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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 스포)내가 Ice Dragon Saga를 고평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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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작년 겨울 이벤트였던 Ice Dragon Saga가 아카이브에 추가됨.

나름 까다롭게(?) 스토리를 보는 나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이벤트 스토리였음.

아니, 단순히 '좋아한다.'고 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나는 이 스토리를 고평가하고 있음.

주년 이벤트 스토리를 모두 통틀어서 '좋아하는 이벤트 스토리를 세 가지만 꼽아봐라'고 하면 숱한 주년 이벤트들을 제치고 Ice Dragon Saga를 주저없이 넣을 수준으로 높이 평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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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그게 그 정돈가? 라고 할 수 있는데


적어도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정도다.'라고 단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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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게도 강조해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니케의 핵심적인 테마 두 가지는 '실존'과 '호혜'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과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관계'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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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테마를 합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그 정점이 사이드 스토리, wordless에서 나왔다고 생각함.

바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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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Dragon Saga에서도 길로틴과 메이든이 이러한 관계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음.

다만, wordless와는 또 다른 방식의 스토리텔링으로 조명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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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터너 스쿼드는 니케이면서 니케를 처분해야 하는, 동족상잔의 업을 짊어진 부대임.

스쿼드 멤버들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새나가면 파훼될 수 있고,
사적인 감정이 '처형인'으로서의 역할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길로틴과 메이든은 다른 니케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

특히나 길로틴은 이 '처형인'으로서의 죄책감과 회의감에 시달리던 인물임.

라플라스나 베스티가 대랩쳐전의 영웅으로 칭송받을 때, 그녀는 어두운 곳에서 동료의 피를 묻혀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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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틴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심상 세계에서 '전대 용사'가 라플라스였다는 점,
그리고 길로틴의 동료로 베스티가 등장했다는 점은 이러한 길로틴의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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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길로틴의 심상세계 속의 적으로 랩쳐가 등장하는 설정이 있었는데,

이는 표면적으로는 개그성으로 연출되었지만

길로틴 또한 니케를 처단하는 일이 아니라, 지상 탈환을 위해 랩쳐를 물리치고 싶은 열망이 투영된 결과 아닌가? 라는 발상에도 이를 수 있음.

이게 내가 아이스 드래곤 사가를 고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간단히 언급되고 넘어간 설정도 정합한 맥락이 엿보일 정도로 꽤 정교하고, 또 스토리 내에서 그걸 구태여 강조하지 않아서 스토리텔링 면에서 세련미가 있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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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후반부에 이르면 과거의 사건에 대한 전말이 모두 밝혀짐.

길로틴은 사고전환이 온 니케 하나를 처분해야 하는 과정에서 한순간 주저했고,
이것이 클로이가 중태에 빠지게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 것.

이로써 길로틴은 '냉철한 처형인'으로서의 자아와, '다정한 친구'로서의 자아.
자신을 지탱하던 두 가지 세계가 단 하나의 실수로 동시에 붕괴하는 패착을 겪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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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길로틴은 "이제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대사를 남김.

익스터너 스쿼드와 클로이의 친구, 일상과 비일상, 공과 사.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두 개의 지위가 무너져내리는 전개는 대단히 효율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거니와,
그러한 맥락이 짧은 대사로 압축되는 지점도 탁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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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무너진 길로틴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잉그리드는 길로틴에게 '선배'라는 역할을 부여함.

길로틴이 자신이 가진 모든 지위과 붕괴했으니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해진 것처럼 여겼지만,
그 실패를 시행착오 삼아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메이든을 도우라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길로틴의 패착에 의미를 부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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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실존주의적으로 대단히 유의미한 솔루션임.

우리의 실패, 상실은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현상'에 불과하고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음.

즉, '본질'이라 할 만한 성질은 갖고 있지 않고, 그 현상을 겪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과제만이 남게 되는 것인데,
실패를 실패라고 규정한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그 실패는 한낱 시행착오로 격하되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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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는 메이든이 실패를 겪음.

사적인 감정이 앞선 탓에 자신에게 부여된 처형인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

메이든은 그 징계로 무기한 근신 처분을 받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실패와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기억 소거를 선택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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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트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전형적인 자기기만(Mauvaise foi)에 해당함.

고통스러운 자유와 책임에서 도피하여, "없던 일"로 치부해버리려는 태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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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길로틴의 심상세계에서 사건의 전말을 마주함.

메이든이 그토록 싫어하던 길로틴이 자신보다 메이든의 안위를 더욱 중요시 여기는 모습을.

자신이 편안하게 도망치려 했던 그 시간 동안, 길로틴은 자신을 위해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진 것도 모자라,
스스로 '이레귤러'가 되어 죽음으로써 메이든을 복귀시키려 했다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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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을 위해 끝없이 헌신해온 길로틴을 마주한 메이든은 이내 선언함.

"너를 미워했던 것을 계속 후회하겠다."라고.

당연히 이는 기억 소거를 철회하겠다는 선언임.

만약 기억을 지워 편해진다면, 길로틴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

그렇기에 메이든은 고통(후회)을 짊어질 것을 선택함.

니케, 스포)내가 Ice Dragon Saga를 고평가하는 이유_2.webp


여기서도 단순히 '메이든이 기억 소거를 철회하기로 결심했다.'를 텍스트로 직접 묘사했다면 대단히 아쉬웠을 텐데,
많은 맥락을 함의한 '계속 후회하겠다.'라는 대사로 승화한 점도 아주 좋았음.

전반적으로 대사의 품질이 높은 게 이 스토리를 고평가하는 요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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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이야기는 니케가 늘 그랬듯, '호혜'로 귀결됨.

길로틴은 메이든을 위해 죽음을 각오했고,
메이든은 길로틴을 위해 도망치고 싶었던 고통을 기꺼이 짊어졌음.

또한, '마왕성은 용기 있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단순한 설정에서 그치지 않게 됨.
여기서 용기란,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직면하고 오롯이 받아들일 용기'를 의미했던 것.

두 사람은 서로가 있었기에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마왕성(현실)'으로 걸어 들어가, 설정이 아닌 진실로 용기 있는 '용사'가 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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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익스터너 스쿼드'의 원래 임무(니케 처분)에는 실패했다는 사실임.

역설적이게도 그 실패 덕분에,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팀이 된 것이니까.

본래의 익스터너 스쿼드가 '감정을 죽이고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었다면,
지금의 익스터너 스쿼드는 '서로가 서로의 실존을 지탱하고 증명하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안식처'로 재정의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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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겪은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며,
그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기꺼이 '나의 후회'를 짊어지고,
끝내는 서로의 아픔을 긍정하게 하는 이야기.

얼핏 가볍게 보였지만 정교한 설정, 세련된 대사, 효율적인 전개, 안정적인 스토리텔링까지.

나한테 Ice Dragon Saga는 니케가 보여줄 수 있는 '호혜적 관계를 통한 실존의 회복'을 가장 세련되고 정교하게 보여준 이벤트 중 하나였음.


댓글
  • 먀네의탈을쓴노아 2025/12/19 08:27

    ㄹㅇ 꿀잼이벤트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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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히로 2025/12/19 09:16

    스토리는 보는 관점에 따라 의미가 생기는듯. 좋은 이야기긴 했는데 설명이 들어가니 더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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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전왕 2025/12/19 09:16

    이번 겨울 이벤트는 가뜩이나 3주년에 우울하게 끝나서 좀 밝았으면 했는데
    3주년 우울하게 끝남 - 겨울 이벤트 우울하게 끝남 - 신년 아니스 과거 나오면 또 표독해진 이유 나와서 우울할 예정
    겨울에 3연타로 꿀꿀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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