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대충 7년전...
사건이 터진 결혼식 전날,
예비신랑(내가 다니던 회사 대표)은 동탄의 집으로 나와 지인 이씨를 초대했다.
축의금과 방명록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급하게 식을 꾸리느라 손을 빌릴 인력이 마땅찮았던 탓이다.
허나 평생 양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
대표님(과거)은 나에게 옛날에 사업할 때 쓰던 양복 한 세트와 구두를 새로 맞춰주셨다.
그리고 대략적인 스케쥴을 설명받고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준비했다.
그렇게 급하게 고용된 나와 이씨, 박씨
돈통조와 웨딩비디오 촬영조로 나누어 수고하게 됐는데
그날 문제가 발생했다.
이씨와 박씨가 당초에 빌려야 했던 촬영장비는
렌탈업체의 문제로 지급에 큰 차질이 생겼고
그 두사람이 예약해둔 식장 근처의 헤어샵 스케쥴도 덩달아 꼬여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샵으로 미리 차를 타고 가야했고
몸만 가도 됐던 나는 렌탈샵에서 장비를 찾은 뒤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촬영장비를 받을 수 있던 나,
하지만 시간 여유는 거의 없었다.
너무 급한 마음에
그냥 돌아나가면 되는 주차장의 쇠사슬을 점프로 통과하려 들었고
"찰캉"
가뜩이나 어색한 양복차림에
저질같은 피지컬로 인해
그 쇠사슬에 발 한쪽이 걸려버려
강남 골목 한복판에서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와 가슴을 세차게 찧어버리는 오체투지를 시전했다.
장비 망가지지 말라고 팔을 하늘로 쳐든 탓에
나의 상체와 면상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지구와 키스를 갈겨버렸다.
강남과의 딥키스는 꽤 비쌀테지
순식간에 시야는 어지러워졌고, 쇠맛이 느껴졌다.
입술이 터진 것이었다.
피 섞인 침을 바닥에 뱉어버리고,
입은 슈트에 혹시나 구멍이나 났을까 확인했다.
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심한 나는
이제서야 내 시야에 계속 새햐얗게 떠있는 일자 흔적을 발견하는데
씨바
안경 렌즈에 커다란 칼빵이 생겼다.
어디서 들은건 있어가지고
편의점에서 치약을 사서 렌즈에 발라봤지만
거의 렌즈 두께의 반은 들어간 칼빵을 메우기엔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런 찐빠를 내놓고 남의 결혼식까지 망칠 수는 없던 일
정신을 다시 차리고, 오른쪽 눈에 2080의 민트향을 뿜기며
최대한 빠르게 택시를 잡아 예식장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그 둘은 내 꼬락서니를 보고 걱정해줬지만
온몸에 피가 잔뜩 돌고 있던 나는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촬영장비는 무사히 전달되었고
나와 이씨는 제시간에 자리에 앉아 방명록과 돈봉투를 받을 수 있었다.
너무 바쁘게 돌아간 탓에 나는 대표님과 사모님의 뽀샤시한 드레스와 제비차림을 보진 못했지만
잘됐거니 싶어 차를 타고 귀가했다.
다음날
푹 자던 와중 가슴에 생전 처음 느끼는 위화감과 고통을 느끼며 일어났다.
같이 갔던 지인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너 진짜 가슴뼈 나간거 아니냐? 병원가라 진심으로" 라는 말을 하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형외과를 가며
'에이 무슨ㅋㅋㅋㅋㅋ 그딴거에 갈비뼈가
나가네 시발'
선명하게 갈비에 남은 검은 줄을 짚어주는 의사샘
"어제 뭐하신건가요?"
"돈통을 지켰습니다."
"?"
"이 모든게 의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상태로 택시타고, 심부름하고
축의금받고, 뷔폐 살짝 찍어먹고, 돌아오는길에 간짜장까지 말아먹고 와서 잤다 이말이지...
병원은 아플때가 아니라 아플 거 같을 때 가야된다는걸 느낀 날이었다.
+덤) 상상도 못한 하객
아무생각없이 방명록에 적히는 이름을 보던 도중
김...상... 이라고 적히는걸 보고
'내가 아는 사람하고 이름이 비슷하네?'라고 생각한 순간 얼굴을 보니
내가 생각하던 '그 분'
김상유(웃대총장)님이 펜을 떼고 식장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대표님에게 물어보니
야후코리아 다닐적에 한솥밥 먹고 생긴 인연이라고 하드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