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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아버지 묘지를 이장하며

블로그에 쓴 글이라 평서문인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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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묘지를 이장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 내게는 그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고 사진이 없었다면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묘지를 이장하며 세운 묘비를 보니 1991년, 내가 6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6살이면 기억이 날법도 한데 그날의 사고가 어렸던 내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던 것일까, 내 기억도 그날의 사고와 함께 모두 지워졌다. 


 살면서 한 번도 원망해본 적은 없다. 다만 때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내게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까, 불쌍한 우리 엄마 조금은 더 행복했을까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보긴 한다. 나에겐 처음부터 없었던 당신이라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현듯 생각이 난다. 깊은 한숨으로는 지워지지가 않고 끝내 눈물로 잊혀지는 당신 생각. 


 그런데 오늘, 내게는 없었던,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를 마주했다. 왜 죽은 지 30년이나 된 사람의 묘지를 이장해야 하는지 나는 물을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그냥 어른들의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나도 이제 어른이지만 아직 어른들의 일을 다 알기엔 너무 어린가 보다 생각했다. 


 내가 살았던 시골 마을엔 문중 산이 있었다. 대대로 우리 가족의 묘가 있는 산이다. 이 땅의 소유를 묻는 것도,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도 모두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몇 번의 송사를 거쳐 땅의 소유는 외지인에게로 넘어갔고, 가족들의 묘지도 모두 이장해야만 했다.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보다. 


 이장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다. 묘지를 옮길 곳의 터를 닦는 작업을 한참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나무를 뽑고 터를 다지고 드디어 묘지를 이장할 시간이 왔다. 30년간 묻혀 있었던 관을 꺼낼 시간이 온 것이다. 엄마는 무섭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포크레인으로 몇 번 흙을 파내니 아버지를 품고 있던 관이 드러났다. 그리고 관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관에 물이 가득하다. 삼촌이 '형님 죄송합니다'하고 말했고 그 말에 나는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관을 땅 밖으로 꺼낸 후 해체했다. 물이 빠지고 아버지가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이렇게 마주하다니 참 얄궂은 운명이다. 살은 모두 없어지고 뼈만 남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찬찬히 살펴 모든 유골을 수습했다. 또 눈물이 났다. 내가 당신과 마주한 유일한 이 기억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젊은 사람이 죽어 뼈도 무겁다고 작업자들이 말했다. 그 말이 참 슬펐다. 유골을 화장하려고 옮기는데 삭은 수의가 뼈에 걸려 애를 먹었다. 이제 진짜로 떠난다고 생각했을까 가기 싫어 발길을 붙잡았나 보다. 그 많던 유골이 화장을 하고 나니 그 작은 유골함도 다 못 채운다. 참 부질없는 인생이다.  


 아버지와 막내 삼촌을 포함해 모두 여섯 구의 유골을 한자리에 모셨다. 아버지께 술 한 잔 올렸다. 날이 너무 좋아 더 슬픈 하루였다.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아버지 당신이 살아온 시간만큼 어느새 나도 살아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당신이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가혹했던 당신의 운명을 짊어진 채 내가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수고했다 위로해주시길. 당신도 고생했소. 이제 편히 쉬시오.  

댓글
  • creep 2018/05/12 06:28

    아침부터 먹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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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락길따라 2018/05/12 06:48

    저도 아부지 산소 이장해야하는데 용기가 안나네요.시골 땅이 3,000평이 있고 그중2,000평이 노는 땅인데 아부지 산소는 주인없는 남의 땅에 있습니다.도로와 도로 사이 짜투리공간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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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석타이거 2018/05/12 07:16

    크리트// 큰 위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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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석타이거 2018/05/12 07:16

    creep// 그러게요, 다시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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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석타이거 2018/05/12 07:17

    다락길따라// 저희는 산소에 물이차서 오히려 이장한게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모신다고 생각하시면 좀 마음이 편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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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8/05/12 09:51

    삶의 남은 시간들에 옅어질 그리움들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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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룩킹삼진 2018/05/12 09:56

    아... 눈물 그렁그렁....
    추천수 대비 댓글수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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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나본다 2018/05/12 10:48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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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ystemF 2018/05/12 11:43

    이장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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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stOfUs 2018/05/12 11:48

    필력이...가슴을 후벼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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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xtnbit 2018/05/12 12:17

    유골로 아버지를 처음 만나셨네요. 뼈에 사무친다는 표현이 있잖아요. 몇십년동안 못보고 뼈로 처음보셨지만 아버지도 아들의 손길을 느끼고 좋아하셨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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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할타자 딩요 2018/05/12 12:26

    먹먹한 글이네요. 앞으로 행복하게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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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purdy54 2018/05/12 13:14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시면 귀한 내 새.끼
    수고하고 고생했다. 감사하다 칭찬 들으실겁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나서 울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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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몰츠용수 2018/05/12 14:34

    글을 참 담백하게 쓰시네요.
    절절한 내용을 담담하게 옮기시니 오히려 읽는 마음에 더욱 날카롭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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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코켄시로 2018/05/12 15:36

    눈물이 핑....아버님이 너무 젊은나이에 떠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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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배는멘솔 2018/05/12 16:11

    수고하셨습니다. 살아 생전 부모님께 효도와 자식들위해선 건강유지가 제일인듯 합니다. 건승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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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rich 2018/05/12 16:19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거 같습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위로와 공감과는 별개로 글이 참 좋아서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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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fadrea 2018/05/12 16:33

    마지막 문단에 감명 받아 추천 넣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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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구똥구 2018/05/12 17:25

    날씨 때문인지 마음이 더 먹먹하네요. 내용과 별개로 글 읽는 맛이 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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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료셴카 2018/05/12 18:49

    젊은 나이에 떠나던 아버지도 남겨진 어머니 만큼 서럽고 슬프셨을겁니다. 연배는 저보다 어린 분 같지만 형님의 글을 읽고 난 뒤 배우는 느낌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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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우로 2018/05/12 19:10

    5년전 이맘때쯤 부모님 묘소 이장을 손수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20년 넘게 계셨던 어머니를 다시 보았을때 그 감정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도 이제 어려운 숙제 하나를 하셨다고 봅니다. 남은 숙제는 열심히 살아가는거라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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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동화 2018/05/12 19:39

    진심이 느껴집니다. 사람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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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단한놈 2018/05/12 20:26

    가슴아픈 일을 이렇게 담담하게 글로 표현하실 수 있는지...
    필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가 살지 못한 인생을 멋지게 살 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를 만날 때 "아버지 저 인생 잘 살다 왔습니다"라고 당당히 말씀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생에 행운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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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윤하 2018/05/12 22:14

    담담한 글이 너무나 필력이 좋으십니다.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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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충대층 2018/05/12 23:07

    요즘은 묘지 모신분들 이런저런 이유로 이장 및 화장 많이 하죠. 시대가 많이 바뀐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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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리세린 2018/05/12 23:11

    넥스트 노래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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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호옷 2018/05/12 23:52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 잘 해내셨습니다. 앞으로의 삶에 기쁨이 넘쳐나길 바랍니다. 아버님께서도 먼 곳에서 보살펴주실겁니다. 그리고 글 정말 잘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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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오위 2018/05/13 00:00

    책을 읽는듯한 내용이네요. 가슴깊이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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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uemate 2018/05/13 00:33

    필력이 대단하시네요..거의 작가급..부모님 전부 하늘나라로 보낸 제가 이글 읽으니 뭉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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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중기 2018/05/13 02:27

    가슴 찡한 글이네요..
    먼 훗날 천국에서 뵈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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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lmeiro 2018/05/13 06:05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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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학생B 2018/05/13 12:47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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