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또 이런 PC98시대의 일러스트들이 왼쪽에 올라왔습니다만 이런 글이 올라올 때마다 달리는 댓글들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 시대의 도트장인들은 픽셀을 하나하나 손으로 찍어 그렸다' 라는 말인데
당시 사람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명백히 잘못된 인식입니다
아무리 그 시대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기업인데
그리고 만약 픽셀을 하나씩 찍어 그린게 사실이라고 치면, 그럼 누군가는 그 시장을 노리기 위해 그걸 더 쉽게 하게 만들어주는 소프트를 개발했겠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실제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가는 아래를 보면서 알아봅시다
출처는 https://www.youtube.com/watch?v=vdQseNMVIsU 입니다
이 영상에선 실제 PC98 실기와 실제 그시절에 사용된 소프트를 사용해 그시절의 기법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2단계: 그림 그리기
(1단계는 그냥 설명이라 생략했습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이걸로 밑그림이 끝났습니다. 밑그림을 라이트박스 위에 두고 주방용 랩을 준비합니다

3단계: 랩에 옮겨 그리기

주방용 랩을 최대한 넓고 평평하게 펼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진한 펜으로 옮겨 그립니다. 랩이라 빈곤해 보입니다만 결국은 셀화 같은 겁니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는 나중에 보시면 알 겁니다

완성된 선화

4단계: 전통기술 "랩스캔"

랩에 그린 선화를 모니터에 붙입니다
이게 뭐냐면 랩스캔이라고 불리는 기법입니다. 당시의 모니터들은 CRT여서 랩의 성질과 CRT의 정전기로 인해 모니터로 붙이는게 더 쉬웠을 겁니다
그래도 움직이면 안 되니 단단하게 고정하는 게 좋았겠지만요
이건 당시 수많은 스캐너 없는 그림쟁이들이 쓰던 방식입니다. 만약 스캐너가 있는 기업이었다면 이 부분까지는 생략했겠죠

그 다음 랩에 그려진 선화를 따라 마우스로 선을 땁니다
마찬가지로 디지타이저(태블릿)나 라이트펜 같은 게 있었다면 좀 더 쉬웠을 겁니다

완성본
대충 원화와 모양은 비슷하긴 하지만 상당히 엉성하게 만들어졌습니다

5단계: 선화 클린업

이 엉망인 선화를 원래 상태로 복구해야 합니다

직각으로 꺾인 선들은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바꿔주고, 뭉친 선들은 제거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진짜로 노가다라서 딱히 할 말 없군요. 앞서 말했듯이 장비가 있었다면 여기까진 생략 가능했을 겁니다
결국 인생은 장비빨입니다


이렇게 클린업이 완료됐습니다

6단계: 색칠하기

마침내 나온 가장 신화적으로 과대평가가 된 파트입니다
기본적으로 채색은 페인트 툴 같은 것으로 크게 칠하고 음영이나 디테일을 추가한다, 그게 다입니다
다들 알듯이 PC98은 최대 16색만 쓸 수 있습니다
근데 이 16색이라는건 동시발색수가 16색이란 거지, 색 자체는 256색중에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즉 256색중 16색입니다. 컬러의 선택 폭이 꽤 넓은 편이죠. 그냥 16색 고정인 EGA와 다릅니다

이미 채색된 색은 팔레트의 색을 조정해서 바꿀 수 있으므로 실제 어떤 색을 쓰는게 좋을지 색채설계에서 약간 머리를 덜 써도 됩니다

그리고 음영 부분을 칠합니다

여기서 화면의 좌측을 보십시오. 여러 개의 점이 찍혀있는 패턴들이 많이 보입니다
디더링 패턴이라고 하는데, 저렇게 일정한 형태로 찍힌 픽셀들을 기존 색과 섞어서 중간색처럼 보이는 걸 만드는 겁니다
지금 보이는 이건 PC98 시대의 소프트를 이용한 그림그리기입니다. 즉 PC98 시대에도 이런 건 있었습니다
절대로 도트 장인들이 픽셀을 하나씩 찍어서 색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보신 분들은 앞으로 그런 착각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디더링 패턴들을 음영과 바탕색의 중간에 그려서 색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그라데이션을 묘사해 줍니다

음영을 칠하고 디더링 패턴을 채워서 채색이 끝난 모습입니다

7단계: 계단현상 제거(안티 에일리어싱)

사실 이 부분은 취향의 영역입니다
날카롭게 보이는 선들을 중간색을 채워 정리하는 건데 굳이 안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8단계: 마무리

디더링 패턴을 대강 채워서 배경 그리는 겁니다

끝
화면 왼쪽 아래에 실제 이 그림에 사용된 16색이 보입니다
동식발색수 16색은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기도 했는데, 쓰던 색을 계속 써야 했으므로 색감 통일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도 동시발색수 16색의 한계를 벗어나 마음껏 색을 쓰고 싶었으니 디더링 같은 기술들이 발달한 거겠지만요

영상은 30분이지만 실제로는 8시간정도 걸렸다는 코멘트입니다
현 시대에 와서 익숙치 않은 상태로 그리니까 그렇지 당시의 숙련된 아티스트였다면 더 빨리 끝났을 겁니다
아무튼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고
흔히 생각하는 픽셀 하나하나 찍어 그리는 PC98의 도트장인 같은건 없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케이드 게임이라던가, 스프라이트 그리기라던가, 그런 저해상도 픽셀 작업에 특화된 사람들입니다
저해상도 작업은 픽셀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PC98 게임의 CG같은 일러스트를 그렇게 그리면 시간낭비고 굳이 그럴 이유도 없단 말이죠
이상입니다
어릴 때 해볼걸..
야한거로만 봐선가 건전한 짤이지만 야하다
다 보고난 소감: 결국 하나하나 그린거 아니애오?
흔히 하는 오해처럼 이걸 무슨 십자수 하듯이 화면 확대해서 픽셀을 하나씩 채우진 않았죠. 디더링 패턴으로 칠했으니까
이런짤때메그른듯 ㅋㅋ
색상은 그런거 알겠는데 클린업 과정보니 더 말이 안나오는
결론:우리가 아는 도트장인들은 스트리트 파이터랑 메탈슬러그를 만들고 있었다
정보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