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문학) "성녀님이 저렇게 강하시면 용사는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모험가 길드 본부의 어느 점심 시간,

용사 파티의 지원을 담당하는 직원이 평소 궁금하던 것을 길드장에게 물었다.

"아니 그렇잖아요. 이번 성녀답게 성법에도 능하실 뿐 아니라

메이스와 워해머를 동시에 휘두르는 근접전 솜씨도 용사님보다 뛰어나시고,

심지어 단순한 근력과 맷집도 용사님보다 훨씬 강하시잖아요?

저번에 두 분이 티격태격하시는 것 보니 용사님이 성녀님께 아예 상대도 안 되시던데."

"그렇지"

"솔직히, 그냥 성녀님이 마왕보다도 강하신 거 아닐까 싶어요."

".....그럴 수도."

"그럼 용사님이고 뭐고 성녀님이 혼자 마왕 토벌하러 가셔도 되지 않아요?"

길드장은 이걸 말해도 될까, 하는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왕국에 전해지는 용사 이야기들을 보면,

용사에게 마왕 토벌의 댓가로 보통 왕녀나 귀족 영애, 혹은 왕국 최고 미녀와의 결혼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지?"

"그렇죠"

"물론 거기에는 인간계 최강의 무력을 지닌 용사를 결혼 동맹의 형태로 나라에 귀속시키겠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그게 첫째 목적은 아니지."

"그럼요?"

"아무리 정의감의 화신인 용사라도, 마왕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공짜로 요구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

그러니 그에 걸맞은 보수를 제공해야 마땅하다.

보수라고 하면 우선 재물이나 작위 같은 걸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용사는 말 그대로 인간계 최강의 무력. 그 정도로 강한 존재가 과연 마음만 먹으면 재물이나 작위가 아쉬울까?"

"아니겠죠"

"그렇지. 그러니까 결국 그 보수는 단순한 강함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하겠지.

....예를 들면, 자신이 사모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 같은 것 말이야."

"아하, 그건 이해가 되네요. 

근데 그게 제 질문과 무슨 관계가 있죠? 제가 질문한 건 성녀님 이야기인데"

"자, 내가 방금 한 이야기에서 '용사'만 '성녀'로 바꿔보게"

"성녀에게 마왕 토벌에 대한 보수로 사모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를....아?"

"....이번 용사님은 성녀님께서 수습 수녀였던 시절부터 짝사랑하셨던 성전기사셨다고 한다.

동행할 용사 겸 장래의 남편으로 누굴 원하는지 물었더니 즉시 지목했다고"

길드 본부 밖에서는 성녀가 용사의 머리를 메이스로 후려쳐 기절시킨 뒤 여관으로 끌고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사와 성녀가 보고 및 휴식을 위해 길드에 들를 때마다 벌어지는 일상이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이해한 직원은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고 그저 점심 식사에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