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골대 등이 한이 준 백마에 영롱한 안장을 갖추어 끌고 오자 상이 친히 고삐를 잡고 종신이 받았다.
용골대 등이 또 초구를 가지고 와서 한의 말을 전하기를, "이 물건은 당초 주려는 생각으로 가져 왔는데, 이제 본국의 의복 제도를 보니 같지 않다.
따라서 감히 억지로 착용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의를 표할 뿐이다." 하니, 상이 받아서 입고 뜰에 들어가 사례하였다.
- 인조실록 中
내 앞으로 나오니 어여쁘다. 너에게 지난 일을 말하지 않겠다. 나는 너와 더불어 앞일을 말하고자 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조선의 왕은 삼배구고두례를 하여라!
용골대 등이 인도하여 들어가 단 아래에 북쪽을 향해 자리를 마련하고 상에게 자리로 나가기를 청하였는데, 청나라 사람을 시켜 여창하게 하였다.
상이 삼궤구고두의 예를 행하였다.
-인조실록 中
국가의 대원수가 침략군의 수장에게 절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치욕으로 남을 대굴욕.
일제강점기로 조선이 사라진게 제일 큰 굴욕같은데
걍 우리 형님 아우하자 ^^ 할때
예 형님 ^^ 했으면 군신의 관계까진 안가잖아...
내 생각은 좀 다름. 차라리 저렇게 해서라도 전쟁을 빨리 끝낸게 차라리 나은 것 같고 그 뒤에 청나라와 큰 트러블 없이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다행임. 저건 그냥 자존심이 상하는거고 한국사 최악의 사건들은 다른 것들이지.
하도 뿅뿅짓한게 많아서 동정심이 안든다
저때 그냥 피만 내지말고 땅에 머릴 박아서 죽어버렸어야 했어 저새낀
하도 뿅뿅짓한게 많아서 동정심이 안든다
사실 명이 임진왜란때 너무 도와준게 커서
그거 이전에 청이 명을 이긴 행운 수십가지 중 한 가지 요소만 빠져도 청이 명을 절대 못 이길 정도로 망해가는 명조차도 국력이 넘사벽이라 저 당시에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명 편 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시기임.
걍 우리 형님 아우하자 ^^ 할때
예 형님 ^^ 했으면 군신의 관계까진 안가잖아...
그럴리가
원래 청이 화친을 맺자고 우호적으로 나왔었는데
3번인가? 몇번인지는 모르겠는데 조선에서 배짱 팅구다가 개털린거 아니었냐?
최소한 저 정도로 굴욕적인 대접을 받진 않았지.
당시 명과 청의 싸움은 청이 압도적으로 밀어제끼던게 아니었음
근데 당시 명에게 진 은혜가 너무 커서 대놓고 손절하고 후금에 붙자고 하면 반란날 수준이였음
그럴리가. 형님아우는 진즉에 했고 이제 형님아우말고 군주신하하고 명나라는 버려라 그리고 우리 경제힘드니까 이거내놓고 저거내놓고 저거도 내놔라 ^^꼬우면 전쟁하던가
한건데 그걸 네하고 받아들이는게 더 웃긴건데. 지금으로치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야 미국이랑 동맹끊고 우리 보호국해라 하는 셈이고.
명 만력제가 해준거 생각하면 요즘 시대엔 미국이랑 한미동맹 끊고 중미동맹 맺는수준일껄?
아직 명과 청 중에서 어디가 이길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명나라를 적으로 돌릴수 있나....
중국이 한국 보고 먼 미국 말고 이웃인 우리랑 동맹 맺으라 하는데 한국이 무시하다가, 전격적으로 중국 쳐들어와서 한국 항복하고, 그래도 미국이 있으니까 복수할 줄 알았는데 거짓말 같이 미국에서 반란 일어나고 중국에 침략 당해 멸망하는 시나리오 비슷하지
명이 내분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산해관도 못넘던 청인데 청이 이길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당시 청도 뒤에서 대놓고 적대하고 깔짝대던 조선을 저정도로 봐준 건 명과의 전쟁이 어려운 국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병자호란은 청 입장에서도 도박수 였어요.
김자점이 멍청한 짓 안하고 왕이 빨리 남쪽으로 피난가서 근왕병을 모았으면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겁니다.
물론 역사애 만약은 없더지만...
한중도 아니고 중미라니 혼란
예리하다 ㅋㅋㅋㅋㅋㅋㅋ
일찐이 빵셔틀하나 잡으려고 작정하고 털려고 두드려 패는데
덩치큰 동네형이랑 친한상태에서 바로 굽히고 들어가면 멍청한거 아냐?
예 형! 은 했어.
근데 그 형이 이제 너네가 아버지라 부르는 명을 밟으려고 하는데
2차 세계대전 때 낙지독일 골 날까봐 후방평탄화를 하고자 한다. 명과 관계 끊어라
하니까 아 형 그건 좀...
했다가 형이 빡돌아서 지금 명과 전쟁 중이건 말건 우르르 몰려와 밟은 거
조선의 외교 스텐스는 문제 될게 없었어.
당시 청과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도 다 근거가 있었음. 청은 양면전쟁 중이었고
조선이 버텨주고 명이 반격하면 청이 오히려 나가리 되는 거였으니까.
근데 그때 국경에서 청을 1차 저지해야 하는 인물로 인조가 김자점했을 뿐
저때 그냥 피만 내지말고 땅에 머릴 박아서 죽어버렸어야 했어 저새낀
피 안났어 피났단건 대표적인 야사일뿐
그리고 아들 줘패서 죽였다고 카더라가 있음
자기도 아들 죽인 의원한테 진료받다 죽은거 보면 그냥 돌팔이의 의료사고 더블킬같음
일제강점기로 조선이 사라진게 제일 큰 굴욕같은데
저게 바로 병력에 투자안해서 그런거지 ㅉㅉ 임진왜란때 그만큼 당했으면 경각심이라도 가져야지 정신승리하다가 저 꼬라지
경각심 가졌고 투자도 했는데 이괄이 반란일으켜서 도루묵
자그만치 10여년동안 온나라가 전쟁통이었는지라 조선 경제의 근본인 땅이 엉망진창이 된상태임
거기다가 인구도 임진왜란 당시에는 점령통ㅊ치하려고 해서 그나마 살려는 뒀는데 정유재란때는 그딴거없이 학살해버려서 인구도 확 줄어든 상태
이거 복구하는것도 수십년은 걸리는데 군비확충은 너무 무리가 아니었을가 싶음
병력문제는 아님.. 이괄의난이 있었다 쳐도 조선의 인구는 후금의 4배 가까이됨;
거기다 임진왜란을 거쳐서 조총, 대포, 화약에 대한 투자와 연구, 수입을 통해서 군사기술도 앞선 상태..
가장 큰 이유는 방어적 우위, 보급의 용이성, 무기체계의 우위, 압도적 징집가능인구 이 모든 우위성을 씹어먹는 절망적인 조선의 장군, 임금의 전략, 전술적 무능 때문임..
타이밍 문제일 뿐임. 이괄이 난 일으키기 전에 처들어왔거나 이괄의 난 이후 몇년간 수습해서 증발한 북방 정예병 수복한 뒤에 청이 처들어왔다면 저렇게 초고속으로 한양까지 달려올 수 없었음.
징집가능인구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음. 그렇게치면 징집가능인구가 압도적인 중국이 유목국가들에게 털렸던거를 어찌 설명할거임? 화약무기도 마찬가지인데 16-17세기 국제적인 화약무기 발달에 대한 연구들은 당시 화약무기가 중앙아시아의 유목국가를 상대로 할때 확실한 우위를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음.
전략, 전술의 무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조선이 청을 상대로 가질만한 우위성이라는게 딱히 없었음.
이괄의 난도 있었지만 조선시대 간신중 탑급인 김자점이 군 사령관이었음 남한산성이 고립되었을때 청군 후방도 못끊고 미적거리다가 조선임금이 무릎꿇게 만든 ㅂㅅ 오브 ㅂㅅ
정예병이 있었음.
이괄의 난으로 수 만명이 갈려나갔다고 해도 그건 정묘호란에서 문제가 되었던 거지 그 후 중앙군을 중심으로 병력 확충을 했음.
단지 도원수 김자점이 첫 전투 패배 후 그 정예병으로 짱박혀 숨어있었기 때문에, 청의 뒤통수를 치는 등의 전술로 전황을 유리하게 끌고 갈 기회조차 날려버렸음.
거기에 인조가 피난 실패로 남한산성에 쳐박혀서 근왕군들이 시야를 넓게 봐서 잔쟁을 이끄는 게 아닌 왕 하나 구하는데 급급한 상황이 되어서 문제가 많았음.
여러모로 댓글을 보면볼수록 걍 저때의 조선은 노답이라고 밖에는....
중근세시대에 원정은 엄청난 페널티인데요?.. 보급에서부터 최악의 패널티를 갖고..성을 무너뜨릴 정도의 화력이 나오기전 화약무기로 방자는 20대 1도 무리없이 막습니다. 방어적 이점자체가 우위성이고 전쟁에서 인구대국이 장기전가서 인구빨로 이겨버리는 케이스가 교과서적인 흐름인데 우위성이 없다뇨;
말은 그렇지만 한반도의 국가들은 대부분 기마민족에 대항하여 그럭저럭 잘 비벼왔음
고려때는 역관광도 자주 시켯고
근대 인조때는 정말 ㅄ 같은 경우의수가 연속으로 터져서 왕이 빠지지도 못했고, 1군은 반란으로 전멸했고, 그나마 있던 정예병도 군대의 군자도 잘 모르는 간신배한테 몰아줘서 내내 한것도 없었음
이건 전체적으로 인조와 당시 정권을 잡은 반정세력의 ㅄ같은 대처때문이지 병력의 문제는 아니었음
당시 청도 뒤에 명나라 두고 몽골처럼 수십년간 장기전 할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지라 방어체계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금나라 시즌2 가는거였는데..
당시 청나라군의 주력이 여진족, 몽골족 기병이었으며 이들 중앙아시아식 유목군대는 정주국가-님이 말하는 방자 20대1 같은 비율의 기준이 되는 유럽을 포함한-의 군대와 돌아가는 양상이 완전히 다름. 전쟁으로 인한 농토작살의 후유증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으며 실제로 비축된 재정-군량도 충분하지 못했던 조선에서 장기전은 어불성설이었기도 하고. 우위성이 님 말대로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딱히 유효할 정도도 아니었다는거임.
정예병을 간신배에게 주었다는건 김자점을 이야기하는것 같은데 당시 김자점 휘하로 가 있던 중앙군은 어영군의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황해도군이었음. 정예병의 대부분은 왕을 따라 남한산성에 갇혀버렸고... 그리고 그 정예병력이라는 것도 훈련도감 2000에 어영군도 당시엔 아직 5000명에 불과했고 총융군은 2만이었다지만 이들은 훈련도감/어영군처럼 제대로 정비된 군대가 아니었음. 나머지는 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속오군들이었고. 속오군이 10만이었다지만 겨울에 깔짝 훈련받는 농부들이라....
인조정권의 ㅄ같은 대처라는 점은 인정. 그렇지만 병력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할수도 없음.
많이 봐줬네
걍 참수하고 그 밑에 무능력한 따까리들 싹다 처분했어야지
그러게 그러면 우리도 지금 중화인민공화국민일텐데 아쉽겠다
청나라도 당시 그렇게 할 여력이 없었음. 그랬으면 군대를 조선에 장기주둔시키면서 점령을 해야 하는데 명나라와 싸우느라...
그런 짓 하면 청 입장에서도 조선에서 발생하는 저항에 발목잡혀서 년 단위로 소모하게 됨.
당시 운좋게 내전으로 명이 망하고 그들 중 진 쪽의 세력이 대놓고 청 밑으로 들어가서 청이 명나라 다음 통일 왕조가 되는데 성공한 건데, 조선에서 왕 죽이고 몇년 발목 잡히면 내전으로 망한 명이 어느 한 쪽으로든 수습할 시간이 생겨버리기 때문에 청에 미래가 없게 됨.
그렇게 되서 일단 다시 동네 오랑캐로 전락하면 강희제 같은 먼치킨이 청을 지휘해도 답이 안 나옴.
인조는 전형적인 암군이었음
나라를 이끌 비전 자체도 없었고 자기 권력 지키기에 급급해 무능하고 부패한 공신들을 끝까지 안고 갔으며 정작 중요한 판단이 필요할 때에 우유부단함으로 나라를 크게 절단냈으니
우리도 한번 터지고 준비 잘했다규 ㅋㅋㅋ
준비 하나도 안했어요 ㅠㅠ
존망
준비만전
내 생각은 좀 다름. 차라리 저렇게 해서라도 전쟁을 빨리 끝낸게 차라리 나은 것 같고 그 뒤에 청나라와 큰 트러블 없이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다행임. 저건 그냥 자존심이 상하는거고 한국사 최악의 사건들은 다른 것들이지.
동감.
나라도 뺏겼는데 고작 머리 숙인거가지고 최악의 굴욕은 아님
욕먹는게 전후 사정때문이 큼 분명 전쟁을 회피할 시간과 능력이 있었는데 그 기회를 발로 찬게 인조와 반정 공신들임
요즘에 비유하자면 남북 화해무드인데 정세변하는 것도 모르고 눈귀 다닫고 빨갱이만 죽어라 외치는 사람들이 인조와 주위 신하들
자신있으면 끝까지 싸우다 되지던가
나라 뺏긴건 굴욕이라기보단 치욕이자 아픔이고 왕이 머리에 피가 나도록 절한건 굴욕 맞음
전쟁을 회피할 기회따위는 없었음. 오히려 대조선 유화파였던 누르하치가 왕위에 있던 시절부터 강경파였던 홍타이지가 왕위에 오르는 순간 전쟁은 이미 기정사실이었음. 오히려 지금 현대로 따지면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적당한 긴장상태로 이루어진 평화가 이어질거라고 착각한거에 가깝지. 당시 화해무드는 말도 안됨.
콘스탄티노스 11세처럼 옥쇄하지 그랫냐 ㅂㅅ새끼야.
옥쇄했으면 우리 중국어쓰고있을텐데
보기에만 멋있고 결과는 더 안좋았을거임
저 뒤로도 존심 못 버려서 여러 병크 터뜨렸지...
중뽕에 빠져 한족 왕조 빨다가 ㅂㅅ꼴 당했지 뭘 저 지경당한게 흑역사가 아니라 저 ㅂㅅ들 때매 저 장면 나오기전까지 고생한 백성들이 불쌍하지
임란때 만력제가 퍼준거랑 당시 산해관에서 빌빌대던 청과 명 국력 차이보면 단순히 중뽕이 아님.
강화도가 점령당해 고관대신과 왕족이 모조리 사로 잡히지만 않았어도 남쪽 지방군 올 때까지 버텼을 거야.
강화도에 피신간 왕비, 왕자, 공주, 대신등등 싸그리 잡혔는데, 왕 혼자 버티면 뭘하냐.
게임은 끝난거지.
남쪽 지방군 그때 다 박살났음. 전라도군은 광교산에서 선전했지만 더이상 여력이 없었고 경상도군은 쌍령서 털렸고... 평안도군도 잘 싸우긴 했지만 병력 절반이 날아갔고 그나마도 전멸을 면했을 뿐이라... 더 이상 여력이 있는 지방군이 없었음.
남은 병력을 누.군.가 수습해서 다시 올라왔다면 모를까. 그럴 사람이 없었지. 그럴 권한이 있던 김자점이는 방구석 히키코모리 시전하고있었고
김자점도 아예 안싸웠던건 아님. 황해도 병력 데리고 싸웠는데 한큐에 아작났고... 그나마 남아있던 함경도군은 남한산성 근처까지만 가고 직접 교전에 들어가진 않았지.
진짜 착각하는 게 있는데 옛날 사람들이 병1신이 아님. 당연히 준비함. 준비했는데 꼬인거지.
선조 인조 정신나간 새끼들... 특히 인조 저건 답이 없어
명나라생각해보면 또 저럴수도 있지
사실 명나라에서 내전이 터져서 지들끼리 폭망하는 ㅄ짓거리만 안했으면 청나라가 못 이겼을 가능성이 컸다고함
고려때는 정반대
개경을 공격하다 너무 시간을 끌어서 퇴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귀주에서 뒤통수를 후려버림
조선 중,후기 꼬라지 보면
역사공부 할때 빡치기만 함ㅋㅋㅋㅋ
명나라 만력제가 임진왜란때 도운 걸 생각하면 명나라를 저버릴 순 없었다고 봄. 만약 돕지 않았다면 최소 경제파탄, 최대 조선 멸망까지 갔을 테니까. 저 당시 유교의 가르침이 지배적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명나라를 저버리고 청나라와 형님아우 하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었을 테지.
내 생각엔 인조의 병크는 명나라와의 외교가 아니라 전쟁을 주장하면서도 제대로 적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인데 적을 알지 못했으니...
실제로 기록을 보면 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었음. 필요병력 산출하는거 보면 나옴. 문제는 임란+이괄의 난까지 그 후유증이 너무 커서 대비를 할 여력의 한계가 있었다는거임.
적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한거 보다는 침공의 결정적 시기를 파악하지 못한게 큼. 부랴부랴 병력 동원했지만 동원이 늦어버렸던게 제일 문제라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유중 하나로 광해군의 중립외교때문이라고도 하니
사실상 임란이 제일 문제...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조의 제1병크는 병자호란 이런게 아니라 소현세자를 죽인거(독살설이 일 정도로) 라 생각함
사실 청이 보급생각 안하고 인조만 잡겠다고 최단루트로 내려와서 기껏 대비하던 수비병력들 아무것도 못함. 그 이전에 이괄의 난으로 북방이 텅텅비기도 했고. 인조라고 아무런 대비도 안 한건 아님
광해가 줄잘타서 이냥저냥 넘어가나했더니 이후로는뭐..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여서 더 비참하지 저건..
청 대군이 산해관에 묶여서 꼼짝달싹도 못하던 상황인데 명나라 배신때릴 수가
지금으로 따지면 미국 배신때리고 중국에 붙는꼴임
그리고 어찌됬든 종묘사직이 이어진건 사실이고 자주권은 유지됨
그런의미에서 경술국치만큼 치욕적 사건은 아님
인사정책 대실패지
인사정책 실패로 일단은 어느정도 유능한 장수인 이괄 및 휘하 북방 정예군 괴멸 + 중앙군 피해
김경징 같은 애들에게 국방 중책을 맡겨서 그나마 남은 병력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함
청이 명을 이긴게 기적에 기적이 겹쳐 일어난 골때리는 일이었다는걸 감안하면
인조가 인사정책만 어떻게 잘 했어도 동북아 역사가 IF 수준으로 뒤집어졌을수도
우리가 욕하는 선조도 사실 그 이순신을 전례없는수준의 하이패스로 전라좌수사라는 중책에 앉힌게 선조임. 원균으로 말아먹어서 그렇지
인사정책이 미묘한게 결국 이괄을 잡았던 뿅뿅신과 군사행정에 능한 장만이 병자호란 직전까지 북방에서 지휘를 맡고 있었음. 정묘호란때 이미 무너진 방어체계를 어떻게든 부여잡고 있던 것도 뿅뿅신과 장만이고... 근데 문제는 둘다 병자호란 직전에 병사해버렸다는거임.
정.충 이 뿅뿅 되는건 여전하네 ㅋㅋㅋ...
좀 불운할수는 있지만 여전히 김류나 김자점 같은 애들 컨트롤을 못해서 말아먹었다는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봄
ㅇㅇ 동의. 두 쓸만한 사람 죽고나서 세운 대체제가 너무 뿅뿅이었음. 근데 정.충은 왜 뿅뿅임....?
나도 모름. 예전에 설정.충돌 썼을때 뿅뿅 뜨는거보고 웃겨서 ㅋㅋ...
뿅뿅신이라길래 뿅뿅이 욕같은데 누구지 고민하다가 본문보고 아 정.충신이구나 싶었음
삼궤구고두례
뿅뿅스러운역사....
우리가 지금의 기준으로 보니 이기는 편에 서면되지 ㅉㅉ 하면서 간단해보이지
인조가 최악의 암군인 이유는 일단 대의명분도 없는 주제에 임진왜란직후에 백성들도 힘들게 회복하는 시기에 쿠데타를 일으켰다는점. 그러므로 둘째로 광해군과 반대 외교노선을 탔지만 그걸 감안했다 쳐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외교였다는점. 두번의 호란을 대처하는 자세(뭐 광해군이 있음 이지경까지 안왔지만 적어도 임진왜란을 직접 경험한 광해군이 나은 판단을 했으리라는건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광해군과 인조의 외교노선은 거의 차이가 없었음. 청나라와 전쟁에 돌입한 것은 조선의 정책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청나라가 본격적으로 명과 청 사이에서 입장을 선택하도록 강요를 했기 때문임.
그리고 광해군이 임란 이후에 백성이 힘든 상황에서 궁궐공사해댄걸 보면.... 인조가 암군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광해군도 똑같은 놈이었음. 임란때 잘했지만 왕위에 있을 때의 광해군은 옹호받을 인간이 아님.
최전방에서 적을 대비해야 하는 평안도의 재정을 빼다가 궁궐공사에 돌렸던게 광해군임
저래놓고 지 아들한테 화풀이했지
외교를 잘했다면 굴욕적인 군신의 관계 대신 형제의 나라로 동등한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 상황을 보면 외교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초능력이 있어야지만 가능했음...
이건 도원수 김자점 잘못도 존나 큼
초반 침공당시 청군이 하루단위로 지역을 건너뛰는 괴물군대가 되었던 이유로 지역 거점 방위 전략인 조선군을 아예 움직일 생각도 안했던게 문제라서,,
광해군처럼 외교를 했어야했는데
똥고집부리다가 저리된거지
국가대 국가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음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고
저새끼들은 사대라는 같잖은 명분가지고
수많은 백성을 곤경에 빠뜨린거야
능양군 저 개1새1키
광해군이 개삽질해서 그렇지 인조는 그냥 무능력 그자체였음.
선조처럼 인물보는 눈도 없었고 그냥 욕심에 아집과 권력욕만 많았던 조선 에서도 탑3안에드는 무능한 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