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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돈까스...(고래잡이 아님)

베오베의 피자 이야기를 보니,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베오베의 피자이야기처럼 슬픈 이야기는 아닙니다.
글은 편하게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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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어떤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그 블로그를 본 순간 옛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때는 1985년. 나는 초등학생...아니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당시 나는 전라남도 진도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때문에 초등학교를 평균 1년에 한번씩 전학을 다녔는데, 이때는 진도에 살고 있었다.
어린 나였지만, 우리집이 굉장히 못산다는 것은 체감으로 알 수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임에도 차림이 내가 제일 후졌으니깐... 그 시골에서도 단칸방에 아빠, 엄마, 나, 여동생 4명이 살았다. 그리고 주인집 아들이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 더욱더...
1년 동안 진도에서 살면서 기대가 되는 날이 있었다. 한달에 한번. 엄마는 나에게 천원을 주셨고, 나는 어린 여동생 손을 잡고 "그냥 식당"이라는 곳에 갔다.
바로 돈까스를 먹기 위해서다. 당시 진도에서는 짜장면이 500원이었으므로 꽤나 비싼 음식이었다. 그 식당은 이제는 얼굴도 기억 안나는 젊은 부부가 운영했는데, 우리가 가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귀여워해주셨던것만큼은 기억난다.
자리에 앉으면 내것 하나 여동생것 하나 스프가 2개가 나왔다. 정말 맛있었다. 잠시 후, 돈까스 1인분이 나왔다. 내가 먹기 좋게 썰어서, 동생과 맛있게 먹으면, 주방장 아저씨가 나와서 맛있냐라고 물어보곤 하셨다. 당연히 맛있다고 소리지르곤 했다. 당시에는 태어나서 먹어본 음식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배부르게 다 먹고 나면, 카운터 아주머니께 천원을 드리고 나와 여동생은 배꼽인사를 하고 나왔다.
한 달에 한번 있는 그 행사는 진도에 살던 1년동안 나와 내 동생에게 가장 기대되는 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우리에게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맛있는걸 먹이고 싶어하셨고, 돈이 없기에 1인분 돈만 쥐어 주신거였던거 같다. "어머니는 돈까스가 싫다고 하셨어"는 아닌것 같다. 지금 우리 엄마는 돈까스 좋아하신다.
그리고 나와 여동생이 아무리 어리다지만 돈까스 1인분을 그렇게 배가 부르게 먹을리가 없다. 아마도 식당 부부는 우리를 위해 스프도 2개나 주시고, 돈까스도 평소보다 크게 튀겨나온게 아닌가싶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떤 블로그를 우연히 보았는데, "그냥 경양식"라는 식당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기억에는 분명히 "그냥 식당"이었는데, 이름이 살짝 바뀐것같다. 위치도 내기억과 같고, 돈까스집인것도 같다. "GQ선정 대한민국 100년 100대 맛집"이라는 것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운영하는데 너무 힘들어 일주일에 3일만 연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1985년...
여동생에게 카톡으로 "그냥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동생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있다니 놀랍다고 했다.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한다.
나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댓글
  • 옴닉 2018/05/02 14:45

    추억 속의 식당 참 좋네요
    저는 그란 곳이 별로 없어서ㅠ
    광고라고 한다면
    스토리텔링이 너무 좋네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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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쩌리 2018/05/02 15:11

    작성자님
    돈가스 가격이랑 어머니께서 주신돈 이 좀 안맞아요
    확인 부탁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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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신한게없음 2018/05/02 15:25

    저 진도에서 경양식집 가봤어요 ㅎㅎ 이년전쯤? 지금은 진도 청소년들 핫플레이스 인거 같더라구요 ㅎㅎ 직장동료가 진도출신인데 경양식집 얘기하니까 씨익 웃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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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꾼p 2018/05/02 15:56

    제목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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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넬스니안 2018/05/02 16:00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 읽는 거 같이 따뜻해지네요. 좋은 추억 가지고 사시니 행복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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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쪼리 2018/05/02 16:01

    작성자: 어르신 혹시 기억나시나요... 그때 정말...
    식당 어르신: 이제서야 고래 잡을 마음의 준비가 된겨??
    우왕~ 우왕~ 우왕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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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쾅 2018/05/02 16:24

    어릴때 읽었던 우동 한 그릇이 생각나는 추억이네요.^^
    저도 그 맘때 쯤 돈까스에 관한 추억이있어서 공감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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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끄리 2018/05/02 16:35

    이제 돈까스하면
    고래잡이썰이랑 아버지의쎅쓰썰 밖에 생각안나는데
    정상인가요 인터넷좀 끊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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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shmans 2018/05/02 16:40

    꼭 다녀오셔서 후기 남겨주세요 ㅎㅎ
    저는 구룡포의 철규분식이 딱 그런 추억의 맛집이었는데
    막상 찾아보니 씁쓸한 느낌도 있었어요 ^^;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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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퀼라 2018/05/02 16:47

    음슴체로 쓰다가 글이 이상해서 다시 썼는데 음슴체로 쓰겠다는 소리를 안지웠네요. 베스트 올라서 바꿀수가 없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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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는거아니야 2018/05/02 16:51

    오...!
    저 여기 알아요!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고 가고 싶어서 체크해뒀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못 가봤지만...
    왠지 끌리는 이름이었는데 역시 이런 훈훈한 사연이 있었네요 ㅎ
    이렇게 된 이상 꼭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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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ItBetter 2018/05/02 17:21

    어르신들: 그래 이제 외상값 갚으러 온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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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갠디뭉 2018/05/02 17:38

    진도 세월호 사건 때 현장 파견을 나가서 1달정도 살았더랬죠.. 벌써 4년째 되지만 아직도 진도 읍내가 훤 합니다. 군청올라가는 언덕쪽에 숨은 작은 골목사이에 있던 '그냥경양식'.
    우리가 흔히먹는 옛날돈까스 느낌도 아니고, 일본식 돈까스느낌도 아니고.. 그냥 그 집만의 특색이 담긴 그집 돈까스임이 분명했습니다.
    저도.. 그때가.. 그순간이 그립다기보다는 추억의 한페이지로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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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늑대 2018/05/02 18:46

    저도 그냥경양식 가보고 싶네요.
    우동한그릇 받고 내영혼의 닭고기 수프 추가합니다.
    마음 따뜻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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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nNocker 2018/05/02 19:56

    광주 충장로에 유생촌 아는 사람 추천~`!! 옛날 소개팅 및 맞선장소였던 추억의 돈까스집. 무지개떡도 나오고 후식은 야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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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르고13 2018/05/02 20:00

    중딩때부터 다닌 인천극장옆 구름다리서 전동쪽으로 내려가는길에있는 동그라미분식...
    쫄면, 즉석떡볶기 먹으며 틀어주는 비디오 보는게 주말의 낙이었죠. 그때 호소자시리즈 참 잼나게 본 기억이...경양식집을 첨가본건 93년쯤? 동인천 잉글랜드와 신포동 끝자락에있던 모던타임...
    간만에 옛추억이 떠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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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져 2018/05/02 20:04

    엄마 고향이 진도라 돌아가시고 진도에 모셨는데 괜히 반가워서 댓글 달아요
    돌아가시기 전 까지 진도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제가 사는 곳에서는 너무 멀어 기일에만 내려갔는데 올해 기일에 내려가면 가보고 싶네요
    조금 엉뚱한 말이지만 혼자 진도 내려갈 때 마다 외롭고 낯설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기대하면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추억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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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을바라기 2018/05/02 20:06

    글 속에서 뭔가 이사람 잘자랏구나 하는
    생각이드네요...
    멋지게 잘아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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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설왕짐보 2018/05/02 20:09

    우리 동네에도 동팔이네 분식집이란 가게가 있었다.
    간판엔 그냥 분식집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 집 큰 아들 이름이 동팔이라 다들 동팔이네라 부른다고 했다.
    이건 나중에 이 분식집이 간판을 새로 해 달며 '우리 분식'으로 상호를 바꾸었음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건 사람들에게 이미 동팔이네로 각인이 된 후에 이루어진 일인데다.
    동팔이네가 동네 사거리 귀퉁이에 있어 부득이하게도 랜드마크가 된 덕에 쓸데 없이 많이 불리며 생긴 일이기도 했다.
    동팔이네 분식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동팔이네서 쭉 직진해서 오면, 동팔이네 사거리로 나오라고 하는 식이니 간판을 바꾼다고
    사람들 입에 붙은 말까지 바뀔 건 아니었다.
    심지어 나중에 이사온 사람들은 거기가 왜 동팔이네 사거리인지조차 모르고 동팔이네 사거리란 말을 쓰는 촌극도 벌어졌다.
    헌데 내가 왜 이 동팔이네를 기억하냐면...
    당시로선 매우 드문 맞벌이 가정이었던 나와 동생은 엄마가 장사를 나가시면 저녁을 얻어먹을 곳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름 열린 사고방식의 아버지였지만(그러니 엄마를 장사하도록 두시고 물심양면 도우셨겠지만)
    당연히 음식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예 장부를 대 놓고 저녁을 동팔이네에 가서 먹었다.
    남들은 집밥하면 엄마가 차려준 모락모락한 밥상을 떠올릴때 우리는 동팔이네 분식의 돈까스, 수제비, 라면, 칼국수, 잔치국수 따위를 떠올리게 됐고.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동팔이네 분식은 꼬박 2년 가까이 우리의 집밥 아닌 집밥이 되었다.
    문제는 장사란 것이 늘 잘될 때만 있는 것은 아닌터라 종종 수금이 안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밥값도 적게는 사나흘에서
    많게는 열흘 가까이 밀리는 때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아주머니는 낭중에 엄마한테 꼭 가져오라고 하니라 하며
    한 번 싫은 소리 없이 먹고픈 음식을 실컷 해주었다.
    그 기억이 통 잊혀지지 않아 수 년 전이가는 누나와 함께 어릴 적 살던 그 동네에 간 적이 있다.
    솔직히 한번 기대한 적이 없는데 놀랍게도 그 곳엔 아직도 동팔이네 분식이 있었다.
    정확히는 낡은 간판의 우리분식...
    흥분한 우리는 냅다 문을 열고 들어갔고, 다 허물어져가는 가게 안에 손님 없이 앉아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쭈글쭈글 구겨진 이마에 굽은 허리... 20년도 훨씬 넘은 옜날이라 과연 이 분이 그 분이 맞나 싶은데
    누나는 그 모습에서 과거의 어떤 기억을 발견했는지 대뜸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여기 동팔이네죠? 옛날부터 있던 그 동팔이네요! 저 모르시겠어요?"
    그러자 할머니께선 쭈글쭈글한 얼굴에 잔딱 웃음을 머금고는 누나에게 다가와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말씀하셨다.
    "얘끼 이 년아! 이제 그 동팔이가 환갑이여! 우리 동팔이가 어디 니 친구냐? 새파란년이 어디서 동팔이 동팔이!
    내 한번만 더 그래 부르면 입을 찢어 논다고 혔어 안 혔어!"
    음 그랬다. 할머니에겐 오래전부터 은근히 스트레스였나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만 동팔이네라고 했지, 다른 사람들은 똥파리네 똥파리네 하고 많이도 불렀다나 뭐래나.
    우리만 애틋하지 할머니는 우리 존재도 잘 기억 못하셨고, 뭐 그냥 수제비나 한 그릇씩 먹고 왔다.
    그리고 할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셔서 가게는 사라지고 깨끗히 리모델링한 고깃집이 들어섰다.
    재밌는 사실은 그 고깃집에 가면 카운터에 명함이 있는데.
    '우리 갈비 사장 장동팔' 이라고 써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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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칰힌 2018/05/02 22:01

    아니.. 맛이슨 돈가스 구경하러 왓다가 눈물흘리고 갈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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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찹맛고추장 2018/05/02 22:08

    추억속의 맛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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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기대 2018/05/02 23:53

    요기 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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