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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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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잔혹한 홀로코스트가 횡행하던 시절 그들의 마수로부터 살아남으려 했던 독일계 유대인 안네 프랑크가 네덜란드로 이주한 뒤

1945년 2월 베르게-벨젠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하기 이전까지 가상의 친구 키티와 대화 형식으로 자신의 삶을 풀이한 일기 ‘안네의 일기’


안네의 일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잔혹한 학살 행위에 희생된 무고한 이들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문화 매체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연하게 ‘전쟁에 희생된 어린 소녀’ 로 기억되는 안네 프랑크의 작품은 사실 이것보다 조금은 더 심오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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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의 친부였던 사업가 오토 프랑크 (1889/05/12 - 1980/08/19)


안네 프랑크가 속한 프랑크 가문은 부유한 거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였으며 가문 대대로 성공적인 사업을 도맡아 항상 부유한 집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토는 독일 제국군으로 복무하며 최종적으로 육군 중의로 제대하였는데

재밌는 점은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였던 솜 전투에도 참전한 사실이 있는데 이 전투에는 훗날 유대인 학살을 명령한 아돌프 히틀러 상병도 그의 전우로서 이 전투에 전방 연락병으로 복무하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전쟁 이후 그는 기업의 상속녀로서 부유한데다 11살 연하의 에디트 프랑크 (혼전 성은 홀랜더 Holländer)와 결혼하고 장녀  마르고를 얻게 된다

경제대공황과 정치적 혼란의 상황에도 오토는 승승장구하며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며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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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도르트문트에서 SA에게 연설을 하는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와 나치당이 보수파들과 결탁하여 불법적인 권력을 획득한 이후 프랑크 가족의 명운에 암흑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수 많은 유대인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오토 프랑크도 그 중 하나였다

결과론적으로는 오토 프랑크는 치명적이고도 안타까운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바로 네덜란드로의 이주였다

제1차 세계대전때도 중립을 지키며 전란을 피해갔던 나라였기에 이번에도 네덜란드가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오토는 당시 독일의 식품 기업이었던 오펙타(Opekta)의 네덜란드 지사에 파견 형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히틀러의 나치는 과거 독일제국보다도 악독한 파렴치한들이었고, 독일 인종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절멸시키려는 그들의 계획에 있어서 네덜란드의 중립은 불필요한 걸림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933년 네덜란드로 이주한 이후 1940년 나치의 침공 이전까지 프랑크 가족들은 다시 행복을 되찾았다

안네는 1929년 5월 12일 태어나 유년 시절을 네덜란드에서 보냈으며, 네덜란드의 유대인 학교에 재학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문학공부를 하며 평범하고도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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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진입하는 독일군 차량


하지만 1940년 나치가 네덜란드의 중립 선언을 짓밟으면서 그들의 운명이 180도 달라지게 된다

또한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이후 유대인종에 대한 탄압의 강도는 점점 더 거세졌고 1942년 2월 최종해결책(유대인 절멸)이 나치 고위 관료들에 의해 결정된 뒤에는 절정을 달했다


결국 오토 프랑크는 지금까지 자신이 일구어낸 많은 재산들을 이용, 자신이 운영하던 오펙타의 건물에 가족들과 은신하여 나치가 몰락할 때 까지 버티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바로 안네 프랑크가 집필한 안네의 일기의 내용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도피생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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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프랑크 (1900/01/16 - 1945/01/06)


안네 프랑크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가를 꿈꿔왔으며 자신이 가상의 친구 키티와 대화한 일기 또한 세상에 널리 퍼지길 원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도피생활 기간 동안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같이 지내는 판 펠스 일가 및 주변인들에 대해 아주 자세히 묘사했는데

그 중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인물 중 하나가 자신의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였다

앞서 말했듯 부유한 상속녀였던 그녀는 구시대적 가치관을 가진 것과 더불어 굉장히 감성적이었는데, 신세대적 가치관을 가진 안네와 도피생활 기간 동안 자주 충돌했었다고 한다

사춘기를 겪을 나이였으며, 도피생활 동안 원치 않는 억압과 강제성을 띈 생활에 지친 안네는 본인의 진심이 아니었겠지만 에디트에 대해 부정적인 묘사를 일기에 자주 서술했었고 그녀에게 저주와 비슷한 악담도 퍼부었다고 한다

하지만 에디트도 억압적인 생활에 지쳐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항상 딸들을 사랑으로 돌봐왔다고 혹자는 생각한다


그녀의 최후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활로 심신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황에 딸들과 헤어지게 되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아사했다는 설과

(그녀의 두 딸 마르고와 안네는 베르게-벨젠 수용소로 이송되면서 생이별하게 되었다)

그녀의 장녀 마르고가 수용소 경비병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약한 몸을 이끌고 딸을 지키기 위해 경비병에게 저항하다 살해당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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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고 프랑크 (1929/02/16 - 1945/03/09)


안네 프랑크와 세살 터울인 프랑크 가문의 장녀

어머니를 닮아 감정표현이 풍부하며 솔직했던 안네와 달리 아버지 오토를 닮아 조용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프랑크 가족과 함께 지내는 다른 인물들과 트러블이 적었다고 한다

공부를 곧잘 했었던 안네와 마찬가지로 라틴어 실력이 뛰어났고 학구열이 뛰어났다고 알려져있으며 장녀로서 가족의 트러블을 앞장서서 중재할 정도로 사려가 깊었다고 한다


마르고 또한 안네처럼 자신만의 일기를 썻다고 하는데 이 일기가 현대까지 전해졌다면 여동생 안네를 자매로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소실되었다고 한다


마르고는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수용된 이후 동생 안네와 함께 베르게-벨젠 수용소로 이전된 후 그곳에서 장티푸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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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 히스 (1909/02/15 - 2010/01/11)


그녀는 오스트리아계 네덜란드인으로, 오펙타 네덜란드 지부에 근무하던 오토 프랑크의 비서였으며 나치당에 가입하라는 남편의 부탁도 거절하고 전쟁기간 동안 프랑크 가족을 도왔다

오토 프랑크 가족이 오펙타 사옥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밀고는 커녕 그들이 발각되는 1944년까지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식량과 물품을 보내오며 게슈타포로부터 신변을 보호했었다


훗날 ‘믿을 수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유대인들이 기업 사옥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낸 나치가 프랑크 가족을 급습했을 때

유대인을 보호했다는 죄목에도 불구하고 미프 히스는 신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던 그녀는 체포를 지시한 인물이 오스트리아 억양을 쓴다는 것을 알아채고

동향 사람임을 거론하였고, 같은 고향 사람에게 친화감을 느낀 나치가 그녀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일단 살아남은 그녀는 안네가 돌아오면 돌려주기 위해 그녀의 일기장을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고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를 만나 안네의 일기를 전해주게 되었다. 그녀야말로 안네의 일기가 전세계에 널리 퍼질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뒤에서 프랑크 가문을 도우며 그들을 신변을 보호하려 노력했던 그녀의 일화는 디즈니의 ‘작은 불빛’ 이라는 작품으로 드라마화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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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가족의 체포를 직접 이행한 SS-하급반지도자 카를 질버바우어


그들의 체포를 직접 이행한 인물은 카를 질바바우어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율리우스 데프만은 앞서 말했듯 ‘믿을 수 있은 정보원’의 밀고로 유대인의 위치를 알아냈다며 질버바우어에게 명령을 내렸고

카를 질바바우어는 방첩부대를 이끌고 오토 프랑크 가족과 그들과 함께 지내는 판 펠스 가족들을 체포했다

이때 질버바우어는 오토 프랑크의 물품을 조사하던 중 그가 1차 대전에 장교로 참전한 참전 용사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전역증을 찾아냈고

자신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배려로 5분 안에 마쳐야될 준비 시간 (당연히 수용소로 가기 전 물품을 챙길 시간이다)을 1시간으로 늘려주었다고 한다


전쟁 이후 질버바우어에게 명령을 내렸던 율리우스 데프만은 프랑크 가족을 밀고한 배신자의 신원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네덜란드 파르티잔들을 재판없이 집단학살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원히 밀고자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체포조를 이끌었던 질버바우어는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조용히 살던 중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에게 발각되었다

하지만 오토 프랑크는 질버바우어에 대해 단순히 본인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며 그를 변호하였고, 풀려난 그는 1972년 사망했다

일개 SS 부사관이 학살을 반대했다고 해도 그들의 힘으로는 거대한 국가폭력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고, 막으려 노력했다고 해도 본인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질버바우어는 죽는 순간까지 안네 프랑크를 기억했으며, 안네의 일기가 발행되었을 당시 초판본을 구매하여 자신의 이름이 일기 속에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안네 프랑크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녀는 베르게-벨젠 강제수용소로 언니 마르고와 함께 이송된 이후 그곳에서도 강제노동에 시달려야만 했고

언니가 장티푸스로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정신적 충격과 더불어 마찬가지로 장티푸스에 걸려 하루에서 사흘 뒤 언니의 곁으로 가게 된다 (그녀의 사망날짜는 2월에서 3월로,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사망한 뒤인 1945년 4월 15일

나치는 두 발로 수용소 밖을 걸어나갈 수 있는 ‘비교적 건강한’ 수용자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으므로 모조리 학살하고

걸을 수 조차 없이 피폐해진 수용자들은 수용소와 함께 폭파시키려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수용소 폭파는 무산되고 수용자들을 그대로 방치해둔 채 도주한다

그리고 영국군이 베르게-벨젠 강제수용소를 해방하게 되는데, 그 날짜가 안네가 사망하고 고작 한달에서 두달이 되는 시기였다

조금만 더 버텼다면 안네와, 안네보다 고작 3일 먼저 세상을 등진 마르고 둘 사람 모두 아버지 오토와 재회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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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Yb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