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철산리 (현재 광명시 철산동) 주민들이
장날에 장에 가기 위해 하천을 건너고 있다.
장날에 장으로 향하는 농촌 농민들.
'보릿고개 넘기기 운동'이 한창인 분주한 농촌.
1961년, 대구에서 열린 우시장
한국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세대인 1954년생이 초등학교 (당시 명칭 국민학교)에 입학.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향하는 모습.
1960년대 초반, 서울의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모습. 부잣집 아이들이 많이 다니던 학교였다.
60년대 초반, 모내기가 한창인 서울시 성동구 논현동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1동, 논현2동)
고등학생들의 농촌 봉사활동. 밭매기에 동원된 학생들.
풀뽑기에 여념이 없는 농번기 20대 새댁.
M1 총기 분해조립,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남고생들.
60년대 공장 근로자들의 모습.
전국적인 문제였던 쥐떼 창궐 해결을 위해 '쥐잡기 운동' 시작.
잡힌 쥐를 보고 속이 시원한듯 웃는 시골 어른들.
1964년, 국민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모습의 학생
고등학생들을 위해 책이 기증되었다.
책을 수여받으러 교장실에 모인 학생들.
수업중인 고등학생들.
1967년, 제2회 전국학생씨름대회.
씨름 프로대회가 존재치 않던 시절, (씨름 프로대회는 80년대)
전국 고등학교의 힘깨나 쓴다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는 서울 고등학생들.
치열한 결승전, 경북 영신고등학교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벼 수확이 한창인 가을, 농촌 일손돕기중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쌀 한가마니를 나르는 고등학생의 모습.
학생들의 봉사활동으로 빼곡히 쌓인 쌀가마니들.
1963년, 독일로 향하는 청년 광부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되었다.
독일 파견 전 교육을 받고있는 20대의 광부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광산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코리안 엔젤'이라 불리었던 파독 간호사들.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
첫 국내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시판되었다. 납땜질에 열중하는 어린 여공들.
1965년, 월남 전선으로 향하는 국군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노인.
파병을 위해 부산항으로 가는 특별 수송기차.
역에 잠시 정차한 사이 처음 보는 국군 장병을 향해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아주머니.
한 병사가 역까지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하들과 악수하는 중대장을 지켜보는 이학철 (당시 23세) 해병 소위
결연한 표정의 백마부대 (보병 제9사단) 장병들
긴장한듯 눈을 깜빡이는 맹호부대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일병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어느 중위의 모습.
당시 국내 최대 여성단체였던 한국 부인회 회원들이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맹호 혜산진부대 소대장 최정길 소위(당시 24세)가 환송 인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백마 30연대 중대장 박기호 대위 (당시 27세)가 승선전 아내, 어머니와 사진을 찍고 있다.
아내 김순옥 씨 (당시 24세)와 뒷편에 흰 한복을 입은 어머니 유옥례 여사 (당시 53세)
부산 시민들과, 수송선 난간에 빼곡히 매달린 장병들.
부산 시민들의 응원에 군가로 화답하는 장병들.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는 병사
1966년 8월, 새우 양식장의 모습.
식목일, 당시 민둥산이 즐비했던 산에
가족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당시 농촌의 풍경
1967년 월남 주둔 해병 청룡부대. 4성 장군이 경계를 서고 있는 해병 병사의 덥수룩한 수염이 신기한듯 만지며 웃고 있다.
당시 서울의 모습.
1967년 부산시 풍경.
1968년, 북악 스카이웨이 개통.
당시의 서울역 기차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왜케 다들 노안인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청년들 생활근육이 ㅎㄷㄷ하네요
맹승부// 헐 연배가...
60년대만 해도 한복 많이 입었네요.
상전벽해급..
저 당시에 태어난 세대를 불펜에서는 꿀빤세대라 하죠.
병사 팔이 보디빌더네 ㅡㅡ
불페너들 워너비 세대 아님. 대학만 나오면 꿀빤다는 ㅋㅋㅋ
식목일에 나무심으러 간 건 생각나네요 저 시대는 아니지만...
턱걸이 학교, 제 모교 같네요.. 서울 덕수초등학교..^^
Animal// ㅇㅈ
꿀빨다 못해 데모만 처해대고 선동렬 방어률로
취업했다
심지어는 놀고 처먹으며 띵가띵가 거리다 취업해
집사고 땅사고 대한민국 부는 다해처먹었다고
불패너들이 악을쓰는 세대 ㅋㅋㅋㅋㅋ
현실은 10%언저리로 겨우 대학갈가 말까한 세대에
주70시간이 넘게 일해야 했던 세대 ㅋㅋㅋㅋㅋ
92년생인데 저시대에 태어나서 어떻게 삽니까... 지금이 훨씬 살기편하지 꿀빠는 세대는 무슨..
쥐 꼬랑지 잘라서 학교에 가서 검사 받고 잔디 씨 털어서 학교에 갖다 바치던 국딩 시절...
70년대까지도 참 민둥산이 많았는데 지금은 민둥산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죠.
나무를 심는 건 30년을 내다보고 하는 일이다 매사에 멀리 보고 행동해라 하시던 선생님 말씀.
우리나라의 녹화사업(대머리의 그거 말고)은 정말 대단합니다.
와 진짜 소중한 자료네요..잘봤습니다.
진짜 극소수 일부 불페너중에 과거를 미화시킨다고
저때 꿀빤 세대라고 주장하는거 보면 황당 그자체..
무식해서 그런건지 아님
과거에는 모두 꿀빨았고 나는 시대가 못살게 만들었다고
내가 못사는 이유를 합리화 시키려고 그런 주장하는건지 궁금함.
메갈논리랑 비슷하지 않나요?
내가 잘나가지 못하는 건 시대탓, 남탓
형님들 그리고 동료 및 후배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때 연탄 갈때가 그립네요 ㅎ
길냥이들, 울음소리 낸다고 너무 미워하지 맙시다. 그녀석들 역할이 매우 커요.
잘 봤습니다.
60년대 끝자락에 태어났지만 농촌 풍경은 저 어렸을 적과 똑같았네요.
그래도 어렸을 적엔 동네에 애들도 많고 재미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는데....
1960 년대 전세게에서 두번째로 못살던 나라.
보릿고개.. 굶기를 밥먹듯 했던 나라.
저땐 북한보다 더 못살고 더 경제적으로 빈곤할때죠.
필리핀도 우리입장에선 희망의 나라였다니..
대한민국 근대사 모습을 잘 보고 갑니다..저걸 보면 저시대에 살았던분들이 결코 꿀빤세대가 아니라는걸 확실히 보여주네요
저희 어머니 어린 시절이군요.
지우개가 없어서 침으로 닦아서 쓰다가 종이에 구멍 났다고;
진짜 꿀빤세대는 일본 버블세대지 저세대는 꿀빤세대라고하기엔 좀 그렇죠. 한국으로치면 IMF터지기 딱 전세대쯤?
하루우유//저 41세임.
저 세대를 꿀빤 세대라고 누가 그래요
섀도 복싱하시나
80년대 3저호황~ IMF 이전 보통 이때를 말하는건데
[리플수정]저 국민학교 다닐때에는 가을철 하교 시간에 학교하고 집하고 3.5km, 2km정도는 집 한채가 없는 산길(폭은 그래도 꽤 되어서 차량 한대 정도는 다닐 정도)을 걸어서 등하교 했었죠.
그 당시 감나무에 붙은 홍시 되기 전 땡감을 먹으면서 집에 오곤 했죠.땡감은 그냥 먹으면 엄청 떫습니다.감을 씹으면 나오는 물은 뱉어내고
나서야 괜찮았죠.거기에 라면 스프랑 같이 먹으면 맛이 참 좋았습니다.참 그런 먹거리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그 당시 먹거리가 찔록이니 삐비니 칡깽이니 고소니.....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다 거쳐온세대라 고생한 흔적이 얼굴에 많이 남았네요.
잉여도스// 동의. 엠팍에서 꿀빤세대라고 까이는건 80년대 학번을 말하지 60-70년대 고도성장시기에 온몸으로 고생한 세대를 말하는게 아니죠. 86이라고 하는게 60년대생이지 60년대 산업화 주역들이 아닌데 말이죠.
다들 20살은 더 들어 보이다니 ㄷㄷㄷ
저시대들 누가 꿀빨았다고 하나요.
6.25 온몸으로 부딛히거나 태어난 세대 다음으로 개고생한 세대지....
꿀빤세대는 보통 386이라 칭하는 80년대 중반 학번 이야기 하는거 같은데요.
저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꿀빤게 아니라, 저 때쯤 태어난 사람들이 꿀 빤거죠..
솔직히 저기 나온 분들은 진짜 고생하신 분들...
왜 노안인지 몰라서 댓글쓰나요? 생각을 좀 하고 댓글을 쓰면 좋겠네요.
저때는 지금처럼 잘 먹지도, 씻지도 바르지도 못할때입니다. 밖에 나가지도 않는데 자외선차단제바르는 지금과 비교할수가 없죠.
죄다 봉사에 무급에, 저임금 노동 ㅠ
기업과 나라가 진짜 착취 엄청했네요
저렇게 국민들이 일궈놨으면 나라나 기업이나 베풀줄을 알아야지
죄다 내이득이네 하고 있으니
어르신들이 다시 웃을수 있게 빨리 쥐를 잡읍시다
60, 70년대 사진이 나오니
80년대 학번이 꿀빤 세대라고 하는 군요.
80년대 학번은 보릿고개가 있었던 60년대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전 서울살았는데 점심시간 도시락 못싸오는 애들 꽤 됐어요.
시골가면 전기가 없었구요.
80년대 학번이 요즘보다 취직이 쉽지도 않았어요.
대학진학율이 20~30%밖에 안되니
대졸자 취업은 요즘보다 쉬웠을 수는 있겠네요.
문홍//그러게요.저희때만해도 점심시간때 밥 안싸온 애들도 많았고,고등학교 진학을 못해서(1985년 중3졸업) 서울이나 수도권등으로 취업을 나갔던 동창들도 꽤나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취업 꿀빨던 시절이었다고요?지금의 대학 진학률과 그 당시의 대학진학률은 비교 못하죠?그당시 3d업종에 취업하는 사람들과 지금은 3d업종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 비교는 못하죠?그당시 꿀빨던 사람들중에 대다수는 지금 세대들이 취업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을 마다하지않은 사람들입니다.진짜....그 당시 사람들과 지금 세대들의 허약하기 짝이없는 체력들도 좀 보세요.
지금 공무원 시험등에 목매달고 공부하는 것들과 그 당시 취업만 되면 무슨 일이든 한다는 사람들하고도 비교를 하세요.
가만히 볼펜만 굴리려는 사람들에게는 3d업종이라도 취업만 됐으면 좋겠다는 그 사람들은 그냥 일하는 기계처럼 보이겠죠.
적어도 저 고등학교 졸업하던 제 동창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1988년 졸업세대들)
과거세대의 장점 한 두가지를 가지고 와서 꿀빨았던 세대라고 하는 건 시대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라는 요지의 댓글을 오해하신 분들이 좀 있는 듯.
부모님 또래친구분들 어릴적 모습들이군요.
저는30후반인데..
촌놈이라그런가 저분위기가 왜이리 익숙한지..
동네감나무 감따서 단지에 우려먹고
더덕캐러다니고 집앞냇물에 밤에 횟불들고 형들이랑 해머로 바위쳐서 고기잡은기억이..
옛날추억생각하면 그립네요
너무 어린 저는 상상도 못할 과거군요
딱 저 모습이 현재 북한의 모습 혹은 저것보다 더 못하겠죠?
전에 EBS에서 해주는 어떤 농촌마을이 배경인 60년대 한국영화를 봤는데 솔직히 문화컬처 받았습니다. 저 위 사진에도 있지만 진짜 마을의 집들이 다들 초가집인데 그 초가집들도 규모가 정말정말 코딱지만함.
그 코딱지만한 규모에서 매년 지붕을 새풀로 갈아서 때깔이 좋은 것이 그 마을에서 부잣집. 그냥 남루하면 못사는 집.
부잣집이래봐야 가구라곤 화초장 같은 것이 마루에 놓여져 있는 것이 전부.
길들은 소달구지 한대 겨우 다닐만한 좁은 흙길.
초가집들은 화재에 더할나위 없이 취약했을 것이고,울퉁불퉁하고 비오면 질퍽질퍽한 좁은 흙길로 생산성을 높여 보릿고개를 해소하는 것은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문득 이래서 새마을운동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듭디다.
아무리 고도성장기에 꿀이 아니라 송로버섯에 캐비어를 빨았더래도 1인당 국민소득 100불 안팎의 유사파시즘 체제의 저개발 병영국가에서 절대 살고싶지도 않고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부럽지도 않음. 90년대를 미화하는 것도 웃긴데 국민소득 100불 안팎인 시대를 꿀빨았다고 하다니... 저 사진들 중 철봉에 매달린 어린애가 딱 고난의 행군 시기의 북한 어린이 몰골인데.
왜 386이 꿀빤세대라고 하는지? 요즘 금수저 흙수저 하지만 그땐 수저 자체가 없던 시댄데 60년대에 태어나 아버지가 간신히 먹고 살게해주셔서 이악물고 공부해 지금까지 왔는데 국민학교때 도시락 반잔은 항상 멸치조림이고 대학다닐때는 책사고 나면 돈이없어 점심 옷먹고 공부했는데 아들래미 피자에 양념치킨 맥이며 키워났더니 이제 뜰딱소리나 듣고 ,50이 넘어서 회사 짤리고 마누라,자식들 먹여 살려야 하기에 일요일도 가게에나가 음식 만드는데 무슨 놈의 꿀빨아 ssi 발 ㅎㅎ
[리플수정]박완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그때를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어린아이들이 늘 누런 코를 흘리고있고 옷소매로 그 누런코를 닦던 모습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전반적으로 영양이 부족해서 어린아이들이 누런 코를 늘상 흘리던 빈국이 50년전 한국이었음. 꿀이 아니라 누런 콧물을 빨았던 시대구만.
예전분들이 확실히 강해 보이네요. 고등학교 성님들도 쌔보입니다.
전쟁이 2000년대 중반에 끝났다고 생각해보면.. 1960년대는 전쟁 끝난지 진짜 얼마 안됐겠네요.
월남 파병 가시는 분들 보니 참 마음이 착잡하네요... 저 청년 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거나, 다치셨을텐데..
저때의 고등학생들은 잘 먹지도 못했을텐데 요즘 고딩들보다 골격도 크고 강인해 보이네요.
진짜 장난 아니죠..
괜히 박정희가 찬양받는게 아님
갠적으로 싫어하지만 그래도 공은 인정함
문제는 그 당시의 가치관을 현재에 도입하려는게 문제인거지
그분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음
저 분들 덕에 지금처럼 먹고 사는 것이겠져
꿀 빠는 세대가 어딨습니까 다 각자 나름의 힘든게 있는거지
누가 더 힘든것 까지 서열 매겨야하나요?? 멍청한 소리죠
다만 요즘 세대가 느끼기엔 지금처럼 사회 구조가 다 짜여있는 경우에는 정주영이 시골소년에서 재벌이 된것 같이 뭔가 큰 성공은 이루기 힘들다는 뜻이겠죠
할머니 어깨라도 주물러드려야겠네요 ㅠ
박정희 개 시 끼 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