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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생각하며 떠올린 말들은 모두 다 너로 물들어 있었다

1.
우리가 겨우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가 있었다. 오빠. 이 향기 괜찮지 않아? 네가 시향지를 내밀며 내게 물어봤을 때, 나는 사실 시향지의 향보다 네 손목에서 나는 향수의 이름이 궁금했다. 콕 찝어 이름을 말하진 못할 어떤 과일 향기. 그게 무슨 향인지 네게 물어도 되는지 궁금했다. 아니 사실, 그렇게 물어보는 척, 네 손목을 잡아도 될지 궁금했다. 그토록 손을 잡고 싶었던 날. 나는 네게 고백을 했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2.
네 당당한 목소리가 좋다. 그럼에도 하나하나 배려가 느껴지는 네 행동이 좋다. 네 예쁜 얼굴이 좋다. 귀여운 얼굴과는 또 다른 도담한 몸매가 좋다. 밝은 햇살같은 네 태도가 좋고, 간간히 드러나는 차분한 밤비같은 네 성격이 좋다. 너를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하루 나절을 말할 수 있다.
네가 좋다. 그런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너와 나만 아는 노래를 지어 들려주고 싶다. 부드럽게 머리를 감겨주고 싶다. 네 취향에 딱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싶다. 파묻힐 만큼 많은 인형을 사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냥 행복해진다. 너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말들은 모두 다 너로 물들어 있었다.
3.
...계절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너와 있을 때면 시곗바늘이 몇 칸씩 건너 뛰며 제멋대로 흐르는 것 같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그 모든 날들이 좋았다. 너와 함께 있는 날들은 꽃그늘마저 아름다운 봄이었으며, 뜨겁던 밤이 너무 짧던 여름이었다. 가장자리 곱게 닳은 가을이었고, 쌓인 눈처럼 포근하던 겨울이었다.
4.
언젠가 너를 보고 집에 내려가던 길, 버스 창문에 서린 김에 네 이름을 적은 적이 있다. 너와의 만남은 갈증이었고 그리움은 관성이었다. 너와 헤어질 때면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어졌다. 마음이 생각을 앞질러서 손을 꼭 잡고 있는 네가 벌써부터 그립곤 했다. 너는 멀리 있어도 나를 설레게 했고, 가까이 있어도 나를 그립게 했다.
5.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말을 추리고 추려서 써도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시간을 아무리 넓게 잡아도 여백은 부족하고 행간에는 쓰지 못한 기억들이 넘쳐 흐른다. 그럼에도 결국 이 두서없는 주절거림은, 모두 다 한 마디의 동어반복이다.
하고싶은 말이 하나밖에 없다.
사랑한다.
댓글
  • 강철의열제 2018/08/31 05:02

    글쓰시는 분 인가요?
    새벽부터 아련하네요...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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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펑키베베 2018/08/31 07:28

    그래서 결국 헤어지긴 하신거죠?
    그런줄 알고 추천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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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gdha 2018/08/31 09:54

    코발트 블루, 쁘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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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碩 2018/08/31 09:55

    뜨겁던 밤이 너무 짧......
    시발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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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두뎌란더 2018/08/31 10:14

    뭐여시벌 아침부터 이게뭐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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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쟁이 2018/08/31 10:15

    잘 읽었습니다. 가슴 어딘가 뭉클해지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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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남친 2018/08/31 10:30

    막줄에는 헤어질줄 알았는데..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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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웰시콕이 2018/08/31 11:17

    글이 이쁘니까 이번만 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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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도깨비 2018/08/31 1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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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백곰 2018/08/31 13:00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노래, 실천문학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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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브레이커 2018/09/03 13:05

    와이프:...라고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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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로저스 2018/09/03 13:11

    유머인줄알았는데 눈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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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랭구아르 2018/09/03 13:15

    글이 참 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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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렸다바꿔라 2018/09/03 13:18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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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유 2018/09/03 13:36

    너를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하루 나절을 말할 수 있다.
    너무나 아련해지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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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초 2018/09/03 13:37

    결말이 마음에안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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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답인정 2018/09/03 13:59

    담담하지만 감성적이고 가슴설레는 글이네요 ㅠㅜ
    하지만 커플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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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빨믿냐? 2018/09/03 14:32

    쓰벌
    오유 자~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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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되면퇴근해 2018/09/03 15:00

    오징어들한테 이상한말로 물들이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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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유나 2018/09/03 16:26

    그래서 커플이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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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블링v 2018/09/03 16:56

    만남은 갈증이었고 그리움은 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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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리퀸♥ 2018/09/03 17:59

    요약 : 작성자 냄새 페티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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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앤나 2018/09/03 19:59

    나이를 먹으면서 감수성이 풍부해졌나 예전같으면 부들부들했을 글에 지금은 그저 뭉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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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평화^*^ 2018/09/03 21:30

    제가 해보고 싶은 사랑이네요...
    아름답습니다 쓰니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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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이안와 2018/09/03 22:22

    그런데 상대 여자는 저 남자의 사랑의 깊이를 몰라.
    이를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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