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15대 왕인 숙종의 동생인 의천대사
복잡한 국제정세 때문에 중립외교했던 아빠 문종의 반대로 송나라 유학 못갔다가
숙종이 재위에 오르자 냅다 갔다옴
그렇게 유학갔다온 의천이 형을 만나 송나라때 썰을 푸는데....
의천 : 형, 내생각에 우리 고려는 경제적으로 미개한거 같아
숙종 : 왜?
의천 : 송나라 가니까 화폐에 어음까지 쓰던데 우리 백성들은 아직도 물물교환으로 하잖아?
우리도 만들어서 써볼까?
숙종 : 그래!
다만 의천대사가 간과한것이 있었으니
그당시 송나라의 인구는 1억이었지만, 고려의 인구는 500만이었다는거...
그렇게 은병인 활구, 삼한통보를 만들었지만
거의 100만원 수표급인 활구만 귀족들 사이에서만 쓰였고 삼한통보는 유통되지도 못한채 사장됨
이렇듯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인프라와 사용하는 집단의 수가 적으면 말짱꽝임을 알수있다
조선 중후기까지도 버거운걸 고려중기에 구현하긴...
조선 중후기까지도 버거운걸 고려중기에 구현하긴...
한국사 시험 때문에 익숙한 이름 은병-활구 ㅋㅋㅋㅋ
은병, 활구라고 따로따로 부르는 일은 없음 꼭 은병-활구여야됨
세종대왕도 화폐 개혁은 실패했다던데 ㄷㄷ
체급이 그냥 크던가, 상공업이 발전해서 사회 내 가치가 폭발하던가, 주요 무역로에서 꿀 받아먹는거 아니면 화폐도입은 힘든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