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M11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마침 오늘 그러고 싶어졌습니다.
라이카와의 인연
학생 시절 교수님이 소장하신 M6를 보고 라이카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 X type 113, Q, Q2, Q3를 거쳐 마침내 M11에 이르렀습니다.
M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결국 '그 돈의 값어치를 하는가'라는 것이 가장 큰 논란거리죠.
M11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땐 기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불안했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카메라에 이 돈을 쓰다니. 생각보다 엄청 불편하잖아."
한동안 M11이 주는 경험과 지불한 비용에 대한 저울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불편하니 잘 들고 다니지 않게 되고, 일상에 쫓겨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시간도 없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에 젖었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팔았다 다시 샀다를 반복하다 결국 감가상각의 부담을 받아들이고 카메라를 내보낸다는 생각을 접었죠.
신품으로 구매해서 감가를 생각하니 도저히 팔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다.
예전에 무리해서 중고로 Q와 Q2를 샀을 때 느꼈던 중압감, 카메라가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M11에도 없지 않았는데,
아예 팔수 없다고 생각하니 되려 망설이는 마음이 사라진거죠.
맞는 비유인지 조심스럽지만 혼인신고를 한 부부와 안한 부부의 마음가짐 같다고나 할까요.
아무쪼록 여러 카메라를 거쳤고, 비록 디지털부터지만 라이카도 다양하게 사용해 본 바로
제게 M11이 주는 경험은 다른 어떤 카메라도 줄 수 없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단순함의 미학
피사체를 바라보고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의 단순함.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처럼 당연하게 들리지만,
M은 사진 찍는 행위를 그 어떤 카메라보다 심플하게 만들어 줍니다.
요즘 카메라들의 다양한 기능들은 편리해 보일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안겨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카메라 세팅을 이렇게 바꿔야지 생각하는 것조차 사용자를 피사체와의 교감이 아닌 카메라와의 교감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함께 사용하고 있는 GFX100RF의 경우 실로 다양한 조합으로 색감과 종횡비, AF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상을 보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어떤 세팅으로 찍어야 좋을까?'
그러나 M11을 사용할 땐 다른 기능이나 가능성은 무시하고 단 한 가지만 집중해 조절합니다. 바로 초점입니다.
초점의 의미
대상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정확한 초점을 맞추는 행위가 AF가 만연한 요즘에는 바보같아 보일지 몰라도,
이 행위가 피사체와 사용자를 이어주는 핵심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핵심 경험입니다.
M11만 쓰다가 D-lux7,8, Q3 같은 AF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쓰니 오히려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AF이지만 내가 원하는 곳에 정확히 초점이 맞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놀라웠습니다.
M을 쓰기 전까지 십 년 넘게 써오던 AF가 그렇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MF = 대상을 본다 > 초점링을 돌려 초점을 맞춘다 > 셔터를 누른다
AF = 대상을 본다 > AF존이 어디 있는지 확인한다 > 반셔터를 누른다 > 구도를 잡는다(상황에 따라 AF존을 움직이기도) > 셔터를 누른다
빠르고 편할 것 같은 AF를 잡는 과정이 오히려 MF를 하는 과정보다 더 많은 단계를 거친다는 점이죠.
AF의 피사체 인식이나 눈동자 인식, AF-C 등 기능들이 다른 브랜드는 몰라도 라이카에서는 아직은 100%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효율성의 증가
초점을 맞추기 위해 대상을 주의 깊게 보고 셔터를 누르니 굳이 여러 컷을 위해 셔터를 연달아 누를 이유도 없어집니다.
예전이었다면 같은 상황에서 십수 장을 찍어서 그중 하나를 골랐지만, M11을 사용하면 두세 장만으로 상황을 정리하게 됩니다.
후반 작업에서 오는 피로감도 덜하고 저장 공간도 덜 차지합니다.
단순한 메뉴와 많지 않은 버튼들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사용자를 덜 피곤하게 합니다.
오롯이 사진에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라이카의 철학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왜 M11인가?
위의 이유는 모든 디지털 M 시스템에 적용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왜 M11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최신형 바디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유독 디지털 세계에서는 언제나 최신형이 승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M12가 나온다면 더 좋겠죠. M11을 쓰다 직전에 나온 M10R을 만져볼 기회가 있었는데 3분 만에 실망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LCD가 M11에 비해 선명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뷰파인더로 보고 찍더라도 재생 시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선명하지 않게 느껴지니 경험이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결과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입니다.
M11의 편의성
많은 분들이 M10 시리즈의 하단부에 대해 예찬을 하지만, 저에게는 전혀 매력적인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배터리와 메모리카드를 빼는 데 오히려 불편하다는 점이 컸습니다.
옛 M의 향수 같은 것은 옛 M을 쓰지 않은 요즘 유저 입장에서는 크게 어필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도리어 Q시리즈와 같은 간편함, USB 충전 때문에 오히려 M11이 나왔을 때 '이제는 구매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즐거우세요?
모르겠습니다. M11을 사도 다른 카메라가 궁금해지는 뽐뿌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장비병은 현실에서 만족감과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카메라를 써보면 써볼 수록 M11에 대한 애착이 더 깊어지는 것 같은 요즘입니다.
라이카가 주는 브랜드 가치, 말도 안되는 가격 등 사진을 찍는 것 이외의 외부적인 것들은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끝까지 가보니 다 부질없음을 느끼는 해탈한 기분이랄까요. 결혼해서 가장 큰 장점은 '결혼 해야 하는데'하는 걱정을 안 하게 된 것처럼,
M을 써보니 'M을 쓰고 싶다'는 간절함이 없어져 오히려 정신건강에는 좋은 듯 합니다. 물론 값비싼 처방이겠지만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 큰 스트레스 없이 정말로 내 몸의 연장선처럼 작동하며 기가막힌 결과물을 내주는 신뢰할만한 카메라를
고르라면 현재로썬 M11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최근 들인 100RF도 재미있는 카메라인건 분명하지만 글쎄요. 가지고 노는 즐거움은 분명있지만 사진을 찍는 즐거움은 오히려 M11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https://cohabe.com/sisa/4552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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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라이카 Q 시리즈만 써왔는데.. M 도 한번 써봐야 할텐데 말입니다. ㅎㅎ
아직 m11 안써봤지만 공감이 가는글 잘 읽었습니다 ㅎ 불편하고 어려울수록 사진찍는 즐거움도 더 클거 같은느낌이네요 ㅎ
한 예로 비오는날 자동차 창밖으로 하늘위 날아가는 비행기가 구름과 나무사이에 딱 절묘한 타이밍에 찍으면 좋은 상황에서 소니 a7c로 지금이야! 찍는순간 왠걸 창에 맺힌 물방울에 맞은 핀.. 아놔..(m바디는 걍 근육이 기억하듯이 바로 무한대로 갈겼을상황)
10년가까히 m만 사용해오다보니 이젠 진짜 사진찍을땐 피사체와 거리에따라 대강적으로다가 촛점링의 노브 위치가 딱 맞아지게 되더군요.
m을 쓰는이유는 올드하거나 쨍하지 않아도 그 느낌이 좋고, 렌즈가 작고 가벼워서 입니다. 하지만 m으로 못찍는 사진도 너무 많기 때문에 타사 장비들과 병행하는게 마음의 평안을 주네요. 예를 들면 망원을 m으로 찍는건 참 아이러니죠. 무겁고 커지고 초점도 어렵고 손떨방도 없으니까요. 다만 m의 느낌이 조아서 모든걸 찍고 싶다면 망원을 쓰는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