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딸) [괴문서] 메지로 아르당의 그런 날_1.jpg](https://imagecdn.cohabe.com/sisa/5190211/1481114204857.jpg)
히토미미와 마찬가지로, 우마무스메도 마법에 걸리는 날이 있다.
매달 돌아오는 그것은, 달리기의 프로들인 우마무스메에게 의외로 치명적이다.
단순히 마법의 날이 고통스럽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트레이닝이나, 때로는 레이스 스케줄과 겹치게 된다면 곤란해지기에, 반드시 조절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매번 미룰 수는 없다. 자연의 섭리란, 현대 의학이 제아무리 고도로 발전했다 하더라도, 쉽사리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케줄에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매달 찾아오는 이 고통의 도박을, 안타깝게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
메지로 아르당은, 그런 첨예한 고통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인내하고 있었다.
몸이 병약한 것과는 딱히 관련이 없겠지만, 메지로 아르당의 마법은 다른 우마무스메에 비해서 조금 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종종 ‘몸이 아프다’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트레이닝 스케줄을 조절하거나 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도 없었다.
‘……하필이면.’
곧 있을 가을의 텐노상을 대비하기 위한 트레이너 씨와의 정례 미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바쁜 트레이너 씨이기 때문에, 이번 정례 미팅을 넘긴다면 텐노상까지 개인 미팅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 메지로 아르당은 판단했다.
다행히 오늘의 트레이닝은 휴식 위주라 가벼웠기 때문에 몸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마법의 날이 가져다주는 묘한 짜증과 은은히 올라오는 통증은 메지로 아르당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트레이너 씨 앞에서는 그런 것들을 내색하고 싶지 않기도 하거니와, 트레이너 씨에게 메지로 아르당의 주기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차분한 표정으로 찻잔을 집어 들었다.
트레이너 씨가 알고 계신다면, 스케줄 조정을 어떻게든 하셨겠지만…메지로 아르당의 입으로 직접 마법의 날과 그 주기를 트레이너 씨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조용히 숨겨 온 것이었다.
물론, 트레이너 씨도 대충은 눈치채고 계실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메지로 아르당의 ‘몸이 아프다’라는 핑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의 그 생각을 확신으로 바꾼 것이, 눈앞에 놓여 있는 다과와 음료들이었다.
평소의 커피나 홍차 등이 아닌, 은은한 향의 캐모마일 차. 이런 허브 티 종류들이 마법의 날이 가져다주는 뻐근하면서도 찌르는 듯한 통증을 어느 정도 완화해 준다는 것을, 남성인 트레이너 씨가 준비한 것이다.
평소에도 이런 허브 티를 준비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기에, 단순한 우연, 혹은 메지로 아르당의 고통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트레이너 씨가 평소에 하지도 않는 일을, 우연히 준비할 리는 없으니…자연스레 메지로 아르당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같은 생각이 드니, 아랫배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메지로 아르당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메지로 아르당을, 심볼리 루돌프는 맞은편 소파에서 살짝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찻잔에 담긴 것 또한 캐모마일 차. 딱히 심볼리 루돌프가 마법의 날인 것은 아니지만, 준비된 차를 다른 것으로 바꿔 달라고 할 정도로 이기적인 우마무스메는 아니었을 뿐이다.
하지만 맞은 편에서 다소곳하게 차를 홀짝이는 메지로 아르당을 보니―정확하게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는 그녀의 사투를 보니―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간다.
메지로 아르당에 대한 배려, 심볼리 루돌프에게는 없었던, 트레이너 군의 배려. 그것을 한껏 만끽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저렇게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것이리라.
심볼리 루돌프 또한 트레이너 군에게 저런 애정 충만한 배려를 받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체질이 그러한지, 심볼리 루돌프의 마법은 그녀에게 일말의 고통조차 주지 못했다.
아니 뭐, 평소보다는 조금 컨디션이 하락이야 한다지만, 통증을 느끼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조금 뻐근한가, 체온이 살짝 올라갔나, 기분이 조금 찝찝하네, 정도로 끝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기에, 트레이너 군에게 그녀의 주기를 알려준 일도 없거니와, 심볼리 루돌프 본인 또한 그런 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 트레이너 군이 심볼리 루돌프에게 그런 배려를 하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으음,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황제의 육신이 너무나도 견고한 것이니,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이야.
절대로, 다리부터 저 쫑긋거리는 우마미미 끝까지 병약으로 이루어진 메지로 아르당을, 유리 다리의 아가씨를 부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음, 절대로.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군.”
그래서였을까, 황제답지 않게 비쭉 튀어나온 입을 가까스로 숨기며, 메지로 아르당을 살짝 자극한다. 절대 부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동료에 대한 걱정이다. 절대로.
“뭐어,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니까요.”
심볼리 루돌프의 말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질투임을 눈치챘지만, 메지로 아르당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적당히 넘긴다. 조금 있으면 잠시 자리를 비우신 트레이너 씨가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실 것이고, 그러면 메지로 아르당과 텐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니까.
그때, 심볼리 루돌프는 어차피 그녀의 바쁜 학생회 업무로 인해 황제의 옥좌로 복귀해야 함을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있으면, 트레이너 씨와 단둘이 있는 것이 확정인데, 굳이 심볼리 루돌프의 질투 섞인 도발에 넘어갈 이유가 없다.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일찍 들어가서 쉬는 편이 어떤가.”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메지로 아르당을 슬쩍 공격한다. 그러나 메지로 아르당 또한 메지로 일족의 영애. 황제와 말을 섞는 데 있어 부담감이란 전혀 없다.
“배려는 감사하지만, 트레이너 씨와 약속이 있어서요.”
“……그런가.”
차분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맞받아치는 메지로 아르당의 방어에, 심볼리 루돌프는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하여간 메지로의 이 아가씨는 명배우 아가씨와는 다르게 무서운 연적이다. 중전차의 별명에 걸맞게, 황제의 위압감 속에서도 주눅 드는 기색 하나 없다.
그렇다면, 심볼리 루돌프가 더 이상 돌려 말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메지로 아르당에게 한 마디 넌지시 던진다.
“하지만, 생리…중이지 않나.”
“…….”
찻잔을 다시금 들어 올리려던 메지로 아르당의 손이 일순간 멈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심볼리 루돌프를 바라본다. 눈매가 가늘어진다. 입술이 살짝 움직였지만, 뭔가 말을 삼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더니 이내, 피식, 실소를 흘리며 심볼리 루돌프에게 말한다.
“트레이너 씨가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셨으니, 제가 트레이너 씨와의 스케줄 약속을 어길 수는 없지요.”
“…….”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심볼리 루돌프의 뺨이 살짝 굳는다. 인상을 찌푸리려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인다.
“뭐, 뭐어…뭐, 그래도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다오. 특히, 트레이너 군에게 말하기 곤란한 것이라거나…말이다.”
“후후…회장님으로서의 배려, 감사할 따름이네요. 트레이너 씨에게 말씀드리기 곤란한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
“…….”
두 우마무스메의 눈이 마주쳤고, 웃고 있는 미소 사이로 팽팽한 기류가 감돈다. 저 사이에 토카이 테이오를 데려다 놓으면, 삐에에에―! 하고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뛰쳐나갈 지경이다.
하지만, 두 우마무스메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것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때문이었다. 불규칙적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하나, 규칙적으로 또각거리는 발소리가 하나 더. 기다리던 사람과, 불청객.
메지로 아르당과 심볼리 루돌프는, 서로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곤, 다시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찻잔을 집는다.
곧이어 달칵,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기다려 마지않던 트레이너 씨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안 오기를 기대해 마지않던 녹색의 방해꾼, 하야카와 타즈나가 들어온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아르당.”
“아니에요. 준비해 두신 차가 마음에 들어서,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메지로 아르당이 후후, 작게 웃으며 차를 홀짝인다. 맞은 편의 심볼리 루돌프는 볼을 살짝 부풀리며 트레이너 군에게 쏘아붙이듯 말한다.
“트레이너 군, 나는, 나는?”
그런 심볼리 루돌프에게, 황제의 트레이너 군은 한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한 마디 툭 던진다.
“루돌프 너…내일까지 학생회 정례 보고서 제출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왜 나한테만 엄격한 건가!”
입술을 비쭉 내밀며 한마디 빼액, 소리치는 심볼리 루돌프의 모습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그녀의 질문에 답해준다.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니까. 이 정도는 심볼리 루돌프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거잖아?”
“……말은 잘하는군.”
투덜거리듯이 말했지만,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제법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그런 기분파 황제의 모습에 메지로 아르당도, 그리고 트레이너 씨의 뒤를 따라 사무실에 들어온 하야카와 타즈나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메지로의 아가씨와 단둘이 오붓한 데이트라도 즐기려는 거겠지, 트레이너 군은.”
그래도 여전히 서운함이 조금 남은 듯이 한 마디 쏘아붙이는 것이, 그녀의 트레이너 군 앞에서만 보이는 황제의 본성이리라.
“데이트라니…정기적으로 하는 미팅이야. 너도 매주 하잖아.”
“어머, 저는 꼼짝없이 데이트인 줄만 알았는걸요.”
“아르당…….”
메지로 아르당의 짓궂은 말에, 트레이너 씨는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다. 심볼리 루돌프를 더 자극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지만, 이미 심볼리 루돌프의 귀가 뒤로 살짝 눕는다.
“나와 미팅할 때는 사담 하나 없이 레이스 이야기로만 한 시간 넘게 말하더니, 메지로 아르당과는 오붓한 사무실 데이트를 즐기는 건가.”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렴.”
“편애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트레이너 군.”
“편애한 적 없어.”
게다가 굳이 편애한 쪽을 생각해 본다면, 심볼리 루돌프를 편애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 아무래도 토키노 미노루 이후, 그의 가장 완벽에 가까운 걸작이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볼리 루돌프는 하야카와 타즈나를 돌아보며, 그녀도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으냐는 듯이 눈짓을 한다.
하지만 웬걸, 평소라면 심볼리 루돌프보다도 먼저, 어른스럽지 못할 정도로 메지로 아르당을 견제했을 그녀가, 이번에는 별다른 말 없이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
뭔가 이상하다, 심볼리 루돌프는 느꼈다. 뭔가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의 상태가, 평소와 다른 것이다. 웃고 있는 입가도 조금 부자연스럽고, 몸에도 힘이 그다지 들어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 뭐랄까, 맞은 편의 메지로 아르당과 같은.
“타즈나. 힘들면 잠깐 앉아서 차라도 한잔해.”
“아,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트레이너 씨.”
그러면서 살짝, 우물쭈물한다. 마치 앉는 것이 두렵기라도 하듯, 앉으면 곤란하기라도 하듯,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기라도 하듯. 평소의 하야카와 타즈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그리고 그것을, 메지로 아르당도 알아차린다.
아니, 심볼리 루돌프보다 더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
트레이너 씨를 어떻게 꼬실까 궁리만 하는 히토미미 노괴인 줄 알았더니, 어쨌건 그녀 또한 가임기의 여성―나쁘게 말해 암컷―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메지로 아르당과 하야카와 타즈나의, 마법의 날이 겹친 것이다.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이 느끼기에, 그녀의 그 날 또한 제법 고통스럽고 불쾌한 것처럼 보였다. 저 행동 또한 뭔가를 깜빡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리라. 웃음이 부자연스러운 것도, 통증을 참아가며 짓는 미소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몸도 전체적으로 뻐근하고 기분 나쁜 무언가가 엄습해오는, 그런 날.
그래서 메지로 아르당은, 그녀답지 않게 진심 어린 미소로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말했다.
“비서실에 계실 거죠? 나중에 제가 차라도 한 잔 가져다드릴게요.”
“아…고마워요, 아르당 양.”
하야카와 타즈나 또한 메지로 아르당의 진심을 알았는지, 아무런 의심이나 의도 없이 순수하게 감사를 표한다. 트레이너 씨는 모르시겠지만, 메지로 아르당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트레이너 씨는 모르시겠지. 여자들에겐 이렇게 힘든 날이 한 달에 며칠 있다는 사실을. 그나마 메지로 아르당은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이니 마법의 날 또한 신경을 쓰겠지만, 하야카와 타즈나는 그런 것도 아니니까.
아마 트레이너 씨는, 하야카와 타즈나의 그런 날이 언제인지, 주기가 언제인지, 컨디션은 어떻게 되는지 같은 것들을 아무것도 모르실 것이다.
오늘처럼, 메지로 아르당의 그 날을 알아차리고 작은 배려를 해 주신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약간의 안타까움과 연민 한 스푼, 그리고 양심에 찔려 아주 조금만 고개를 치켜든 우월감이 한데 섞여 메지로 아르당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래, 나중에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서 조금 쉬어. 컨디션도 안 좋을 텐데.”
“으으…네에, 감사해요, 트레이너 씨.”
그래도 타즈나 씨의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은 알아차리셨구나, 메지로 아르당은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제부터는 트레이너 씨와 가을의 텐노상 대비 미팅을 진행해야 한다. 심볼리 루돌프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못내 아쉬운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비서실까지는 내가 동행하도록 하겠다. 어차피 학생회실로 가는 길이기도 하니.”
“그래, 고마워 루돌프.”
“헤헤…아니, 후훗. 이 정도야 문제없다.”
갑작스러운 트레이너 군으로부터의 감사에 헤벌쭉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심볼리 루돌프는 사무실 문고리를 잡았다.
“잠깐만, 타즈나.”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가 문을 열려던 찰나, 트레이너 씨가 하야카와 타즈나를 불러세웠다. 그러더니 작은 한숨과 함께 이사장 비서에게 말한다.
“너, 혹시 또 깜빡했어?”
“그, 그게…그………………네에.”
“하여간.”
뭔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트레이너 씨의 말에 긍정하는 하야카와 타즈나와, 익숙한 일이라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책상 서랍을 뒤적인 트레이너 씨를 보며, 메지로 아르당은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메지로 아르당뿐만이 아니다. 심볼리 루돌프도 문고리를 잡은 채로 흠칫, 몸을 떠는 것이, 그녀 또한 위화감을 느낀 것이리라.
“어디 보자, 이부프로펜이 어디 있었는데……아, 찾았다.”
그리곤 트레이너 씨는 책상 서랍에서 진통제를 몇 개 꺼내어 하야카와 타즈나를 향해 휙, 던진다.
“아…감사해요, 트레이너 씨.”
그리고 날아오는 진통제를 자연스럽게 낚아챈 뒤, 후후 웃으며 트레이너 씨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래, 그냥 하야카와 타즈나가 아파 보여서 진통제를 준 것이리라. 다른 의도는 없을 거고, 그녀가 왜 아픈지까진 알지 못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냥 위화감일 뿐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메지로 아르당의…그리고 심볼리 루돌프의 기우.
“그리고 이것도 받아. 새것 가져오는 거 깜빡했지?”
하지만 트레이너 씨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 서랍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더 꺼내어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휙, 던졌다. 그것을 낚아챈 하야카와 타즈나는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한데 뒤섞인 미묘한 표정을 지은 뒤, 재빨리 품속에 그것을 집어넣는다.
“저기, 그…감사합니다만, 왜 기억하고 계신 건가요.”
하여튼 눈치는 빠른 사람이다. 하야카와 타즈나가 그 날인 것도, 깜빡하고 진통제 복용을 안 했다는 것도, 그리고 바보같이 여분의 것을 안 가지고 왔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예전부터 그렇지만, 몸에 대한 것은 저 사람에게 숨기거나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트레이너 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담담한 표정이다. 하야카와 타즈나가 약이 오를 정도로, 이쪽만 설레는 것 같잖아요.
“하루 이틀 보고 지낸 것도 아닌데.”
“그건 그렇지만요…….”
“됐고, 몸조리나 잘해. 정 아프면 일찍 들어가서 쉬고. 이사장 그 꼬맹이한테는 내가 이야기 해 둘 테니까.”
“그럴 정도까진…아니에요, 아직은.”
“심한 편인 거 아니까, 무리하지 말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지금은 트레이너 씨의 담당 우마무스메가 아니라, 중앙 트레센의 이사장 비서니까. 하야카와 타즈나 스스로가 알아서 잘할 수 있다. 트레이너 씨에게 과도한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며 새초롬한 얼굴로 사무실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심볼리 루돌프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하야카와 타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차……!’
트레이너 씨와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해 버린 것일까. 트레이너 씨의 담당 우마무스메 아이들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둘만 있을 때처럼 말해버렸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천천히 눈을 굴려 메지로 아르당 쪽을 쳐다보니, 메지로의 영애 또한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그런 눈빛과는 달리, 메지로 아르당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하야카와 타즈나가 심볼리 루돌프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설 때까지, 얌전히 앉아만 있었다.
왜냐하면, 하야캬와 타즈나와 같이 나서는 심볼리 루돌프의 두 귀가 뒤로 납작하게 누워 있었기 때문에, 굳이, 메지로 아르당 본인이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캐물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트레이너 씨.”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은 하야카와 타즈나가 아닌, 눈앞의 담당 트레이너 씨에게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달라고 으르렁거리면 되니까.
“응? 무슨 일이니?”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트레이너 씨는, 메지로 아르당의 차가워진 목소리에도, 평소처럼 업무를 보며 적당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 태도에, 메지로 아르당의 눈에서 점점 광채가 사라져간다. 왜, 하야카와 타즈나와 메지로 아르당을 대하는 트레이너 씨의 태도에, 이렇게나 큰 차이가 있는 건데. 메지로 아르당도 오늘이 마법의 날인데, 하야카와 타즈나만 정성스레 챙겨주고, 캐모마일 차는 좋았지만, 차는 좋았지만!
“타즈나…씨에게 뭘 주신 건가요?”
다 알고 있지만, 굳이 한 번 더 물어보는 것은, 트레이너 씨의 입으로부터 명확하게 듣기 위함이다. 얼버무리길 바라며, 메지로 아르당의 눈치를 보기를 바라며. 차라리 그러면 조금은 진정될 것 같다.
하지만, 트레이너 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덤덤하게 말한다.
“탐폰.”
“……네, 탐폰. 네. 탐폰이요. 그래요, 탐폰. 그렇네요.”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메지로 아르당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찻잔에 살짝 금이 갔다는 사실을, 그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타즈나 씨에게, 그걸 왜, 주셨을까요?”
“주기상으로 슬슬 시작하려나 싶었는데, 아침부터 컨디션 안 좋아 보였으니까. 그리고 자주 깜빡했거든, 저 녀석.”
“그러니까, 타즈나 씨가, 생리 중, 이라는 사실을, 트레이너 씨가 왜, 어떻게, 알고 계신단 말인가요?”
“…….”
그제야, 트레이너 씨는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하야카와 타즈나의 주기를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이상할 수 있으니까.
물론, 토키노 미노루의 트레이너가 토키노 미노루의 몸 상태를 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대외적으로는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와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일 뿐인 사이니, 아무래도 메지로 아르당이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래도 제법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그래서, 조금 어색한 변명이라곤 생각하지만, 일단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말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눈치껏 알게 된 것인 양,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다는 듯이.
하지만, 메지로 아르당은 고개를 천천히 내젓는다.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트레이너 씨의 책상으로 걸어온다.
“트레이너 씨.”
“아, 아르당…?”
백번 양보해서 그래, 트레이너 씨가 눈치껏 하야카와 타즈나의 그 날을 알아차리고 챙겨줄 수 있다. 트레이너 씨는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니까. 오늘도 당장, 메지로 아르당을 배려하여 평소의 커피를 허브 티로 바꾸지 않았던가.
하야카와 타즈나의 마법이, 그녀를 심하게 괴롭힌다는 것 또한 트레이너 씨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트레이너 씨의 말대로, 하야카와 타즈나와 트레이너 씨는 꽤 오랜 기간 중앙 트레센에서 근무했으니까. 진통제 정도 챙겨주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트레이너 씨의 책상을 지나, 의자에 앉아 있는 그와 마주한다.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메지로 아르당과 트레이너 씨 사이에는.
그리고, 천천히. 최후통첩하듯이, 입을 뗀다.
“타즈나 씨가…탐폰을 쓰신다는 건, 왜 알고 계신 건가요.”
생리대를 사용할 수도 있다. 컵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트레이너 씨는 정확하게 탐폰을, 그것도 미리 준비해 둔 것을 주었다. 마치, 하야카와 타즈나가 평소에 사용하던 것인 양.
그런 트레이너 씨에게, 하야카와 타즈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받았다. 호의가 당연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트레이너 씨가 건넨 것을, 마치 평소에도 사용했다는 양. 사이즈가 다르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하잖은가. 보통, 어지간하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그런 것까지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사 와달라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가족도 아닌, 남남이잖아. 트레이너 씨가 알 수 있을 정보가 아니다.
아니, 트레이너 씨가 알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 인정하기 싫은 작은 가능성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에, 그 불쾌함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건…그게, 말이지.”
그답지 않게, 살짝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다. 확실히 이상하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 트레이너 씨가, 하야카와 타즈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메지로 아르당에게…아니, 아마도 트레이너 씨의 모든 담당 아이에게 뭔가를 비밀로 하고 있다.
“설마, 트레이너 씨와 타즈나 씨는 혹시―”
그리고 그런 메지로 아르당의 생각을, 트레이너 씨 또한 대강 눈치를 챈다. 아무래도 메지로 아르당은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그와 하야카와 타즈나의 방심에서 비롯된 이 작은 실수 하나로부터 추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야카와 타즈나가, 그의 옛 담당 우마무스메인 토키노 미노루라고―
“―연인, 인가요…!?”
“…….”
아, 바보다, 이 녀석.
머리가 꽃밭일 뿐이었다.
영특한 메지로의 아가씨답지 않게, 머릿속을 분홍색으로 물들였을 뿐이었다.
그 생각과 함께, 그는 안도의 작은 한숨을 내쉰다. 당혹감은 이미 사라졌다. 쓴웃음을 지르며 메지로 아르당에게 말한다.
“내가 저 왈가닥이랑 연인일 리가 없잖니. 그냥 오래 본 사이라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야. 여동생 같아서, 말이지.”
“……여동생, 인가요.”
메지로 아르당이 살짝 우물쭈물하며 한 걸음 물러난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간다.
“고향에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가끔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준 적이 있어서, 아무래도 익숙하기도 하고.”
“그런 거였군요. 그런데, 트레이너 씨.”
하지만 메지로 아르당이 다시 한 걸음,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목덜미에 흐르는 한 줄기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천천히 책상 위에 있는 마편(馬鞭)으로 손을 뻗었다.
“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 무슨 의미인지…잘 모르겠는데.”
“제가 트레이너 씨에게 그런 부탁을 드려도…아니, 저도 타즈나 씨처럼, 챙겨주실 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메지로 아르당의 눈동자에서, 반짝이던 유리의 하이라이트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이거, 위험한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의 성격상 거짓말은 할 수 없었고, 잘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메지로 아르당에겐 미안하지만, 여기에서는 단호하게 말해 두는 편이 나으리라.
“그, 그럼…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챙겨줄 수 있지. 아르당도 여동생 같으니까―”
“……여동생, 이요?”
트레이너 씨의 답변에, 메지로 아르당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그야 당연하다. 여기에서는 ‘소중한 사람’이라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거나, ‘부부’라거나, 그런 말을 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야카와 타즈나는 어떨지 몰라도, 메지로 아르당이 고작 여동생이라는, 가깝지만 연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관계로 만족할 리가 없지 않은가.
천천히, 트레이너 씨에게 다가간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왼손을 뻗어 살며시 그의 뺨에 손을 얹는다.
“……아르당.”
그가 경고하듯이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살며시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끌어안듯 트레이너 씨의 귓가에 입술을 댄다.
“여동생…인 거네요, 후후. 여동생.”
더는 참지 않으리라. 생각해 보니, 참지 않으면 이 고통스러운 마법도, 10개월은 찾아오지 못한다. 메지로의 이름을 가진 혈족도 생긴다. 트레이너 씨의 핏줄도, 메지로 아르당의 직계도 생기는 것이다.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다. 그렇다면 왜 참아야 하는가. 하야카와 타즈나보다 먼저, 저지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트레이너 씨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니까.
“그런데 트레이너 씨, 알고 계시나요.”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한다. 트레이너 씨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받아들이시기로 하셨으리라. 후후, 작게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연다.
“저희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는걸요♡”
“…….”
혀로 입술을 훑으며, 메지로 아르당은 그대로, 트레이너 씨의 허벅지에 그녀의 엉덩이를 내렸다.
트레이너 씨의 작은 숨결이 느껴진다. 체온이 느껴진다. 하야카와 타즈나도, 심볼리 루돌프도 없다. 방해할 사람은 없다.
우마무스메가, 히토미미를 집어삼키려 한다. 그런 계절이니까, 하늘은 높고, 우마무스메가 살찌는,
그런 가을이었다.
* * * * * * * * * *
하지만 불과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사무실 문이 열리며 메지로의 명배우가 들어왔고, 메지로 아르당의 행각을 인지한 순간, 문답무용,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메지로의 두 아가씨가 육탄전을 시작하는 것을 보며, 트레이너 씨는 한숨을 쉬며 마편으로 두 망아지를 훈육했고, 결국 사이좋게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어린아이처럼 무릎 꿇고 손들기라는 치욕스러운 벌을 받게 되었다.
이 일로 메지로 아르당은 컨디션이 절부조로 단숨에 급락했고, 가을의 텐노상에서 슈퍼 크릭과 오구리 캡에게 밀려 3착을 해 버리고야 말았다.
이후 한동안, 트레이너 씨는 단단히 삐진 메지로 아르당을 열흘간 어르고 달랬으며, 크리스마스에 외출 약속을 잡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메지로 아르당에게 잘못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리라.
가을이었다.
==========
HDD 나가고 램 산지 1년 반짜리가 2개 다 불량터져서 개빡쳐서 AS 메일 쓰다가 쓴 글
Memtest 에러가 1만개 넘으면 중간에 그냥 테스트 실패처리하는지 처음 알았음
요즘 DDR4도 은근슬쩍 같이 가격 올리던데 큰일이구만...
요즘 DDR4도 은근슬쩍 같이 가격 올리던데 큰일이구만...
16기가 개당 2만엔선이던데 이게맞냐고오 작년에 3.5만원 주고 샀었는데
지금 CPU는 구했는데 RAM을 못구해서 ㅋㅋㅋㅋ
컴퓨터 업그레이드 못하는 중.......
이게 씨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싶고 지금 이순간에도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것에 기가참
Q: 대위님, 마법의 날이 대체 뭡니까?
A: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뾰이도 못하고 있지.
이 또레나는 진짜 여러갈래로......흩어질듯(....)
오늘도 재밌게 보고 갑니다
이 크리스마스 약속이 루돌프의 습격에 나온 그 크리스마스 약속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