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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배우 이정재에 관한 짧은 생각

(이정재로 시작하지만 뻗어나가는 곁가지 이야기도 군데군데 첨가하겠습니다.)







 사실 처음에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싫어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겁니다. 




 모래시계에서 처음 봤는데 


 유약해 보이는 겉 모습(얼굴)과는 달리 드라마 속에서 너무 가오 잡는 캐릭터와 부족한 연기와 발성 때문에 별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에 영화를 참 많이 봤는데 


 어쩌다 보니 이정재가 나오는 영화를 꽤 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남자로 시작해서, 불새, 태양은 없다, 정사, 이재수의 난, 인터뷰, 시월애, 순애보, 흑수선 까지 ...







 젊은 남자와 불새는 이정재가 가진 외모와 매력을 파는 영화입니다. 


 사실 그다지 흥미롭진 않아요. 


 나중에 이정재 인터뷰를 보니 본인도 그런 이야기를 간략하게 합니다. 


 


 "사실 그전까지 난 연기나 촬영은 다 ‘일’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즐기질 못했다. 이유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연기를 정식으로 배워본 경험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고, 그런 까닭에 소극적으로 연출자의 디렉션을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https://www.cine21.com/news/view/?mag_id=69670


 (2012년 정우성과 같이 한 씨네21 인터뷰에서 - "태양은 없다"에 관한 내용이 주 골자입니다. 굉장히 멋진 인터뷰입니다. 꼭 읽으시길.)



 (젊은 남자는 그 유명한 배창호 감독 영화인데 나중에 또 흑수선을 같이 합니다. 불새는 "테러리스트, 나에게 오라, 김의 전쟁"을 찍은 김영빈 감독.)






 그런데 정사를 보고 난 후부터 이정재라는 배우에 흥미가 가기 시작하더군요. 


 뭐랄까 텅 비어 있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할까?


 영화 속에서 그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기가 힘들더군요. 


 특히 정사에서 그는 결혼할 여자의 언니와 불같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뜨겁다는 느낌을 주지 못해요. 


 대사톤도 무미 건조, 표정도 무미 건조. 심지어 오락실 정사씬도 무미 건조(?)




 그런데 문제는 그런 영화 속 연기를 볼 때 관객의 입장에서 짜증 나고 답답해야 하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뭔가 설득 당한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내내 멋진 연기를 선보이는 이미숙보다 오히려 건조한 이정재한테 눈길이 가고 흥미가 갔습니다. 


 하여간 그게 뭔지 알 수 없어서 그 순간에는 굉장히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태양은 없다를 봤습니다. 






 (원래는 태양이 정사보다 먼저 나온 작품인데 저는 반대 순서로 봤습니다.)


 이 영화부터 이정재가 빛나기 시작하더군요. 


 지금까지 해왔던 가오 잡는 연기를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종횡무진 럭비공같이 통통 튀더군요. 


 뭐랄까 그냥 이건 영화가 아니라 이정재, 정우성 그들의 실제 이야기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잘생긴 배우 2명이 가장 빛나는 시기에 


 그렇지만 가혹한 세상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청춘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외모 때문에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정우성과 이정재는 그 반대에 가깝죠.)




 하여간 이정재와 정우성에게 태양은 없다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둘은 절친이 됩니다. 


 (태양은 없다는 "런어웨이, 비트, 무사, 아수라"의 그 김성수 감독 작품입니다. 정우성이 그의 페르소나죠. 


 이건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아마 첫 작품이 성공했으면 정우성이 아니라 이병헌이 그의 페르소나가 됐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영화는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입니다. 


 박광수는 "칠수와 만수,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찍은 작가주의 감독입니다. 


 어떤 평론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우석의 반대말이 박광수라고.


 흥행이 최우선인 철저한 상업주의 감독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딱딱한 작가주의 감독. 




 그런 감독의 영화에 이정재가 제주 민란을 이끄는 일반 백성 출신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습니다. 






 

 지나치게 딱딱하고 지나치게 정직한 영화여서 


 호불호가 정말 많이 갈리는 작품인데 


 저는


 이정재가 등장하는 첫 장면을 너무 인상 깊게 봐서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충격적인 첫 등장은 사실 영화 관상이 아니라 이재수의 난이 먼저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이정재라는 배우가 호감으로 돌아섰습니다. 


 자신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 스펙트럼을 넓혀가면서 진정한 배우가 되려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의외의 영화로 다시 가벼운 놀라움을 주게 됩니다. 


 그 영화는 순애보입니다. 





 (순애보는 "정사, 스캔들, 다세포 소녀, 여배우들, 죽여주는 여자"를 만든 이재용 감독의 2번째 작품입니다.)



 


 아마 이정재가 배우 역사상 가장 힘을 빼고 찍은 작품일 겁니다. 


 항상 나사가 하나 빠져 있고 얼빠진 표정을 가진 동사무소 공무원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려요. 




 정우성은 뭘해도 정우성이고 망가져도 정우성이지만 


 그에 반해 이정재는 다소 망가진 모습도 평범한 모습도 잘 소화합니다.  


 영화 순애보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가벼운 소품 같은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에요. 


 영화를 보면 왠지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 이라는 소설도 생각이 납니다. 

 



 배우 이정재의 가장 색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재수의 난과 순애보를 추천하고 싶네요. 




 아 맞다. 


 인터뷰라는 좋은 영화에도 나오지만 사실 심은하를 위한 영화여서 이정재가 보이질 않고 (감독은 변혁, "주홍글씨" 바로 그 감독)


 (이재용과 변혁은 대학생 때 호모 비디오쿠스 라는 단편을 연출해서 상을 휩쓸었고 차세대 유망한 감독으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재수의 난에는 심은하가 나오지만 이정재 때문에 심은하가 보이질 않습니다.


 시월애에도 나오지만 역시 전지현을 위한 영화여서 이정재가 보이질 않습니다. (감독은 이현승, "그대 안의 블루,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 푸른 소금" 그 감독)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진 다했습니다. 


 아쉽게도 저 이후로 이정재라는 배우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후로 좋은 배우들과 멋진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정재도 암흑기(?)에 빠지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이정재에게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오지만 아쉽지만 배우로서 매력을 크게 느낀 작품은 없었습니다. 



 


 이정재라는 배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많이 하던 때가 있었고 


 언젠가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아수라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김성수 감독, 정우성 찾아보다가 정우성, 이정재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결국 이 글까지 흘러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 너의곁으로 2018/07/23 04:28

    스크랩요 정재형 25년 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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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연]NYM 2018/07/23 04:29

    저는 개인적으로 태양은 없다 이정재를 젤 좋아합니다.
    개봉 당시에는 그의 연기가 외모때문인지 잘했다고 못느꼈는데,
    그 방황하는 캐릭터, 능글능글한 모습, 뭔가에 쫓기는 모습들 모두
    지금 나이먹고 보니 진짜 그 어린 나이 (26~7세 였죠? ㅋ)에
    엄청난 연기를 했구나 생각이 들어요. ㅎㅎ
    청춘스타이지만, 청춘스타만은 아니었던 그런 느낌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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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곁으로 2018/07/23 04:30

    젊은남자 이한 진짜 너무 멋있죠.세븐 일레븐씬 아직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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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곁으로 2018/07/23 04:31

    그리고 불새에서 손창민이랑 ㄷㄷ정말 너무 같은 남자지만 정우성 이정재 다시 태어나면 한다면 정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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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곁으로 2018/07/23 04:32

    태양은 없다.양아치 연기도 끝내주죠. 오 브라더스 이범수랑 합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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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연]NYM 2018/07/23 04:34

    [리플수정]불새에서도 연기 좋았죠. 저는 막눈이지만요.. 지금 다시 본 영화중에, 불새, 태양은 없다, 그리고 최근의 그의 작품들..... 진짜 감탄하면서 다시 봤어요..
    이정재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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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연]NYM 2018/07/23 04:36

    90년대 당시 영화들 지금 다시 보면, 솔직히 그냥 얼굴잘생긴 사람들이 대본을 대본대로 읽는 느낌이 많았는데,
    이정재는 다시보면, 아.... 그냥 얼굴만 잘생긴, 몸만 좋은 배우가 아니었구나 새삼 다시 느끼게 되요. ㅋ
    전성기가 두번 온 배우 같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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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곁으로 2018/07/23 04:38

    난 다시 정재형 자신만의 영화를 보고 싶네요.나이가 들어서? 양삘은 못하지만 뭔가 정말 배우는 한작품 남기고 가는게 꿈이라는데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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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족발 2018/07/23 04:38

    선추 후감 하겠습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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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곁으로 2018/07/23 04:42

    이 새벽에 이런 정성글이 묻힌다면 ㅜ.ㅜ 정말 눈물 나올지도 ..다 같이 봤으면 싶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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