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 근교를 약탈하고 철수하던 12만의 로마군은 비슷한 규모의 페르시아군과 사마라 들판에서 맞붙었습니다.
대부분의 병력이 기병으로 이루어진 페르시아군은 고대에 전통적 전술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방면인 로마군의 좌익을 향해 대규모 기병돌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군이 기병돌격을 수차례 겪으며 패주하면서도 재집결해 방진을 보강하길 반복하자, 페르시아군은 후방에 배치한 전투코끼리까지 꺼내들어 좌익을 돌파하려 시도했지요.

이 시기 전투코끼리는 돌격용보다는 이동식 터렛 용도로 쓰였으며, 코끼리 위에 쇠뇌수나 궁수를 태운 누각을 실어 발사하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만 돌격시키는 식으로 쓰였기에 이전 시기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전투에 임했죠.
로마군의 좌익은 코끼리에 짓밟히면서도 버텨내었으나, 갑옷도 입지 않은 채 반격을 이끌던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가 도망치는 적의 투창에 맞아 사망하면서 전투는 로마의 판정패로 흐지부지하게 끝났습니다.
수레바퀴 모양의 방패는 '레기오 세쿤다 브리타니카'기동야전군의 상징이고, 백부장의 가슴에 두른 넓은 띠는 최소 하급 귀족이라는 의미의 신분의 상징입니다.
조야한 그림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야한 그림이긴 하군
으앙 우러요
저 포즈 그대로, 전장의 시체더미가 아니라 침대 위라면 그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