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괴문서라지만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아?
하지만 철의 역사를 얘기할 때 신화가 빠져선 안 되지
어째서죠?
철의 녹는점은 1538℃거든, 구리는 1085℃고 납은 327℃
녹는점이랑 신화가 대체 무슨 관계길래.....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옛날에 화력을 내는 주 원인은 모닥불이었어
그런데 모닥불의 온도는 대부분 1300도 언저리가 최대치거든
네? 그러면 철을 못 녹이지 않나요?
그래서 문명이 석기 다음에 청동기를 거쳐 철기로 발전했지
하지만 연료로 가스나 석탄을 쓰는 것보다 철을 훨씬 더 일찍 썼잖아,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야?
일반적인 모닥불은 1300℃지만 특정한 조건을 갖추면 1400~1500℃까지도 올릴 수가 있고
이 온도에서는 델타-철이라고 해서 고체긴 하지만 젤리방울처럼 꽤 부드럽게 다룰 수가 있거든
그 특정한 조건이 뭔가요?
바로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힌트를 주자면 인력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자연현상이야
뜨거운 거랑 관련된 거라면 화산이려나?
아니, 바람이야
네? 바람이요? 그냥 숨만 불어도 되잖아요?
그런 거 말고, 대규모로 불어오는 건조한 공기의 폭풍급 바람
보통 폭풍은 비바람이랑 같이 오잖아, 건조한 폭풍이라는게 가능해?
지중해성 기후이면서 평지가 넓게 펼쳐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선 가능하지
건조한 바람이 뜨거운 모닥불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그러죠?
불은 기본적으로 대기 중의 산소에 의한 발열성 산화-환원 작용이거든
바꿔말해 산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면 평형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서
계속해서 발열반응을 일으켜 온도를 높일 수 있고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구나
하지만 산소 비율이 25% 정도인 공기로 철의 녹는점 근방까지 가기 위해선 바람이 매우 강해야 했고
습한 바람이면 비열이 크니 제대로 온도가 올라갈 수가 없었어
정리하자면 자연적으로 불어오는 마른 폭풍을 이용해 모닥불로 철을 녹였다는 거네요
그래서 히타이트 신화에서 최고신은 다름아닌 바람의 신이야
농경사회에서 번개의 신이나 물의 신이 최고신인 거하고 비교되네
그리고 오늘날에도 저 방식을 응용한 "뜨거운 바람"기법이 용광로에 쓰이고 있지
철광석에 고온의 산소를 쏴서 녹이는 건가요?
그런데 그러면 녹은 철의 일부가 산소랑 반응해서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려, 고온의 산소를 쏘긴 하는데 일차적으로 반응하는 건
철이 아니라 그 위에 끼얹은 탄소(코크스)거든
과량의 탄소에 산소를 빠르게 쏘면 일산화탄소가 만들어지면서 열이 생기고
산화철을 일산화탄소가 환원시키면서 녹은 철과 이산화탄소 기체가 빠져나가는 식이야
저대로라면 녹은 철 위에 탄소가 섞이는 거라 연철(鐵)이 아닌 강철(鋼)이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녹은 철과 탄소의 혼합물을 변환로에 옮겨담은 뒤
한번 더 산소를 불어넣으면서 녹아있던 탄소를 이산화탄소로 태워버려
녹은 철은 이 과정에서 일차적으로는 전부 산화철(II)로 변했다가
환원제로 넣은 실리카,석회,알루미늄과 반응해서 다시 철로 환원되고
환원제의 산화물들은 찌꺼기(슬랙)의 형태로 위에 뜨기에 걷어내면 연철이 완성되지
제철소 하면 떠오르는 '쇳물이 담긴 거대한 용기'가 저 변환로인가요?
맞아, 변환로의 온도가 용광로보다 훨씬 높아서 저렇게 노란 빛을 띠는 거야
철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불의 신과 바람의 신이 모두 필요했구나
그리고 환원제로 써야 하니 대지의 신도 필요하고, 생성물을 식혀야 하니 물의 신도 필요하지
거기에 열을 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전기에 의한 저항열이라 번개의 신도 와야 하고
진짜 제목 그대로 모든 원소의 신(原-神)이 필요하네요......
바람의 신이 최고신인 건 엄청 드문데.. 신기하네
철은 겐신임팩트의 결과물이다... 메모메모
바람, 불, 번개 그리고 대물까지 싹다 필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