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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괴문서) "나랑 진심으로 100미터만 달려줄 수 있어?"


말딸/괴문서) "나랑 진심으로 100미터만 달려줄 수 있어?"_1.jpg

다이이치 루비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부탁에 

보기 드물게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결과는 뻔히 아실텐데요?"


'인간은 우마무스메를 이길 수 없다.'라는 절대적인 명제.

게다가 우마무스메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에서는 

더더욱 격차가 벌어진다.


눈앞의 그는 그런 우마무스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트레이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질 수밖에 없는 경주를 부탁하는 것인가?


"왠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도 진심으로 달리고 싶어졌거든."


100m.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무척이나 짧은 거리.

10초라는 눈 깜짝할 시간에 달리기는 끝난다.


우마무스메에게 단거리란 1000m.

무려 10배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달리고 싶어한다.


왜?


진심이니까.


그게 그의 본심이었다.


사실 다이이치 루비라는 우마무스메도 별 다르지 않았다.


화려한 일족으로서의 사명이라는 것도 물론 있다.

하지만, 우마무스메로서의 본능도,

달리는 사람으로서의 진심도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은 빈 트랙이 없을테니, 

삼여신상 앞 분수대에서 괜찮으실지요?"


거절할 이유는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럼 먼저 가서 100m 측정하고 있을게!

루비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와!"


말이 떨어지자 마자 해맑은 웃음을 지은 그는

문을 덜컹 열곤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문이 확실히 닫힌 것을 확인한 루비는 교복의 흰 리본부터 시작하여

편자 모양 악세사리가 달린 구두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레, 그러나

속도감 있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통, 통 하고 운동화 앞굽을 바닥에 가볍게 두드리자,

루비는 완전히 달리기 안성맞춤인 트레이닝 복을 갖추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인데도...저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는군요."


가볍게 입가를 가리며 쿡쿡거린 루비는 트레이너실의 문을 열고

그가 기다리고 있는 삼여신상을 향해 뚜벅뚜벅, 천천히 나아갔다.


-


쏴아아ㅡ


시원하면서도 살짝 서늘한 분수가 

삼여신상 앞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로부터 100m 지점. 

그가 옆에 있는 나무를 통- 소리가 나게 가볍게 두드렸다.


"때맞춰서 잘 왔네, 루비.

여기, 이 나무까지가 딱 100m야!"


그가 검지로 가리킨 나무를 본 뒤,

루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그에게 알았다는 표현을 건넸다.


터벅터벅.


탁.


그가 분수대 앞에 섰다.


"출발선은 여기로군요."


루비는 두 주먹을 가볍게 쥐고 상체를 기울인 자세를 취했다.


그도 두 손과 한쪽 무릎을 지면에 대고 자세를 취했다.


"...생각해보니 출발 신호를 생각 못했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자세를 풀고 일어난 그가 

스마트폰 타이머를 만지작거리던 순간, 루비는 자세를 달리 했다.


"이번엔 저도, 같은 자세를 취해볼까 합니다."


두 손과 한쪽 무릎을 지면에 가져다 댄,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


인간에게는 폭발력있는 출발을 선사하지만,

우마무스메에게 있어서 이 자세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다간 강한 힘으로 올라간 무릎에 의해 

얼굴을 다칠 위험성이 있는 자세다.


"루비, 정말 괜찮겠어...?"


걱정어린 시선으로 루비를 바라보는 그와 달리 

루비의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소처럼 차분했다.


"예, 다치지 않을 자신은 충분히 있습니다.

게다가...트레이너씨와 같은 자세로 한번 달려보고 싶어졌기에."


신체능력은 서로 다르지만, 동등한 위치에서 겨루고 싶다.


그 마음을 배반할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톡. 토톡.


"...그럼, 스마트폰 알람음이 출발 신호야!"


10초에 맞게 설정한 타이머는 그가 온전한 자세를 취하자 마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틱.


틱.


틱.


띠리리링-!

쾅-!


자신의 순발력과 다리근육을 믿고, 지면을 박차며 달렸다.


예상했던 대로, 루비는 자신보다 훨씬 더 앞을 달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분하기보단 따라잡고 싶다는 묘한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리를 움직여, 더 빠르게. 


교차하며. 


앞을 향해.


바람소리를 갈라. 


더 더 빠르게.


저 나무까지!


-


"흐헉...역시...후...어마어마한 차이구나."


"신체능력이 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트레이너씨께서 

꾸준히 운동을 하시진 않으셨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입니다."


숨을 헉헉거리는 그와 달리, 루비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신랄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치만...나름 재밌지 않았어? 

그냥 100미터를 이렇게 죽어라 달린다는 게?"


인간에게 짧은 거리.

우마무스메에겐 더 짧은 거리.


하지만, 그렇기에 더 진심을 짜낼 수 있는 거리.


"...다음 번에 한번 더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100m.

댓글
  • 덴드로비움[후미카P] 2025/10/11 02:47

    ※ 다이이치 루비의 원본마는 커리어 도중 발정기가 와서 은퇴했다.

  • 익명-DQ1Mzcw 2025/10/11 02:45

    다른세계의 또레나:짜이지않았구나..욧캇타..

    (TUHyhA)

  • 덴드로비움[후미카P] 2025/10/11 02:47

    ※ 다이이치 루비의 원본마는 커리어 도중 발정기가 와서 은퇴했다.

    (TUHyhA)

  • 익명-jk3NA== 2025/10/11 02:51

    제목보고 다스카 자전거괴담 생각났잔아...

    (TUHyhA)

(TUHy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