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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트레이너 위에 나는 굴비


[말딸,괴문서]뛰는 트레이너 위에 나는 굴비_1.jpg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생각했다.
아, 사랑 거 진짜 짜증 나네.
현역 시절 라이벌이었던 스틸 인 러브가 트레이너의 눈에 띄는 연극에 휘말리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걸 보고 절로 한숨이 나왔으니까.
뭐, 조실부모한 채 성장한 그녀로선-뭐 그래도 친척의 도움은 약간 있었지만-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랑에 눈이 멀면 저런 쉬운 속임수 하나 간파 못 하고 쩔쩔매는 것인가.
한심하긴.
그렇기에 그녀는 그때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굳게 결의했다. 솔직히 한심하잖아.
“그런 주제에 꼬리는 왜 내 다리를 감고 있니, 어그루.”
“신경 쓰지 마십시오, 파파.”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아무튼 사랑은 짜증 났다.
그녀 자신이 하게 된 사랑조차 말이다.
-⏲-
팀의 규모가 크면 종종 라이벌 관계인 우마무스메들도 한 팀 내에 있을 때도 있다.
어드마이어 그루브와 스틸 인 러브가 그 사례였는데, 둘은 트리플 티아라를 두고 경쟁하면서도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는 팀에 내걸린 아주 적나라한 원칙과도 관련이 있었다.
‘라이벌끼리 같은 팀이라고? 좋다, 그럼 끝까지 레이스장에서 서로 싸우다 죽어라!’
오 시발, 트레센 내 팀에 걸린 모토라곤 믿기 힘든 아주 폭력 가득한 날 것 그대로의 어휘.
“그래서 저걸 누가 썼단 말이죠.”
“광견.”“또 그 사람입니까.”
아하, 광견이 썼다면 인정이지.
그 미친개가 팀을 창단할 당시 처음 써서 건 건 ‘앞길을 막는 모든 걸 찢고 죽여라! 티아라는 너희의 것이다!’라는 라모누의 뒷목을 잡게 한 문구였다. 그런데 결혼 퇴직하기 직전에 스틸 인 러브와 어드마이어 그루브가 들어온 걸 보고 하나가 더 추가된 게 저 꼴이다.
유순…해진 건가?
아무리 그래도 열혈 넘치는 남학교에서도 기겁할 문구 같은데!
“그래도 간결해서 좋군요, 끝까지 살아남는 쪽이 트리플 크라운을 쟁취하라는 뜻 아닌가요?”
“그런가? 그 양반이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했겠구나?”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트레이너는 담당의 말을 부정하려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질머리는 극한으로 더러워도 트레이너로서의 재능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던 양반이다. 비록 이제 그 길은 끝이 났다지만, 한창때에는 여러 무명의 우마무스메들을 키워 올려 대상경주에 심심할 때마다 출전시키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았던 경력이 있으니까. 우마무스메들의 심리 파악에 있어선 누구보다 잘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라모누라는 바로 곁의 덫은 못 피하고 올무에 걸린 걸 보면 또 이상한 데서 눈치 없던 거 같기도 한데, 이건 팀의 트레이너 죄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래서 이번엔 뭣 때문에 이렇게 붙잡은 거니.”
“다른 게 아니라, 궁금한 것이 있어섭니다.”
평상시의 시끄러운 팀 트레이닝실과 달리, 다소 한적한 시간을 노려서 사람이 없는 때.
찻잔을 들던 트레이너는 곧 상상도 못 한 질문을 마주했다.
“세간에서 제 평판이 어떠한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흡.”
순간 뜨거운 찻물이 한순간에 목 너머로 훅 들어갔다. 왠지 목에 화상 입었을 거 같긴 한데, 뿜으면 더 위험하니 참자.
“평판이라, 어떤 식의 평판?”
“정확히는 소문에 대한 것이 궁금합니다만.”
“소문이라.”
이러면 명쾌해지는데.“‘어드마이어 성인 애들은 왜 다 저러냐’ 정도면 만족하니.”
“그건 또 무슨 말씀-. 어?”
순간 머릿속에 누군가 뿅, 하고 떠오른다.
아, 그 사람.
“이 학원에 어드마이어 붙은 애가 너 말곤 어드마이어 베가 말곤 없잖아. 근데 걔나 너나 하는게 어쩜 그리 비슷하냐고 소문 쫙 퍼진 지 한참 됐다.”
“저, 좀 당황스러운데요. 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상상도 못 한 답이 날아온 탓에 어그루는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아니, 친척인 건 맞긴 한데, 비슷하다고? 그 말에 바로 묵직한 팩트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아닌 척 튕기면서 제일 먼저 부뚜막에 올라가는 고양이.”
“예?”
“냉정한 척하면서 이상한 기행은 다하는 애.”
“아니, 그건.”
“친구 없는 척하는데 알고 보면 친구 많은 인싸.”
“…그건 아닌-.”
“맨날 전화하는 에어 그루브와 두라멘테는 그럼 친구 아니니.”
“….”
와, 얼굴 빨개진다.
근데 화나서 빨개진 건 아니고, 현실을 보니 부끄러워진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파파라고 부르지 말랬는데도 고집하더니 평판 다 깎아 먹은 거 아니니.”
“하지만, 트레이너는 제 아버지가 되어줄 남-.”
“니가 무슨 샤◉ 아즈◉블이냐?”
말도 안 되는 반론은 컷.
“좀 적당히 해라. 그러면서 맨날 꼬리로 다리는 감고 있고. 나이 차이가 몇인데 이렇게 달라붙니. 난 그 광견처럼 마음이 넓지가 않아요.”
“하지만 버리시지도 않으실 거 아니잖습니까.”
서로 다른 색의 두 눈을 반짝거리며 하는 말을 보니 묘하게 고양이가 떠오른다. 그냥 이건 ‘제가 멋대로 붙을 테니 상관 마세요’ 선언이잖아.
“아무튼 적당히 해라, 한때 사랑 같은 거 모르겠다는 애가 어쩌다 이리됐는지 원.”
“스틸 양의 행보를 보면서 느낀 게 많아서 말입니다.”
담당의 말에 트레이너는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 순딩이한테서 배울 게 뭐가 있다고.”
“약점을 잡으면 끝까지 잡아서 끌고 가라는 걸 배웠습니다. 속 터지는 모습만 내내 보이다가 마지막에 좋은 걸 보여주더군요.”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무언가를 슥 꺼냈다.
휴대전화.
그리고, 화면에 쭉 나열된 무언가의 리스트.
“그래서 저도 실현해 볼까 합니다, 파파.”
“뭐니 그건.”
순간 불안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니겠지?
“처음 파파를 파파라고 불러도 되냐고 했을 때 허락하셨던 녹음파일입니다.”
“당장 지워.”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급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저거 진짜 위험하다. 그 당시 아루브와의 다소 딱딱하던 사이를 개선하고자 허락한 것인데 이게 이렇게 되돌아온다고?
“안 됩니다.”
“지워, 이 녀석아!”
“지워야 한다면 제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셔야 합니다, 대신 뭐든지 말이지요.”
결국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입에서 마법의 단어가 나왔다.
뭐든지.
그 단어에 트레이너는 멈칫하고 말았다.
이건 함정이다, 공명의 함정. 그런데 저 파일을 안 지우면 진짜 잠재된 지뢰가 상시 매설된 상태로 사는 것과 다름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당분이 급격히 부족해지며 차를 한 잔 더 따른 후, 각설탕을 몇 개나 때려 넣은 후 다시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만 째깍거리며 들리는 가운데, 결국 그는 백기를 들었다.
“내가 졌다, 제발 지워다오.”
“후후, 알겠습니다.”
그 말에 아루브는 슬며시 웃으며 파일을 지웠다.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게 있었으니, 이미 사본을 PC에 저장해뒀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모른 채 트레이너는 백기로 투항했다. 제자가 스승보다 앞서나가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다시 매직워드 ‘뭐든지’의 마수에 걸린 트레이너가 하나 더 늘어나고 말았다.
과거에도, 현재도 언제나 입을 조심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신이 안 꺼내도 담당이 ‘뭐든지’를 꺼내서 들고 온다.
주의해라, 트레이너들이여.





모든 트레이너는 잠재적 뭐든지의 피해자다, 이해했지?

댓글
  • K200APC 2025/09/04 06:58

    아루브 : 또레나는 내 파파가 되어 줄 남자였다!
    사랑이 : 파파? 또레나가? 우와앗!(엘리자베스 여왕배 1착을 빼앗기며)

    (phgxIb)

(phgxI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