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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문재인’을 떠나보낸 사연 - 이창수.txt

 ‘나의 친구 문재인’을 떠나보낸 사연 

 

이창수 (친구)

 





 

 

나는 문재인이 낯설다. 한 아파트의 아래윗집으로 지내며 오랜 정을 나누던 그가 청와대에 일하러 서울로 올라간 이후, 나는 문재인이 낯설다. 내 친구가 아닌 것 같다. 서운하고 섭섭하다. 친구 하나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찬바람을 몰아치게 한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이 생각난다. 25년도 더 됐다. 어느 봄날의 토요일 오후, 부산 당리동의 대동아파트에 살던 나는 일찍 퇴근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니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난 그가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안사람들끼리는 이미 오가며 지내는 눈치였고 애들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으니 들은 바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아랫집에 사는 그 변호사 양반이구나. 마누라가 문 잠가 놓고 어디 간 모양이네. 주말 오후에 집에도 못 드가고 안 됐소. 열쇠 하나 복사해서 갖고 댕기지, 변호사도 별 수 없네. 그라마 앉아서 책 보소, 나는 들어갑니데이.’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의 곁을 지나쳤다. 마주 목례를 하며 미소 짓던 그의 표정이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떤 계기였던지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의 집에서 차를 한 잔 나눈 뒤로 우리는 차츰, 그리고 매우 가까워졌다. 심지어 문 변호사는 나를 자기네 동창생 그룹(이들은 주로 함께 휴가를 함께 보내는 죽마고우 그룹이었다)에까지 끼워주었다.  

  

 

이건 사실 좀 드문 일이다.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라는 게 그저 데면데면 의례적인 인사나 나누기 십상이고, 남자들끼리는 더욱 그러하다. 한데 아무런 학연이나 특별한 관계도 없는 사람들끼리 다만 이웃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아도 참 의외라 느껴진다. 우리는 부부동반으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지리산 종주를 비롯해 여러 산을 함께 올랐고 스킨 스쿠버도 함께 했다.  

  

 

나는 그가 좋았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재미난 농담도 할 줄 모르고, 좀처럼 실수하는 법이 없어 뭔가 좀 어렵게 느껴지고…, 한 마디로 부담 없이 친해질 요소라고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그였지만, 함께 사귀는 내내 나는 그의 속 깊은 따뜻함에 언제나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우 사려 깊고 남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순박했다. 변호사라면 출세한 직업인데 잘난 척 하는 법이 없었다. 입에 발린 얘기로 호의를 표하지 않았다. 함께 길을 가다가 서점이 보이면 슬그머니 끌고 들어가 책을 사서 준다거나, 함께 놀러 간 시골 장에서는 물건 좋아 보이는 마늘 두 접을 사서 나한테 한 접 슬쩍 건네준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깊은 정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선 되고서 문 변호사도 노 대통령을 도와 참여정부를 이끌어 가기 위해 서울로 가게 되었다. 우리 친구 그룹은 그를 위해 송별회를 마련했다. 온천장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 그 자리에서, 친구들은 기왕에 그렇게 결정이 되었으니 잘 하고 오라는 격려를 얹어 그대를 보낸다마는 솔직한 속마음은 “자네가 가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판이라는 게 어떤 곳인데, 더 없이 아끼는 친구가 상하고, 상처받고, 아파할 것이 몹시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문 변호사는 그 특유의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가서 원칙대로 일 하겠다.” 

 

 

  

그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친구 하나를 잃은 것 같아 쓸쓸함이 왈칵 밀려들었다. ‘나의 친구 문재인’이 이제는 모든 사적인 관계를 뒤로 한 채 ‘국민의 공복’이 되기 위해 떠나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보내기야 하겠지만 함께 어울려 다니며 추억을 쌓는 일이 더 이상은 힘들겠구나….  

  

 

우리 친구들은 문 변호사가 서울로 간 뒤로 참여정부 5년 동안 단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우정이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이름에 값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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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람부뜨리 2016/12/23 21:37

    참 신기하게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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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파척결 2016/12/23 21:40

    역시 유유상종...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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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utch_Chu 2016/12/23 21:46

    글 참 좋네요
    저런 친구 둔건 자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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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꽃별 2016/12/23 21:51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화인데 맘이 따뜻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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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마아재 2016/12/23 22:18

    알면 알수록 괞찮은 사람.
    진작 좀 알아보고 투표할걸..
    바보같은 지지자지만 꼭 당신이 이나라의 대통령이 되는날이 오리라ㅡ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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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분좋은날 2016/12/23 22:52

    유유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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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호 2016/12/24 01:16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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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위한멜로디 2016/12/24 02:44

    정말 유유상종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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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멘스아찌 2016/12/24 04:28

    눈물이 나네요
    본받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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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大路 2016/12/24 12:23

    맙소사. 이분 필력도 보통이 아니군요.
    조선을 건국할 때 이상 드높던 유학자들의 느낌이 납니다, 5년간의 연락 두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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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hnexen 2016/12/24 15:16

    문재인도 그렇고 그 친구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정말 유유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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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몰츠용수 2016/12/24 15:25

    겁나 멋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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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치홍이 2016/12/24 16:11

    왜케 멋있죠 진짜 유유상종은 진리인듯.
    박근혜 주변인들하고 진짜 비교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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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전둬 2016/12/24 16:40

    뭐 똥에는 똥파리가 꼬이고 꽃에는 나비가 몰리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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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정글러 2016/12/24 16:59

    화향 백리 주향 천리 인향 만리죠 인품과 덕 정이 있는 사람은 만리라도 찾아가서 만나고 싶은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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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eonyo 2016/12/24 17:06

    ㄱㅎ 곁에 있는 넘들과는 천지차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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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키레또 2016/12/24 17:27

    무슨 연애수필 읽는 기분이네요 ㅎㅎㅎㅎ
    저 동창모임이 함께 휴가가고 하던 저 그룹도 이 글 쓰신 분도 마찬가지로..
    문재인 전대표 청와대 들어가시고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던 분들이군요....
    글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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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닐리리꽁치 2016/12/24 17:51

    5년 동안 연락 안 한 친구분들도 정말 멋있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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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폭위태천 2016/12/24 18:27

    캬~~진짜~좋은글이네여~부역자들 쓰레기들 부러워하는게 이런겁니다 배신배반 이런거나 느끼지 그사람 됨됨이는 부모한테나오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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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놈참 2016/12/24 18:29

    문재인에 대한 호불호는 둘째치고 글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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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di 2016/12/24 18:58

    끼리끼리 노는겁니다.
    ㄹ혜보면 딱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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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마쿠마 2016/12/24 19:02

    좀 멋진 친구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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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캐넌 2016/12/24 19:59

    마지막 문단이 참 좋네요.
    이창수씨도 참 멋진 분이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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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제관 2016/12/24 20:02

    꽃근처에는 나비가..
    똥 근처에는 똥파리가 꼬인다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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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거즈 2016/12/24 20:06

    마지막 문단 진짜 멋지네요. 글솜씨가 대단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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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거없잖아 2016/12/24 20:35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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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르륵 2016/12/24 20:50

    아.....진짜 멋있음요. 먼 훗날 후손들이 존경할 만한 인물인건 분명해요. 이창수 님도 멋진 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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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혀기찡 2016/12/24 21:46

    역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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