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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

" 비밀 구역 511? 갑자기 거기는 왜요? 거긴 정부 제한 구역인데? "

공치열의 얼굴이 불안해졌다. 이 도움 안 되는 선배가 또, 위험한 일에 자신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최기자는 머리를 가까이해 은밀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 내가 ㅁㅁ제약회사 조사하고 다녔던 거 알지? 거기서 한 가지 약품이 대량 이동하는 것을 알아냈어. 511구역으로 말이지. "
" 그 약이 뭔데요? 비아그라? "
" 아니, 수면제! 왜 수면제가 511 구역으로 보내질까? "
" 수면제? "

공치열은 인상을 찡그렸다. 수면제라니? 게다가 더 놀라운 건,

" 자그마치 트럭 한 대 분량의 수면제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거대 제약회사들도 같이 보내고 있지! "
" 잉? 그렇게나 많이? 왜요? "
" 그걸 알아보자는 거지! 그렇게 대량의 수면제가 왜 필요할까? 그것도 몇십 년간 계속 말이야! 도대체 거기에 뭐가 있길래? 왜? "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공치열은 , '아차!' 짜증을 내며 선배를 보았다.

" 아이씨! 나까지 궁금해졌잖아요! "
" 그렇지? 궁금하지? 그럴 줄 알았어! "
" 에휴~! 그래서, 어쩌자는 거예요? 여태 511구역에 관련된 취재가 한 건도 없었던 건 알죠? 몰래 잠입이라도 하자고요?  "

최기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 시대가 어떤 시댄데, 잠입이라니? 두더지처럼 땅이라도 파자는 거야 뭐야? "
" 그러면요? "

최기자는 씩 웃으며, 스마트폰을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음모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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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통제 511 구역으로 몇 톤 분량의 수면제가 매주 보내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 정부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

[ 511 구역에 거대 외계 생명체가 잠들어 있다! 매우 포악한 성격의 생물체는 연구를 위해 항시 잠들어 있으며-. . . ]
[ 511 구역에서 '잠을 없애는 방법'을 발명 중이다! 그 과정에서 비인도적인 인체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 . ]
[ 511 구역으로 보내지는 수면제는 사실 마약의 원료로-. . . ]
[ 511 구역은 전국의 모든 수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흘려보내는-. . . ]
[ 511 구역은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봉쇄된 지역이며, 좀비를 연구해서 죽지 않는 인간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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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에 앉은 최기자는 노트북으로 인터넷 반응을 보며 싱글벙글 이었다. 
옆자리 공치열이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 이걸 다 선배가 퍼트린 거예요? "

최기자는 즐겁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 아니? 난 처음에 소스만 줬어. 나머지는 사람들이 알아서 다 퍼트린 거지. "
"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많이... "
" 1%의 진실에서 99%의 거짓이 나오는 것이 음모론이야! 수면제라는 소스 하나만으로 봐라, 꽤 그럴듯한 추리들이 많지 않냐? "

최기자는 웃으며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이렇게 온국민의 관심이 쏠린 이상, 정부에서도 정보를 풀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한번 확인해볼까? "

최기자는 보안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 아, 여보세요? 보안국이죠? ㅁㅁ미디어 최무정 기자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511 구역에 관해 취재가 가능한지 여쭤보려고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거기 소문이 참~ 하하하. "

최기자는 핸드폰을 든 채로, 웃으며 공치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치열은 못 말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곧, 통화하던 최기자가 공치열을 향해 엄지를 척! 세우고,

" 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핸드폰을 끊고는, 거들먹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 봤냐? 보름 안에 공식 발표하고 취재 제한 풀린다잖냐! 으하하하! "
" 진짜요? "
" 그럼 인마! 누가 짠 판인데! 내가 바로 최갈량이야 최갈량~! 하하하 "
" ... "

공치열은 한심한 동네형을 보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최기자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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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 앉은 직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한낮의 ㅁㅁ미디어 사무실. 그곳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 최기자님~ 손님 왔어요~ "
" 응? "

책상에 앉아 원고를 타이핑 중이던 최기자는, 고개를 들어 손님을 확인하고 일어났다. 깔끔한 양복 차림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는 인상, 모르는 사내였다.

" 제가 최기자입니다. 무슨 일이신지...? "
" 안녕하십니까? 저는 보안국 '김남우'라고 합니다. 일전에 전화 주셨던 걸로 아는데, 하하 "
" 아! 보안국! 아이고 반갑습니다. "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최기자의 머리가 팽팽히 돌아갔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을까? 수많은 가능성들이 지나갔지만, 전부 희박했다. 
곧장 의문스러운 얼굴로 묻는 최기자.

" 근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
" 아~예. 511 구역 건에 대해서 취재를 요청하셨잖습니까? 아무래도 이게... 음. "

김남우는 말을 하다가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조용한데서 대화를 좀? " 
" 아! 예. 괜찮습니다. 여기 아래층에 다방이 있는데, 어떠실지? "
" 다방이요? 그럴까요? "

김남우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옆으로 돌아섰다. 바로 앞장서려던 최기자는 문득 멈칫, 

" 아, 잠시. 제 파트너도 한 명 괜찮겠죠? 꽁치야-! "

큰 소리로 꽁치를 불렀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꽁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합류했고, 김남우의 얼굴이 살짝 굳었지만, 말없이 셋이서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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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어두운, 오래된 다방의 구석 자리에 앉은 세 사람. 
김남우와 최기자가 마주 앉아 주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공치열은 뒤로 빠져 있었다.

" ...그러니까 김과장님 말씀은, 여론을 돌릴만한 '소설'을 써달라, 이 말씀이신지요? "

최기자의 날카로운 눈빛이 김남우를 향했고, 김남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최기자님께서 511 구역에 관한 취재를 하시고, 되도록 저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
" 어디까지 취재가 가능합니까? 알맹이도 전부? "
" ... "

김남우는 말없이 곤란한 얼굴을 지었고, 그것이 대답이 되었다. 곧 씁쓸하게 씰룩이는 최기자의 입꼬리.

" 쯥... 거기서 절대 공개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하군요. "
" ... "
" 그런데, 그 기사를 제가 써야 하는 이유가? 왜 저를 찾아오셨는지? "
" 저희 보안국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여론의 첫 발생지가 최기자님이신걸로... "
" 아이쿠! 이거 참! 들켜버렸네? 큰일났네 큰일났어! 하하 "

전혀 큰일이 아닌 것 같은 최기자의 웃음에 김남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곧,

" 그 대신, 저희가 다른 특종들을 드리겠습니다. 꽤 만족하실만한 것들로. "
" 오! 보안국에서는 특종을 막 쌓아놓고 있나 봅니다? "
" ... "

김남우는 더 이상의 말 없이, 최기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새로 침묵했다.
최기자도 정색하고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저야 뭐, 511구역 특종에다 다른 특종까지 얹어 먹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니까~ 하하 "
" 잘 생각하셨습니다. "

다시 사람 좋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 김남우가 물었다.

" 그럼, 어떻게? 바쁘지 않으시다면 지금이라도...? "
" 아, 예. 뭐, 그렇게 하시죠. 이 친구도 함께 가도 되겠죠? "

최기자가 손가락으로 조용히 있던 공치열을 가리켰고, 김남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네 괜찮습니다. 공치열 기자님도 함께 가시죠. 아, 그리고 여기는 제가 계산을... 하하 "

빙긋 웃으며 먼저 일어난 김남우가 카운터로 계산을 하러 떠나고, 공치열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일어났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던 최기자가 굳은 얼굴로 한마디,

" 꽁치야. 우리가 네 이름을 밝힌 적이 있었던가? "
" ...! "

공치열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입꼬리를 씰룩이며 일어나는 최기자.

" 아~! 이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

그 말투와는 달리, 최기자는 웃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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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소형차 안의 세 사람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최기자가 괜히 차량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 보안국 직원 차량치고는... 참 소박합니다? "
" 하하 월급쟁이 차가 다 똑같지요 뭐. 저희 보안국에선 차량 지원이 없습니다. "
" 암만 그래도 공무원인데 너무하네 이거~ "

실없는 말을 하던 최기자의 눈동자가 창밖 사이드미러로 향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고급세단이 눈에 들어오고,

" 정말로, 차량 지원이 없군요... "
" 예 그렇습니다. 하하 "

최기자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
.
.

담 너머, 세 사람이 도착한 511 구역 건물은 거대한 돔구장 같았다.
최기자가 높은 건물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외관이고... 문제는 이 안에 뭐가 있느냐인데. "
" 하하 생각하시는 것보단 뭐 별거 없습니다. "
" 뭐 우리가 볼 수 있는데 까지야 별거 없겠지요. "
" 하하.. "

김남우는 그저 웃으며, 앞장서 문을 열었다. 
공치열이 김남우의 뒤를 따라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최기자가 들어가기 직전, 뒤를 힐끔 살폈다. 

" ...흠. "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미간을 좁히며 안으로 들어가는 최기자.

.
.
.

복도를 걷는 세 사람. 
모든 문이 김남우의 음성인식으로 열리는 모습을 본 최기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 와~ 생각보다 건물 내부가... 이거 무슨 영화 속 우주선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상당히 오래된 건물로 알았는데... "
"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안 됐을 겁니다 하하. 아! 이제 다 왔네요."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셋.

" 오오...! "

511 구역의 중심, 거대한 중앙 홀에 들어선 최기자와 공치열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축구장 하나만 한 광장에, 온통 파란색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그 장관에 공치열이 물었다.

" 우와아... 이게 무슨 꽃이에요? "

간단한 질문이었음에도, 김남우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공치열이 의문으로 돌아보자, 김남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이름이 없습니다. "
" 네? "
" 지구의 꽃이 아니거든요. "
" ?! "

최기자도 놀란 얼굴로 김남우를 돌아보았다.

" 지구의 꽃이 아니라니? "
" ...우주에서 가져온 꽃입니다. "
" 뭐요?? 우주?? "

황당한 얼굴의 두 사람. 김남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자세한 건 저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이 꽃은 우주에서 옮겨온 꽃이라는 것과, 지구식의 정상적인 재배 방식으로는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이죠. "
" ... "
" 보시다시피, 비료 대신으로- "

김남우가 허공의 드론들을 가리켰다. 드론들이 날아다니며 '알약'을 떨어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 ...수면제입니까? 지금... 수면제로 꽃을 키운다는 말입니까? "
" 예. 수면제의 어떤 성분이 뭐~ 어쩌고저쩌고 그렇다고는 하는데, 저는 과학자가 아니라 잘은~ "
" 흠... 그럼 다른 관계자분들은? "
" 아! 모두 휴가를 가신 참이라...  솔직히 말하면, 이번 사태가 원인이 된 부분이 있고 말입니다. 하하. "
" ... "

최기자는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곧, 김남우가 웃으며 말했다.

" 사진을 찍으셔도 좋습니다. 장관이지 않습니까? 기사 쓰실 때 넣으셔야죠. "

김남우의 말에 공치열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최기자는 무거운 얼굴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러는 동안, 김남우가 목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기사의 내용은 이런 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11 구역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특이한 꽃을 재배하고 있다. 꽃의
댓글
  • 복날은간다 2016/12/19 20:42

    오랜만에 최기자, 꽁치, 두더지가 뭉친 이야기를;
    사실 이런 이야기도 좋아해주신 분들이 있으셨는데...지금도 있으시겠죠?;
    그래서 한 번 오랜만에 올려봅니다 ㅎㅎ;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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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날은간다 2016/12/19 20:49

    올리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급 걱정이 몰려옵니다;
    후반 설정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면 어쩌죠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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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l존전사 2016/12/19 21:13

    첫댓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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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벨린 2016/12/19 21:22

    최무정/최기자가 번갈아가서 나오니 혼동이 약간 왔네요ㅎㅎㅎ
    최무정만 그 한사람의 희생을 안타깝게 생각하는데 본인이라는걸 깨닫는다면...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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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변인 2016/12/19 21:24

    대박.....
    영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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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급열차 2016/12/19 21:27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너무 재밌습니다!!!!
    우주정거장의 잠들어 있는 우주인이 본인이고
    본인의 상상속에서 저구역의 비밀은 뭘까? 라는 생각이 더해져서
    주사기였다가 공룡이었다가 외계인 이었다가 그렇게 바뀌는거죠? 가상의 세계가
    너무 신기함......
    근뎈ㅋㅋ 불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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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ynjerry5 2016/12/19 21:35

    중간부분에
    짠 판 을 판 짠이라고 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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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대익선 2016/12/19 22:00

    와 정말...
    베르나르랑 스티브킹 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매번 정말 잘읽고 갑니다
    오유에 가입한 계기가 유명한 업로더님의 공게 게시물이었는데
    아직 가입안했었다면 분명 작성자님 게시물때문에 가입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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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누이트 2016/12/19 22:10

    흑흑 이 글을 제가 토하게 돼서 영광임니당 8ㅅ8 항상 재밌는 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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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늘소년 2016/12/19 22:48

    아..너무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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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꼬로숨쉬기 2016/12/19 22:48

    최무정이 자기 꿈이란걸 자각하게 된다면??
    신이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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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ulcry 2016/12/19 23:05

    이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성자님 뇌 속이 궁금해지네요.......(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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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잎들 2016/12/19 23:29


    항상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접속시간부족으로 오늘은 추천을 못하고갑니다 ㅜㅜ다음에와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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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케이♥ 2016/12/20 01:00

    핵꿀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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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향기 2016/12/20 01:37

    우와 . . .제목이 대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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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땅 2016/12/20 02:35

    기발한 상상력에 제 뇌를 탁치고 갑니다.
    두석규다음엔 삼석규나오나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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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밤 2016/12/20 03:32

    인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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