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특이케이스라고한 이유는
일반적인 사병들과 전혀 목적도 운용도 달랐기 때문이다.
고려는 명목상 단한번도 봉건제를 실시한적이 없기때문에 봉읍이 없었고(=공식적인 제후가 아님)
반면 서양과 일본의 봉건제는 중앙조정이야 개무시하고
지역의 유력자 영주와 기사들이 즈그들끼리 영지가지고 현피를 벌인거였고
이긴자가 진쪽의 영지를 물리적으로 흡수할때
이꼬라지를 왕도 뭐라고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고려쪽은 전혀 상황이 다르니
고려쪽은 기이하게도 호족들이 상당한 규모의 사병들을 대규모로 운영해
치안의 불안정과 왕실입장서 엄청난 골칫덩어리 였던것과 별개로
호족들끼리 영지가지고 칼부림하며 이제 니땅내꺼~하는
봉건제의 영지싸움은 고려 5백년 동안 신기하게도 한번도 없었다.
광종이 초반에 한번 참교육 해서 그런거 아닌가?
급발진하기도 전에 유목민족들이 놀러와서 그런건가 싶다가도 그래도 그런게 없었다는게 또 신기하긴함
듣고보니 신기한 케이스네
자기들끼리 투닥거려도 중앙정부에서 인증받기 힘들어서 그런건가
자기들끼리 투닥거려봐야 고려왕실만ㅇ 좋아하니까 암묵간의 합의로
자기 나와바리만 지킨건가
급발진하기도 전에 유목민족들이 놀러와서 그런건가 싶다가도 그래도 그런게 없었다는게 또 신기하긴함
듣고보니 신기한 케이스네
자기들끼리 투닥거려도 중앙정부에서 인증받기 힘들어서 그런건가
자기들끼리 투닥거려봐야 고려왕실만ㅇ 좋아하니까 암묵간의 합의로
자기 나와바리만 지킨건가
광종이 초반에 한번 참교육 해서 그런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