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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2012년 모바일 투표의 실체는 무엇인가

요즘에도 2012년 경선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손가혁에서는 이재명 시장의 박스떼기 의혹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2002년에 노무현은 딱지떼기를 했고

(이건 검색해도 블로그 글 하나밖에 안나오는데 제대로 된 얘기도 없습니다)

2012년에 문재인은 모바일떼기를 했다는 헛소리를 해대서

다시 올렸습니다.


스크롤이 길어서 요약된 내용을 말씀드리면


당시 모바일 투표는 친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한명숙도 문재인도 모바일 뿐만 아니고 모든 투표에서 다 이겼습니다.

당심도, 민심도 모두 친노후보에게 투표를 했고

현장투표, 모바일투표 모두 이겼습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모바일의 힘을 빌어서

친노가 경선을 이기고 패권을 휘둘렀다는 오해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모바일이 경쟁자와의 차이는 벌렸지만

현장에서조차 승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2012년이 완전국민경선으로 치뤄지게 된 계기는
외곽지대에 있던 안철수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내에 전혀 세력이 없는 안철수를 끌어들이기 위해

국민들이 전격적으로 참여하는 완전국민경선을 한다는 얘기가 나온거죠.

경선 룰 세팅과정에서도 친노라 불릴만한 인사가 주도하지 못했구요.
국부론과 제1야당 창조적 파괴론의 주창자 한상진이 김한길 대표체제 하에서

대선평가라는 미명하에 샅샅이 털었지만
부정경선의 모습이나 특이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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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powertothepeople.kr/comm/bbs/board.php?bo_table=news&wr_id=267

가설 1: 모바일투표 도입은 단 한번도 당의 패권을 잡아 본 적이 없는 친노세력이 한명숙을 내세워 당권을 잡기 위해 도입했다.


한명숙이 이기고, 이해찬이 이기고, 문재인이 이기고 나니 저런 가설을 믿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같이 통합민주당과 의 합당 당시로 기억을 되돌려 보죠.  잘 아시다시피 문성근은 통합민주당과의 통합 협상을 주도합니다.  그런 문성근의 뒤에는 두 개의 주력 부대가 위치했는데,  바로 25만 보병으로 구성된 과 시민사회단체의 명망가/실무자 그룹이 중심을 이룬 입니다.  당시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한번 보시죠.


혁통 상임대표 6인: 김두관, 남윤인순, 문성근, 문재인, 이용선, 이해찬혁통 주요인사들: 조국, 김기식, 홍종학, 최민희, 이학영, 박용진, 천준호…

글쎄요…  이 분들 모두가 민주당 최근 10년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친노패권주의의 도래와 ‘당권획득 및 문재인 대통령 후보 만들기’및 ‘손학규 엿 먹이기’를 위해서 통합민주당과 합당 절차를 거쳐서 모바일을 이식한 것이라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을까요?  아마도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지 않을까요?  저 분들도 스스로 굉장히 모욕적인 언사라고 반발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여러분들이 믿든 안 믿든, 제가 이 얘기를 꼭 드려야 겠습니다.  원래 친노는 새로 만들어질 의 당대표 경선에 후보를 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아니, 능력이 없었다기 보다는 당대표 자리에 도전할 여건이 아예 안된다고 판단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당시 통합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라서 대선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은 지도부에서 2011년 12월 19일 이전에 사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새 지도부 선출은 당연히 예상이 되었지만, 한명숙은 당시 검찰조사와 법원과의 싸움으로 심신이 지쳐있었고, 이해찬은 여전히 야인으로 머무르고 있었고, 문재인은 당시 국회의원도 아닌 신분이었습니다.  그나마 안희정은 한창 충남도지사로서 일을 잘 하고 있었구요.  즉, 당대표를 새로 뽑더라도 낼 사람이 친노쪽 유력정치인들 중에는 없었습니다.  백원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저야 정세균과 친노에 반쯤 다리를 걸친 사람이다보니 ‘정세균 의원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총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관리형 당대표’ 체제를 잠깐 상상해보긴 했지만, 본인이 대선출마 의욕이 강했고, 저도 지지자로서 당연히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는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의조차 드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시 민주당 사정을 좀 아는 분들이 있다면, 차기 당대표로는 박지원:(이인영/박영선/김부겸)의 1:3 싸움을 예상했을 겁니다.  당시 민주당의 거의 모든 인적/물적 자산들은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셋이서 3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셋이 모두 차기 대권후보 경선을 위해 지도부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손정정과 박이박김 사이에 어떤 힘의 조합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총선관리형 당대표’가 나올 것인지가 관건이었지, 당 밖에 지지자들은 많지만 대표선수로 내세울 만한 명망가가 없거나 큰 상처를 입고 있었던 친노 쪽은 그런 차기 당권 논의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이후 정국이 급격히 출렁이고 통합민주당이 혁통과 통합논의를 개시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쪽에서 먼저 거센 돌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2011년 12월 9일,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전격적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12월 19일 박근혜 비대위가 공식적으로 출범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홍준표 체제로 총선이 치뤄질 것이고 대통령을 노리는 박근혜는 계속 뒷방에 머물면서 총선일을 전후해서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을 것인데, 박근혜가 조기에 링에 오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박근혜와 가장 인생사가 대비되는 여성 한명숙의 존재가치가 급상승합니다.  불과 몇달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직전 선거 패배자로서 명함도 못 내밀었던, 검찰과의 힘겨운 싸움을 거의 마무리해가던 그가 박근혜의 대항마로 급부상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명숙은 박근혜 비대위가 공식출범하던 바로 그날 새로 만들어질 민주통합당의 당대표경선 출마 선언을 하게 됩니다.  (뒷 얘기인데요, 저는 당시 한명숙이 대표경선 출마를 상당히 주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고 검찰이 여전히 자신에게 끊임없이 칼을 겨누는 상황에서 자신은 아무리 결백하더라도 당에 누가 되는 상황을 검찰이 만들어낼까봐 대표경선 출마를 피하려고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후보들보다 대표경선 출마 선언도 늦었습니다.  검찰은 불과 얼마전까지 계속 한명숙을 괴롭혔지요.)


어쨌든 한명숙은 이듬해 새해 벽두에 있었던 첫 민주통합당 당대표경선에서 대의원투표(30%반영), 당원현장투표, 모바일 투표 모든 부분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이 됩니다.  대의원투표에서 조차 당내 유력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박지원, 박영선, 이인영, 김부겸을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눌러버립니다.  이 당시 가장 특이하게 받아들여진 사람이 바로 박영선 의원인데, 대의원투표에서 6위를 했던 박영선 의원이 ’40대 이하 모바일투표’에서는 문성근 마저 누르고 2위를 기록합니다.  소위 ‘친노 계열’이라는 한명숙+문성근 득표합이 대의원투표에서 보다 현장투표나 모바일투표 쪽에서 높아진 경향성은 나타나지만, 어떤 경우에도 둘의 득표합이 50%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소위 ‘비노 계열’이 후보를 단일화해서 이 경선에 임했거나 한명숙에 비견되는 ‘강력한 비노 후보’를 내세웠다면 한명숙이 당대표가 되는 것은 모바일투표 제도의 첫 도입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시나리오들을 친노세력이란 사람들이 주도면밀하게 계산했을까요?  혁통에서 이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모바일 투표 도입을 요구조건으로 해서 통합을 이끌어냈을까요?  글쎄요…  저는 일단 그들이 그럴 꾀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조금만 기억을 되돌려보면 통합민주당과 혁통의 통합 직전에 있었던 박원순-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에서 시민참여형 경선이 아주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민주당의 기득권 구조를 철저히 해체시켜버리고 당대표가 사표를 내게 만들고 당의 유력 차세대 주자를 거꾸러 뜨린 대사건이 바로 국민참여경선 도입이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과 당시 한나라당의 홍준표 체제 붕괴, 박근혜 비대위체제의 등장이란 변수가 없었다면 한명숙이 전면에 나서는 일도 없었고 모바일투표가 무조건 도입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더더군다나, 한명숙의 당선은 모바일 없이도 당시 그런 환경변화 때문에 거의 필연이었을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의원 투표에서조차 한명숙이 다른 후보들을 그냥 쳐발라버렸다니까요?!  따라서 가설1은 깨끗이 기각됩니다.


가설2: 모바일로 한명숙 당선-문성근 제1최고위원이라는 재미를 본 친노세력은 이해찬으로 당권을 승계하기 위해, 문재인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모바일투표 제도를 더 강화했다.


사람들의 기억력은 그다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방식대로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게 마련이거든요.  물뚝심송에겐 안타깝지만, 이해찬과 김한길이 붙은 이 경선룰의 큰 틀은 대의원30%+당원/일반시민 70%였습니다.  그래서 대의원의 한 표는 대략 모바일 참여자의 한 표보다 8배 정도의 가치를 가졌습니다.  물론 한명숙 당선 당시 약 15배 보다는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지만, 이건 ‘룰’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모바일 참여자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한 때문이거든요.  만약 이때도 모바일 참여자의 숫자가 한명숙 당선 당시처럼 60~70만명 수준에 이르렀다면 대의원 표의 가치는 그때와 거의 엇비슷 했을 겁니다.


어쨌든 소위 친노세력은 이해찬이 당선되는 과정에서 모바일투표를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방식으로 강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싱거운 승리가 예상되었던 한명숙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팽팽한 승부가 예상되었던 이 경선에 대거 사람들이 불참을 해버립니다.  물론 그 불참한 분들이 전부 친노일리는 없겠죠.  한명숙 체제를 보고 실망한 분들은 친노 뿐만 아니라 비노를 포함해서 아주 광범위할 테니까요.  아무튼 소위 ‘친노의 모바일 총집중 가설’을 쓰시는 분들은 왜 뻔한 승리가 예상되었던 한명숙때에는 친노가 구름떼같이 모바일로 몰려들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친노상왕’ 이해찬의 승패가 경각에 달렸던 두번째 경선에서는 대거 불참했는지에 대해서도 무슨 합리적인 말씀이 있어야 할 겁니다.  친노가 ‘모바일 깡패’라면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요?  자, 어쨌든 이 두번째 가설도 이해찬의 경우에는 틀렸습니다.


아, 물론… 대의원도 당원도 비당원도 신청만 하면 똑같이 한 표의 가치를 받도록 모바일투표 룰에 변경이 일어나긴 했습니다.  바로 대선후보경선때죠.  이때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복기’를 해보죠.  친노들이 어떤 간계한 꾀를 짜내서 모바일투표를 문재인에게 유리하도록 바꿨는지가 어쩌면 ‘친노패권주의’의 핵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인용이 길지만 굉장히 중요한 인터뷰입니다.  한번 읽어보시죠.


▶정관용> 좋습니다. 자, 진짜 궁금한 것들은요, 이게 그런데 후보들이 다 동의한 건가요?

▷추미애> 후보들 동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사실은 이제 제가 경선기획단장으로서 특정 후보에 줄서지 않은 중립적인 분들을 기획단에 합류시켜서 민주당이 최적의 후보를 뽑는데 공정한 룰을 만들어야 되는 것이고 또 많은 국민들이 참여해서 국민 의사가 반영되어야지만 대선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룰을 함께 정하자, 라고 해서 거듭거듭 토의하고 토의해서 나타난 이런 룰이니까…

(중략)

▷추미애> 만약에 그것이 어떤 근거와 또 대안이 된다면, 또 토론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근거가 없고 또 대안이 되지 못한다면, 이 자체가 여러 차례 뭐 지금 말씀해주신 시민 배심원제 이런 것들을 어떻게 더 보탤 수 있느냐, 이런 걸 거듭 거듭 토론을 하고, 가장 좋은 것은 1인 1표, 그러니까 어떤 지역 간의 보정도 하지 말고 실제 투표하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1인 1표의 원칙에 철저한 완전국민경선제가 가장 나은 대안이다, 라고 의견이 모아진 것이기 때문에…

▶정관용> 알겠습니다. 거의 확정, 이렇게 봐도 되겠네요?

▷추미애> 예.

▶정관용> 그리고 우리 추미애 최고위원께서 이건 안철수 교수한테 제일 유리한 룰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그러니까 당원의 기득권을 완전히 버렸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추미애> 맞습니다.

▶정관용> 그 말인즉 안철수 교수 빨리 입당해서 경선에 참여해라, 이 말인데, 입당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추미애> 20일, 21일 양일간 후보 등록을 받게 되는데요. 등록금은 1억원입니다. 등록하시게 되면 이제 TV 토론을 하실 수도 있고, 또 지역을 다니면서 연설회도 개최를 하는데요, 그 다음에 이제 본선에 가면 뭐 사실 1인 1표이니까 대중적으로 가장 여론지지를 많이 받는 분이 유리하겠지요. 모바일투표가 대세를 이룰 것이니까. 그것도 또 초반부터 권역별로 다 개표가 되는 것이니까 초반 대세 장악을 하는 분들이 유리하겠지요. 예, 그래서 뭐 제 생각에도 민주당이 이렇게 개방된 자세를 보이는 이상, 만약에 준비된 후보라면 언제든지, 언제든지가 아니고 7월 21일까지, 예비후보 등록 시점까지는 결단해 들어와도 좋겠다, 서로 윈윈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은 하지요.

-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2년 7월 10일자 인터뷰에서 발췌


이해찬은 당대표가 되자, 자신과 김한길에 이어 3등으로 경선을 마친 추미애 의원을 ‘경선기획단장’으로 임명합니다.  물론 이 결정에 김한길 당시 최고위원도 환영한 것으로 압니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경선룰을 만든 경선기획단 17명의 면면도 꼭 한번 보시죠.


기획단장: 추미애부단장: 노영민/설훈/최규성기획위원: 오영식/이목희/정청래/김관영/남윤인순/민홍철/송호창/진성준/한정애/황주홍/조순용/손혁재/이상환

1인1표제를 만든 이 경선기획단 명단에 친노패권세력이 많이 보입니까?  저기에 ‘친노패권’에 도움되는 룰을 만드는데 도움 주려고 하는 ‘친노패권세력’의 끄나풀들이 몇이나 있습니까?  추미애 위원장이 친노입니까?


왜 1인1표가 되었을까요?  추미애 위원장은 위에 인용된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듯 아주 노골적으로 당시 여러차례 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되풀이 말했습니다.  “이건 안철수 교수한테 제일 유리한 룰이다”라고요.  당시 안철수 의원에게 가장 유리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저도 동의를 했던 내용입니다.  물론, 거듭된 입당 요구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첫 경선이 임박해지면서 소위 비문계열에서 뒤늦게 경선룰 변경을 요구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안철수를 위해서 만든 룰인데, 안철수가 참여하지 않으니 새로 만들자”는 요구였고 결국 뼈대는 그대로 두고 ‘결선투표제’를 새로 도입하는 정도로 결론이 맺어진 것입니다.  이때도 가장 강력히 ’1인1표제 무력화’에 반대한 분이 바로 추미애 의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 이제 두번째 가설도 기각이 되죠?  이해찬은 대의원의 한 표가 일반 모바일선거인단의 한 표 보다 훨씬 더 높은 가중치가 적용되는 룰이 거의 그대로 유지된 채 경선을 치뤘고, 문재인은 ‘1인1표룰’에 의해 경선을 치뤘지만 그 룰을 만든 사람이 이해찬이 아니라 바로 추미애라는 것, 그리고 17인의 ‘경선기획단’에 친문보다는 비문이 더 많았다는 것, 그리고 경선기획단장 추미애가 “이 룰은 안철수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만들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룰 변경에서 이득을 취하력고 작전을 편 것이 없다는 겁니다.


모바일 투표가 도입된 선거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바로 ‘당심’과 ‘민심’의 괴리였습니다.  당심은 김한길이 이겼는데 민심은 이해찬이 얻었으니 당대표 경선에서 희비가 엇갈렸고 패배한 측에서는 당연히 ‘룰’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겁니다.  이런 불만은 대선후보경선에서도 그래도 이어집니다.  비록 추미애 의원이 주도한 1인1표룰이지만 문재인 의원에게 유리한 새로운 경선방식이었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그런데, 대선후보 경선이 끝나자 “손학규가 당심은 이겼는데 모바일에서 졌다’는 해괴망측한 이야기가 회자됩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손학규는 당심에서 문재인을 이겼을까요?


출처: 아이엠피터


실제로 문재인은 대의원 순회투표, (주로 당원) 현장투표, 모바일 투표 모든 부분에서 2등 손학규를 전부 이겼습니다.  그나마 김한길은 이해찬을 당심으로라도 이겼지만, 손학규는 문재인에게 당심에서도 확실히 패배했습니다.  물론 모바일에서는 그 격차가 더 엄청나게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모바일의 가중치가 적었거나 아예 없었다고 해서 문재인이 질 선거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가설1과 가설2는 모두 기각됩니다.  즉, 친노는 모바일투표를 당권/대권 획득을 위해서 “기획해서” 민주통합당을 만들면서 도입하지도 않았고, 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변경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전 과정이 새롭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지켜본 과정들입니다.  투명하게 진행되어왔습니다.  그럼 남는 가설은 또 뭔가요?

가설3: 친노는 모바일에서 반칙을 직접 했거나 누군가가 했는데 덮었다.


워낙 앞에 길게 써놔서 제가 이 세번째 가설에 대해서는 짧게 쓰겠습니다.  친노가 직접 저지른 반칙들을 제시해 주십시오.  모바일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불거져서 여전히 남아있는 의혹들 중 손해를 봤다고 한 측의 주장을 정확히 명시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반칙이든 한명숙/문성근/이해찬/문재인이 덮었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시해 주십시오.  저는 몇가지 반칙사항들을 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기준으로는 충분히 허용되는 수준의 반칙이었기 때문에 굳이 문제로 키울 필요도 못 느끼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한명숙이 당대표로 뽑혔던 2012년 1월, 당시 당대표 경선에 구름같은 경선인단이 몰려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경선인단 자료 입력할 일손이 부족하다고 할 정도로 몰려들었습니다.  여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총선 지역구 공천 경쟁률이 약 3:1이었습니다.  즉 전국적으로 약 700~800여명이 석달 후 있을 총선에서 공천을 노리고 한참 자신의 지역조직을 꾸려나가는 시기가 바로 당대표 경선과 일치했습니다.  이미 당은 당대표경선에 국민참여경선 방식을 도입하면서 총선에서도 이와 같은 국민참여경선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고했었고, 공천을 노리는 예비후보들은 “당대표경선 선거인단 등록”을 권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지지자 명단’을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친노후보들도 당시 열심히 당대표경선 선거인단 등록을 권유했습니다.  이게 바로 민주통합당 첫 당대표경선에서 모바일 투표에 구름같은 인파가 모여든 이유입니다.  친노 비노를 가리지 않고 모든 후보들이 그야말로 열성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소위 비노 정치인들이 에 가입한 이유가 바로 ‘국민의명령’ 지역 회원명단 때문이란 건 정치판에 다 알려진 이야기 아닙니까?)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투표인단이 몰려들었습니다.  손학규도, 김두관도, 정세균도, 문재인도 새로 ‘추미애가 바꾼 룰’에서 모바일의 비중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 때문에 모바일선거인단 모집에 속된 말로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모바일선거인단을 모으는 과정에서 약간의 무리수도 있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소위 박스떼기 비슷한 형태로 집단등록이 되었다는 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루머 수준입니다.  차제에 누가 이 문제 정식으로 제기했으면 합니다.  그런 증거가 있다면 덮지 말고 깝시다.  누가 그런 박스떼기 반칙을 저질렀는지 못 깔 이유가 없습니다.  더 심한 투개표상의 반칙이 있었다면 다 깝시다.  이걸 왜 친노가 모두 깔아 뭉개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야 합니까?  대선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그렇다치고 대선 이후 문희상/김한길은 도대체 왜 이런 의혹들에 대해서 뭉갰던 걸까요?  만에 하나라도 친노가 그런 반칙을 저지른 주범이라면 더 혹독하게 밝혀내도 좋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더 유심히 민주당을 들여다봐왔는데, ‘심각한 반칙’은 없었다고 봅니다.  한상진-김재홍 두 분이 이른바 를 만드는 과정에서 모바일 투개표에서 있었을지 모를 반칙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지만 결국 못 찾아냈습니다.  그거 하나만 있으면 바로 문재인이든 문성근이든 이해찬이든 골로 보낼 수 있는데 끝내 못 찾아낸 겁니다.  대선후보경선과정에서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캠프에 의해 제기된 모든 의혹들은 전부 해명이 되었고 양해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과정에서 ‘부정경선’의혹으로 남아 있는게 있다면 제시를 하고 민주당에 해명을 요구했으면 합니다. 


댓글
  • 조원우뢰배 2016/12/18 15:41

    진짜 글 시작에 물뚝심송 나오는 순간 넘김. 물뚝심송이 김종인이랑 문재인 짜고친다고 총선 전에 그리 말했는데 지금쯤 이불 다 찢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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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원우뢰배 2016/12/18 15:41

    아니 물뚝심송이 정치 관련해서 말한게 제대로 맞기나 한적이 있는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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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원우뢰배 2016/12/18 15:42

    아 물뚝 비판 글이군요? 물뚝 그 인간은 뭐...답이 없음. 아픈 사람이라니 여기까지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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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lrhsgkrns 2016/12/18 15:43

    조원우뢰배// 물뚝심송에 대한 반론글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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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lrhsgkrns 2016/12/18 15:44

    헷갈리시는 분도 있고 분량도 기니까 물뚝심송 부분은 들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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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itarplayer 2016/12/19 11:29

    가설 1: 모바일투표 도입은 단 한번도 당의 패권을 잡아 본 적이 없는 친노세력이 한명숙을 내세워 당권을 잡기 위해 도입했다.
    => 2007년에 손학규 측의 주장으로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도입되었습니다...
    2011년 천정배가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모바일 투표를 경선에 도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즉, 모바일 투표 관련해서 허위사실 유포하는 인간들을 잘 보시고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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