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586751

뻘글북풍은 끝났다.

 


 우리 할아버지는 일제징용을 두 번 다녀오셨고 건강히 돌아오셨다. 딱히 설명해주진 않으셨지만, 꽤나 지식인이셨으니 독립투사는 절대로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본인은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으나, 지금 손자인 내가 보는 시선을 그 시절에도 느끼셨을 것이다.


 두 번이나 징용을 다녀왔음에도 몸이 건강한 당시 지식인이라는 사람은, 억지로 끌려서 전쟁에 두 번이나 참여했어도 별로 위로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심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산으로 숨어야 했었다.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임신하고 계셨는데도 교회 목사님이 우리 할아버지보고 산에 숨으라고 했단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 이웃청년들에게 끌려가 돌아가셨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이 왔을 때, 할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왔더니 그 목사님을 죽인 그 청년들이 할아버지를 반겨주며 동네어른의 대접을 해줬단다. 왜냐면 동네지도자 역할을 할 만한 지식인 장년층은 죄다 죽였으니까. 연합군과 대화가 가능한 우리 할아버지가 필요했더란다.


 할아버지는 그 동네에 있을 수 없어서 가족을 피난 보내고 국군에 합류하셨다. 일본어와 약간의 영어가 가능하셔서 실제로는 연합군 측에 합류하셨단다. 할아버지의 세 번째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살던 동네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친구들과 동네 형 동생들을 죽인 그 청년들이 있는 동네에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을 피난 보낸 지역에서 새로 시작하셔야 했단다. 


 당연히 할아버지는 전쟁을 매우 두려워하셨는데도, 우리 아버지가 군인이 되겠다고 하는 걸 오히려 좋아하셨단다. 어떻게든 총을 들고 있는 쪽이 낫다는 게 할아버지의 생각이셨다. 


 전쟁이 무서웠다. 어릴 때 아버지는 비상이 걸리면 집에서 자다가도 군복을 입고 급하게 나가셨다. 동네에 군용 지프가 나타나면 급하게 아버지를 태우고 가버렸다. 그럼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오시곤 했다. 이웅평 사건 때는 내가 무척 어렸는데도 어머니의 긴장한 그 표정을 잊지 못한다. 김일성 사망 당시에는 실제로 피난을 준비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군인 가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사하라고 하셨다.


 그래도 내가 군대에 가게 될 즈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며 북측과 화해의 분위기여서 괜찮았다. 상병이 되자마자 사귀던 여자애에게 차이고 전쟁이나 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휴전국가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긴 했어도, 혹시라도 만약에 전쟁이 난다면 내 가족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정도는 고민해두기도 했었다. 



 이제야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큰일을 했다. 부디 좋은 결과와 즐거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길 바란다. 


 


 북풍 지겹다.




댓글
  • 왕큐티짱예삐 2018/04/27 12:34

    ㅇㅅㅇ

    (kR5EsO)

  • 폭풍선빈 2018/04/27 12:35

    님 글은 안 지겹습니다.
    그 북풍은 이제 그만 꺼지라고 하고 ㅎ

    (kR5EsO)

  • AlanSmith 2018/04/27 12:35

    진짜가 나타났다

    (kR5EsO)

  • 형님 2018/04/27 12:35

    북풍님이 이런..ㅋㅋ

    (kR5EsO)

  • 소망의끝 2018/04/27 12:35

    우리의 역사가 잘 압축되어 있네요.

    (kR5EsO)

  • Teemo 2018/04/27 12:36

    닉네임까지 ㄷㄷ

    (kR5EsO)

  • NorthWind 2018/04/27 12:36

    북풍 빠염~

    (kR5EsO)

  • 몰코 2018/04/27 12:37

    간만에 보는데 여전히 글재주가 좋으십니다

    (kR5EsO)

  • 알란파슨스 2018/04/27 12:37

    오랜만이네요 글 항상 재밌게 읽었네요

    (kR5EsO)

  • no45 2018/04/27 12:38

    빠빠잉

    (kR5EsO)

  • DB이상범 2018/04/27 12:39

    이제닉네임도 바꾸시길..

    (kR5EsO)

  • 첸졉 2018/04/27 12:39

    북풍문학 오랫만이라 좋네요.

    (kR5EsO)

  • park61 2018/04/27 13:02

    호우..어떤풍이 되실지

    (kR5EsO)

  • NorthWind 2018/04/27 14:28

    시원섭섭한 건........그냥 기분탓일겁니다.ㅋ

    (kR5EsO)

  • NorthWind 2018/04/27 14:58

    알고보니 할아버지가 독립군의 비밀간첩이었고,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셨고, 제가 강릉무장공비 사건을 겪었다면 시나리오 한 편 나오는 건데........
    현실은......할아버지는 그냥 언어능력이 뛰어난 분이셨고, 아버지는 공군이셨고, 난 포병fdc..

    (kR5EsO)

  • 석민군20승 2018/04/27 17:14

    진짜가 나타났다!

    (kR5EsO)

  • 7번김하성 2018/04/27 17:47

    간혹 님글 검색했는데 검색이 안되서 탈퇴하신건가 했네요. 올만입니다.

    (kR5EsO)

  • 냄비의 요정~ 2018/04/27 18:34

    우린 다 죽임을 당했다던데...지주라고 ㄷ ㄷ
    진짜 간만에 뵙네요 ㅎㅎ

    (kR5EsO)

  • eboknight 2018/04/27 21:10

    잘 읽었습니다.
    모처럼 "잘 읽었습니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글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을 보이는 글

    (kR5EsO)

  • 劍皇泌 2018/04/27 23:58

    잘봤습니당ㅎㅎ

    (kR5EsO)

  • 송아지 2018/04/28 01:40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바뀌었어도 잊지않는 글이 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kR5EsO)

  • 녹색망토 2018/04/28 04:45

    북풍님 오랜만이네영

    (kR5EsO)

  • sergelang 2018/04/28 05:00

    뭔가 울컥하네요 ㅠㅠ

    (kR5EsO)

  • 2014 2018/04/28 05:58

    역시. 필력. 여전히 좋으십니다. 크~

    (kR5EsO)

  • skycutter 2018/04/28 06:41

    초반에 재밌게 읽었는데 약간 용두사미네요

    (kR5EsO)

  • namasca 2018/04/28 06:45

    전쟁응 부추기는 북풍은 지겹지만 평화가 불어오는 북풍은 환영합니다. 북풍님의 주옥같은 작품도 항상 기대합니다.

    (kR5EsO)

  • a_catnap 2018/04/28 07:18

    억 북풍님. ㅋㅋㅋ
    처제님과는 여전히 친하십니까. ㅋㅋㅋㅋ

    (kR5EsO)

  • Imcry 2018/04/28 07:19

    할아버지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일제시대 지식인으로서 드러날만큼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를 올바르게 사신거죠.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이야 워낙 대단한 분들인것이고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은 대부분 지식인들이였어요.

    (kR5EsO)

  • 디엔99 2018/04/28 08:33

    참 담담하게 잘 쓰셨네요

    (kR5EsO)

  • NorthWind 2018/04/28 09:23

    오랜만이신 분들도 있고~ 저도 반갑습니다. 칭찬도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제 시선은....... 일제시대에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도 언어능력을 생존의 도구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이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만, 일제 강점기 중반에 태어나신 할아버지의 상황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찾아봐도 그 시기에 태어난 분들 중에 독립운동가는 초기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더군요.)
    그리고 국가관. 할아버지는 지금 살고 있는 땅이 내 나라다. 나라는 내가 원할 때 나를 돕지 않고 나라가 원할 때 나를 사용한다. 그러니 나라를 위해 뭘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살고 있는 나라(땅)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걸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할아버지 생전에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습니다. 반공반일 교육에 국가우선의 교육을 받았던 제 어린 시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kR5EsO)

  • BearCAT 2018/04/28 11:24

    오늘은 담담한 그림체의 웹툰을 보는 느낌이네요. 멋진 필력이십니다. 항상 귀한 글 감사합니다♡

    (kR5EsO)

(kR5E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