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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마시면 취하는 여자후배 이야기.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에겐 여자 후배가 하나 있었다. 

평소엔 착하고, 조신하고, 수줍음이 많은 친구였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술버릇이 매우, 아니 매우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고약하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분명 술이 맞지 않는 육체를 타고난 게 분명했다. 
보통 사람이 술을 마시면 대충이라도 자신의 주량을 가늠하기 마련인데, 
이 친구는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소주를 마셔도 멀쩡한 날이 있었고, 어느 날은 맥주만 마셔도 취해버렸다. 

이 친구는 정말 버라이어티한 술버릇의 소유자였는데, 일단 오바이트를 기본 장착하고, 
나머지는 그 날 그 날 컨디션에 따라 달랐다. 어떤 날은 울고,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때리고, 어떤 날은 물었다.

이 친구 덕분에 나는 숱하게 고생을 해야했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항상 이친구가 술에 취하면 집에 데려다 주는 건 내 몫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 친구의 부모님과도 친해졌다. 
문제는 이 친구의 부모님이 딸래미가 술을 먹고 귀가가 늦어지면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흥신소 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뭐해 나는 술을 먹다가도 동네를 뒤져야 했다.

원래 이정도로 가깝게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녀간의 정이 싹틀만도 한데 이 친구와는 그 선을 넘어섰다. 

술에 취한 여자후배를 데리러 온 남자선배. 

일반적으로 상상한다면 얼마나 애틋하고 로맨틱한가.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는 여자. 숨을 몰아쉬며 나타나 여자의 술잔을 드는 여자의 손을 잡는 남자. 

"너. 많이 취했어. 오빠가 데려다 줄게. 가자."

"오빠가 뭔데! 이 손 놓지 못해! 나 오늘 완전히 망가져 버릴거야."

"너. 이자식..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데.." 

"오빠.."

와락. 이 얼마나 오글거리고 로맨틱한가. 하지만 우리에겐 전혀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너 이 개가튼 X. 고새를 못참고 또 술을 쳐먹었어. 니가 사람새끼냐. 짐승새끼냐."

"누구쉐요? 아뽜?"

"아빠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요와. 요와. 니네 부모님이 또 전화하셨잖아!" 

거리낌없이 쌍욕을 내뱉고, 귀때기를 붙잡고 끌고 가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형사와 용의자가 마주한 장면과 비슷했다. 검거현장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 줄때면 그 아이가 그 날 뭘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파전이네.."

동네 놀이터 어귀에서 그 아이의 등을 두드려 주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것도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목구멍에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것처럼 끝없이 쏟아졌다. 
거의 악마가 씌인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 했냐?"

"응... 욱.. 우웩.."

"허허..뱃속에 텃밭이 있나? 뭔 풀이 계속 나오네.."

되새김질을 하는 그 아이를 보니 코뚜레라도 뚫어서 끌고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장 위험한 상태는 술을 조금 마시고 취했을 때였다. 
어느 날, 친구들과 이른 저녁부터 모여 치맥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 아이는 뒤늦게 나타났다. 그러더니 목이 탄다며 맥주를 시켜 벌컥벌컥 들이켰다. 
설마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맥주를 들이키고 잠시 말이 없던 그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오퐈." 

취했을 때만 튀어나오는 혀꼬인 발음이었다. 설마 했지만 그 아이의 눈은 이미 풀려 있었다. 
급속도로 취해버린 그녀는 갑자기 술을 깨야겠다며 커피를 찾았다. 
나는 입구에 있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가져다줬다. 
커피를 홀짝거리던 그 아이는 커피가 너무 쓰다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 숼탕있네~ 히히히~" 

그러더니 테이블 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커피를 마신 그 아이는 말했다. 

"히히~ 이거 웨 안녹쥐. 이거 이상해 오퐈. 설탕이 안녹아. 아이 짜."

"... 그거 치킨무야 이뇬아."

커피에 치킨무를 잔뜩 집어넣고 연신 짜다고 투덜거리는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또 그 아이를 질질 끌고 나오며 나는 앞으로 이 아이를 치킨박사와 하이트씨라고 부르리라 마음먹었다.









 
댓글
  • Arizona그린티 2016/12/21 14:48


    동료의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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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꿀이 2016/12/21 14:53

    제목보고 솔깃솔깃 들어왔다가 에엥? 하는 제자신을 반성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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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기미 2016/12/21 15:44

    이빨자국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 그 그네에서 오바이트하신 후배분이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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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마법사 2016/12/21 16:12

    그래도 가족에겐 술버릇을 부리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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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문아재 2016/12/21 17:27


    치킨무 ㅋㅋㄷㅋㅋㅋ
    임수정씨가 말한테 치킨무를 줬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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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핀왼손 2016/12/21 17:27

    내 주위에도 이런x이 하나 있었는....
    하... 이 동네를 핥고다녔죠 아주
    어째어째 술집에서 끌고나오면 그때부터는 우사인볼트로 변신 동네를 종횡무진하며 우리는 술래잡기를 하지...
    그러다 업으면 등물고 ㅎㅎㅎ 니가 짐승새끼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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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우108 2016/12/21 17:29

    뭐가 담담하면서도 재미있네요 ㅎ
    더 읽고 싶은데, 꼬릿말 다음도 읽고 싶은데
    드라마 끝나는것도 아니고, 다음편이 기달려 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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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가을이 2016/12/21 17:33

    시간이 흐르고 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준다며 날 불러냈다.
    카페에서 같이 얘기를 나누다 그 아이가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 남자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형..그. 혹시.. 같이 술 마시면..원래 좀.. 그래요?"
    나는 그 남자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내 팔에는 선명한 이빨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내 팔을 보고 그 남자도 자신의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그 남자의 팔에도 이빨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 그것은 동료의 증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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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이오니 2016/12/21 17:35

    이분결혼했어욬?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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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D-ATTACKER 2016/12/21 17:35

    지금은 제 아이의 엄마입니다.
    이런식의 결말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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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aaba 2016/12/21 17:41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17779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17801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18201
    오래 전에 올린거라.. 같은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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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di 2016/12/21 17:57

    제가 저 후배였다면 글쓴님한테 백퍼 반할것같아요 ㅋㅋㅋㅋㅋㅋ  나에게 이렇게 거친남자는 처음이야....♥ 개가튼 X이라닠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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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도면soso 2016/12/21 17:57

    글 잘쓰십니다..
    요와요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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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unaa 2016/12/21 18:04

    오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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