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의 2차창작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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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다시 시간을 돌이켰을까.
몇 번이나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을까.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수만번일 수도, 수억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기억나지도 않는다. 어떤 숫자를 떠올리건 그 이상일 것이라는 추측만을 할 뿐.
중요한 것은, 수도 없이 동료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수도 없이 그들이 나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리는 것을 견뎌내며, 마침내 마지막 이야기를 끝냈다는 것.
더 이상 카오스라는 것은 없다.
그리고 난 모두를 지켜냈다.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평범한, 혹은 평범치 않은 삶을 영유하고 있다.
우리가 이겼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정말 모두를 지켜낸 걸까?
내가 거스른 세계란 정녕 모두 하나의 세계인 걸까?
수 없이 많은 세상이 나의 이 고집스러운 싸움에 파괴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내 옆에 앉아있으면서 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갠 채 살짝 불러온 배를 쓰다듬고 있는, 한 때 나의 부함장이었던 그녀는 정녕 나와 처음 만났던 그녀일까.
루프를 반복할 때마다 수도 없이 기억을 잊어온 그녀. 그런 마지막의 그녀가, 정녕 진정 첫 번째의 그녀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이란, 어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대체 몇 명의 레노아를, 내 양아들 오웬을 죽인 걸까.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기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몇 번이나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포기하고, 악몽 속에 내버리고 온 걸까.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모두를 위해 다시 돌아가줘. 함장. 다만, 이건 기억해줘. 당신 덕분에... 나, 생화가 좋아졌어. 고마워."
"우리가 함장님을 잊더라도 함장님이 우릴 기억해주면 돼요."
그 말을 몇 번이고 들으며, 나는 다시금 돌아갔다. 모두를 버리고 홀로.
그리고 다시금 그들과 만나 카오스로 향했다.
그녀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다. 조화를 좋아하느냐고. 생화를 좋아하느냐고. 그녀는 그 때 마다 이렇게 답했다.
"난 생화라면 질색이야. 금방 시들고 죽어버리잖아."
어떨 때는 그녀의 나에게 건네진 동일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레노아가 좋아하는 생화."
그럴 때마다 그녀는 짜증을 부렸다. 날 누구랑 착각한 거냐고.
그 때마다 어버이날에 오웬이 우리에게 선물해 준 생화 카네이션을 이유로 들며 빠져나갔지만, 내 마음은 씁쓸했다.
나는 결국, 모두를 구했지만 모두를 구하지 못한 걸까.
그런 생각이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간혹 고개를 들었다.
지금도 그랬다.
그런 내 표정을 어느새 읽었는지, 레노아가 조용히 내게 물어온다.
"함장..."
그녀는 나를 그렇게 호칭했다가, 이내 피식 웃음소리를 내며 호칭을 정정한다.
"여보. 무슨 생각해?"
전쟁이 끝났음에도 너무도 입에 익어버린 호칭이 여즉 그녀의 혀에 붙어 있다. 그런 그녀에게 난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한다.
"그냥...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전쟁이 끝나고, 당신과 평온히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게."
"아직도 일상에 적응이 안돼? 빨리 적응해야지. 이제 몇 달 뒤면 우리 둘째도 태어나는데. 아이에게 카오스의 영역에 들어갈 때 처럼 굳은 표정만 보일 셈은 아니지?"
피를 이은 아이로는 첫째지만, 우리에겐 둘째다. 피를 이었든 잇지 않았든 우리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아들인 오웬이 있기에.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억지로나마 나의 웃음을 조금 더 크게 지어 보인다.
"절대 아니야."
조금의 정적이 흐르고, 그녀가 입술을 뗀다.
"알고 있어."
"뭐를?"
"당신이 진짜로 고민하고 있는 거."
그녀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런 그녀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골백번도 더 깨달은 것이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이 루프의 능력을 들킨 것도 여러 번이고, 그녀에게 아픈 소리를 하게 만든 것도 여러 번이다.
"언제나 사랑했어. 사랑해. 그리고 사랑할 거야."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는 언제나 그 말을 들어야만 했다. 마치 작별인사라도 되는 듯. 그게 사무친 적이 많았다.
그 말을 하던 순간의 그녀들의 눈길은 따스했지만, 그랬기에 더 사무쳤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그녀 역시 지금 자신을 진지하나 따스한 눈길로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고민을 알고 있다면서도 그걸 직접 입으로 꺼내어 확인시켜 주지 않는다. 그런 것은 우리 사이에 필요없다는 듯이.
대신에, 오직 대답만을 꺼낸다.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 사랑해. 그리고 사랑할 거야. 몇 번을 다시 물어도.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나라도 그렇게 대답할 거고, 어떤 당신이라도 나에게서 그 말을 들을 거야."
나의 손을 쥔 그녀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다.
"영원히 사랑해."
어째선지 나는,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카오스에서 나를 향해 슬픔을 감춘 채 웃어 보이며 나를 떠나보내던 그녀가, 온전히 지금의 그녀라고,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리고 증명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내 바램과는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그녀와 지금의 나는 서로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수 천 억번을 헤어지고 만난 끝에.
그리고, 그런 우리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언제나 사랑했고, 언제나 사랑했으며, 언제나 사랑할 것이다.
그 사실을 직시한 우리 둘의 입이 자연스레 포개지려던 그 순간, 현관문의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곧 문이 열리고, 우리 둘은 황급히 떨어진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우리 아들의 목소리에 우리는 어색하게 웃는다.
"우, 우리 오웬 왔구나!"
"새, 생각보다 더 일찍 왔네? 별 일 없었니?"
부부의 애정행각을 아들에게 들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부부도 많다지만, 우린 어색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볼이 붉어지고 심장도 뛰고 식은 땀도 흐르고 괜히 머리카락도 정리하게 된다.
그런 우리 둘의 모습에 오웬은 그대로 빙그르르 몸을 돌리더니 이렇게 외친다.
"아-! 요 앞 고양이 까페에서 친구들이랑 숙제하기로 했는데! 가방만 놓고 갈게요!"
그러면서 부리나케 가방을 내려놓고 빙긋 웃으며 뛰쳐나가는 오웬의 모습에 우리는 망연히 서 있다.
숙제를 하는데 가방을 놓고간다는 어불성설의 말에 우린 잠시 동안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내 서로를 바라보며 쿡쿡 웃음 소리를 낸다.
""우리 아들, 누굴 닮아 이렇게 배려심이 깊을까.""
그것이 우리가 동시에 입에 담은 말이었다.
"이제 방에 들어갈까. 여보."
"응. 당신."
나는 남편으로서 조심스레 레노아를 부축하고자 한다. 그녀는 아직 만삭도 아닌데 괜찮다는 듯 되려 본인이 카오스를 상대하며 보여준 힘이 건재함을 드러내며 나를 이끈다.
안방에 들어서는 우리를 맨 먼저 맞이하는 것은 인조적인 방향제의 향기가 아니라 자연의 풍미가 물씬 담긴 생화의 꽃향기다.
그것은 물론, 나의 사랑하는 레노아가 정성껏 가꾸는 꽃들이다.
그녀는 이제 조화보다 생화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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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기관 더듬어서 그거 베이스로 팬픽 2차창작 쓰고 있었는데 오늘 내부문건 터진 거 보니까 더 이상 쓸 마음 안나서.
그래도 엔딩은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