAgUc)

  • 엘지바라 2018/09/20 01:05

    황제펭귄/ 에구 담장에 걸릴 지 몰랐는데...;;
    저도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나마 제 눈에 괜찮고 희망이 보이는 학생들에겐 부족하나마 제 열정을 다해보려고 노력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때때로 어느 선에서 포기, 타협하게도 되고..그러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4bAgUc)

  • 9LG트윈스4 2018/09/20 01:11

    제가 생각하는 교육과는 조금 다르지만...
    좋은글 추천하고갑니다~~~

    (4bAgUc)

  • IRhythm 2018/09/20 01:18

    추천드립니다

    (4bAgUc)

  • 은떠 2018/09/20 01:50

    제 교육관이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경험해봤지만 아무리 사춘기라도 하나의 인격이죠

    (4bAgUc)

  • 30두산 2018/09/20 01:52

    추천합니다
    주변 엄마들과 자주 하는 말이 있죠
    내 아이를 남의 아이려니.. 하고 키워라
    무관심이 아닌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조금 잘 해도 막 칭찬하고
    잘못을 해도 왜 그랬을까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미죠

    (4bAgUc)

  • 크림슨블루 2018/09/20 02:42

    좋은 글입니다. 원글님께서 꼭 보셨으면 합니다. 저도 저나이때를 막지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거든요. 부모가 쉽지않습니다. 우리 중년가장들...화이팅하세요.

    (4bAgUc)

  • 포네그리프 2018/09/20 02:56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4bAgUc)

  • 상남자 2018/09/20 03:25

    솔직히 이런케이스는 매우매우매우 적죠 모의고사 국영수 1등급나올정도면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하던 애가 살짝 비뚤어진 케이스같은데 그런 교화가능한 학생들은 이런방법이맞을지몰라도, 맛간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이런방법쓰다간 유흥비나 지원해주는 꼴

    (4bAgUc)

  • 부랄이던눈 2018/09/20 04:20

    걸레는 빨아도 걸레죠
    사람 고쳐쓰는거 아닙니다

    (4bAgUc)

  • noontingLG 2018/09/20 05:03

    중간까지 베레타님인줄... 글 차분하게 잘 쓰시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4bAgUc)

  • 녹차맛향기 2018/09/20 08:15

    추천하고 스크랩합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읽어야 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4bAgUc)

(4bAgU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