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천주교 조선 교구장 주교가 입국하면서 대량의 커피를 들고 왔고 포교의 수단으로 쓰려고 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로 싹 쓸려가면서 실패 이후 커피에 대한 기록이 전무했지만 1884년 미국 외교관이 궁중에서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회고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 지금도 아아로 전해지고 있다.
댓글
--ㅋ2025/12/15 06:23
민비의 폐악만 알려졌지만 고종도 철도개발권, 광산 개발권등을 외국에 헐값에 넘기고 그 돈으로 본인의 호기심에 사용했는데 그 중에 자동차, 커피, 전등 등이었음. 이를 백성들의 삶을 위해 쓴 게 아니고 본인의 호기심 충족에 국가 재산을 팔아서 충당했는데 이러한 부정부패는 언급도 없이 서양문물 도입이라고.....
즉 국짐당이 50억원씩 해먹고 이재명이 배임했다고 뒤집어 씌우는 것과 똑같음.
민비의 폐악만 알려졌지만 고종도 철도개발권, 광산 개발권등을 외국에 헐값에 넘기고 그 돈으로 본인의 호기심에 사용했는데 그 중에 자동차, 커피, 전등 등이었음. 이를 백성들의 삶을 위해 쓴 게 아니고 본인의 호기심 충족에 국가 재산을 팔아서 충당했는데 이러한 부정부패는 언급도 없이 서양문물 도입이라고.....
즉 국짐당이 50억원씩 해먹고 이재명이 배임했다고 뒤집어 씌우는 것과 똑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