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덕질 끝판왕

 

(크럼프하우 자세에 대한 설명에 삽화, 파울루스 헥터 마이어, 1540, MSS_Dresd.C.93/C.94 31r)

 

독일 검술을 논할때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그게 바로 파울루스 헥터 마이어이다.

16세기 독일 아우스크부르크 출신 공무원이자 검객이었던 이 사람은 단순 검객이 아니라

검술 교습서(Fechtbücher)를 수집하는 취미까지 있었던 골수 덕후였었다.

 

 (크럼프하우 설명에 대한 삽화 , 피터 팔크너, 1495, MS_KK5012_4v)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덕후들은 늘 그랬듯이 수집하는 데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음에 드는게 없으면 직접 만드는 것을 꿈꾸는게 당연지사 아니었던가?

마이어 선생 역시 그러하였다. 당시 교습서는 삽화 없이 구결로 이루어져있던 것도 많았고

삽화가 있다 한들 대다수는 흑백이었고, 채색이 되어있었다 해도 상당히 조잡한 상태였었다.

 

 

(퍼멀을 이용한 적 제압방법에 대한 묘사, 한스 탈호퍼, De fechtbuch Talhoffer, 67p)

 

 

마치 최애캐 피규어를 샀는데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만들고 보는 루리웹의 모 금손괴물들처럼

마이어 선생 역시 자작 검술교습서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때 선생께서 만났던 자가 바로 '요르그' 라고 하는 젊은 화가 검객이었다.

그리고 서로 의기투합해서 자신이 갖고 있던 교습서와, 직접 대련을 시도하면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호화 양장본에 올컬러 망ㄱ...아니 검술교습서를 편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올컬러 망ㄱ...아니 검술교습서를 보여줄 때가 온 것 같군 - 파울루스 헥터 마이어)

 

이렇게 마이어 선생께서는 금손 작가님까지 하나 영입해서 호화스러운 검술교습서를 자작할 완벽한 준비를 갖춘 것 같았으나,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모든 덕후가 덕질 가운데 현실을 보게 하는 문제인 '돈' 문제였다.

당시에 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데도, 거기에다가 물감 팍팍 쓴 올컬러 견습교습서를 만들려니

갈려나가는건 역시 예산이었고, 공무원 월급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덕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결국 마이어 선생께서는 금단의 술수를 쓰셨는데

바로 공무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아우스크부르크 시의 재정을 횡령하여 결국에야 이 올컬러 교습서를 완성시키고야 말았다.

그 이후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좀 더 싸고, 모두에게 검술덕질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포교용 버전인 양산형 교습서도 만들고

배포하다가 결국 꼬리가 잡혀 1579년에 선생께서는 62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당하셨다.

 

비록 비리공무원의 응당한 최후였지만, 선생의 의지는 그대로 이어져서 현재 총 3부의 직접 서술한 오리지날 교습서가 남아있으며

이를 필사한 여러 교습서도 많이 남았고

이로 인해 16세기 검술의 여러 양상까지 살펴 볼 수 있었으니 선생께서는 가히 '영웅적 비리공무원'이라고 칭할 수 밖에 없을것이다.

 

 

 

마이어 검술교습서 사본을 볼 수 있는 곳 : https://www.thearma.org/Manuals/Mair/Mair.htm#.WiNuKXlx2Ul