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에 지인들이랑 부산에 놀러 갔을 때다
야구에 별 관심도 없었고
이대호가 홈런 잘 치는 선수라는 거 정도만 알고 있었다
사실 얼굴만 알기 때문에 편견 같은 것도 있었다
부산의 한 고기집에 갔는데
이대호 선수가 다른 고객들처럼
홀에서 지인들과 앉아 고기를 먹고 있었다
지인들도 '이대호다 저기 이대호다 ㄷㄷ' 이러고
주변에서도 수근거리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벌건 얼굴로 소주 한 병을 들고 이대호 선수의 테이블로 가서 막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마! 대호 니 내 술 한잔 받아라! ㅋㅋ"
굉장히 무례해 보였고 그 테이블에 시선이 집중됐다
유명인들이 자기 시간 방해받는 거 싫어하는 것도 많이 봤기 때문에 이대호 선수가 굉장히 기분 나쁠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반응이 의외였다
이대호 선수가 엄청 호쾌하게
"마 주이소!"
하며 그 술을 바로 받아 마셨다
그러자 바로 여기저기서 다른 아저씨들도 용기가 생겼는지 ㅋㅋㅋ 자기 술도 받으라고 몰려들었는데
"주이소!"
"예! 주이소!"
"고맙심더!"
"건강하이소!"
하면서 몇십분 동안
아저씨들이 주는 소주를 다 받아마셨다 ㄷㄷ
짧은 시간 동안 몇 병은 마신 거 같았다
그러면서 싸인해달라는 사람 싸인도 다 해주고나서야
다시 지인들과 식사를 이어갔다
와 저것이 부산사나이구나
(그리고 저것이 부산아재들이구나!)
왕관을 쓴 사람이 왕관의 무게를 얼마나 남자답게 견디는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이대호 선수를 좋아한다
스타 라는건 혼자 오롯이 떠있는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