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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충신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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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 유키나가가 첨사 정발이 지키고 있던 

부산진성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자 

송상현은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준비에 임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래성에 도착하자 전투를 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서 송상현에게 보내주었다.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기 싫으면 길을 비켜달라.)



이에 송상현은 아래와 같이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답변을 보낸다.



"戰死易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병력은 약 3만

송상현의 병력은 약 3천에 군민 2만

더군다나 송상현은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다.



불리한 싸움인 줄을 알았으나 

동래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결국 송상현은 패배하여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를 본 고니시 유키나가는 송상현에게 크게 감복하여

마치 자신의 가족을 대하듯 장례를 치뤄주었고

부하들에게 송상현의 충직함을 본받으라고 말했다.



P.S : 동래성 백성들이 끝까지 저항하자

동래성 백성들 모두를 잔인하게 학살함


댓글
  • 아밀 2017/12/13 13:53

    청주에서만살고 가로수길주변인데도
    송상현충렬사가 이주변에 있는걸 몇년전에야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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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양말좋아! 2017/12/13 14:17

    임진왜란 발발 하자마자 부산부터 치고 올라가려는데
    문관이란 자가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막는 모습에서
    조선을 쉽게 봤던 고니시는 자신들의 안일함으로
    조선 정복이 힘들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에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조선군 뿐 아니라
    조선인이라면 모두 사살하라 지시했다고 들어본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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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모작 2017/12/13 14:54

    일본애들은 섬에 처박혀서 외국이랑 전쟁을 한적이 없는것이 인식의 차이였죠.
    갸들이야 상대방 다이묘를 잡아죽이든가 상대방 본성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이였으니까요.
    보통 다이묘아래 부하들도 작은 동네의 영주거나 그랬기때문에 자기 기득권을 인정해주면 대부분 항복했죠.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가 이길수 있던거도 히데요시가 키워서 자리만들어준 애들이 대부분 도쿠가와에게 붙었기 때문이고.
    뭐 그래서 쟈들 생각은 서울점령 혹은 선조 잡기 하면 전쟁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쟁역사가 대부분 외국이였던 한반도와의 싸움에서는 많이 당황스러웠을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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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G♡ 2017/12/13 15:13

    우리 조상님...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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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lkaqua 2017/12/13 22:10

    지하철2호선인가 공사할때 동래부 남녀노소가 학살당한 유골을 어마무시하게 발굴했죠 박물관도 있을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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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제로 2017/12/13 22:17


    부산 4호선 수안역에 작게나마 기념관이 있어요.
    지하철 공사 중 유해가 많이 나와 위령제도 열렸었죠.
    한 번 둘러보실만 할 거에요!
    그리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부산의 송공삼거리는 송상현 공 삼거리의 준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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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측 2017/12/13 22:26

    "문관"이 책임지고 '답장'을 하고,
    수성에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업적이죠.
    보통 문관들은 소식만 들어도 달아나기 바쁜데..
    무관이라도 불리한 상황이라면 퇴각하거나 방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패배했지만 약간은 시간은 벌수 있었죠.
    왜군은 적은병력을 두고 힘을 너무 쏟아부었죠.
    민간인 살육하느라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고 시간만 낭비
    무엇보다도 왜군은
    일본 내에서 먹혀들었던 '본보기'라고 생각하고 민간학살
    그이후 공성에선 민간인들도 전투참여 못하게 만들기 위한것이라고 생각한거죠.
    하지만 점차 생각대로 일본에서처럼 그런상황은 오지 않게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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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막살놈 2017/12/13 22:40

    지금 저 분의 이름은 부전동이랑 양정동 사이에 있는 ‘송공 삼거리’랑 ‘송상현 광장’ 으로 남아 있답니다. 동래부사라 일본 장수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서 길만 비켜준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했지만 결국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맞서 싸웠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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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고창신 2017/12/13 23:07

    임진왜란 초기전투인 동래성전투 당시 동래부사 천곡 송상현 선생은 순국하기전 전복 겉에 조복을 입은 후 북쪽의 임금 선조 이연에게 절을 4번 올리고 부모님(부친은 송복흥 선생)께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을 부채에 남겼습니다.
    孤珹月暈(고성월훈) 列鎭高枕(열진고침)
    외로운 성은 달무리와 같고 여러 진들은 단잠에 빠져 있네.
    君臣義重(군신의중) 父子恩經(부자은경)
    군신의 의리는 무겁고 부모의 은혜는 오히려 가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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