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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있음) 외국어 번역이 어렵고 시비가 많이 걸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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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히 옮겼고, 사전적으로도 틀린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면 어색하죠.

뜻은 분명히 전달되는데, 문장이 살아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번역은 원문과 단어 선택이 꽤 다른데도,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사람들은 흔히 번역의 어려움을 어휘력이나 문법 지식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번역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단어를 옮겨야 해서가 아니라, 그 단어들이 기대고 있는 사고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거든요.

 

직역은 이 점에서 가장 쉽게 함정에 빠집니다.

직역은 틀리지 않으나 종종 부자연스럽습니다.

문장은 맞는데, 리듬이 어색하고 감정의 방향이 흐려집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원문이 전제로 삼고 있던 사고의 흐름이 번역 언어에서는 그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때 번역가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문장을 그대로 두어 어색함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사고의 흐름을 번역 언어에 맞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

 

이 문제를 가장 일찍, 그리고 가장 명확하게 인식했던 인물이 바로 4세기의 승려이자 번역가였던 쿠마라지바입니다.

그는 불경 번역에서 글자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방식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번역이란 글자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뜻을 얻는 일이며, 글자에 매달리면 오히려 의미를 잃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번역을 씹은 음식을 그대로 남에게 입으로 넘기는 일에 비유하며, 형태만 남고 맛이 사라지는 번역을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쿠마라지바는 원문의 문장 구조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중국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사고와 리듬으로 경전을 다시 구성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번역은 문자 그대로의 충실함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독자에게 전달되는 의미와 감화력에서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번역이 읽히는 경전으로 남아 있고, 반대로 직역을 중시하 중국 승려 현장의 번역이 널리 쓰이지 않는 이유는, 그가 단어가 아니라 사고의 작동 방식을 옮겼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지점에서 중요한 오해가 하나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의역은 정당한가?

자연스럽기만 하면 좋은 번역일까?

현실의 번역 현장, 특히 미국 영화나 일본 만화 번역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미국 영화 번역에서는 종종 번역가가 관객에게 더 쉽게 다가가겠다는 이유로, 원문의 대사를 현지식 농담이나 표현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웃기고 매끄럽지만 원문이 가지고 있던 아이러니나 캐릭터의 성격, 사회적 맥락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인물이 만들어집니다.

이때 원작을 알고 있는 팬들은 강하게 반발합니다.

그들이 문제 삼는 것은 번역의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작품이 전제로 삼고 있던 의미 구조가 무너졌다는 점이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도 비슷한 논쟁은 반복됩니다.

말투 하나, 호칭 하나에는 캐릭터 간의 관계와 거리, 세계관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를 번역가가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는 이유로 과감히 바꾸어 버리면, 문장은 읽기 쉬워질지 몰라도 캐릭터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특히 장기 연재 작품이나 설정 중심의 작품일수록, 이런 변화는 단순한 번역 차이를 넘어 작품 해석 전체를 흔들어 버립니다.

이 경우 번역은 사고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번역가 개인의 해석을 원작 위에 덧씌운 행위로 받아들여지며 비판받습니다.

 

이 지점에서 쿠마라지바와 문제적 의역 사이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쿠마라지바는 글자를 버렸지만, 의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논란이 되는 의역은 언어의 형태를 바꾸는 과정에서, 작품이 전제로 삼고 있던 사고와 세계관까지 바꾸어 버립니다.

둘의 차이는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문제가 아닌 번역가가 무엇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외국어 독해를 하다 보면 이런 느낌이 들 겁니다.

“단어 뜻은 다 아는데, 왜 감이 안 오지?”

이때 문제는 독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독자는 문장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 문장이 기대하는 사고의 방향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번역되지 않은 것은 문장이 아니라 사고의 전제입니다.

 

번역은 자유로운 창작이 아닙니다.

동시에 기계적인 복사도 아닙니다.

번역은 한 언어가 당연하게 여기는 전제를 해체하고, 다른 언어가 이해할 수 있는 전제로 다시 조립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 원문과 완전히 같은 문장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신, 원문이 독자에게 주었던 효과에 가장 가까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죠.

 

번역을 하겠다는 것은 결국 사고를 재구성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번역가는 단어를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두 언어 사이에서 세계를 다시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번역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실패의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은 우리가 이제 단어의 단계가 아니라 사고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비로소 외국어는 읽히기 시작합니다.

뜻이 아니라, 감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요약 :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단어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언어마다 다른 사고의 전제를 다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
  • 페즈나 2025/12/18 11:39

    유적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

    (JsXgY9)

  • 이제주말에도일한다 2025/12/18 11:42

    나는 내 아내를 저장하지 못했습니다.

    (JsXgY9)

  • 가카 2025/12/18 11:43

    그런 의미에서
    분명 한국어이고 한글로 쓰여진 글인데
    한국인 임에도 이해 안되는 글도 수두룩하지 ㅋㅋ
    번역이 필요한건 외국어 만이 아님.

    (JsXgY9)

(JsXgY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